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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민의 채권포커스] 채권투자 실패와 급격한 금리인상에 무너진 실리콘밸리은행

  • 입력 2023-03-13 11:23
  •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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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콤 장태민 기자] 벤처캐피탈과 기술 스타트업 전문은행 SVB(SiliconValleyBank)가 유동성 위기로 주가가 급락한 이후 미국 금융당국이 은행을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3월 8일 SVB가 재무구조 강화를 위해 증자가 필요하다고 발표한 다음날 모회사인 SVB Financial Group의 주가는 60% 폭락했다.

주가가 폭락한 날 정상영업을 지속했으나 예금 인출 증가, 외부 인수기관 물색 루머 등으로 불안이 확대되면서 당국이 은행을 정리하기로 했다.

SVB의 파산은 지난해 연준의 급격한 금리인상에 따른 고금리 충격에 따른 재무구조 악화 때문이다.

금리인상의 여파가 상대적으로 취약한 금융사들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가상화폐 전문은행 파산 영향 이후 벤처 전문은행이 SVB가 타격을 입은 것이다.

고객의 대규모 예금 인출 사태, 즉 뱅크런이 나타나자 미국 금융당국은 '은행 산업과 금융시스템 전반으로의 위기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대응에 나설 수 밖에 없었다.

■ 실리콘밸리 벤처 신화 상징하던 은행 SVB의 몰락...美당국 신속히 폐쇄결정

SVB는 1982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에 설립된 40년 역사의 은행이다.

이 은행의 영업은 기술 스타트업 분야에 자금을 제공하는 것으로 특화돼 있다. 2022년 기준 주식시장에 상장된 미국 테크와 의료 벤처기업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44%에 자금을 제공했다. 즉 미국 전역 벤처캐피털이 지원하는 신생기업 가운데 절반 가량이 SVB와 거래해온 것이다.

2022년말 기준 자산규모는 $2,090억으로 미국 내 16대 은행이었다.

하지만 고객 신뢰가 무너지자 순식간에 상황이 더욱 악화됐다.

9일 SVB 파이낸셜 그룹 주가 폭락 뒤 이 회사는 22.5억달러의 증자계획을 밝혔다. 동시에 벤처캐피탈 제너럴 애틀랜틱으로부터 5억달러의 투자 계획까지 밝혔다. 하지만 10일 오전 증자 계획이 물거품이 되고 매각을 위한 노력이 이어졌다.

골드만삭스 주관으로 SVB는 주식을 주당 95달러에 매각하는 것을 추진했으나 주가 하락이 이어지고 고객들이 돈을 계속 빼면서 이 역시 여의치 않게 됐다.

결국 당국이 빠르게 나설 수 밖에 없었다.

옐런 재무장관이 10일 의회 청문회에서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한 뒤 FDIC는 오후에 전격적인 '폐쇄'를 결정했다.

FDIC는 산타클라라 예금보험국립은행(DINB)이라는 새로운 은행을 설립해 SVB의 모든 자산과 예금을 이전하기로 했다.

13일 FDIC 감독 아래 업무를 재개할 계획이다. 25만 달러의 예금보험 한도 이내 예금주들은 13일 이후 예금을 인출할 수 있다. 보험한도를 초과하는 예금액에 대해서는 FDIC가 지급하는 공채증서를 준다.

■ 금융위기 이후 가장 큰 규모의 은행 폐쇄...SVB 보유채권 가격 급락 효과

SVB의 폐쇄 규모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크다. 역대 폐쇄 중에서도 두번째로 큰 규모다.

그간 최대 규모는 2008년 Washington Mutual 파산 당시 자산 3,070억 달러였다.

2020년 코로나 사태는 제로금리와 양적완화를 통한 거대한 유동성 공급으로 이어졌다.

역사상 최대로 풀린 유동성은 2021년 테크 기업 호황과 맞물려 SVB 예금 급증을 불렀다.

SVB는 이 돈을 미국 국채 등 각종 정부 보증 채권에 투자했다.

22년말 기준 1,201억달러에 달했다.

이런 가운데 SVB는 지난 8일 투자금의 일부인 210억을 매각하면서 1분기 중 18억 달러의 세후 손실을 실현했다.

이후 증자 계획 발표 등으로 주가가 폭락하고 투자자들이 돈을 빼면서 상황은 급속도로 악화됐다.

9일까지 SVB에서 예금 420억 달러가 인출됐으며, 막판 9.6억달러의 현금 부족 현상도 발생했다.

지난해 연준의 금리 인상과 맞물린 SVB의 채권 투자 실패가 지금의 사태를 부른 것이다.

지금은 급격한 금리인상으로 금리에 민감한 스타트업이나 벤처들의 자금 조달 비용이 상승했으며 점점 더 현금을 구하기 어려운 환경이 도래했다.

최근 가상화폐 전문은행 실버게이트 캐피탈이 뱅크런에 몰린 뒤 8일 청산을 선언하자 고객들이 극도로 불안에 휩싸였으며, 악화된 심리가 SVB의 파산까지 부른 모양새다.

실버게이트 캐피탈은 LCR 규제에서 벗어나 있는 업체로, 자산 대부분 장기채 등에 투자해 큰 손실을 안고 있었다가 결국 파산의 길로 들어섰다.

■ SVB 사태, 낙관론 vs 비관론

한국 금융당국은 주말 "SVB 사태가 미국 은행 등 금융권 전반의 시스템 리스크로 확산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시각이 우세하지만 글로벌 금융긴축으로 시장 변동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국내외 금융시장, 실물경제 등에 대한 영향을 배제할 수 없어 관련 상황을 24시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필요한 경우 신속히 대응함으로써 우리 경제의 부작용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해 나가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당국은 "SVB 유동성 위기가 은행 폐쇄로 확산되면서 금융시장 변동성과 불확실성이 확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 모니터링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국내 당국의 얘기처럼 '시스템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란 의견이 강한 편이다.

미국 은행산업을 강타하기엔 SVB 총자산이 너무 작다는 의견 등이 적지 않았다.

미국매체 블룸버그는 "SVB 총자산이 JPMorgan 10분의 1에도 못 미친다. 이런 점에 비춰 볼 때 은행 전반의 위기를 촉발할 만큼 규모가 충분치 않다는 평가"라고 했다.

개별 은행의 운용 실패에 따른 파산일 뿐 은행권 전체로 영향이 번지지 않을 것이란 견해가 많다. 즉 SVB가 장기채권에 과도하게 투자한 '운용 실패'에 따른 사태여서 전체의 일로 확대 해석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비슷한 은행들의 실패가 더 나올 가능성, 채권을 파는 과정의 변동성 등을 간과할 수 없다는 우려들도 적지 않다.

비슷한 영업을 하던 은행들이 '자신들은 SVB와는 다르다'면서 과도한 소문의 희생자가 되는 것을 경계하기도 했다.

작년말 기준 SVB 전체 예금의 약 87%가 보호가 되지 않는 예금이었다.

이러자 미국 재무부와 연준,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등은 예금 보장을 공언해야 했다. 미국 당국은 고객이 SVB에 맡긴 돈을 모두 보증하기로 했다.

아무튼 SVB 사태는 벤처캐피탈 생태계에 상당한 충격을 줄 수 있으며, 미국 통화정책 기조에도 변화를 가져올지 주목된다.

■ 연준, 가던 길 간다 vs 못간다

국내외 투자자들은 SVB 파산으로 연준의 통화정책에 변화가 올지도 눈여겨 보고 있다.

당장은 SVB 사태 만으로 연준이 금리인상을 중지한다든지 하긴 어려울 것이란 의견이 많은 편이다.

아울러 이번 사태를 '제2의 리먼사태 전조' 식으로 보는 것은 과도하다는 의견도 많다.

하지만 지난해 급격히 금리인상을 한 결과가 최근 취약한 금융사 등을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는 데다, 사람들의 '신뢰'가 무너지기 시작하면 어디까지 상황이 악화될지 낙관하기 어렵다는 주장들도 보인다.

A 증권사의 한 딜러는 "미국 당국이 일단 SVB 관련 위험을 적극 차단하는 모습을 보였다"며 "이들도 이런 상황을 예상할 수 없었던 만큼 향후 금리 인상도 조심스러워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연준 등이 당장 위기 확산 방지에 주력해야 하는 만큼 금리 인상 속도나 강도는 늦출 수 밖에 없다는 관점이 많아졌다.

연준은 12일 예금취급 금융기관들에 추가적인 자금을 제공하기 위한 긴급대출기구(BTFP)를 발표했다. BTFP는 앞으로 은행들에 미국 국채, 기관채, MBS 등 자격을 갖춘 자산을 담보로 최대 1년까지 자금을 대출해 줄 수 있게 된다.

B 증권사 딜러는 "이 사태가 큰 태풍으로 번질지, 찻잔 속 태풍으로 그칠지 지금으로는 예단하기 어렵다"며 "다만 연준의 빅스텝 시급성 등은 낮출 수 있어 향후 금리 인상은 보다 조심스러워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자료: 현지시간 12일(일요일) 미국 재무부, 연준, FDIC 공동 발표문

자료: 현지시간 12일(일요일) 미국 재무부, 연준, FDIC 공동 발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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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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