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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민 칼럼) 배구경기 같았던 총재의 데뷔전

  • 입력 2022-05-27 11:04
  •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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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창용 한은 총재

사진: 이창용 한은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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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콤 장태민 기자] 전날 금통위 금리인상 뒤 신임 한은 총재가 구사한 화법은 독특한 느낌을 줬다.

8년간 한 사람(이주열 전 총재)의 화법에 적응이 돼 있던 채권시장 사람들 중엔 이창용 신임 총재가 직설화법에 놀라는 경우도 있었다.

저렇게 막 던져도 되는 건가 하고 되묻는 사람도 있었다.

이창용 총재는 이주열 전 총재보다 말도 빠른 데다 더 직설적이었다. 그런데 총재의 직설화법엔 의사소통을 보다 명확히 하자는 계획된 의도가 숨어있었다.

■ 배구경기 같았던 이벤트

이창용 총재의 기자간담회는 배구경기와 같은 느낌도 줬다.

이 총재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적극 대응의 필요성을 한두 번이 아닌 여러 차례 강조했다.

마치 상대방 브로커들이 뜨기 전에 속공으로 경기 흐름을 장악하려는 듯한 느낌을 줬다.

코트 중앙에 위치한 센터가 세터가 올려주는 낮고 빠른 토스를 A속공, B속공으로 거침없이 때려내는 느낌이었다.

총재는 상대적으로 빠르고 거침없는 화법 외에 말의 강도로도 주목을 받았다. 총재는 말을 돌리지 않고 시원하게 금리를 더 올려야 한다는 식으로 발언했다. 발언의 강도가 꽤 높았다.

이러다 보니 마치 코트 후위에서 날아올라 강력하게 때리는 백어택과 같은 느낌이 낫다. 백어택은 점프를 통해 파괴력을 배가시키기 때문에 배구 경기에서 가장 강력한 느낌을 주는 공격 기술이다.

하지만 한은 직원 하나가 이창용 총재의 발언이 백어택 만큼 강해 보인다는 평가에 반기를 들었다.

"이번 금리인상 사이클에서 총재는 최전방 선수입니다. 백어택이 강도가 세긴 하지만, 후위 공격수라고 하면 오해를 받을 수 있습니다."

배구경기에선 선수들이 코트 내에서 로테이션을 돌기 때문에 백어택 포지셔너를 단순한 후방이라고 치부하기도 어렵지만 이 직원의 주장은 이러했다.

■ 한국도 여유 부릴 상황 아니다...목표지점 향해 스파이크 날리기

다른 많은 중앙은행 총재들처럼 이창용 총재도 일단 중립수준까지 금리를 올리겠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중립 이상으로 올릴지는 그 후에 가서 판단하겠다는 식의 태도를 보였다.

마치 목표 지점을 향해 스파이크를 내리꽂는 선수처럼 총재의 발언은 직설적이었다. 공격수는 자신의 전술을 명확히 밝혔다.

"물가 상승률이 예상보다 높았으며, 물가가 올라 실질이자율이 중립수준보다 낮은 것은 분명합니다. 먼저 중립금리로 가는 게 우선입니다."

그 다음에 새로 나온 데이터를 확인하고 성장률·경제여건 등에 미치는 영향력을 판단해 중립 수준 이상으로 금리를 올릴지 판단하겠다고 했다.

혹시라도 물가 수준에 대해 과소평가하지 않을까 하면서 계속 공격을 퍼부었다.

"물가는 앞으로 수개월, 즉 5월, 6월, 7월은 5%를 넘을 가능성이 거의 확정되다시피 할 정도로 높습니다. 물가 피크도 중반기 이후에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가가 피크를 친 뒤 사람들이 통화정책과 관련해 물가 둔화에 무게를 둘까봐 걱정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물가가 고점에서 내려오더라도 상당히 높다는 데 비중을 뒀다.

"물가는 내년 초까지도 4%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

■ 총재의 강스파이크는 사전 조율된 것...명확하게 가자

금통위 이전 신임 한은 총재는 꽤 많은 말을 했다.

미국이 금리 50bp 인상을 하는 등 중앙은행들 사이에 '빅스텝' 유행 기미가 보이자 국내에서도 이에 대한 질문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총재가 후보자이던 시절인 4월 19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도 빅스텝 질문이 나왔다. 당시 후보자는 "물가가 얼마나 빨리 올라갈지 보고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이후 총재 명찰을 달고 추경호 경제부총리와 조찬을 한 뒤인 5월 16일에 같은 질문이 나오자 "빅스텝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느냐를 말할 단계는 아니다. 우리도 0.5%포인트 기준금리 인상 여부는 앞으로 물가가 얼마나 올라갈지를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50bp 관련 얘기가 처음이 아니었지만 당시엔 총재의 입에서 50bp와 관련된 얘기가 나오자 채권시장은 꽤 놀라면서 금리 급등으로 화답했다.

총재의 원론적인 얘기에 놀란 뒤엔 그가 몇 차례 언급했던 경기와 물가에 대한 '균형적 접근'을 다시 생각하기도 했다.

마침 국내외적으로 금리인상 등으로 경기 둔화 관점이 강화되자, '균형적 관점'에서 한은이 공세 일변도로만 나오긴 어려울 것이란 예상들도 보였다.

경기와 물가를 균형있게 고려할 것이라고 말한 점을 거론하면서 한은 총재가 한 쪽만 강조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던 것이다. 하지만 총재는 '기계적' 균형에 대한 오해를 푸는 쪽을 택했다.

한은의 한 직원은 금통위가 끝난 뒤 이런 얘기를 전했다.

"총재가 간담회를 준비하면서 가급적 명확하게 가자는 얘기를 몇 차례 했어요. 선명하게 하자는 점을 강조한 것이죠."

총재는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공격 기술인 페인트보다는 강스파이크를 날리는 쪽을 택했다. 속임수 기술인 페인트를 쓸 때가 아니라 '금리를 확실히 올린다'면서 선명한 공격 기술을 선보일 때였다는 것이다.

이 직원은 향후에도 총재가 누구나 잘 볼 수 있는 직선타를 때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주열 총재 시대보다는 보다 선명한 금리정책 예고와 액션이 뒤따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 신임 총재의 커뮤니케이션 후원한 내부자들

신임 총재는 '이 시대'엔 확실히 물가에 중점을 둘 필요가 있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올해 성장률 2.7% 이후 더 둔화될 내년 성장률 전망치 2.4%도 잠재수준보다 높은 만큼 '나쁘지 않다'는 입장을 취했다.

이러다 보니 성장률이 잠재수준이나 2%를 하회하는 정도로 떨어져야 금리인상을 하기 곤란하다고 느끼는 것 아니냐는 평가도 보였다.

아무튼 총재는 물가와 경기 사이에 균형을 잡는다는 게 둘 모두를 보면서 애매하게 접근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상기시켰다. 앞의 한은 직원은 이렇게 해석했다.

"성장과 물가를 함께 고려하지만 물가에 중점을 두겠다는 게 총재의 일성이었습니다. 결국 지금같은 고물가 시대엔 잠재성장률 이상이라면 금리 인상을 계속해야 한다는 쪽으로 읽는 게 합리적이겠죠."

그러면서 현재로선 빅스텝을 굳이 크게 의식할 필요도 없다고 했다.

"물가가 6~7%는 나와야 빅스텝을 밟은 건데 지금의 전망을 기준으로 할 때 그 정도 물가는 아닙니다. 따라서 베이비 스텝의 원래 의미에 충실할 필요가 있어요. 베이비 스텝이란 게 목표치까지 '꾸준히' 가는 것이잖아요. 몇 달 씩 쉬었다가 가는 건 베이비 스텝이 꼬인 것이고요. 따라서 지금은 꾸준히 25bp씩 올린다고 보는 게 합리적인 것 같아요."

아울러 지금은 시대가 시대인 만큼 직설적 커뮤니케이션이 애매한 커뮤니케이션보다 어울리는 때라는 평가도 보였다.

한은의 다른 직원은 전날 총재의 발언은 비용 대비 효과를 고려한 커뮤니케이션이었다고 평가했다.

"지금 상황에선 직설적인 발언이 바람직합니다. 현재 중앙은행들은 시장의 의구심을 뒤로 물리고 여전히 물가가 제1순위라는 점을 알려줄 때입니다. 그게 오히려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내는 방식이죠."

기대 인플레이션 제어가 중요한 시기인 만큼 일단 금리인상을 예고하고 정석대로 움직이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또 코로나 사태 이후 과도하게 풀린 유동성을 거둬들이면서 정상화를 지속할 때라고 했다.

이 직원은 또 상당부분 포퓰리즘이 지배하는 한국의 정책적 환경에서 정석(定石)은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고 덧붙였다.

"작년말, 올해초만 하더라도 한국은행이 무제한 발권력을 동원해서 경기를 지원해야 한다는 식의 무책임한 주장도 많았습니다. 최배근 교수 같은 폴리페서들이 이런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했었죠. 이 시기 총재의 직설적인 금리인상 예고는 바람직한 선택이었다고 봅니다."

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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