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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민 칼럼) 추경과 권력갈등

  • 입력 2022-03-24 15:02
  •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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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윤석열 당선인 페이스북

출처: 윤석열 당선인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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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콤 장태민 기자]
문재인 대통령의 청와대와 윤석열 당선인의 인수위간 갈등이 심화된 가운데 추경 재원을 둘러싸고 정부와 인수위, 그리고 여당와 야당이 합일점을 찾을 수 있을 주목을 받고 있다.

최근 윤 당선인의 경제책사 김소영 서울대 교수가 '적자국채 없는 추경'을 거론했으며, 당선인 역시 재정건전성을 중시하겠다는 입장을 피력한 바 있다.

5월이 되면 여당으로 입장이 바뀌는 국민의힘 역시 예산안 구조조정을 통한 재원 마련을 얘기해왔다.

하지만 민주당이 과반을 훌쩍 넘는 국회 의석수를 점하고 있어서 새 정부나 국민의힘의 플랜 대로 상황이 흘러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 신구(新舊) 권력의 갈등..한은 총재 지명 과정에서 나온 '말다툼'

23일 오전 김은혜 당선인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한은 총재로 특정인을 추천한 적 없다"고 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이창용 IMF 국장을 한은 총재로 지명했다고 발표했다.

당선인 측 말이 무색하게 청와대는 총재에 대한 불확실성을 없애 버렸다.

이런 엇갈리는 '발표의 혼란' 속에서 윤석열 당선인 측 장제원 비서실장의 발언도 도마 위에 올랐다.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은 "한은 총재 인사를 발표하기 10분 전에 전화가 와서 발표하겠다고 했다. 일방적으로 발표하려고 해서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면서 불편해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선인 측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자 청와대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청와대 측은 당선인 쪽이 거짓말을 하면 협의사실을 공개할 수 있다고 반발했다.

사실 지난주에 이미 이창용 IMF 국장이 한은 총재로 내정이 됐다는 말이 나온 상황이었다.

지난 주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신(미래) 정부, 구(현재) 정부가 협의해 사실상 이창용 국장이 사인을 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이러다 보니 한은 총재 지명 관련 '해프닝'은 정권 이양기 권력투쟁의 단면을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20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뒤부터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을 놓고 험악한 말들이 오갔다. 이런 과정에서 한은 총재 인사권을 두고 다시 한번 부딪힌 것이다.

■ 앙시앙 레짐을 둘러싼 공격과 방어

6.1 지방선거라는 또 한 번의 '결전의 장'이 마련돼 있는 가운데 신체제와 구체제는 격렬하게 부딪히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프랑스 혁명기의 낡은 제도, 즉 구체제를 의미하는 앙시앙 레짐은 사실상 타도의 대상이다. 지금의 권력 이양기 갈등을 지켜보면서 오래 전의 역사를 떠올리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문재인 정권이 박근혜 정권이라는 구체제를 무너뜨리고 집권을 했지만, 이제 윤석열 정권은 앙시앙 레짐이 된 문재인 정권의 정책 기반을 흔들어야 하는 상황이란 평가도 보인다.

구체제와 신체제는 유동적인 개념이다.

아무튼 당장은 인수위와 아직 50일 가량이 남은 구체제 간의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두 권력은 6.1 지방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정부와 인수위, 그리고 여당과 야당의 갈등은 중요한 지방선거를 앞둔 기싸움이다.

한국 정치권에게 있어서 국민은 선거를 앞둔 시기에만 제대로 대접해 주면 된다. 국민은 평소엔 중요한 존재로 취급 받지 못하지만, 권력을 빼앗거나 뺏기는 과정에선 잠시 상전처럼 받들어진다.

그런데 6.1 지방선거를 앞둔 중요한 싸움터가 '2차 추경'이다.

■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표의 상징으로 보는 시각도

필자의 주변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는 아니지만, 코로나 때문에 회사가 문을 닫아 집에서 놀고 있는 사람이 있다.

이 지인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에 대해 권력자들이 '자기 편'으로 만들기 위해 잘 사용해야 하는 장기판의 말로 보고 있었다.

사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에게만 돈을 뿌리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공정한 보상이란 말은 좋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마타도어다.

코로나 때문에 피해를 본 사람은 소상공인 외에도 부지기수다. 하지만 소상공인이라는 '집중 피해자 카테고리'는 권력자들의 싸움터가 됐다.

여와 야 양진영은 코로나에 일격을 당한 그들을 내 편으로 만들기 위해 더 많은 돈을 주겠다고 했다.

필자의 지인처럼 소상공인 등 '현금 지원 대상'이 되지 못한 카테고리에 속한 사람들은 여야 가릴 것 없는 정치권의 매표 행위를 뜨악한 시선으로 보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표를 만드는 과정에서 나라의 곳간을 둘러싸고 시비가 끊이지 않는다. 추경의 재원 마련 방법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 '우리가 진짜 소상공인의 편'...행정부 권력 넘어가나 의회 권력은 여전히 민주당

이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청와대 이전에만 급급해 국민의 삶을 등한시했던 윤석열 당선자가 늦었지만 2차 추경 편성 방침을 공식화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는 내용의 논평을 냈다.

민주당은 대선에서 종이 한장 차이로 패배했지만, 6.1 지방선거까지 놓칠 수는 없다. 민주당은 자신들이 진정한 국민의 편이라는 이미지를 심기 위해 노력 중이다.

민주당은 "우리는 국민의 더 나은 삶을 위해서라면 윤석열 당선자, 국민의힘과 언제든 협의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 "국민의 고통을 덜어낼 수 있다면 민주당은 어떤 조건도 가리지 않고 분골쇄신하겠다"고 다짐했다.

하루 빨리 국민 고통 반감을 위한 신속한 추경 논의와 집행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여당은 이날 논평에서 재원 마련에 대해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미래의 여당인 국민의힘은 '국가 재정도 생각하는' 진정한 소상공인의 편이라는 프레임으로 민주당에 대응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이날 "문 대통령과 청와대가 당선인과 협의없이 한은 총재 후보자를 사실상 통보하듯 지명한 데 대해 유감스럽다"는 입장 표명과 함께 추경에 대한 의지도 피력했다.

일단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소상공인의 감성에 호소했다.

국민의힘은 "감염 확산 상황에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고통이 더 가중되고 있다"면서 "2차 추경안 편성이 시급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유의동 정책위의장은 "소상공인 손실보상은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 온전한 손실보상이 이뤄져야 하고 보상의 사각지대도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그러면서 민주당과는 '다른' 예산안 구조조정을 통한 소상공인 지원을 거론했다.

김기현 원내대표는 "1천조원을 넘는 국가채무를 고려할 때 빚은 더 내선 안 된다"면서 "실패한 한국판 뉴딜사업, 불요불급한 사업의 지출 구조조정으로 가용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거대 여당은 거대 야당으로 처지가 바뀔지언정 입법부에서 가지고 있는 파워는 여전히 강하다.

대선에서 졌지만 민주당은 일단 앞으로도 2년 더 의회를 지배하게 된다.

■ 신체제와 구체제 갈등은 적자국채 문제로

현 정부와 차기 정부의 기싸움이 이어지는 가운데 추경 문제는 국회까지 거쳐야 한다.

한국판 뉴딜 등의 사업을 대폭 축소하는 등 기정예산 내의 조정이 가능할지 봐야 한다.

국채발행 없이, 혹은 국채발행을 최소화해서 재원을 마련하려는 당선인 측의 의지에 현 정부와 여당이 어떻게 화답할지 봐야한다.

이 문제는 금융시장에도 계속해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재원 마련 방법이 수급 문제와 직결돼 있는 채권시장으로서는 골치가 아프다.

연초 16조원의 1차 추경을 할 때 적자국채는 11.3조원이었다. 일단 50조원에서 1차분을 뺀 35조원 가량의 추경에서 얼마나 적자국채가 나올지 등을 놓고 의견은 다르다.

채권딜러 등 시장의 플레이어들이 구체제와 신체제 어디에 무게를 둬야 할지 헷갈리고 있는 것이다.

채권딜러 A씨는 "인수위, 그리고 야당이 적자국채 없는 추경을 주장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최소 적자국채가 10조원 정도는 나와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그는 "민주당이나 정부가 한국판 뉴딜에 대해 없었던 일로 합시다 하고 흔쾌히 동의해 줄 리가 있겠나"라고 했다.

하지만 채권딜러 B씨는 인수위 측도 쉽게 '적자국채 없는 추경' 주장을 굽히지 않을 것으로 봤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은 프로젝트라고 해석했다.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인수위는 재정건전성 문제를 내세우면서 적자국채 없는 추경 주장을 쉽게 꺾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이 과정에서 새 정부 출범에 대해 문재인 정부나 민주당이 발목을 잡는다는 프레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지요. 물론 현실적으로 적자국채가 전혀 없는 추경이 쉽지는 않다고 봐요."

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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