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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민 칼럼) 강명헌과 주상영...그리고 가게무샤

  • 입력 2022-04-12 14:09
  •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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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콤 장태민 기자] 강명헌 현 단국대 명예교수는 주장이 강한 사람이었다.

금통위원으로 재직하던 시절 그는 '집비둘기'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금리 인상을 싫어했다.

그의 선택지엔 금리 동결과 인하만 있었을 뿐 인상은 없었다.

현재 한국은행 의사 결정기구엔 주상영 금통위원이 유일한 비둘기파로 통한다.

주 위원은 지난해 8월부터 이뤄진 금리인상 결정에 대해 줄곧 반대표를 던져왔다. 그의 이미지, 그리고 그가 이번에 맡은 역할 때문에 강명헌 전 금통위원이 오버랩된다.

■ 강명헌의 오래 전 일갈..."금통위 의장은 위원회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라"

강명헌 전 금통위원은 2008년 4월부터 2012년 4월까지 금통위원으로 일했다.

대학교수로 근무하다가 이명박 정부의 인수위원회에 참여한 뒤 금통위원 자리를 받았다. 4년간의 금통위원 생활을 한 뒤엔 다시 대학으로 복귀했다.

통상 기재부에서 추천 받는 금통위원 인사의 경우 비둘기파 속성이 강했으며, 강 위원도 그런 전통에 딱 들어맞는 인물이었다.

강 위원에 대한 기억 중엔 그의 한은 총재(금통위 의장)에 대한 불만도 빼놓을 수 없다.

강 위원은 당시 필자와 얘기할 때 "한은 총재는 금통위 의장으로서 금통위의 의견을 전해야 한다"고 주장하곤 했다.

당시 이성태 총재가 언론 간담회를 하면서 금통위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다는 불만을 쏟아냈던 것이다.

한은 출신들이 금통위를 주도할 경우 금통위 회의가 매파적인 것처럼 비춰진다는 점을 못마땅해 하기도 했다. 크게 동의하기 어려웠지만 총재 역시 7명 중 1명이라는 식의 언급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총재를 단순히 1/N 카테고리에서 해석하지 않았다.

아무튼 강 위원이 웬만하면 금리 인상에 반대해온 인물이었던 만큼 비둘기파의 금리 인상에 대한 불만은 꽤 컸던 것으로 보였다. 전통적으로 한은 출신 금통위원들은 상대적으로 매파 성향이 강했다.

■ 강명헌 vs 주상영...금리결정 성향은 비슷하지만 지지 정당은 달랐던 인물들

주상영 위원은 매파가 득세하는 지금의 금통위에서 가장 유화적인 인물이다.

강명헌 위원의 계보를 잇는 강성 비둘기 계보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그 역시도 강명헌 전 위원처럼 건국대에서 교수 생활을 했다. 하지만 지지하는 정당은 반대였다.

강 위원이 이명박 정부 인수위 참여 후 금통위원이 됐다면, 주 위원은 문재인 정부에서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2017년), 기재부 중장기전략위원회 위원(2018년)을 거쳐 금통위원 자리를 꿰찼다.

주 위원은 문재인 정부에서 활약한 소위 학현학파 출신의 경제학자다. 학현학파는 소득불평등 축소와 분배 개선에 초점을 둔 사람들이다. 시장을 중시하는 서강학파와 대비되는 인물들이다.

학현학파는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설계한 사람들이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수석, '소주성' 특별위원장을 거쳐 현재 한국개발연구원(KDI)을 지휘하는 홍장표 원장이 대표적이다.

주 위원도 문재인 정부 정책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금통위원이 된 뒤엔 직전의 비둘기파 조동철·신인석 전 위원의 지침을 따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작년 8월 한은이 금리인상을 시작했을 때 주 위원은 "지난 6~7년간 주택가격 상승세는 우려할 만한 현상이나 기준금리 미세조정으로 주택가격 변동성을 제어할 수 없을지 회의적"이라며 금리 인상에 반대했다.

당시는 한은이 '집값' 때문에 금리를 올리기 시작했던 때였다. 한은은 좀더 수세적인 표현인 '금융안정'이란 말을 쓰는 것을 좋아했지만, 문제가 됐던 가계부채 증가는 부동산 가격 급등과 맞물린 이슈였다.

하지만 주 위원은 "통화정책 본연의 목표는 경기와 물가 변동성을 완화하는 것"이라는 데 방점을 찍었다. 주택경기와 실물경기 순환 양상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금융안정을 위한 금리 인상에 반대했던 셈이다.

이후 물가가 오름폭을 키웠지원 주 위원은 계속해서 금리인상에 반대했다.

작년 8월에도, 11월에도, 올해 1월에도 주상영 위원은 금통위원 전원일치 금리 인상이라는 매끄러운 그림이 만들어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 위원회 이끄는 방식 달랐던 금통위 의장들

과거 박승 총재가 금통위를 이끌 때 주변 사람들은 박 총재가 금통위원들을 '학생' 혹은 '대학원생' 취급한다는 얘기를 하기도 했다.

통화정책에 대한 판단을 할 때 카리스마가 강했다는 의미다. 물론 박 총재는 그러다가 학생들에게 당하기도 했다.

박 총재는 때론 '시장이 철없다'는 등 거친 말을 하기도 했다. 자신의 판단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박 총재가 그러다가 학생들에게 뒤통수를 맞았다는 식의 얘기는 믿음이 없던 시대의 통화정책을 추억하는 사람들 사이에 술 안주거리가 되기도 했다.

호민관이 되고 싶어했던 이성태 총재도 주관이 강했던 인물로 평가 받는다. 때로는 정치권이나 정부의 압력에 맞서는 듯한 모습을 보여 사람들에게 일정 부분 투사의 이미지로 각인되기도 했다.

하지만 금리를 올린 뒤 곧바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져 금리가 다시 급하게 내리는 일을 겪을 때는 한치 앞도 못 내다봤다는 비판도 받았다.

이명박 정부 시절엔 경제수석을 했던 김중수 총재가 중앙은행을 맡아 한은 내부자들과 갈등을 일으켰다. 새로운 친 정부 외부 인사의 중앙은행 '개혁'(?) 드라이브는 한은 내부 인사들의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김 총재는 한은 내 권력을 쥐고 있던 올드 보이들이 퇴진시키면서 '독수리 오형제' 등 신진 세력을 등용했다. 이 과정에서 뒷말도 많았다.

그 때 한은 내 '여성 최초'라는 타이틀을 경신했던 지금의 서영경 금통위원이 김 총재에게서 발탁된 인물이었다.

김 총재는 임기 초반 정책 뒷받침 차원에서 금리인하를 원했으나 임기 후반으로 가면서 '과연 한국경제 입장에서 기준금리를 2% 아래로 내리는 게 바람직한가. 한국의 중립금리는 어느 수준인가'라는 화두를 던지면서 비둘기 흔적을 지우기 위해 애섰다.

얼마 전 퇴임한 이주열 총재는 박근혜·문재인 정부를 거치면서 8년간이나 통화정책 담당 수장 역할을 했다. 한은에서 무려 40년 넘게 근무했으며, 역대 한은맨 중 가장 운이 좋았던 사나이로 통하기도 한다.

이 총재는 한은 출신 답게 매파적 성향이 강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경제나 물가 상황이 뜻대로 가지 않아 자신의 말을 번복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기도 했다. 한 때 이자율 시장에선 '이주열 총재 반대로 하면 돈 번다'는 얘기를 하는 사람이 많았다.

이 총재가 금통위를 이끈 스타일은 좋게 말해서 '민주적인 타입', 나쁘게 말해서 '주관이 부족한 타입'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아무튼 이 총재는 한국경제를 위해 금리를 더 올려야 한다는 소회를 남기고 떠났다.

이제 한국 통화당국은 이창용이라는 새로운 한은 총재를 맞이한다. 그런데 2017년 초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라는 한국 현대사의 큰 사건은 한은 총재 교체기라는 공백기를 만들어냈다.

이 공백기의 가게무샤 역할을 맡은 사람이 주상영 금통위원이다.

이 가게무샤의 성향이 이전 총재, 그리고 차기 총재와 크게 닮은 것 같지 않아 사람들은 기대반, 걱정반으로 쳐다보기도 했다.

■ 가게무샤는 자신의 본심을 숨겨야 한다

이번 금통위에선 주상영 금통위원이 금통위를 주재한다.

이주열 전 총재가 8년간의 긴 한은 총재(금통위 의장) 임무를 마치고 퇴임했지만, 아직 이창용 후보자가 청문회를 통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장 일부에선 주 위원이 비둘기 성향이란 점 때문에 기대감을 갖기도 했다. 하지만 가게무샤는 색다른 것을 너무 많이 보여주려고 하면 안 된다.

한은의 가게무샤는 전임 총재, 그리고 후임 총재의 색깔을 심하게 왜곡시켜선 안 되는 운명을 짊어지고 있다.

주 위원은 이런 점을 의식하고 있다. 한은의 한 직원을 단 한번 회의를 주재하게 되는 가게무샤의 동향을 이렇게 귀뜸했다.

"주 위원이 상당히 긴장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또 (시장 사람들이 자신을 비둘기파로 인식하고 있으니) 본인 얘기가 아니라 금통위 의견 전달에 충실할 것이라고 확실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번엔 주 위원이 금통위 의견을 완벽하지 반영하지 못하더라도 강명헌 전 위원처럼 매몰차게 비판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다른 위원들은 이번에 주 위원이 가게무샤 역할을 맡게 되면서 가슴을 쓸어내렸을지도 모른다.

금융시장에선 얼마 전만 하더라도 4월 기준금리 동결 의견이 대세였다. 하지만 5월 FOMC의 기준금리 50bp 인상이 예비되고 한국 사회에서도 물가가 큰 문제가 되자 금리 인상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금리 인상과 동결이 백중세를 형성하고 있는 상황에서 가게무샤가 들려줄 통화정책 스토리는 색다른 관심거리가 됐다.

채권시장은 이미 수 차례의 금리인상을 반영한 뒤 그로기 상태에서 허덕이고 있다. 한은의 한 직원도 기준금리 전망과 관련한 금융시장 변화와 크게 다르지 않은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1달 전만 하더라도 한은 내부에 4월 인상 전망은 별로 없었어요. 지금은 인상 가능성 비율이 꽤 올라오는 분위기네요. 지금 금리를 올려도 이미 비하인드 커브지만요."

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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