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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민 칼럼) 리세션 베팅

  • 입력 2022-07-06 13:57
  •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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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코스콤 CHE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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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콤 장태민 기자]
글로벌 금융시장이 경기침체에 대한 믿음을 강화했다.

최근 주가, 금리, 환율, 에너지, 산업금속 등이 모두 경기침체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미국 10-2년 스프레드는 역전됐고, 유가(WTI)는 100불을 하회했으며, 미래 경기의 방향을 알려준다는 닥터 코퍼(구리)는 19개월래 최저치로 주저앉았다.

인플레 고점을 확인하지 못했다는 점이 통화긴축을 계속 강화시킬 수 있으나 긴축이 가속화될수록 경기침체는 더욱 빠르게 우리 곁으로 다가올 수 있다.

금융시장은 이런 점을 반영하면서 빠르게 움직이는 중이다.

■ 주가, 반등은 고점 매도 기회일 뿐?

국내 코스피지수는 지난해 여름의 고점에 비해 1천포인트 가량 내려왔다.

코스피지수는 2,300대까지 밀린 상태다.

지난해 분위기 좋은 때는, 심지어 정치권까지 포함해 여기저기서 5천 포인트 시대의 꿈을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고물가와 함께 각국 통화정책 정상화가 진행되자 이런 꿈은 물거품이 됐다.

지금은 리스크 관리를 강조하는 목소리가 높을 수밖에 없다. 아직 금리 인상의 끝을 말하기엔 이른 역금융장세가 진행 중이다.

주식시장이 붙잡고 있는 유일한 꿈은 '저평가' 혹은 '너무 빠졌다'는 것이다.

그간 한국 주식시장의 상대적으로 과도한 저평가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도 힘이 빠졌다. 올해 하반기 경기 턴어라운드를 기대하는 사람들도 통화 긴축, 진정되지 않는 고물가, 길어진 러-우 전쟁, 여전한 공급망 문제 등에 자신감을 낮출 수 밖에 없었다.

가격 급락에 따른 저가매수 메리트보다 더 나빠질 수 있는 상황에 대비하는 게 우선이라는 진단이다. 지난해 여름부터 시작된 주가지수 하락세는 진행 중이다. 굳이 거친 파도를 골라서 헤엄을 칠 필요는 없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단기 급락에 따른 주가지수 기술적 반등은 가능하지만, 내년 1분기까지 KOSPI 하락추세는 지속될 것"이라며 "12개월 선행 EPS 232 X PER 8.8배를 활용해 보면 KOSPI 하락추세 하단은 2,050선 전후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12개월 선행 PER이 장기추세 하단인 3년 평균의 -2표준편차 수준인 8.8배를 크게 하회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2천선 약간 넘는 지점을 마지노선으로 잡은 것이다.

■ 금리, 놀라운 급락...강세 랠리 속 불행도

최근 각국 금리는 두드러진 급락세를 기록했다.

한국, 미국, 유럽 등 많은 나라 금리가 레벨을 크게 낮췄다. 각국 국채가격들은 단기간에 급반등하면서 경기침체에 대한 기대감을 끌어올렸다.

올해 들어 이자율 시장은 기준금리 인상 포텐셜을 빠르게 반영한 뒤 경기침체 시그널, 물가 피크아웃 조짐 등이 나오길 기다렸다.

그러다 최근 미국 PCE 지표에서 나타난 소비 둔화와 물가 피크아웃 가능성, 제조업 PMI 하락 등을 보면서 금리를 더 뺄 수 있다는 자신감을 키웠다.

미국채10년물 금리는 최근 5일 연속 40.46bp 급락해 2.8%로 내려갔다. 독일10년물 금리는 지난달 28일만 하더라도 1.6232%로 1.6%를 넘었으나 최근엔 5거래일만에 44.38bp 레벨을 낮춰 1.1%대로 다시 낮아졌다.

국내 금리도 이런 흐름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지난달 중순 3.8%선까지 급등했던 국고10년 금리는 이제 3.3%대로 내려왔다.

금리가 최근 급락한 가운데 일부에선 다시 도래할 채권의 시대를 꿈꾸기도 한다.

경기 침체가 예고된 상황에서 물가 때문에 금리를 올릴수록 일드 커브는 눌릴 수 밖에 없으며, 각국 중앙은행들이 침체를 우려해 금리 인상에 뜸을 들이는 등 변화의 조짐을 나타내면 다시 한번 달려갈 수 있다는 기대감도 나타낸다.

다만 국내 이자율 시장은 계속된 고통 뒤 최근 랠리의 속도가 너무 빨라 수익을 제대로 향유하기도 어려웠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변동성 큰 시장에서의 뒤늦은 대응이 추가 손실로 이어지기도 했고 단기채, 신용채를 주력군으로 할 수 밖에 없었던 펀드나 계정들은 정책금리 인상 속 안전자산선호 무드를 제대로 헤지할 수가 없었다.

전날 놀라운 이자율 시장의 놀라운 강세장이 끝난 뒤 한 채권딜러는 이렇게 푸념했다.

"숏커버로 채권가격가 이상 급등했지만 해피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최근 단기물, 크레딧이 정신을 못차려서 헤지하려고 선물을 팔다가 또 터졌고. 이런 물건들은 들고 헤지하다가 양방으로 깨지는 등 전혀 해피하지 않은 랠리장이었네요."

■ 환율, 1300원을 넘었는데도...

환율은 빅 피겨 1,300선을 뚫어내고 올라왔다.

하지만 지금은 환율 급등이 과도하다고 평가해 하향 안정을 장담하기도 쉽지 않은 환경이다.

글로벌 외환시장에서 진정한 1군 선수는 미국 달러 뿐이다. 나머지 국가 통화들은 1,2군을 오르내리거나 2군 선수들로 볼 수 있다. 한국 원화 역시 2군 통화, 그것도 신흥국 통화다.

미국이 기준금리 75bp 인상과 추가 자이언트 스텝 예고 등을 통해 자국돈 가치를 더욱 끌어올리려는 모습을 보였지만, 최근엔 올해 하반기 중 유럽 등이 미국과의 통화정책 간극을 줄이면서 달러 독주가 계속되기 어렵다는 관측도 많았던 게 사실이다.

달러는 그간 연준의 공격적인 통화정책, 경기침체 가능성 등에 따른 안전자산선호로 다른 나라 돈에 비해 우위를 누려왔다. 그런데 지금은 다시 하반기에도 이 구도가 쉽게 무너질 것 같지 않은 분위기도 형성돼 있다.

ECB가 금리인상 의지를 다지면서 달러 강세 압력을 견제하나 했지만, 지금 유로존엔 이탈리아 등 2군 선수들의 부상에 대한 우려도 커진 상태다.

결국 글로벌 달러화가 확실히 약세로 전환하기 위해선 인플레이션 하락, 연준 긴축강도 둔화, 러-우 전쟁 종결 같은 굵직한 환경변화가 필요해 보인다. 하지만 이 기미는 아직 뚜렷하지 않은 반면, 유로화는 최근 ECB의 긴축스탠스에도 불구하고 재정 취약국들의 몸 상태가 좋지 않다는 점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유로존 6월 물가 상승률(HICP)이 8.6%였고 여전히 고물가의 하향 안정 필요성을 생각한다면 ECB의 빅스텝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다만 이 지역은 경기둔화 우려 속에 각국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박윤정 NH투자증권 연구원은 "ECB가 빅스텝을 단행하려면 EMU 스프레드 확대 리스크가 해결돼야 한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슈"라며 "이에 ECB가 7월 25bp 인상으로 시장 분위기를 가늠해볼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로존이 사람들의 기대 만큼 금리를 못 올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국돈 원화는 유럽돈(유로화), 중국돈(위안화)과 같은 2군 선수들과 보조를 맞춘다. 국내의 무역적자나 외환보유액 축소같은 흐름도 원화의 강세전환 가능성에 부정적 기류로 작용했지만, 기본적으로 대외 상황이 원화를 지지하지 않았다.

5일 뉴욕 외환시장에서 달러인덱스는 20년여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연준의 상대적으로 다른 주요국 대비 더 빠른 금리인상에 따른 경기침체 우려가 겹친 영향이다. 달러인덱스는 전장대비 1.29% 높아진 106.49까지 올라갔다. 이런 흐름에서 원화는 자유로울 수 없다.

이승훈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유로화 약세가 글로벌 강달러 압력을 더욱 심화시키면서 달러/원을 1,300원 위로 올려놓았다"며 "당분간 달러/원 환율도 상단을 열어놓고 위험 요인들이 완화되는지 여부를 주시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달러/원이 계속해서 오른다면 주가는 활력을 찾기가 어렵고, 물가 우려도 빠르게 해소되기 힘들어진다. 물론 1,300원대 환율은 상당히 낯선 영역인 만큼 이 지점에서 오름폭이 더욱 커질 경우 당국의 개입에 대한 경계감이 커지고 한국 경제에 대한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 유가와 구리, 경기침체 가능성에 힘 싣기

현지시간 5일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WTI 선물은 전장대비 8.93달러(8.24%) 하락한 배럴당 99.50달러를 기록했다.

달러인덱스 급등과 경기침체 전망 속에 지난 4월 25일 이후 최저치로 곤두박질한 것이다. 러-우 전쟁 여파 등으로 여전히 에너지원 공급에 대한 우려가 살아 있는 상황에서 꽤나 이례적인 흐름이다.

원유 결제통화인 달러 고공행진에다 경기침체에 따른 수요 둔화 가능성이 공급부족에 대한 우려를 압도하면서 유가가 급락한 것이다.

말 그대로 경기 침체가 현실화되면 유가는 더 떨어질 수 있으며, 지금 전세계를 괴롭히는 인플레이션의 악령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질 수 있다. 당연히 물가가 잡히길 기대한다면 더 고통스러운 생활도 각오해야 한다. 지금의 경기 침체 시그널에 얼마나 비중을 둘지는 각자의 판단 나름이다.

씨티그룹과 같은 곳에선 "올해 리세션 발생 시 유가가 65달러로 급락하고 리세션이 경기전반을 강타하면 내년말엔 45달러로 떨어질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경기를 예견하는 현명한 금속으로 대접받으며 닥터 코퍼란 애칭으로도 불리는 구리가격도 크게 떨어졌다.

런던금속거래소에서 비철금속 우두머리인 3개월물 구리는 7,600달러대로 떨어지며 19개월래 최저를 기록했다. 글로벌 경기 우려에 구리, 알루미늄, 주석 등 산업금속 가격가 하락하면서 레세션을 예견하는 목소리에 힘을 보태고 있다.

■ 바뀐 패러다임과 계속되는 게임

인플레이션 우려에 따른 연준의 고강도 긴축, 그에 따른 침체 가능성은 미국채, 달러와 같은 안전자산에 대한 의존도를 심화시킨다.

주식 매매를 하고 싶은 사람은 성장주보다 가치주, 수출주보다는 안정성을 담보한 내수주를 찾아 나서야 한다. 채권 만기보유가 아닌 매매를 하고 싶은 사람은 신용채권 대신 국채 같은 안전자산이 더 마음에 와 닿는다.

태생적으로 쏠리는 경향이 있는 금융시장의 기대치는 현재 좀더 과격한 방향으로 바뀐 상태다.

즉 연준 등의 완만한 긴축에 따른 경기 연착륙에 대한 기대감이 지금은 급격한 긴축에 따른 경기 경착륙 혹은 침체 쪽으로 이동한 것이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요 선진국 중앙은행들은 물가가 별로 오르지 않자 제로금리나 양적완화를 별 것 아닌 것처럼 생각했다. 그리고 코로나 사태 이후 미국 중앙은행은 금융위기 때의 두배 이상으로 돈을 풀어 자산을 키웠으며, 재무부 역시 과거엔 생각할 수 없는 규모로 재정을 풀었다.

지금은 인플레이션의 대반격이 이어지고 있는 중이며, 돈의 홍수로 가득 찼던 저수지의 물이 빠지기 시작하면서 금융시장이 급변동 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오랜기간 저금리 세상이 지속됐지만 세상이 일순간에 바뀌어 버린 느낌도 든다. 당연히 저금리라는 몰핀에 중독돼 있던 금융시장의 각종 가격변수들도 금리에 대한 민감도를 키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은 경기침체라는 미래의 유령을 앞에 놓고 금융시장의 각종 가격변수들이 거친 베팅을 하고 있다.

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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