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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민 칼럼) 경제학에 도전한 부동산 세금정책, 그 결과는...

  • 입력 2022-03-15 10:42
  •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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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콤 장태민 기자] 경제원론에서 빠지지 않는 내용이 '조세의 전가 및 귀착'이다.

조세의 전가는 세금이 부과될 때 각 경제주체들이 자신의 경제 행위를 조절하면서 '실질적인' 세 부담을 낮추는 행동을 함으로써 나타난다.

즉 세금이 부과되면 주택 보유자는 부동산 가격 변화를 통해 세금의 일부를 자신(법적인 납세 의무자)이 아닌 다른 경제 주체에게 이전하려고 노력한다.

예컨대 정부가 주택 소유자 A에게 1천만원의 보유세를 올렸을 때 A는 세금 인상을 감안해 부동산 가격을 올려서 팔려고 한다. 자신이 임대를 했을 때는 임차인에게 오른 세금을 부담시키려고 한다.

'조세의 전가'와 관련해 우리는 고등학교 때 수요와 공급 곡선을 통해 배운 바 있다. 이 전가 행위가 성공하면 세금은 '귀착'된다. 즉 귀착은 조세 전가 행위의 '성공'을 뜻하는 말이다.

조세의 귀착 문제는 예컨대 정부가 주택에 대한 재산세를 올렸을 때 '실제로' 재산세를 부과하는 주체는 주택 소유자가 아니라 임차인이나 집을 매수하려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 조세의 전가 및 귀착

오래된 책장 한 귀퉁이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는 경제원론 책을 끄집어내보자. 그게 아니라면 잠깐 멈춰서서 옛 기억을 떠올리면서 브레인스토밍을 해도 좋을 것이다.

두 시장을 생각할 수 있다. 임대주택시장과 자가주택시장을 나눠서 접근하는 게 가능하다. 임대주택시장에선 재산세(혹은 다른 주택관련 세금)는 주택 소유자, 즉 임대인에게 부과된다. 자가주택시장에선 주택의 소유자, 즉 현재 보유하고 있는 사람에게 세금이 부과된다.

임대차 시장이나 매매 시장이나 세금 전가와 귀착 메커니즘은 같다. 임대차 시장으로 접근해 보자.

임대인에겐 재산세(종부세도 마찬가지다) 부과액 만큼 공급자 비용이 증가하는 셈이 된다. 이러면 임대인은 임대주택 공급을 줄이게 된다. 주택시장이 아니더라도 비용이 증가하면 공급자(임대인)는 당연히 공급을 줄이게 된다.

이러면 그 유명한 수요와 공급 곡선에서 공급이 줄어든다. 즉 공급곡선이 왼쪽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공급 곡선이 좌측으로 움직이면서 균형 임대료는 상승한다. 즉 임대인이 오른 임대료 중 일부를 임차인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세금 인상분은 수요자와 공급자가 나눠서 낸다. 그런데 부동산은 쉽게 공급되지 않는 재화이기 때문에 임차인의 피해가 더 커지기 쉽다. 따라서 경제학을 공부해본 사람들은 부동산 정책을 펼 때 세금 정책에 대해 신중하게 접근하라고 말한다.

세금을 올리면 사실 임차인과 임대인 모두 피해를 본다. 경제학에선 임차인의 경우 세금 전가와 귀착으로 인해 '실질적으로' 지불하는 금액이 상승해 소비자잉여가 감소한다고 가르친다. 소비자잉여는 소비자가 최대로 지불할 용의가 있는 금액과 실제로 지불한 금액의 차이를 말한다. 즉 세금이 올라가면 임차인은 자신이 내고 싶은 금액 이상으로 전세 보증금이나 월세를 올려줘야 하는 것이다.

임대인 역시 올라간 세금 때문에 실질적으로 자신이 받을 수 있는 임대료도 하락하는 생산자잉여 감소를 경험한다. 생산자잉여는 공급자의 총수입과 공급자가 받고자 하는 최소한의 금액, 즉 기회비용의 차이를 말한다. 공급자 역시 정부에 세금을 내느라고 원하는 수입을 못 올리게 되는 것이다.

이러면 결국 사회적 후생 손실(경제적 순손실)이 발생한다. 정부야 세금을 많이 거뒀다고 좋아할 수 있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경제주체들에겐 불만이 쌓일 수 밖에 없다.

■ 경제학에 반기를 들었던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세금 실험

문재인 정부는 주택에 대한 세금을 올리면 주택 보유자의 매도로 인해 집값이 하락할 것이란 '1차원적'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안타깝게도 포퓰리즘적 주택 세금 정책은 임차인들의 삶을 더욱 옥죄었다. 5년간 문재인 정부가 지속적으로 올린 세금은 집값 급등의 주요 원인 중 하나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문재인 정부는 경제원론을 수정하고 싶어 했지만, 지적 능력 없이 의욕만 앞선 사람들의 무리한 정책은 성실하게 살면서 돈을 모으고 내집 마련을 꿈꾸던 사람들을 궁지로 몰았다.

세금이 집값에 전가되자 문재인 정부는 악수를 계속 뒀다. 주택시장을 조금만 아는 사람이라면 반대할 수 밖에 없는 '임대3법'을 기어이 밀어붙여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지금은 '전세대란'을 거쳐 전세의 급격한 월세화가 이뤄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과도한 세금 정책, 그리고 임대차3법과 같은 과도한 규제 정책은 정권 출범 뒤 집값이 크게 오르는 상황에서도 상대적으로 안정돼 있던 전세까지 상당히 불안하게 만들었다.

사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특히 한국의 부동산 세금 정책은 전세계가 주목했다. 많은 나라의 부동산 연구가들은 이렇게 대놓고 세금으로 집값을 잡으려는 정책을 구경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의 부동산 연구자들은 '실패할 수 밖에 없었던' 한국의 세금을 통한 집값 잡기 정책을 비웃고 있을 것이다.

경제학에서 '규제의 역설'은 학문에서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한다. 경제학은 1차원적 인간을 비웃는 학문이기 때문에 착하기만 한 사람들의 구미에 맞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을 이해하는 데는 도움을 주기 때문에 아직 살아남아서 학생들을 괴롭히고 있다.

■ 부동산 세금정책 실험...결국 '없는 사람들' 가장 큰 피해

지난주 한국경제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최근 2년간 주택 임대차 시장에선 전세 물량 감소가 두드러져 전세값이 급등한 것으로 나온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19년까지 3% 미만의 상승률을 보이며 안정적 흐름을 유지해 오던 서울 지역 주택 전세가격이 2020년 들어 두 자릿수 상승률을 기록하면서 최근 2년 간 23.8% 급등한 것으로 조사됐다.

여기에 월세비중이 빠르게 증가하는 ‘전세의 월세화’가 가속화되면서 서울 지역 월세비중이 2년 간 13.7% 증가하는 등 주택 임대차시장이 크게 요동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현상이 나타난 이유는 문재인 정부 출범 뒤 집값이 유례없이 폭등한 데다 보유세 인상, 임대3법 시행 등이 뒤얽혀 집값 급등의 순환고리를 가동시켰기 때문이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것처럼 보유세 인상은 조세의 전가와 귀착 과정을 거쳐 임대료 상승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런데 임대료 상승은 주택가격 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예컨대 전세값이 크게 뛰면 임차해서 살던 사람들이 주택 매수로 돌아서기 때문에 집값을 더 올리는 것이다.

집값이 오르면 내야 하는 세금은 더 늘어난다. 공시가격이 올라 세금이 올라가는 상황에서 정부 역시 세율을 더 올려 집값을 잡겠다는 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세금이 더 올라가자 다시 임대료가 오르고, 오른 임대료는 또 다시 집값을 올리는 '악순환 고리'가 계속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특히 한국은 그간 다른 나라에 없는 전세제도 때문에 임차인들이 주요국보다 '싸게' 거주지를 마련할 수 있는 나라였다. 하지만 높아진 임대료는 전세제도의 기반을 허물고 있다. 높아진 전세금을 마련할 길이 없다면 월세를 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월세 200만원, 300만원, 400만원 시대가 도래한 데엔 잘못된 정책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한경련 보고서를 보면 종부세 등 보유세 인상으로 인해 임대차 거래 중 월세비중이 5%이상 늘어난 것으로 분석됐다.

보고서에서는 분석 대상을 종부세 관련 변수로 한정했으나 실제로는 공시가격 인상으로 재산세 부담도 크게 늘었기 때문에 보유세 인상에 따른 임대차 시장 영향이 실제로는 더 크고 광범위할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승석 연구원은 "보유세 인상은 다주택 보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강조하는 동시에 주택보유 수익률을 낮춰 주택수요를 위축시키려는 목적이었으나, 결과는 반대로 나타났다"며 "주택가격은 오히려 더 가파른 급등세를 보였다"고 지적했다.

■ '법적' 세금이 아니라 '실질적' 세금이 중요한 것인데...

조세의 귀착은 '법적 귀착'(statutory incidence)과 '경제적 귀착'(economic incidence)으로 나눠서 접근해 보면 이해가 편하다.

법적 귀착은 형식적인 귀착이다. 즉 법적으로 누가 세금을 부담하느냐는 것이다. 예컨대 보유세를 올리면 형식적으로는 임차인은 아무 상관이 없고 집 소유자만 부담을 지는 것이다.

하지만 법적인 귀착이 아니라 경제적 귀착이 문제가 된다. 경제적 귀착은 '실질적인' 세금의 귀착을 말한다.

표면적으로 보면 조세는 법적으로 납부해야 하는 사람이 부담을 진다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경제학에선 대부분의 경우 이는 속임수라고 가르친다.

실제로는 부동산의 가격 변동을 통해 조세의 일부 혹은 거의 전부가 다른 사람에게 이전된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조세 정책은 다주택자들, 고가주택 보유자들의 큰 반발에 직면했지만, 실질적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사람들은 그들이 위하는 척했던 '무주택자'들이었다.

이승석 연구원은 "문재인 정부의 다주택자에 대한 세금 인상으로 인해 주택매매시장에서는 똘똘한 한 채라는 새로운 패러다임 속에 ‘영끌·빚투 현상’이 확산됐다"면서 "임대차시장에는 ‘20억 전세시대’ 개막과 함께 월세가속화 등 임대료 부담이 커졌다"고 비판했다.

■ 정부의 오기가 부른 혼란

문재인 정부가 임기 내내 '규제'에 골몰하고 있을 때 많은 사람들은 '필요 이상으로' 공급이 늘어나지 않는 한 매우 위험한 실험이라고 봤다.

원천적으로 공급 탄력성이 떨어지는 주택시장에서 물량 압박 없이 세금 인상이 이뤄지면 집값이 상승 압력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 결과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집값 폭등이 나타났다. 현 시점 무주택자인 경우 아파트 매수가 역대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절이 됐다.

계약갱신청구권 행사 등으로 전세물량은 줄어들었으며, 하반기엔 이 법의 시행 2년째를 맞아 많은 사람들이 긴장하고 있다. 그리고 임대료(전세/월세) 급등에 따른 가장 큰 피해는 계속해서 무주택자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끊임없는 경제학에 대한 도전이었다. 시장균형을 왜곡하는 수요억제 정책은 예외없이 실패만 거듭했다.

노동가치가 땅에 떨어지고 '로또 분양 당첨'이 최고의 가치가 된지 오래됐다. 입으로는 노동가치 존중을 떠들었지만, 결국 무지한 정부의 정책이 서민들에게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우리는 충분히 경험했다. 부동산 정책 실패로 지금은 어느 때보다 부익부빈익빈이 심화됐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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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한국경제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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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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