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 2024-05-02 (목)

[장태민의 채권포커스] 이사벨 슈나벨의 변신과 유로존 금리인하 기대

  • 입력 2023-12-08 14:22
  •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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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사벨 슈나벨 ECB 집행이사, 출처: ECB

사진: 이사벨 슈나벨 ECB 집행이사, 출처: EC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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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콤 장태민 기자]
이사벨 슈나벨은 유럽중앙은행(ECB) 내에서 매파를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슈나벨은 유로존 성장 전망이 우울해질 때도 인플레이션을 우려하던 매파였다.

ECB 내 매파를 상징하던 슈나벨은 그러나 최근 태도를 바꿨다.

그는 최근 유로존 내 금리인하 기대감을 부풀리는 데 큰 기여를 한 인물로 변신했다.

■ 슈나벨의 변신이 불렀던 파장

슈나벨 ECB 집행 이사는 지난 5일 "소비자물가 지표를 볼 때 추가 금리인상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말했다.

당시 이 발언을 도화선으로 독일 10년물 금리는 10.92bp 급락해 2.2452%로 내려갔다.

슈나벨은 "인플레이션이 큰 폭으로 완화되기 때문에 정책당국이 현행 수준의 금리를 내년 중반까지 유지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했다.

시장은 그 동안 필요 시 금리 인상에 나서야 한다는 그의 입장이 바뀐 것으로 해석했다.

슈나벨의 변신이 유로존 금리에 미친 영향을 컸다.

독일10년물 금리는 6일에도 4.83bp 하락한 2.1969%로 내려갔다. 독일10년물 금리가 2.1%대로 내려간 것은 올해 3월 24일(2.1242%) 이후 처음이었다.

올해 3월은 미국 SVB 사태로 각국 금리가 급락하던 때다. 금리가 그 때 이후로 가장 낮아진 가운데 ECB의 3월 인하 가능성까지 부각됐다.

■ 슈나벨은 뭘 본 것일까

슈나벨은 유로존의 성장 전망이 악화될 때도 '기저 인플레이션'을 감안해 매파적인 발언을 하던 인물이었다.

그는 성장률이 예상보다 약화될 때도 '근원물가'를 거론하면서 금리 추가 인상 필요성을 굽히지 않았다.

정책기조를 2% 물가 달성에 초점을 맞추고 필요하다면 금리를 더 올려야 한다고 했다.

올해 가을 슈나벨은 유로존 인플레가 2% 근처에서 안정되는 것을 보려면 2024년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유로존 경기를 '침체'가 아닌 '둔화'로 보면서 금리 추가 인상 필요성에 대한 주장을 굽히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올해 말이 되면서 슈나벨의 태도는 달라졌다.

11월 인플레이션까지 본 뒤 스탠스가 달라졌다.

30일 유로존의 11월 CPI는 전년 동기에 비해 2.4% 상승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한 달 전보다 0.5%p나 하락한 수치였다. 아울러 시장 관계자 예상치인 2.7%나 전월 수치 2.9%를 밑돈 것으로 2021년 7월 이후 가장 낮은 연간상승률이었다.

당시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CPI는 3.6% 올라 전월의 4.2%에서 0.6%p나 떨어졌다.

이 물가 지표는 슈나벨의 변신과 맞물렸다.

또 슈나벨이 '인상 불필요'를 거론할 때 ECB는 설문조사 결과도 발표하기도 했다.

10월 소비자들의 1년 후 기대 인플레이션은 연율 4%로 전월비 보합이었다. 3년 후 기대 인플레이션도 2.5%를 기록하여 전월과 같았다. 이 발표 뒤 시장에서는 ECB가 4월 정도면 첫 금리 인하를 단행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부풀렸다.

아울러 슈나벨의 변신 이전에 미국 연준에선 크리스토퍼 월러 이사가 태도를 바꾸면서 금리인하 기대감을 키운 바 있다.

연준 월러는 지난 달 29일 "금리 추가 인상은 불필요하다. 인플레이션 둔화가 유지되면 금리 인하도 가능하다"면서 시장에 인하 기대감을 부풀렸다.

이런 흐름 속에 이제 미국처럼 ECB의 3월 인하도 가능할 것이란 전망들이 나오는 상황이다.

■ 유로존, 내년 미국보다 더 큰 폭으로 내릴 수 있다는 관측도

강성 매파로 평가 받으면서 가파른 긴축을 주도했던 이사벨 슈나벨 이사의 최근 바뀐 태도는 14일 ECB 정책를 앞두고 정책 완화 기대감을 키웠다.

유로존의 금리인상 사이클은 사실상 종료됐고 금융시장은 향후 ECB의 조기 금리인하, 더 나아가 인하폭 확대에 대한 기대를 키울 수 밖에 없다는 진단이 나오곤 했다.

유로존 경기가 예상보다 더 안 좋아 인플레이션 경로가 하향 조정되는 가운데 물가 목표 달성 시기가 당겨질 수 있다는 기대감도 커졌다.

아울러 유로존 인플레가 '미국보다' 덜 끈적하다는 점도 정책 변화에 대한 기대감을 키운 요인으로 평가 받는다.

한국은행은 이달 1일 미국과 유럽의 고물가 성격이 다르다는 점을 거론하기도 했다.

당시 한은은 "미국은 공급충격에 따른 영향이 상당폭 해소되면서 상품가격의 오름세가 크게 약화됐으나 예상보다 강한 성장세와 타이트한 노동시장 등으로 서비스물가 상승률은 더디게 둔화하고 있다"면서 "반면 유로지역은 미약한 성장세에도 공급충격의 이차효과 지속되고 높은 임금상승률 등에 따른 서비스물가의 높은 오름세가 근원인플레이션의 둔화 흐름을 제약했다"고 밝혔다.

유럽은 성장이나 수요 요인보다 공급부문 2차 효과, 가격 전가 등이 물가를 부풀렸다는 것이다.

박성우 DB금융투자 연구원은 "그간 유로존 인플레의 주된 동인은 재화·서비스의 원가인상에 따른 가격전가 압력이었다. 천연가스를 필두로 한 에너지 가격 폭등이 기업으로 하여금 판매가격을 크게 인상시켰다"면서 "반면 타이트한 노동시장 환경에 따른 임금 압력은 상대적으로 인플레에 덜 기여했다"고 밝혔다.

그는 "빡빡한 노동수급이 최근 인플레의 주된 동인이었던 미국과 구별된다"면서 "이는 유로존의 근원 인플레 입력이 미국보다 덜 끈적할 수 있음을 뜻하다"고 풀이했다.

이런 상황에서 유로존 경기 악화는 기업들의 가격 전가 능력을 저하시킬 수 밖에 없다. 유로존 생산자물가나 소비 심리 부진은 이같은 미래를 암시하고 있다.

스페인, 이탈리아, 벨기에를 제외한 대부분 회원국이 3분기에 전기비 마이너스를 성장을 기록했으며, 2022년까지 양호하게 성장했던 네덜란드는 올해 3분기까지 3개 분기 연속 전기비 역성장을 기록했다.

헤드라인 HICP지수 내 서비스 항목은 월간 인플레이션을 3개월 연속 끌어내리고 있으며, 11월 기여도도는 -0.3%p를 기록했다.

유로존 물가의 예상치 못한 '몰락'은 금리인하 '폭'에 대한 기대감을 키웠다.

박 연구원은 "유로존은 고금리에 따른 내수부진, 그리고 재정긴축으로 인플레 모멘텀이 빠르게 둔화되고 있다"면서 "내년 유로존이 선진권역 중 가장 큰폭의 금리인하를 단행할 가능성도 있다"고 관측했다.

미국보다 더 금리에 예민한 유럽, 최근 물가 둔화 상당히 '인상적'

ECB 출범 후 가장 공격적이었던 기준금리 인상 사이클은 끝났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물론 다른 나라 중앙은행들처럼 ECB 역시 당분간 금리를 올리거나 내리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은 많다. 하지만 무게추는 인상 보다 인하로 쏠리고 있으며, 인하 시점은 당겨질 수 있다는 분위기가 강화됐다.

금리에 예민한 유럽 경제 구조, 그리고 재정정책의 한계 등이 결국 금리를 내리는 원인이 될 것이란 진단도 보인다.

박민영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긴축에도 고성장을 유지했던 미국의 배경에는 확장 재정정책이 있다. 하지만 유로존은 재정준칙 부활이 논의되고 있다"면서 "유로존은 노이즈 속에 공격적인 확장 재정 가능성이 제한된다"고 지적했다.

박 연구원은 "유로존의 소비와 투자는 상대적으로 금리에 취약하다. 대출 수요 역시 부진하다"면서 "부동산 비중이 높은 유로존은 주택가격 하락세로 소비 둔화가 가중된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최근 유럽 인플레이션 레벨이 예상보다 크게 낮아지고 에너지 등 외부 인플레이션 압력이 완화됨에 따라 2%대 물가 안착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만 미국, 유럽, 한국 모두 시장의 인하 기대 자체는 '너무 빠른 것 아닌가'하는 평가 역시 적지 않다. 유로존 역시 최근 3월 인하 가능성을 반영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유로존에선 10월 CPI 연간 상승률이 2.9%로 전월(4.3%) 대비 크게 둔화되면서 사람들을 놀라게 한 뒤 11월엔 2.4%로 2% 중반 수준까지 내려와 있다.

기대감 선반영을 감안할 때 당장 시장 금리가 더 하락하기도 만만치 않지만, 금리가 반등하면 저가매수가 모여들 수 밖에 없다는 진단들도 많다.

올해 11월 한달간 독일10년물 금리는 37bp 가량 하락해 2.4440%를 기록했다. 금리 수준이 미국에 비해 크게 낮은 만큼 시장금리 하락폭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이후 12월 들어선 5거래일 연속으로 금리를 낮추면서 2.1%대 후반까지 내려가 올해 봄 이후 가장 낮아졌다.

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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