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 2024-05-04 (토)

(장태민 칼럼) 쇠락한 정권에 들이대는 추경 요구서

  • 입력 2024-04-22 14:31
  •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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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신장식 당선인 불륜 의혹으로 문을 닫은 조국혁신당 홈페이지 모습

사진: 신장식 당선인 불륜 의혹으로 문을 닫은 조국혁신당 홈페이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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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콤 장태민 기자]
야당이 4.10 총선에서 압승한 뒤 '25만원 지급' 등을 위한 추경이 현실화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야당은 이번 선거 운동 때부터 전국민 현금 지급을 주장했다.

선거 운동 기간 민주당이 내분에 휩싸였지만 국민의힘이나 정부가 자충수를 두면서 자멸한 가운데 현재 정부와 여당은 '협치'에 나서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간 윤석열 대통령은 범죄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이재명 대표를 만나지 않는다는 입장을 나타냈지만, 선거에서 참패한 뒤 만나기로 했다.

2심 항소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대통령이 자신도 만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연일 거침없는 민주당의 추경 요구...조국도 합세

선거 대승으로 기가 산 민주당은 연일 추경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들에게 인당 25만원을 뿌리는 데 13조원이라는 큰 돈이 들지만, 민주당에서 '그 이상'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많다.

민주당은 이참에 대통령이 거부하는 법률까지 밀어붙일 기세다.

양곡관리법 개정안 등 각종 법안들을 거론하면서 '돈이 더 들 수 밖에 없는' 사안들도 거론하고 있다.

민주당에선 무능한 정부가 긴급민생지원금 25만원에 난리를 치면서도 R&D 예산엔 손이 오그라든다는 식의 비판도 나오고 있다.

선거에서 큰 성과를 낸 조국혁신당도 자신감을 배가하면서 정부를 압박하는 데 동참하고 있다.

이날 조국혁신당의 조국 대표는 "정부는 민생회복과 과학기술 예산 복구를 위한 추경 편성에 동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경제수장은 인당 25만원 '안돼'

최상목 경제부총리는 이재명 대표가 주장하는 전국민 1인당 25만원 현금 지원 주장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

최 부총리는 25만원 '민생지원금'이나 추경 주장에 대해 선을 그었다.

최 부총리는 심지어 워싱턴 G20회의까지 가서 한국 기자들을 대상으로 "추경은 경기 침체가 올 때 하는 것"이라며 민주당 요구에 반대했다.

민주당은 '전국민 인당 25만원 지급 플러스 알파'를 위해 미니멈 15조원 정도의 돈을 마련해 보자고 하지만, 부총리는 반대하고 있다.

부총리는 재정정책을 통한 돈 풀기는 약자 등 특정 섹터를 '타게팅'해서 이뤄져야 한다고 보고 있다.

한국 재정 형편이 결코 좋지 않은 상황에서 부총리의 이런 입장은 상식적이고 타당하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전국민 대상 돈 풀기는 국민의 인기를 모으는 데는 약효가 크다는 점이 증명됐다.

천박한 정치인들이 기생하기에 가장 적합한 토양이 마련된 한국에선 국민 인기를 얻는 데 '직방'인 정책이 그냥 넘어갈 리 없다.

안타깝게도 한국 국민은 무능한 정부·여당과 포퓰리즘에 단단히 맛들린 야당이라는 두 가지 선택지 밖에 없다.

투자자들은 따라서 정부와 여당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보고 있다.

재선에 성공한 여당의 안철수 의원은 "총선에서 대승한 민주당의 25만원 전국민 지급은 현금살포식 포퓰리즘"이라며 "여당이 이를 맥없이 뒤따라 가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라고 '옳은 소리'를 했다.

국힘과 정부가 이런 기조를 잘 유지할 수 있을지 봐야 한다.

■ 채권시장의 추경을 보는 시선

금융시장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추경 가능성을 보는 시각도 다소 어지럽다.

특히 추경을 실시하면 채권 물량 부담을 경험할 수 밖에 없는 채권시장 종사자들의 입장은 편치 않다.

하지만 어떤 연예인(정치인)을 좋아하는지에 따라 추경를 보는 시각에 차이는 난다.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을 지지한 채권투자자 A씨는 채권 롱을 쥐고 있지만, 정치 문제가 나오자 추경에 대해 그리 나쁜 입장을 취하지 않았다.

이 투자자는 "대통령과 여당이 정신을 차렸으면 추경을 할 것"이라며 "다만 사람이 변할기 쉽지 않다. 하지만 야당의 압박은 거셀 것이고 결과가 궁금하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정책이 국가재정을 망칠 수 있다고 봐서 총선에서 국민의힘을 지지한 채권투자자 B씨는 이번 추경 징조를 한국경제에 매우 위험한 시그널로 봤다.

B씨는 "25만원 현금 살포를 해선 안된다는 사실을 경제학을 조금이라도 공부한 사람이라면 다 알 것"이라며 "국힘이 민주당에 야합해 돈 뿌리기에 응할 경우 대통령 탄핵에 힘을 보탤 것"이라는 거친 반응을 보였다.

그는 이런 식으로 정책이 포퓰리즘으로 흘러가면 결국 재정 악화와 국제신인도 하락으로 한국민들은 결국 '해외로부터' 공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총선에서 기권했다는 C 채권투자자는 얼빠진 정치인들이 추경과 관련한 이상한 조합을 내놓을 수 있는 만큼 어떤 결론도 내지 않고 지켜보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현재 채권시장의 일드 커브가 스팁되는 데엔 추경에 대한 불안감이 작용하고 있다고 봅니다. 정부와 집권당은 여론이 안 좋다 보니 뭐든 하는 척이라고 해야 하는 상황에 몰렸습니다."

현재 경제부총리 등이 추경에 반대하고 있으나 총선 대패로 여당과 정부가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리다 보니 정치적 야합에 의해 추경 등 의외의(?) 결과물이 도출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 21대 총선의 추억...나쁜 버릇 들인 한국

4년 전인 지난 2020년 봄 선거를 앞두고 포퓰리즘이 기승을 부릴 때 민주당은 4인 가구 기준 100만원을 긴급재난지원금으로 주자는 주장을 펼쳐 선거에서 큰 재미를 봤다.

당시 민주당의 이해찬 대표는 "지역·소득과 관계없이 모든 국민을 국가가 보호하고 있다는 것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문재인 정부가 돈을 뿌리도록 분위기를 잡았다.

이해찬은 올해 민주당이 내분으로 내홍을 겪자 공동 선대위원장으로 합류에 다시금 선거에 지지 않는 '이해찬의 마법'을 선보이면서 살아 있음을 증명했다.

내막을 아는 사람들은 다 알지만, 사실 이재명을 대권주자로 끄집어 낸 인물은 민주당의 상왕 이해찬이다.

2020년 당시엔 민주당의 '현금 살포를 통한 인기 얻기'가 효력을 얻자 다른 당 마저 이를 흉내낼 수밖에 없었다.

이제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는 정당이 된 정의당의 유일한 인적 자산이었던 심상정은 당시 "국민 한사람에게 100만원씩 주자"면서 판돈을 키우기도 했다.

다만 추경을 통한 돈 뿌리기에 대한 특허권은 민주당에 있었기 때문에 당시에도 민주당이 가장 큰 재미를 봤다.

4년이 지나 다시 인당 25만원이 사회 이슈가 되고 국민들은 또 '25만원이라도 있으면 좋지'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정치인들이 되새겨야 할 덕목은 '민심은 절대 천심이 아니다'라는 사실이다.

포퓰리즘이란 질병에 익숙해지기 시작한 우매한 국민들이 달라는 대로 돈을 주면 국가 경제는 나락으로 떨어질 뿐이다. 민심에 야합하는 정치인이 많아지면 한국 재정이 거덜날 수도 있다.

당장 많은 사람들의 기분은 좋게할지라도 이런 식의 돈 뿌리기는 경기 부양 효과는 별로 없고 미래 세대의 빚만 키울 뿐이다.

정치학 원론 대로 하면 정치가 국민을 걱정해야 하지만, 한국은 일부 예민한 국민이 정치를 걱정한지 오래됐다. 그리고 정치의 독주가 다시 시작되려고 한다.

해외 신평사도 한국 정치권의 무모한 '재정 모험주의'를 유의해서 보고 있을 것이다.

지난해 한국의 관리재정수지는 87조원 적자를 기록해 적자가 GDP의 3.9%에 달했다. 여당이 재정준칙을 거론하면서 제시한 '적자폭 GDP 3% 이내' 약속조차 지키지 못한 상태다.

올해 들어선 2월까지 자료가 발표돼 있는 관리재정수지 적자가 벌써 36.2조원을 기록하고 있다. 작년보다 5.3조원 불어나 있다.

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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