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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민 칼럼) 항저우, 최악의 성적표 제출한 한국 스포츠

  • 입력 2023-10-10 14:12
  •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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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네이버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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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콤 장태민 기자] '한 때' 스포츠 강국이었던 한국이 최근 수년 사이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빠른 속도로 몰락했다.

지난 주말 끝난 제19회 아시안 게임 성적은 40년 남짓만에 최악이었다.

한국은 서울에서 처음 열렸던 1986년 시점부터 본격적인 스포츠 강국으로 도약했지만 제18회 대회인 2018년 자카르타 대회를 기점으로 스포츠 강국에서 탈락했다.

올해 5년만에 열린 중국 항저우 아시안 게임에선 18회 때보다 더 약화된 민낯을 드러내야 했다.

■ 스포츠 강국 한국의 추락

한국은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93개, 은메달 55개, 동메달 76개로 2위를 차지했다.

서울 안방에서 대회를 개최한 영향이 작용하긴 했지만, 거의 우승을 할 뻔했다.

하지만 중국 스포츠의 성장과 함께 한국의 '상대적' 경쟁력은 대체로 하락했다.

스포츠 대회 성적표가 경제력과 인구에 비례한다는 점에 이는 자연스럽다고 볼 수 있지만, 최근 몇 년 사이 한국 스포츠의 몰락은 누가 봐도 놀라울 정도였다.

지난 1986년 대회부터 2014년 대회까지 한국이 딴 금메달 갯수를 보면 93, 54, 64, 65, 96, 58, 76, 79개였다.

한국경제가 기본적인 틀은 갖춘 뒤 한국은 1980년대부터 당당히 스포츠 강국으로서 위상을 정립했다.

이 기간 한국은 12회 대회인 94년 히로시마 대회를 제외하면 줄곧 2위를 차지했다.

히로시마 대회에선 일본의 '텃세'에 밀려 금메달 64개로 3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이후엔 다시 줄곧 2위를 수성했다.

그러던 한국은 최근 대회인 2018년 대회부터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2014년 인천 대회에서 금메달 79개로 2위를 기록했던 한국은 2018년 금메달 49개로 일본에 밀려 3위로 내려앉았다.

그런 뒤 2023년 항저우 대회에선 40년 남짓만에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지난주 끝난 한국의 최종 성적표는 금메달 42개에 불과했다. 금 42개, 은 59개, 동 89개를 기록해 금메달 수에서 일본에 10개 뒤졌다.

■ 아시안 게임, 중국의 부상과 한국-일본의 상대적 퇴보

이번 대회에선 중국과 '그밖의' 아시아 스포츠 2강의 격차가 더욱 벌어졌다.

중국은 항저우 대회에서 금메달 201개, 은메달 111개, 동메달 71개로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중국과 '나머지' 아시아 2강의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한국과 일본의 금메달 수는 94개로 중국(201개)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엘리트 스포츠 업계에서도 불과 몇 년 전까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19회 자카르타 대회에선 일본이 금메달 75개, 한국이 49개로 두 나라 수를 합치면 124개였다. 당시 중국은 금메달 132개를 땄다.

당시에도 중국과 한국-일본의 격차 확대가 두드러졌으나, 이번엔 중국이 그냥 독주해버린 것이다.

한국과 일본의 금메달 수 합계가 중국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지금은 아시안 게임 종목이 예전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늘어났다.

사람들이 '이게 스포츠냐'고 항의할 법한 리그오브레전드나 스트리트파이터와 같은 게임도 당당히 아시안 게임 종목이다. 바둑, 체스 등도 '당연히' 아시안 게임에 포함돼 있다.

대회의 메달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지만 한국은 혼자 가장 빠른 속도로 몰락해버린 나라다.

■ 스포츠 몰락을 부추긴 희한한 나라, 한국

한국인들은 언제부턴가 엘리트 스포츠 말살 분위기는 즐기는 이상한 종족이 돼 갔다.

금메달만 대우해선 안 된다는 사회 분위기가 팽배해졌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참가에 의의를 두는 나라가 됐다. 다른 어떤 선진국도 자국 스포츠가 뒤쳐지길 원치 않았지만 한국은 달랐던 것이다.

선수들의 운동 강도는 약화됐으며, 자국 선수의 금메달을 바라는 사람을 이상한 눈으로 보는 희한한 공기가 사회에 번져갔다.

스포츠를 전문적으로 오래 취재해온 기자들도 무신경하긴 마찬가지였다.

오랜 기간 스포츠신문에서 취재기자로 일하다가 은퇴한 필자의 한 지인은 이렇게 답했다.

"지금은 한국 스포츠 최대 위기입니다. 희한하게 몇 년 전부터 정부, 그리고 일반인들까지 가세해 엘리트 스포츠를 못 죽여 안달입니다. 주변 생태계도 많이 망가졌으며, 스포츠신문이 망한 뒤 지금은 제대로된 스포츠 기자조차 찾기 힘든 실정입니다. 거저 좋은 말로 칭찬하는 사람 뿐입니다. 매우 이상한 일이지만 당신 빼고는 아무도 항저우 대회같은 최악의 성과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 한국과 일본의 동시 몰락? 일본은 '전략적 선택'

한국은 10년 내외 전인 2010년 광저우와 2014년 인천 대회에서 모두 70개 이상의 금메달을 따낸 나라다.

하지만 2018년 50개를 밑돌더니 이번엔 40개를 겨우 넘기는 최악의 성적을 냈다.

이번 대회에선 한국과 함께 일본 스포츠도 몰락했다.

그런데 일본은 다른 전술을 썼다. 일본의 아시안 게임 몰락(그래도 한국보단 나았다)엔 그들의 '아시아 대회 무시' 작전도 크게 작용했다.

일본은 '아시안 게임'을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보다 한 단계 아래로 보고 2진급 선수들을 많이 출전시켰다.

2018년 자카르타 대회 당시 한국을 제치고 24년만에 2위를 찾아올 때 그들은 1진급 선수들을 내보냈지만, 이번 중국 대회부터는 그 때 만큼 비중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전략적 선택'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금메달 수에서 한국을 여유있게 누르고 2위를 수성했다.

수영 정도를 제외하면 한국 스포츠는 전반적으로 퇴보했다.

이번 대회에선 투기 종목, 구기 종목 가릴 것 없이 한국 스포츠의 둔화가 여실히 드러났다.

하루 빨리 경쟁 시스템을 정비하고 훈련시설 등에 투자해 경쟁력을 높이지 않으면 이 추락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모른다.

■ 경쟁을 죄악시하면 퇴보 밖에 남는 게 없다

지난 2018년 아시안 게임에서 한국이 일본에 2위 자리를 내주는 '대이변'이 일어나자 아시아 스포츠업계는 크게 놀랐다.

'스포츠 선진국' 한국이 갑자기 몰락하자 다른 아시아 사람들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한국 스포츠엔 여전히 냉정한 언어가 없다.

지난 대회 때처럼 다시금 "여러분은 영웅이다. 수고 많았다"라고 말을 한다.

망해가는 자국 스포츠에 따끔한 일침조차 못하는 나라, 냉정하게 말해 그게 지금의 한국이다.

그나마 이번 아시안게임을 통해 몇몇 지인들은 자신들이 즐기는 구기 종목의 국제적 경쟁력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깨달았다.

이번 대회 수확은 몇몇 사람들이 '한국 스포츠 경쟁력이 이 정도로 떨어졌구나'하고 깨달았다는 점이다.

■ 최고 인기스포츠 야구, 크게 반성해야 한다

언론들은 한국 야구의 4연속 아시안 게임 제패를 크게 보도했다.

현실적으로 국내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야구가 그나마 우승을 해서 다행이긴 했다.

언론들은 한국이 조별리그에서 대만에서 4:0으로 진 뒤 결승전에서 2:0으로 완벽하게 설욕했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하지만 이런 행태를 보고 있자니, 참으로 씁쓸했다.

어차피 아시아에서 야구를 제대로 하는 나라는 일본, 한국, 대만 뿐이다.

한국 야구가 태국을 이겼다고, 중국을 이겼다고 환호할 일은 아니다.

더구나 '한국만' 자국의 젊은 엘리트들이 출전했다.

일본 야구에선 아시안 게임 정도는 '사회인 야구' 선수들이 커버한다.

대만은 미국 마이너리그 중에서도 '하위 리그'에 있는 선수들이 주축을 이뤘다.

한국은 젊은 엘리트들이 출전해 답답한 게임을 한 끝에 간신히 체면치레 정도 했다.

우승 덕분에 젊은 선수들이 군대 면제를 받았지만, 이번 대회에서도 역시나 '한국 야구의 퇴보'를 확인했을 뿐이었다.

전통적 야구 강국 중 한국은 최근 수년간 대만, 쿠바와 함께 가장 빠르게 퇴보한 나라 중 하나다. 이는 올해 WBC 대회 등을 통해 수년째 확인하고 있다.

최근 일본인들조차 '그래도 아시아에서 붙어볼 만한 나라는 한국 뿐이었는데...'라며 경쟁자의 자동 몰락을 안타까워해 주고 있다.

중국을 이겼다고, 태국을 이겼다고 환호하고 또 거기에 맞춰 박수까지 쳐주는 사람들을 보면 '과거에 비해 참 많이 바뀌었구나'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한국은 언제까지 이렇게 품질 낮은 서비스로 이 스포츠 산업을 끌고 갈 수 없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한국 스포츠의 몰락은 현재 사회 많은 분야에서 일어나는 한국의 '경쟁력 저하'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 안타깝다.

젊은 인구 소멸로 한국은 스포츠 산업 뿐만 아니라 많은 곳에서 위기에 처할 수 있다. 더 열심히 노력하고 훈련한 사람들에게 박수쳐주는 문화를 빨리 복원해야 한다.

메달을 무시하고 '져도 잘 싸웠다'고 무조건 박수쳐 주는 문화를 가진 나라의 미래엔 기대할 게 그리 많지 않다.

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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