Updated : 2024-04-27 (토)

(장태민 칼럼) 2천명 증원에 맞선 한 전공의의 투쟁

  • 입력 2024-03-29 15:11
  •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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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콤 장태민 기자] 한국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을 보면서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다수는 여전히 의료계의 '이기주의'를 비난하고 있지만, 의료계의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다면서 정부의 밀어붙이기식 '의료 개악'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가 결국 파국으로 이어져 한국 의료 시스템이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걱정을 하는 사람들도 늘었다.

사실 한국인들은 외국과 비교할 때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 혜택으로 누려온 사람들이다.

많은 한국 사람들이 의사들을 향해 돈만 밝히는 사람들이라는 꼬리표를 붙인 채 비난하고 있지만, 그간 의사들의 과잉 노동 덕분에 편하게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면서 고마워하는 사람도 있다.

의대 증원을 필두로 한국 의료 시스템에 대한 칼 대기가 시작된 가운데 정부-의료계의 대치전선은 여전히 견고하다.

■ '2천명' 수치는 절대적 가치인가...정부의 이상한 대화법

정부는 의대 증원규모 2천명이라는 수치에 손을 댈 생각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의사집단, 그리고 한국 의료시스템의 '개악'을 우려하는 사람들은 정부의 주먹구구식 의대생 증원이 의료시스템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감추지 않고 있다.

정부와 의사들간 갈등의 핵심은 '증원 규모'다.

그러나 사실 누가 보더라도 정부의 대화법은 상당히 이상했다.

박민수 복지차관은 '전공의, 대학교수 등이 조건 없이 돌아와 얘기하자'면서도 '2천명'이라는 증원 수치를 손 볼 생각은 없다는 듯한 입장을 지속했다.

단번에 의대 증원의 65%에 해당하는 2천명이나 늘리는 것은 사실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교수진, 교육 기자재, 각종 교육 여건을 쉽게 만들 수 있다는 정부의 주장에 쉽게 동의가 되지 않는 게 자연스러운 반응 아닐까.

하지만 정부 관계자들은 '나의 계산이 틀릴 리 없다'는 듯한 입장만 고수하고 있다.

정부는 계속해서 의료 개혁과 관련해 모든 문제를 논의하자면서도 이번 사태의 핵심인 '2천명 증원'은 제외하고 얘기하자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박민수 복지차관은 27일에도 "의료계와 모든 걸 논제로 할 수 있지만 2천명 증원은 과학에 기반해 합리적으로 계산한 것이며 (증원 규모에 대한) 확고한 생각은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사실 이런 화법은 매우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갈등의 당사자 한쪽이 '갈등의 중심 사안'에 대해 얘기하고자 하지만, 정부가 '그것 빼고' 모든 얘기를 하자고 하니 대화가 진척되지 않는 것이다.

나는 라면을 주문했는데 주방장은 계속해서 국수나 김밥을 맛있게 요리해서 내놓겠다고 주장하니 식당문을 나선 사람이 돌아오지 못하는 것이다.

■ 3월이 끝나가지만...'2천명' 양보할 생각없는 정부

정부는 3월이 거의 끝나가는 이 시점에서도 '2천명 증원'에 대해 물러설 생각이 없어 보인다.

박민수 복지차관은 29일에도 2천명 증원에 대해 '과학적 추계에 기반'하고 '130회에 걸친 협의를 통해 나온 것'이라고 했다.

박 차관은 그러면서 "이번에는 특정 직역이 정부 정책을 무력해온 악습을 끊을 것"이라며 "의료 개혁을 흔들림 없이 완수하겠다"고 다짐했다.

사직서를 낸 교수들이나 근무지를 이탈한 전공의들에게는 '무조건 돌아와야 한다'면서 조건 없는 대화를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2천명 증원은 빼고'라는 조건이 달린 것처럼 보였다.

답답하다.

■ 의사 출신 안철수의 제안 "2천명도 테이블에 올리자"

정부가 2천명을 고수하고 있는 가운데 최근엔 의사, 컴퓨터 백신 전문가로 일했던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이 2천명 증원에 반대했다.

안 의원은 27일 한 라디오 방송에 나와 "지금 휴학한 학생들이 군대에 가면 내년에 인턴이 없어지고 나중에 군의관과 공보의도 없어진다"며 "그 사람들이 돌아오면 2천명이 아니고 4천명을 교육해야 한다. 완전 의료 파탄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안 의원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지금 정부는 꿈과 같은 얘기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증원 숫자가 서울은 0명이고 지방에 이렇게 많은데, 새로 2000명 신입생을 뽑고, 새로 의대 교수를 1000명 뽑는다고 해도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나도 의대 교수를 해봐서 알지만 10년 정도가 걸려야 제대로 학생을 가르칠 수 있는 교수가 된다"면서 2천명을 증원해 교육하는 건 '불가능한 이야기, 꿈 같은 이야기'라고 했다.

그는 따라서 2천명 증원을 고집하지 말고 대화로 풀자는 안을 제시했다.

그리고 이번 사태와 관련해 가장 큰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젊은 의사들의 '처절하고 진지한' 목소리도 들어봐야 한다.

■ 류옥하다의 '투쟁'

최근 이 문제와 관련해 '사직 전공의'라는 명패를 단 한 젊은 수련의가 큰 관심을 받고 있다.

류옥하다씨는 의대 증원 2천명 문제와 관련해 자신의 블로그 등에 글을 올리면서 큰 주목을 끌고 있다.

이 20대 중반의 젊은 수련의는 '2천명' 증원에 대해 비현실적인 정책이라면서 조목조목 비판했다.

정부가 2천명 증원의 근거로 내놓은 KDI, 서울대, 보건사회연구원 보고서를 참조해도 수십년 내 의사 과잉이 나타난다고 비판했다.

정부가 정교하게 계산했다고 한 '2천명'에 대해 이 젊은 의사는 사실상 '거짓말'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의사수 문제에 관심이 있었던 사람들은 문제의 핵심이 전체 의사수가 아닌 '필수과목' 의사수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필수의료를 공부한 사람들마저 '돈은 되고 몸은 상대적으로 편한' 비필수 쪽으로 옮겨 일을 하면서 내외산소(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의사가 부족해진 것이다.

류옥씨는 생각없이 의대 정원만 2천명을 늘려 낙수효과를 통해 부족한 필수 의료 의사를 확충할 수 있다는 생각은 1차원적이라고 경고했다.

류옥씨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필수 의료에 종사하는 의사, 지역에서 근무하는 의사"라며 "이 문제는 구조적인 의료체계를 개혁하지 않으면 2만명을 증원한들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OECD 보다 빠르게 의사수가 늘고 있는 나라라고 했다.

그는 "매년 활동 의사수는 3천명 가량 증가해 OECD 평균 증가율의 1.41뱅체 달한다:"면서 "전국 어디에서나 몇 시간내로 당일 초진이 가능한 대형병원이 있는 나라가 한국"이라고 했다.

사실 의대 증원의 이유로 내세우는 OECD와 비교한 '명목' 의사수는 중요하지 않다.

실제 노동시간, 의사들의 능력 등을 감안한 '실질' 의사수가 더 중요하다. 사실 김윤 서울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가 주장한 '명목' 의사수는 한국의 의사 부족을 과장하고 있다.

'명목' 의사수가 부족한 것으로 나오는 일본, 한국, 미국 등의 의료 서비스가 최상권에 속하고 의사수만 많은 나라들의 의료질이 더 낮다. 북한도 한국보다 인구당 의사수가 더 많다는 통계도 있다.

■ 의대 증원, 한국경제 미래와 관련된 문제이기도

의대생 증원을 두고 교육업계에서도 예상대로 각종 혼란이 일어나고 있다.

대학을 다니면서도 재수하려는 학생이 늘어나고 지역 의대에 자식을 보내기 위해 준비하는 학부모들도 늘어났다.

각국이 미래 첨단기술에서 승리하기 위해 반도체 등 각종 공학 인력을 늘리려고 하는 마당에 한국만 '의대 몰빵' 전략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젊은' 의사 류옥씨도 경고한다. 그는 '늙은' 사람이 늘어나는 것이 의사수를 확대해야 하는 이유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노령화 대처에 필요한 것은 의사가 아니라 간호, 간병 인력입니다. 나라의 성장 동력이 떨어지고 출생률이 0.7명으로 고꾸라진 한국 사회에서 AI, 반도체 등 국력을 키울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해야 합니다. 한정된 재원을 어디에 투입해야 하는가의 문제가 중요하지, 의대 증원은 인재와 재정을 쏟을 현안이 아닙니다."

지금은 AI, 바이오 등 미래 먹거리 산업에 집중해야 하는 시대다. 이 쪽을 지원해도 한국은 사람이 적어 경쟁이 만만치 않다.

의대 증원이 필요하다면 적정 인력을 늘릴 수야 있겠지만, 지금처럼 65%나 늘리는 것은 과도해 보인다.

아울러 재정문제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의대생을 늘리지만 당장 공급이 늘어나지도 않는다. 전문 의사 인력 한 사람을 키워내는데 1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의사수만 늘려놓으면 재정적인 측면에선 문제가 커질 수 있다.

지금도 건강보험료율이 올라갈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의사수만 더 늘릴 경우 국가재정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류옥씨도 이를 우려했다.

"지금 의료 인력을 추가로 양성해 현장에 투입하기까지는 10~20년이 필요합니다. 이런 식으로 공급자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연간 8% 이상인 현재의 의료비 증가와 의료비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는 '의사수'만 늘리면 해결된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 의료의 질 저하 ▲ 피수의료 붕괴과 의료진 이탈 ▲ 의료비 급증 ▲ 보험사와 대형병원이 바라는 의료 영리화 등으로 귀결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류옥씨의 이같은 '진지한 걱정'은 많은 의사들, 그리고 한국경제를 걱정하는 사람들 사이에 적지 않게 퍼져 있다.

의학에 입문한지 30년이 넘은 한 외과 전문의는 이렇게 말했다.

"(안 좋은) 결과가 뻔해 보이는 정책을 왜 이렇게 밀어붙이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정부는 의료계와 대화를 했다고 하지만 아닙니다. 현장 의사나 전공의와는 이해 관계가 다른 특정 교수, 병원장, 학교장 등을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한 도구로 이용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 의사는 이런 식으로 정책을 추진하면 향후 한국 의료 생태계에 디스토피아가 펼쳐질 것이라고 자신했다.

돈이 없어도 다른 나라보다 상대적으로 싸게 치료를 받을 수 있었던 한국의 의료 시스템은 서서히 종말을 고하는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한 마디 남겼다.

"의사들이 아니라 정부가 대화할 의지가 없습니다. 귀를 닫고 있는 상대와 어떻게 대화를 합니까. 한국 의료의 미래에 디스토피아가 찾아왔을 때 제 말을 기억해 주세요."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지만, 의사들이 단순히 자신들의 '돈벌이나 이기주의' 때문에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게 아니다.

우리 주변의 의사들과 진지하게 얘기해보면, 진정으로 미래의 한국 의료 시스템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2천명 증원'에서 물러나 '진짜' 대화를 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참고자료> 류옥하다씨가 최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

(장태민 칼럼) 2천명 증원에 맞선 한 전공의의 투쟁이미지 확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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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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