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 2024-05-15 (수)

(장태민 칼럼) 침팬지 폴리틱스

  • 입력 2022-03-04 14:02
  •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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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국민의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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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콤 장태민 기자]
동물학자 고든 갤럽은 침팬지와 같은 유인원이 거울 속의 자신을 인식한다는 사실을 공표해 놀라움을 안겨줬다. 지난 1970년대 일이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인간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풍조 속에 동물, 특히 유인원 조차도 지적능력이 매우 떨어지는 것으로 인식됐다.

하지만 영장류 학자들의 경험적 연구가 쌓이면서 침팬지는 인간의 유전적 사촌 관계를 넘어 '인간 본성에 대한 중대한 단서를 제공하는' 영장류로 평가 받고 있다.

영장류 학자 프란스 드 발은 침팬지 사회 관찰 기록물인 '침팬지 폴리틱스'를 통해 인간 사회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을 어필해 인간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프란스 드 발의 침팬지 관찰일지는 동물행동학의 범주를 넘어 정치학에서도 주목 받는 저작물로 꼽혔다.

특히 인간사회의 권력 투쟁기 혹은 정치적 격변기엔 '침팬지 폴리틱스'가 기록한 동물들의 행동 패턴을 통해 인간 사회의 정치 행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인간은 욕구를 교묘하게 속이지만, 침팬지는 욕망의 핵심을 적나라하기 드러내기 때문에 우리는 영장류의 '욕심'을 통해 정치가의 '본심'에 다가설 수 있다.

인간 행동의 본질을 잘 이해하는 데는 온갖 거짓말과 분칠로 실상을 속이는 인간의 행동 패턴보다 침팬지의 솔직 담백한 대처법이 더 설득력이 있다.

■ <파트1> 이에룬, 라윗, 그리고 니키

프란스 드 발이 침팬지의 집단생활을 포괄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택한 곳은 네덜란드의 뷔르허스 동물원의 대규모 야외 사육장이었다.

이 집단엔 절대권력자 이에룬이 있었다. 이 30대의 건장한 침팬지는 그들 집단에서 행해지는 '인사'의 3/4 이상을 독점했으며, 특정 기간엔 무려 90%를 독점할 때도 있었다. 침팬지 사회의 지도자는 다른 수컷들의 교미도 통제한다.

그러나 영원한 권력은 없는 법. 어느 날 이에룬이 보는 앞에서 라윗이라는 젊은 수컷이 당당히 교미를 했다. 심지어 처녀 침팬지가 라윗에게 엉덩이를 내미는 경우도 생겨났다.

라윗의 과감한 행동을 보면서도 침팬지들은 절대권력자였던 이에룬이 권력을 라윗에게 넘겼다는 확신을 갖지 못했다.

사실 1:1 권력 게임에서 라윗은 아직 이에룬에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라윗이 권력 침탈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던 데엔 니키라는 동료가 큰 역할을 했다. 결국 라윗-니키 연합이 이에룬을 최고권력자의 자리에서 끌어내렸다.

하지만 이에룬과 라윗 두 강자는 상대를 적대적으로만 대할 수는 없었다. 두 라이벌은 서로의 시간 중 1/5을 상대방의 털을 골라주는 데 할애했다. 주도권 다툼 와중에서도 그들은 긴장을 푸는 행위, 혹은 냉각기를 가졌다.

두 수컷 권력자가 긴장 관계에 놓여 있을 때 매력적인 암놈 크롬은 이둘을 화해시키는 역할을 했다. 크롬은 두 사이를 오가면서 성년 침팬지들의 털을 골라 줬다.

아무튼 권력 투쟁 과정에서 2인자인 라윗과 3인자 니키가 협력해 절대권력자인 이에룬을 퇴위시켜버렸다. 결국 권력은 라윗-니키-이에룬으로 재편됐다.

■ <파트1-1> 윤석열, 홍준표, 그리고 유승민

윤석열은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검찰 수사 간섭에 대한 반발로 윤석열은 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됐다. 조국과 추미애가 없었다면 윤석열은 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한국 정치사의 유례없는 아이러니다.

문재인 정부의 핵심 보직을 맡았던 법조인이 이 정부를 정면으로 겨누는 칼이 된 것이다. 윤석열은 문재인 정부 비리에 맞서는 이미지 하나로 초단기간에 가장 유력한 야당 정치인이 됐다.

'기존' 국민의힘 적자들을 서자로 강등됐다. 국민의힘엔 홍준표, 유승민이라는 유력한 대통령 후보들이 있었으나 윤석열의 급조된, 그러나 너무나 강력한 이미지에 대항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떠오르는 신흥 정치인에게 밀린 것이다.

하지만 홍준표, 유승민에게도 기회가 있었다. 홍준표를 중심으로 두 거물 정치인이 힘을 모았다면 양상은 달라졌을 것이다. 홍준표는 야권 대선후보 선출 과정에서 거의 당선될 뻔했다. 시간이 야속했지만, 기본적으로 유승민의 지지를 얻지 못한 게 컸다.

작년 11월 초 야당 대선후보 투표에서 윤석열이 47.85%, 홍준표가 41.50%의 지지율을 얻어 윤 후보가 6.35%p 차로 이겼다.

국민 전체 지지율에선 홍준표 후보가 윤석열 후보에게 10%p 이상 앞섰으나 당원 투표에서 크게 밀리면서 '신흥세력'에게 자리를 내준 것이다.

윤 후보는 여론조사에서 10.27%p나 밀렸지만 당원들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대통령 후보로 선출됐다. 당원투표와 일반 국민여론조사를 5:5로 반영하다보니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다.

만약 유승민이 홍준표를 밀었다면 양상은 달라졌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홍준표가 이기는 길은 유승민의 마음을 얻는 것이라고 부르짖었지만, 두 사람은 각자의 길을 갔다. 이상하게도 홍준표 역시 '가장 중요했던' 유승민과의 단일화에 크게 공을 들이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경제학자 출신 유승민이 당선 가능성 '제로'에 가까운 대선 후보 욕심을 버리고 홍준표를 밀었다면, 그는 다음 번을 기약하기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당장의 욕심에 사로잡힌 냉정한 경제학자의 욕심은 '이성적인' 범인(凡人)의 판단력에도 미치지 못하는 법이다.

2인자 침팬지 라윗이 니키와 힘을 합쳐 이에룬을 꺾고 1인자가 되는 과정을 모방했다면, 지금의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홍준표가 됐을 것이다.

■ <파트2> 늙은 여우의 생존법, 신흥세력에 붙어 캐스팅 보트 쥐기

시간이 흐르면서 니키의 정치적 영향력은 커져갔다. 라윗이 여전히 지배자였지만, 왕성한 근육질의 성년이 된 니키는 이제 2인자 꼬리표를 떼고 대권에 도전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

하지만 여전히 라윗의 위세는 대단했다. 니키는 왕년의 1인자, 그러나 현 시점 3인자로 내려앉은 이에룬과의 연합작전을 펼치면서 라윗의 권위에 도전했다.

니키와 이에룬이 직접적인 공동전선을 형성하자 라윗은 겁에 질린 채 비명을 지르면서 풀밭 위를 뒹글었다. 니키는 한 때 라윗과 힘을 합쳐 1인자 이에룬을 몰아냈던 '동료'였지만, 자신의 힘이 강해지자 '늙은 여우' 이에룬을 끌어들여 1인자의 자리를 강탈한 것이었다.

이후 이에룬은 니키와 관계가 좋지 않을 때도 라윗이 위협적인 행동을 하면 니키의 편에 섰다. 말 그대로 이에룬은 니키의 고문처럼 행동했다.

암놈들이 라윗에게 접근할 때면 서둘러 이를 제지하면서 니키와 힘을 합쳤다. 이 과정에서 늙은 여우 이에룬은 다시 세를 키웠다. 권력은 니키가 손아귀에 넣었으나, 늙은 여우가 권력자의 브레인을 했다.

이에룬도 적지 않은 이득을 챙겼다. 늙은 수놈은 1인자 니키를 조종하면서 암놈들을 교묘하게 조종하기도 했다. 심지어 암놈들에게 주기적으로 1인자인 니키에게 저항하도록 꼬드기기도 했다.

니키는 최상위의 권력을 누렸으나, 이에룬은 이 권력을 통제할 수 있는 권위를 누렸다. 니키의 권력은 '아직 야심이 거세되지 않은' 앙시엥 레짐 시대의 권력자에 의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룬은 많은 암놈과 새끼들에게 '인사'를 받았다. 그의 교미 횟수도 다시 부활했다. 수컷 침팬지 세계에서 교미는 권력의 강도에 비례하는 측면이 컸다.

■ <파트2-1> 윤석열의 운명과 안철수의 캐스팅 보트

작년 11월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윤석열 후보로 결정된 뒤 제20대 한국 대선은 역대 본적 없는 비호감 대선으로 흘렀다.

대통령 후보자와 가족의 비리에 대한 의문점이 그 어느 때보다 많았다.

집권 여당의 이재명 후보는 대장동 도시개발사업 비리 의혹 등에 휩싸였다. 아내의 경기도 법인 카드 사용 논란, 아들의 도박과 성 매매 혐의 등으로 가족이 모두 비리 의혹에 휩싸였다.

윤석열 후보는 아내의 주가 조작 의심, 술집 접대부 근무 의혹, 경력 부풀리기 등으로 법적, 도덕적 시비에 휩싸였다.

미래의 권력자 누가 될지 알기 힘든 상황에서 검찰은 눈치를 보느라 대통령 후보와 관련된 각종 고발 사건을 뭉개기에 바빴다. 한국사회에서 법은 언제나 힘 있는 권력 앞에선 장삼이사의 약속 보다 믿음을 주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안철수 후보는 상대적으로 능력이나 도덕성이 돋보였다. 하지만 그가 이번 대선에서 최종 승자가 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보였다.

성공한 기업가에서 어느새 정치경력 10년을 쌓은 노회한 정치인이 된 안철수는 신흥 정치인에게 힘을 실어줬다. 국민의 60% 가까이가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상황에서 그도 정권연장이 아닌 정권교체가 절실하다고 했다.

그가 윤석열 후보에게 힘을 실어주면 정권이 바뀔 가능성이 높았다. 안철수와 윤석열이 연합전선을 형성해 시너지를 일으키면 정권교체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에룬이 떠오르는 권력자에게 힘을 실어주면서 자신의 가치를 높인 것처럼 안철수가 권력교체에 힘을 실어주면서 어떻게 자신의 입지를 키울지도 관심사였다.

공동 정부 구성의 한 축을 담당하면서 차기 총리나 미래 여당 대표에 도전할 수 있는 등 정치인 안철수의 미래는 지금까지 그가 경험한 정치 인생 어느 때보다 밝아 보였다.

상대 측에서 그를 깎아 내리기 위해 쓰는 표현 '간철수'(간보는 안철수)니, '단일화 전문'이라는 비난들은 사실 그가 별로 신경 쓸 필요도 없는 마타도어에 불과했다.

■ <파트3> 파국

권력은 이에룬에서 라윗으로, 그리고 니키에게로 흘러왔다.

이에룬의 권력 독점 체제 → 라윗과 니키의 합작으로 인한 라윗의 권력 창출 → 니키와 이에룬의 연합에 의한 니키의 최고 권력자 등극의 과정이 나타난 것이다.

권력자의 힘이 막강할 때는 연합이 필요 없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엔 연합 전선을 펴는 게 우월한 전략이라는 점을 영리한 침팬지 선생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권력을 찬탈당한 쪽에선 자신이 연합전선에 당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니키가 '제3왕조'의 통치자가 된 뒤 라윗은 자신이 이에룬과 니키의 연합에 당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라윗은 니키가 가까이 있을 때는 이에룬과 싸우려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에룬과 단독으로 마주쳤을 때는 기꺼이 싸움을 걸려고 했다.

영장류 학자 프란스 드 발이 침팬지 사회에 대한 관찰 일지를 썼던 시기는 1970년대였다. 하지만 70년대 끝나고 80년대가 도래했을 때 침팬지 사회에선 큰 분란이 일어났다.

1980년 침팬지 집단의 1인자였던 니키의 심기를 건드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니키는 어느날 이에룬이 발정기인 암놈과 교미하는 모습을 보고 화를 참지 못했다. 그런 뒤 둘 사이에 큰 충돌이 나타났다.

이에룬 역시 감정이 격해졌다. 급기야 이에룬은 니키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는 '강공책'을 썼다.

그러자 '2왕조 시대'의 지배자 라윗이 권력의 공백을 비집고 들어가 다시 1인자가 됐다. 연합전선이 무너지자 과거의 1인자가 다시 제위(帝位)를 찬탈한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프란스 드 발은 관찰일지에 이렇게 적었다.

"이 사건은 니키가 최고 지위를 지키기 위해 이에룬의 지지에 얼마나 의존했는지, 또한 그 늙은 수놈이 거래 중단의 의미를 얼마나 유심히 검토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하지만 둘은 곧 정신을 차린다. 이에룬과 니키의 연합전선이 다시 형성됐으며, 10주 후 그들은 라윗을 제왕의 자리에서 쫓아내버린다.

이 과정이 매끄럽지 않았다. 침팬지 사회는 큰 파국을 맞는다. 이에룬과 니키는 라윗의 손가락, 발가락을 물어뜯어 큰 상처를남긴 뒤 라윗의 고환까지 잘라버렸다. 결국 라윗은 목숨을 잃고 만다.

■ <파트3-1> 파국...그리고 새로운 시작

윤석열은 작년 11월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선출된 뒤 다른 후보에 비해 우위를 이어갔지만, 12월 들어 이재명 후보에게 뒤집혔다. 하지만 12월 하순부터 줄곧 1위를 이어거더니 새해 들어서는 격차를 더 벌였다.

그런데 2위 이재명을 10%p 내외로 따돌렸던 윤석열의 지지도는 대선이 가까워오면서 흔들렸다.

안철수-윤석열 단일화가 흔들리는 가운데 이재명이 치고 올라온 것이다. 이재명의 민주당은 심지어 안철수에게 '대통령 빼곤 다 준다'는 식으로 애정공세를 펼쳤다. 결전을 앞둔 승부수였다.

이런 과정에서 한국 정치는 혼란에 빠졌다.

국민의힘 당 대표 이준석은 '후일을 도모해야 할' 안철수를 조롱하기에 바빴다. 심지어 안철수 캠프 선거운동원이 사망하는 사고가 났을 때도 안철수에 대한 비난을 거두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은 젊은 정치인의 이같은 치기 어린 행태를 이해하지 못했다. 심지어 자신을 삼장법사, 안철수를 원숭이로 조롱하는 괴상한 선거 전략도 구사했다. 진정으로 그를 민주당의 엑스맨 아닌가 하고 의심하는 사람이 많았다.

안철수의 '간보기 전략'에 정권교체를 원하는 야권 지지자들은 애간장을 태웠다.

안철수는 2월 13일 여론조사를 통한 단일화를 제안했다. 하지만 야당 대표 이준석은 '단일화 없이도 이길 수 있다'면서 안철수의 제안에 대해 코웃음을 쳤다. 판은 점점 재밌어지고 있었다.

결국 안철수는 단일화 제안 일주일 후인 2월 20일 "제 갈 길을 굳건히 가겠다"면서 대선 완주를 선언했다. 그러면서 단일화 실패에 대한 책임을 국민의힘과 윤석열에게 돌렸다.

다시 일주일이 지난 2월 27일 윤석열은 "안 후보로부터 단일화 결렬 통보를 받았다"고 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단일화가 물 건너 갔다고 생각했다. 윤석열의 국민의힘과 안철수의 국민의당 사이엔 건널 수 없는 강이 놓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사전투표(3월 4일과 5일)를 하루 앞둔 3월 3일 두 사람은 전격적인 단일화를 발표했다. 모두가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여당 대선 후보 이재명의 지지율이 올라오면서 윤석열-이재명의 지지율이 백중세의 경합을 보이고 있을 때 안철수는 윤석열의 손을 들어줬다.

1주일 전만 하더라도 윤석열을 찍으면 1년 뒤 손가락을 자르고 싶을 것이라고 했던 안 철수였지만, 태도를 완전히 바꾼 것이다.

어차피 이대론 그의 당선 확률도 없었다. 사실 대선 '완주'는 그 자체는 안철수에게 큰 의미가 없어 보였다. 그의 완주가 정권교체 실패로 귀결될 경우 잃는 게 더 많은 게임이었다.

안철수의 판단은 명석한 이에룬의 전략과 맞닿아 있었다.

■ <파트4> 에필로그

라윗이 목숨을 잃은 뒤 침팬지 사회엔 단디라는 새로운 도전자가 등장한다. 인간 사회든, 침팬지 사회든 세상은 변화한다. 늘 도전하는 사람과 자리를 지키려는 사람은 대결을 벌인다.

단디는 선배들의 전략을 본 떠 '늙은 여우' 이에론의 두뇌를 빌린 뒤 니키를 공격한다.

니키는 자신의 책사를 뺏기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이미 이에룬의 마음은 돌아선 상태였다. 결국 단디와 니키의 몸싸움이 격해졌으며, 싸움 도중에 도망가던 니키는 얼음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침팬지 사회 '제4왕조'의 지배자 단디가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절대적인 강자가 아닌 이상 우군을 확보하려는 전략은 유효하다. 힘을 합칠 경우 승산이 있어 보이는 사람과 연합전선을 형성하는 일은 자연스럽다.

1인자가 되는 자도, 2인자가 되는 자도 모두 이익이다. 2인자는 후일을 도모할 수도 있다. 이에룬처럼 1인자 자리를 내놓았지만, 영원히(!) 2인자로 권세를 누릴 수도 있다.

굳이 권력자가 되지 못하더라도 인간과 침팬지 모두 자신의 이익이 최우선이다. 때론 불합리해 보이는 행동도 시간이 지나서 보면 합리성을 갖는 경우도 많다.

많은 사람들은 당선 가능성 제로인 허경영이 빠지지 않고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는 이유를 궁금해했다. 하지만 이는 허경영의 영리한 사업전략이었다.

허경영은 꾸준한 대통령 선거 출마를 통해 열성 팬층을 확보했다. 이를 통해 그는 큰 부를 쌓았다. 허경영은 264억원의 재산을 신고했다. 직계비속(자녀) 4명이 재산고지를 거부한 상태에서 신고한 재산이 그 정도였다.

■ <파트4-1> 보론

정치인들은 속임수의 달인이다.
그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이상과 공약, 비전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면서 사람들을 설득하려고 한다. 하지만 정작 본인들의 권력에 대한 야망은 최대한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쓴다.

심지어 '자기 합리화'를 통해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데도 도가 턴 사람들이다. 본질은 개인의 욕심인데,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국민을 위하는 자'로 착각하면서 사는 정치인도 부지기수다.

프란스 드 발의 분석에 의하면 침팬지는 인간에 비해 '더욱 천박한' 정치인들이다. 침팬지는 자신의 이기적인 욕심과 동기를 아주 뻔뻔스럽게 알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나라한 침팬지 정치보다 '교묘한 정치적 술수'로 위장한 인간의 정치가 더 위험할 수 있다.

침팬지 세계의 국민들은 권력자들의 속임수에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는 반면 인간 사회의 국민들은 정치인들의 속임수를 알아 채기도 어려운 데다가 그들이 권력을 어떻게 희롱할지도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새로운 정권이 들어선 뒤 우리는 좀더 복잡해진, 그리고 훨씬 거짓말에 능한 버전의 이에룬, 라윗, 그리고 니키를 만나게 될 것이다.

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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