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 2024-05-16 (목)

(장태민 칼럼) 빅스텝 유도질문과 편향성

  • 입력 2022-05-16 15:15
  •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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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6일 조찬회동 중인 추경호 경제부총리(왼쪽)와 이창용 한은 총재

사진: 16일 조찬회동 중인 추경호 경제부총리(왼쪽)와 이창용 한은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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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콤 장태민 기자]
한국은행 총재의 '빅스텝' 관련 발언을 놓고 채권시장의 의구심이 이어졌다.

이날 이창용 총재가 추경호 부총리와 회동한 뒤 언론의 '50bp 인상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이 총재가 한 말의 속내를 둘러싸고 각종 얘기들이 오간 것이다.

정권이 바뀐 뒤 신임 경제부총리-한은 총재가 '금융시장 안정'을 다짐하고 나온 뒤 아이러니하게도 총재는 빅스텝 관련 답변을 통해 '시장 변동성'을 선사했다.

■ 변동성 시발점은 언론의 질문

한은 총재가 50bp 인상 가능성에 대해 언급한 이유는 50bp 인상 가능성을 물었기 때문이다.

높은 인플레이션 압력 속에 미국의 3연속 50bp 인상 가능성, 혹은 최근까지 상당부분 힘을 얻었던 75bp 인상 가능성 등을 감안할 때 '한국은 큰 스텝 한번 안 밟느냐"는 질문은 언제든 나올 수 있는 상황이었다.

즉 한은 총재의 답변은 유도(!) 질문에 의한 것이지만, 총재가 답을 하는 순간 그 여파는 불가피했다.

언론은 전략적으로 상대가 답을 하는 순간 영향이 불가피한 질문을 고심한다.

이런 식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 미칠 여파가 걱정스러우면 노 코멘트하거나 짧게 원론적으로 답하는 방법을 택할 수 있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 노 코멘트 답변 등도 의구심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

■ 이런 질문이 나오는 이유는

빅스텝 관련 질문이 나오는 이유는 주변 분위기 때문이다.

유가가 재차 110불로 올라선 가운데 에그플레이션 우려까지 커진 상황이다보니 사람들이 인플레의 조속한 안정에 대해 자신을 못하고 있다.

물가가 고점을 찍었다고 하더라도 상당기간 높은 물가 상승률이 이어진다면 계속 금리를 올려서 물가 압력을 눌러줄 필요도 있다.

아울러 미국의 강도 높은 금리인상 스케줄, 이에 따른 향후 한미 금리 역전과 역전폭 확대 가능성 등은 '한국은 과연 베이비 걸음만으로 족한가'하는 의심을 일으켰다.

물론 금융시장에선 한국이 미국에 비해 물가 상승률이 크게 낮고 나름대로 일찍 금리 인상에 나섰기 때문에 굳이 어른의 발걸음, 혹은 거인의 발걸음은 필요 없다고 봤다.

하지만 언론은 시장의 인식을 감안해 베이비 스텝이 당연하다고 보기 보다는 미국 외에도 적지 않은 나라들이 큰 걸음을 떼고 있기 때문에 '한국은?'이라고 물어볼 수 있었다.

■ 답은 대략 정해져 있었으나...변동성 확률 높았던 상황

이자율 시장에선 변동성 피로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들렸다.

언제든 나올 수 있었던 질문에 대한 한은 총재의 대답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평가도 보였다. 한 채권딜러는 총재의 답변이 나이브했다고 평가했다.

"정부가 시장 안정과 한은과의 공조를 강조한 상황에서 한은 총재가 변동성을 줄 수 있는 방향으로 답을 했습니다. 총재가 원론적인 답변을 했지만, 순진하게 이런 저런 설명을 했기 때문에 시장이 크게 놀란 것입니다."

이창용 총재는 50bp 인상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빅스텝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느냐를 말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은 입장에선 여전히 빅스텝 가능성을 의미있게 고려하지 않다. 다만 만약 향후 물가 상승폭이 예상보다 크게 확대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보니 이런 말을 한 것이다.

이런 답변은 한은이 물가 데이터에 대해 크게 확신하기 어렵기 때문에 나온 측면도 있다.

총재는 "우리나라 데이터가 불확실한 상황이기 때문에 앞으로 빅스텝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라고 꽤 복잡한 문장으로 말해야 했다.

애매한 상황에 대해 정교하게 대답하려고 하다보면 답변하는 문장도 꼬인다.

시장은 이를 편의적으로 해석한다.
통화당국의 '속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통화당국의 말이 '받아 들여지는 방식'일 수 있다.

■ 우리는 모두 편향적이다

전망이나 상황 판단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 편향적이다.

한은도, 정부도 각자 나름의 전망 편향, 그리고 정책 방향에 대한 편향성을 가지고 있다. 언론의 보도 역시 마찬가지다.

50bp 질문을 던진 언론과 이에 대한 답변을 통해 변동성을 선사한 한은 총재의 답변은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태도에 의해 시장 가격변수의 진폭으로 연결된다.

편향성은 일정부분 '경향성'을 갖기도 한다.

국책연구기관 KDI는 십수년채 정책 조언에 있어서 다른 기관보다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부르짖어 왔다. 한국은행의 한 직원은 이 기관의 통화정책 조언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KDI의 편향성은 하나의 전통이 돼 버렸습니다. 예컨대 한은이 금리를 올리려고 할 때 '인내심'을 강조하는 식으로 자신들의 의견을 피력해 왔죠."

지금은 모두가 금리 추가 인상 필요성을 거론하고 있는 상황인 만큼 KDI의 전망 포지션은-그들의 전통을 감안할 때-당연히(!) 덜 적극적으로 올리라는 쪽일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이날 보고서를 발표한 정규철 KDI 경제전망실장의 통화정책에 대한 주장은 이랬다.

"최근 우리 경제의 상황을 보면, 물가안정목표를 큰 폭으로 상회하는 높은 물가상승세가 지속되고 있어 물가안정을 위한 기준금리 인상이 요구되지만, 미국과 한국 간의 물가와 경기 상황 차이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기준금리 격차는 용인할 필요가 있다."

금리를 올리되, 미국과 같은 강도는 용납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사실 이는 모두가 인지하고 있는 내용이다. 다만 정 실장의 발언엔 KDI의 오랜 전통이 묻어나는 듯한 발언도 섞여 있었다.

"미국 금리인상 충격에 대해 미국을 따라 기준금리를 인상할 경우 우리 경제에 경기 둔화가 그대로 파급되는 반면, 독립적인 통화정책을 수행할 경우 일시적인 물가상승 외에는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사회후생의 관점에서 미국 금리에 동조하는 정책보다 국내 물가와 경기 여건에 따라 운용하는 독립적인 통화정책의 효용이 더 큰 것으로 분석된다."

최근 정권 교체와 함께 한국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의 수장도 바뀌었다. 편향적인 금융시장은 신임 정책당국자들의 편향성에 대해서도 점검해 보고 있다.

금융당국, 금융시장, 언론 등 각 주체들의 편향성은 앞으로도 시장의 변동성을 키우는 불쏘시개로 활용될 것이다.

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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