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 2024-04-27 (토)

(장태민 칼럼) 대전지검의 전직 경제관료 기소와 부동산 통계조작

  • 입력 2024-03-15 14:43
  •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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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국부동산원

사진: 한국부동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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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콤 장태민 기자] 문재인 정부 당시 통계를 조작한 혐의로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국토부 장관 등이 재판에 넘겨졌다.

대전지검이 전날 문재인 정부의 경제 관료들을 대거 재판에 넘겼다.

한국감정원(現 한국부동산원)과 통계청의 통계 조작 혐의다.

핵심 관련자들엔 문재인 정부 당시의 김상조·김수현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홍장표 경제수석, 강신욱 통계청장, 황덕순 일자리 수석 등이 포함됐다.

검찰은 문재인 정부 경제관료들이 추구했던 집값 안정이나 소득주도성장, 비정규직 감축 등이 실패하자 한국부동산원과 통계청을 압박해 데이터를 조작했다고 밝혔다.

문 정권 당시의 윤성원 국토부 1차관, 하동수 국토교통비서관과 국토부 주택실장 2명도 기소했다.

■ 4년 6개월간 125차례 조작 혐의...부동산 정책발표 뒤엔 홍보 위해 더 적극적으로 조작

검찰이 발표한 부동산 통계조작 수준은 예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검찰은 문 정부가 취임 직후인 2017년 7월부터 임기말인 2011년 11월까지 4년 6개월 동안 125차례에 걸쳐 '주간 주택가격 변동률'을 조작했다고 발표했다.

이미 지난해 감사원이 통계조작을 문제 삼은 바 있지만, 이 정도면 사실 상시적으로 데이터에 손을 댔다는 얘기가 된다.

검찰에 따르면 문 정부 경제관료들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점에 집중적으로 통계를 조작한 것으나 나타났다.

예컨대 대통령 취임 2주년을 앞둔 시점, 21대 총선 직전, 그리고 부동산 대책 발표 이후에 통계를 조작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위 관료들은 주택가격 변동률이 발표되기 전에 미리 수치를 제공 받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변동률 '재검토' 등을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

한국감정원은 매주 한 차례 주간 주택가격 변동률은 국토부에 보고해왔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 공표 전 대통령비서실에 사전 보고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에 따르면 주택 통계담당 직원들은 매주 한번씩 국토부에 보고하다가 청와대를 위해 '주중치'와 '속보치' 등을 대통령비서실과 국토부에 사전 보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노무현·문재인 두 정부에 걸쳐 부동산 정책 실패로 무주택자들의 꿈을 꺾어버렸던 김수현 실장이 집값 상승률 축소 등을 지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무능한 관료는 능력이 없더라도 절대 사용해서는 안 되는 '사파(邪派)의 기술'까지 가져다 쓴 것이다.

■ 집값 폭등 이끈 김수현, 통계법 중대한 위반 혐의

검찰 발표가 사실이라면 이는 통계법에 대한 중대한 위반이다. 또 직권을 남용한 범죄에 해당한다.

통계법은 "통계작성기관에서 작성 중인 통계 또는 작성된 통계를 공표 전에 변경하거나 공표 예정 일시를 조정할 목적으로 통계 종사자에 영향을 행사하는 행위를 금지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를 위반하면 징역 3년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다만 경제 실상 평가나 정책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통계를 조작하는 범죄에 대해 이 정도 형량이면 가벼워도 너무 가볍다.

형량이 가벼워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김수현 실장, 윤성원 비서관, 김현미 장관 등은 한국감정원에 수치를 낮추도록 압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은 한국감정원 통계 담당 직원들이 사전보고 지시가 부당하다고 판단해 12차례나 '중단 요청'을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상조 실장은 국토부, 한국감정원 관계자들이 참석한 회의에서 오히려 '사전보고를 폐지하면 한국감정원 예산이 없어진다. 괜찮겠는가'라는 적반하장식 태도를 보였다고 전했다.

■ 부동산 정책, 28전 28패의 기억...결국 통계조작으로 이어진 것인가

이번 검찰 발표 결과는 감사원 감사에 따라 예고된 것이었다.

감사원은 2022년 9월부터 작년 8월까지 국토부, 통계청에 대한 감사를 실시한 뒤 작년 9월 주택·고용·소득 통계에 관한 위법행위가 의심되는 22명에 대해 검찰 수사를 요청했다.

검찰은 이 사람들 중 절반은 기소하고 나머지 절반에 대해선 '혐의 없음' 처분을 했다.

대전지검 발표가 사실이라면 문재인 정부의 고위 경제 관료들은 처벌 강도와 별도로 한국 최초 '통계법 위반자'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된다.

특히 총선에 미칠 악영향 방지 등 각종 정치적 이득을 위해 국가 경제 통계 조작까지 서슴지 않았다니 말문이 막힐 정도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 상당수 사람들은 '28전 28패'라는 표현을 쓸 정도였다. 정부의 대책이 역효과만 냈기 때문이다.

다만 당시 경제학을 좀 공부했던 사람들 중엔 '집값 오르는 정책을 쓰면서 집값 하락을 기대하고 있다'고 개탄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예컨대 조세의 가격 전가 기능 등은 경제학 초보자도 아는 내용인데, 문 정부의 경제 관료들은 '대체 어떤 종류의 경제학을 공부한 것인가'라고 되묻는 사람도 있었을 정도였다.

■ 한국감정원 '미스터리'의 결말은 통계 조작

2020년 6월.

시민단체 경실련이 문재인 정부 들어 서울 아파트 가격이 52% 뛰었다고 했을 때 정부는 14% 올랐다고 주장했다.

경실련은 KB 중위 매매가격 기준으로 서울 아파트 가격이 2017년 5월부터 2020년 5월, 즉 문재인 정부 출범 후 3년 동안 50% 남짓 뛰었다고 했고, 정부는 한국감정원 주택가격조사를 기준으로 10% 남짓 올랐다고 반박한 것이다.

정부는 당시 "경실련이 주장한 통계는 시장을 과잉해석하게 만든다"고 주장했다.

상승률 52:14라는 차이는 결코 합의를 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통계를 둘러싼 말싸움에서 누구 말이 맞는지는 굳이 따져볼 필요도 없었다. 서울 지역 공인중개사 사무소들도 50% 이상의 상승을 거론했다.

이후 그해 7월 김현미 장관이 했던 발언은 가관이었다.

"정부 기본 통계상으로 서울 아파트 가격은 14%, 주택은 11% 올랐습니다. 국민 체감과 다르겠지만 장관으로서 국가가 공인한 통계를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김 장관은 이런 어이없는 발언에 대해 세간에선 통계를 고친 뒤 '조작한 수치'를 공인한 통계라고 말한 것이라는 주장이 여럿 있었다.

당시에도 한국의 대표적인 부동산 통계는 민간 통계인 KB통계와 국가 통계인 한국감정원(現 한국부동산원) 통계로 양분돼 있었다.

하지만 과거엔 비슷하게 가던 두 통계가 문재인 정부 출범 뒤 어느 순간부터 엄청난 괴리를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에 '통계에 대한 의심'은 합리적이었다.

KB 기준으로 집값이 한주간 0.3%, 0.4% 급등한 것으로 나올 때 감정원은 0.1% 올랐다는 식으로 '상당히 마사지 한 듯한' 수치를 지속적으로 제시했기 때문이다.

필자 역시 이런 수준의 차이라면 '기술'이 들어간 것이라고 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당시 이런 얘기를 하면 '국가공인 통계를 못 믿는 음모론자'라는 식의 핀잔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 손 대면 안되는 국가의 기본 골격

법원과 같은 사법 시스템, 각종 공무원 집단 등은 특정 정치 세력에 충성하면 안 된다.

공무원 조직이 국민 대신 권력자들 눈치를 보기 시작하면 국가의 기본 골격이 흔들리게 된다.

국가 통계 역시 마찬가지다. 국가 공인 통계는 각종 경제·사회 현상을 진단하고 정책을 펼치기 위한 기본 중의 기본이다.

특정 권력자가 임기 5년 정권의 인기 관리를 위해 통계 종사자들을 협박하고 수치를 조작하는 순간 국민 전체가 엄청난 피해를 보게 된다.

불법 행위가 확정되면 엄벌에 처해야 한다.

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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