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 2024-05-07 (화)

(장태민 칼럼) '바람의 손자'의 엄청난 계약

  • 입력 2023-12-15 15:40
  •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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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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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콤 장태민 기자]
키움 히어로즈 이정후(25)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6년 1억 1,300만달러에 계약했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 사실 믿기 힘들었다.

미국 스포츠 기자들은 국내시간 13일 한국의 이정후가 자이언츠와 6년 1억 달러가 넘는 대형 계약을 마쳤다고 알렸다.

메이저리그 정상급 선수들이나 할 법한 계약을 성사시킨 게 믿기지 않았다.

최근 미국 스포츠 업계에선 한국 최고 타자 이정후에 대해 5년 평균 1천만불 이상의 계약이 가능하다는 분석들이 나오긴 했으나, 이를 훌쩍 넘는 대형 계약이 탄생한 것이다.

■ 이정후의 놀라운 계약 조건...메이저리그 상위권 플레이어들의 계약 수준

이정후의 계약은 연평균 2천만 달러에 육박해 상당한 놀라움을 안겼다.

30개 구단이 경쟁하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이런 수준의 계약은 상위권이다.

2023~2024년 오프 시즌의 콸러파잉 오퍼(Qualifying offer)는 2,032만 5천달러다. 이정후의 1년 평균 계약만 보더라도 이 수준에 육박한다.

콸러파잉 오퍼 금액은 메이저리그 상위 125명의 평균 연봉 금액이다.

대략 각 팀 내 상위권 4명의 평균연봉이 2천만불을 약간 넘는다.

메이저리그 부자 구단과 가난한 구단의 연봉 격차가 적지 않지만, 이정후가 상당한 대우를 받은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이정후의 연봉 수준은 샌프란시스코 팀 내 최고 수준이다.

이는 한국 스포츠 역사에서도 한 눈에 들어오는 두드러진 계약이다.

■ KBO리거의 메이저리그 이적...눈에 띄는 계약규모는 류현진과 김하성

국내 프로 스포츠 구단에서 해외 구단으로 옮겨가면서 높은 연봉을 받는 케이스는 지극히 제한돼 있다.

가장 눈에 띄는 큰 거래로는 류현진과 김하성을 꼽을 수 있다.

류현진이 2013년 LA 다저스로 옮길 때의 계약 규모는 6년 3,600만달러였다. 연평균 600만달러 수준이었다.

이후 김하성이 2021년 샌디에이고 파드레스와 4년 2,800만달러의 계약을 맺었다. 연평균 700만 달러로 당시 꽤 놀라운 계약이었다.

달러/원 환율 1,300원 정도를 감안하면 연봉이 90억원을 넘는다.

메이저리그 입장에서 볼 때 아시아권에선 대체로 투수가 더 매력적이었다. '타자' 김하성이 이런 계약을 한 것도 당시 꽤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 KBO리거 메이저리그 진출의 '타자 선각자' 강정호

KBO 리거 중 메이저 진출의 선구자는 류현진이다.

류현진은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뒤 메이저에 진출해 성공 가도를 달렸다. 하지만 그는 투수다.

박찬호, 김병현 등 메이저 진출 당시 KBO 출신이 아니었지만 성공한 사례가 있기 때문에 한국 투수의 리스크는 상대적으로 타자보다 적었다.

타자 중에선 강정호가 본격적으로 메이저 진출의 문을 열었다.

강정호가 메이저에 진출할 때 한국 타자에 대한 의문 부호는 상당히 컸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일본 타자들 중에서도 이치로나 마쓰이 등 특출난 선수들을 제외하면 메이저에서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타자' 강정호가 해냈다. 메이저에서 성공한 이치로나 마쓰이는 외야수였고, 일본 출신 내야수들이 메이저에 진출해 재미를 보지 못했던 상황에서 강정호의 성공에 대해 일본 야구계에서도 큰 관심을 보인 바 있다.

그리고 강정호의 예상보다 큰 메이저리그 성공은 당시 KBO 최고의 타자 박병호의 메이저리그 진출로 이어졌다.

■ KBO 타자들의 메이저리그 계약규모

메이저리그 진출의 '타자 선구자' 강정호의 계약규모는 얼마였을까.

강정호는 2015년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에 입단했다. 당시 포스팅 금액은 500만달러였으며, 강정호는 4년간 1,100만달러를 받는 조건으로 피츠버그에 둥지를 틀었다.

물가 상승을 감안하더라도 이정후의 이번 계약과 비교할 수 없는 '소액'이었다.

강정호가 첫 테이프를 잘 끊고 메이저리그에서 성공적인 한 시즌을 보내자 메이저 각 구단들은 한국 타자들을 물색했다. 강정호의 가성비는 메이저에서 최고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강정호가 성공적인 시즌을 보내자 메이저리그의 몇몇 팀들은 '한국의 홈런왕' 박병호에 입질을 했다.

박병호는 2015년 말 미네소타 트윈스와 4년 1,200만 달러에 계약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부자 구단과 거리가 있는 미네소타는 강정호와 비슷한 금액으로 한국 홈런왕을 데려온 뒤 기대를 부풀렸다.

박병호의 메이저 진출 소식 이후 김현수의 진출 소식도 전해졌다. 김현수의 계약 금액은 2년 700만달러였다.

기간이 짧지만 연평균으로 350만달러 수준이어서 그럭저럭 괜찮아 보였다. 다만 포스팅 비용이 필요 없는 프리 에이전트(FA)라는 점에서 계약 규모에 대한 아쉬움도 있었다.

또 이 수준의 금액은 '못 하면' 마이너리그로 내려버릴 수 있어서 다소 조심스러웠다. 세상사가 그렇지만 비싸게 구매한 물건은 쉽게 못 버리는 법이다.

김현수의 메이저 진출 소식은 윤석민을 미국 리그로 데려왔던 댄 듀켓 단장의 작품이었다. 하지만 윤석민이 마이너리그에서 메이저에 올라오지 못했기 때문에 불안감도 컸던 게 사실이다.

아무튼 강정호의 성공은 메이저리그의 KBO 타자들에 대한 관심을 높였으며, 한국 선수들이 진출하는 기폭제가 됐다.

■ 키움맨들의 성공과 실패

키움은 한국 프로야구 구단 중 메이저리그에 가장 많은 선수를 보낸 구단이다.

강정호-박병호-김하성-이정후로 이어지는 메이저 진출 역사가 만들어지고 있다.

하지만 '잘 나갔던' 강정호는 술 문제로 스스로 메이저리그 경력을 망쳤다.

강정호는 2015년 126경기에 출전해 타율 0.287, 홈런 15개로 성공적으로 안착한 뒤 이듬해엔 103경기 타율 0.255, 홈런 21개를 쳤다.

강정호의 승리 기여도는 타율이나 홈런 수치 그 이상이었다. 2015년 wRC+가 128(fWAR 3.7), 2016년이 132(2.1)에 달할 정도로 양호했다.

강정호는 강한 어깨를 지닌 내야수로, 또 클러치 능력을 지닌 타자로 팀 승리에 공헌했다. 하지만 음주운전 때문에 짧은 메이저 생활을 끝으로 야구를 접어야 했다.

강정호의 후광을 입어 메이저에 진출한 박병호는 2할을 치기 어려워 하면서 메이저리그에 안착하지 못했다. 마이너리그인 트리플A에서도 강속구 투수들의 공에 적응하지 못했다.

국내에선 최고의 홈런 타자였지만 메이저리그의 빠른 공을 칠 수 없었으며, 마이너리그 상위 클래스에서도 통하지 않았던 것이다.

김하성은 2021년 샌디에이고에서 117경기에 출전해 타율 0.202(267타수 54안타), 8홈런, 34타점의 성적을 냈다. 기대를 밑도는 부진을 보였지만 정상급 '수비 능력'으로 버텼다.

그는 2년간의 메이저리그 적응을 거친 뒤 드디어 올해 괄목한 만한 성적표를 냈다. 152경기에 출전해 타율 0.260, 17홈런, 60타점, 38도루, OPS 0.749를 기록하면서 메이저리그 정상급 선수가 됐다.

김하성은 WAR 5.8로 점프했으며, 올해는 뛰어난 수비능력으로 유틸리티 부문 골드글러브까지 수상했다.

키움맨들의 메이저 진출 성공, 실패와 함께 빼놓을 수 없는 게 메이저 진출에 얽힌 키움 구단의 수익 창출 방식이다.

선수가 포스팅을 통해 메이저리그에 입단하게 되면 원 소속구간은 거액의 이적료를 챙길 수 있다. 원 소속 구단은 보장금액이 2500만 달러 아래이면 그 금액의 20%를 받고 금액이 높아질수록 초과분에 대해 좀더 낮은 퍼센티지를 챙긴다.

이정후는 높은 연봉 뿐만 아니라 4년 뒤 옵트아웃을 실행할 수 있는 조건까지 얻었다. 대략 키움이 챙길 수 있는 돈은 4년 기준 1,200만달러, 6년 기준 1,800만달러 이상이다.

세간에서 하는 말인 '키움이 정후 팔아서 1년 예산을 다 확보했다'는 말이 빈말이 아닌 것이다.

KBO에서 다음 번 메이저리그 진출 가능성이 있는 선수 역시 키움의 김혜성이다.

■ 야구의 본고장 가는 바람의 손자

이종범은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타자다.

벌써 40년이 넘는 프로야구 역사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 한 명을 꼽으라고 할 때 이종범을 뽑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종범은 공수주 삼박자를 갖춘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선수였으며 말 그대로 '바람의 아들'이었다.

이종범의 아들이 이정후다. 아버지가 1994년 MVP에 오른 데 이어 아들은 2022년 MVP가 됐다.

그리고 바람의 손자는 예상을 웃도는 대박 계약을 터트렸다.

이정후는 국내 3천 타석 이상 선 타자 중 최고인 통산타율 0.340을 찍었다. 타격 재능에선 '방망이를 거꾸로 잡아도 3할을 친다'던 타격의 달인 장효조를 능가할 수 있는 유일한 선수로 꼽혀왔다. 그리고 아버지처럼 공수주 모두 뛰어났다.

다만 메이저리거 외야수로서 이정후의 펀치력을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샌프란시스코도 이런 점은 알고 있다.

센터라인 외야수(중견수)인 데다 부족한 파워는 다른 운동 능력으로 채울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정후 아빠'의 팬이었던 사람들도 바람의 손자가 세계에서 가장 큰 야구무대에서 일으킬 바람을 아주 흥미로운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다.

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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