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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민 칼럼) 가계부채와 통화정책...그리고 한은총재의 관점

  • 입력 2023-07-14 14:13
  •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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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3년 7월 금통위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의 이창용 한은 총재

사진: 23년 7월 금통위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의 이창용 한은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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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콤 장태민 기자] 최근 발표된 6월 중 은행 가계대출은 5.9조원이나 늘어났다. 이는 2021년 9월 6.4조원 증가 이후 월별로 가장 큰 증가 규모였다.

연초만 하더라도 마이너스를 보이던 은행 가계대출이 1년 9개월만에 가장 큰 규모로 늘어난 것이다.

은행 주택담보대출만 보면 더 놀라웠다. 은행 주담대는 7조원이나 늘어나 3년 4개월만에 가장 크게 증가했다.

■ 1분기 줄던 은행 가계부채, 2분기엔 급증...그리고 통화정책

은행 가계대출 규모는 올해 1월부터 3월까지는 감소 흐름이었다. 1월 4.7조원, 2월 2.8조원, 3월 0.7조원 감소했다.

하지만 2분기 들어 상황은 완전히 반전됐다.

은행 가계대출은 4월 2.3조원, 5월 4.2조원에 이어 6월엔 5.9조원이나 늘어나 2021년 9월 이후 가장 두드러졌다.

전날 개최됐던 금통위에선 최근 급증한 가계부채에 대한 한은의 입장이 관심일 수밖에 없었다.

일반적으로 가계부채가 급증이 이어지는 상황에선 금리를 쉽게 내려선 안 된다. 부채 규모를 더 늘려 미래의 위험을 더욱 키우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부채가 커져버리면 금리를 올리는 일도 만만치 않게 된다.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상황에서 금리를 올려 부담을 키우게 되면 금융·경기 안정을 해칠 수 있다.

안타깝게도 한국은 이미 가계부채 규모가 세계 선두권이 됐다. 당연히 가계부채는 절대량이 아니라 경제체력(GDP) 대비해서 얼마나 많은지를 따져야 한다.

■ 이미 경제체력 대비 과도해져버린 한국 가계부채...빠른 해결책은 없다

GDP가 커지면 가계부채가 증가하는 것도 당연하다.

오래전 기억을 떠올려보면 언론은 가계부채가 몇 100조 단위를 돌파할 때마다 호들갑을 떨곤 했다. 이후 500조원이라는 눈에 익숙한 수치를 돌파하자 아주 흥분하기도 했다.

하지만 경제 덩치가 커지는 과정에서 부채가 늘어나는 건 자연스럽다.

가계부채는 일반적으로 경제 위기가 있을 때를 제외하면 증가한다. 개인이나 기업이나 국가나 자산이 커질 때 부채도 따라가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하지만 자산 대비 부채 비중이 너무 커지는 것은 문제가 된다. 한국은 이미 경제체력 대비 가계부채가 커져 있다.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00%를 넘어선 것이다.

전날 금통위에선 한은 총재가 나서서 가계부채에 대한 '원론'을 강의했다.

"가계부채 비율이 103% 이상으로 돼 있는데 이 비율이 계속 늘어난다면 우리 경제에 큰 불안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에 이를 더 키울 수 없는 것이 너무나 뚜렷한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가계부채를 단기간에 줄일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하면 경제가 망가진다.

특히 한국은 최근 수년간 집값이 폭등하는 과정에서 가계부채가 대폭 증가했다.

부동산 정책 실패는 경제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안긴다. 뿐만 아니라 각종 사회 병리현상의 원인이 된다.

부동산 가격 급등은 노동가치 저하에 따른 의욕 상실, 생계비 급등, 그에 따른 출산율 추가 저하 등으로 이어지면서 소비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가계부채는 부동산의 이면이다. 당장에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다. 문제 해결을 서두르면 또 다른 문제가 잉태된다. 한은 총재도 이를 지적했다.

"이렇게 가계부채가 이미 늘어난 상황에서, 또 우리 가계부채는 부동산 시장과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에, 이것을 단기적으로 급격하게 조정하려고 하면 의도치 않은 부작용이 크게 생길 수 있습니다. 최근 부동산 PF 문제, 역전세난, 새마을금고 일들이 바로 그러한 예일 것입니다. 지금은 단기적으로 부동산시장의 연착륙을 위해서 자금 흐름의 물꼬를 트는 미시적 대응이 필요한 상황인 것과 동시에 중장기적으로는 GDP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줄여나가는 거시적 대응도 균형 있게 추진해야 하는 그런 접근이 필요합니다."

한은 총재가 사람들의 오해를 피하기 위해 주저리주저리 설명하면서 말은 장황해지고 말았다.

■ 가계부채의 문제, 섹터에 따라 숨통 틔워주고 전체 차원에선 제어해야

2분기 가계부채가 늘어난 데엔 정책적 요인도 크게 작용했다.

작년 10월 서울 아파트 거래가 저점을 찍고 거래량 회복 흐름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부채 증가엔 특례보금자리 등과 같은 정책 요인도 컸다.

지금은 집주인들이 세입자들의 전세보증금을 내줄 수 있도록 보증금반환대출 숨통도 틔웠다.

이런 일들은 부채를 더욱 키우는 요인이지만, 경기 리스크를 막기 위해 어쩔 수 밖에 없는 측면도 크다.

현실 경제에선 미시적으론 특정 섹터에 유동성을 공급해 주되, 거시적으로 부채가 빠르게 늘지 않도록 막아야 하다는 때가 있다. 사실 한국 뿐만 아니라 각국에선 그런 일들이 많이 벌어지고 있다.

작년 가을 한국의 레고랜드 사태, 올해 3월 미국 은행사태 등에서도 이를 알 수 있다.

결국 통화당국과 정부는 이런 문제에 대해 공조를 해야 한다. 한은 총재의 견해도 비슷하다. 금리정책은 거시건전성 정책의 눈치를 봐야 하고, 거시건전성 정책 역시 통화정책의 눈치를 봐야 한다.

전날 한은 총재의 말이 계속 장황했던 이유는 오해를 피하면서 사람들에게 제대로 설명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한국은행은 정부와 함께 시장 불안을 최소화하면서도 저희가 통화정책을 이끌어 갈 때 중장기적으로 가계부채가 완만한 하락세를 갖고 연착륙할 수 있도록 통화정책에 중요한 목표의 하나로 생각하고 대응해 나가자는 것이 우리 금통위원들과 저의 생각입니다. 정부가 지금 아무 것도 하지 않느냐, 저는 그것은 굉장히 큰 오해라고 생각하고요. 정부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은 시장 상황에 따라서 마이크로 대응을 하고 있고, 큰 틀로 봐서 이 가계부채 문제를 어떻게 안정화시킬까 하는 것은 범정부 회의체가 있어서 계속 논의하고 있고요. 한국은행도 거기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 가계부채와 금리정책...'부채 어려움 때문에 오냐오냐 하면서 부채 확대하는 건 더 위험'

흔히들 가계부채가 너무 커지면 금리를 올리기 어렵다는 얘기를 한다. 금리를 올리는 과정에서 얘기치 못한 파장이 나타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금리를 올려야 상황에서 부채 때문에 못 올린다면 상황은 더 나빠질 공산이 크다.

사람들이 '중앙은행은 금리 못 올린다'고 판단해 레버리지를 더 쓴다면 상황은 더욱 악화되기 때문이다.

한국 가계부채 관리는 '성장률 대비 낮은 부채 증가율'을 기본 구도로 잡는 게 좋아보인다.

현실적으로 빠르게 가계부채를 감소시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경기까지 생각한다면 '속도'의 개념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한은 총재는 '금리로 가계부채에 대응할 수 있다'는 원론을 유지했다.

2022년 아파트값이 급락했던 이유는 예상치 못한 강도 높은 금리 인상에 과도한 레버리지를 일으켜 집을 샀던 사람들이 물건을 던졌기 때문에 일어났다.

사실상 거래가 실종된 상황에서 버틸 수 있는 사람은 버텼고 그러지 못한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던졌다. 그리고 그 때 그 매물을 잡았던 사람들 중엔 지금 벌써 한몫 쥔 사람들이 많다.

빚이 많아 금리를 올리기 어려운 면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오냐오냐' 내려두면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이창용 총재가 '금리를 통한 가계부채 대응 가능성'을 긍정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다만 한은 총재가 오해를 피하기 위해 말에 곁가지를 자꾸 붙이다보니 그의 발언은 계속해서 만연체를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통화당국 수장의 발언을 몇번 다시 읽어보다 보면, 이 사람의 고민이 한국경제를 걱정하는 많은 사람들의 고민과 비슷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가계부채 문제 때문에 금리를 앞으로 올릴 가능성이 있느냐 하는 것은, 이론적으로는 지금 우리가 마이크로 대응을 하고 가계부채가 하향 국면으로 가고 있는데, 이것을 계속하는 과정에서 가계부채가 예상보다 더 크게 늘어난다면 금리뿐만 아니라 거시건전성 규제를 다시 강화한다든지 여러 정책을 통해서 대응할 수 있는 옵션이 있다고 생각하고, 우리 금통위원들께서도 이런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 놔야된다고 생각하고 계십니다."

교묘한 이창용 총재는 이런 발언의 책임을 금통위원들과 나눠지고 싶어했다. 그는 사족까지 덧붙였다. 역시 장황하긴 하다.

"물가상승률이 예상대로 둔화되고 있지만 근원물가도 아직 높은 상황이고 또 목표수준보다 상당히 높은 수준이기 때문에 이것이 어떻게 변화할지, 또 지금 말씀하신 가계부채가 어떻게 움직일지, 이런 불확실성들을 고려할 때 금리를 올릴 가능성도 열어두어야 된다,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것에 유추해 보시면 아마 아직 금통위원들께서 금리인하를 논의하신 분은 아직 없다는 것을 제가 계속 말씀드리겠습니다."

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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