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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민 칼럼) 기축통화 논란과 전경련

  • 입력 2022-02-23 15:29
  •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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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콤 장태민 기자] 지난 21일 저녁 여야 대선후보 토론에서 이재명 민주당 후보가 "우리도 기축통화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 발언이 큰 주목을 받았다.

야당에선 "경제를 모르는 사람의 발언"이라고 비판했고, 여당에선 "사소한 말꼬리 잡기"라며 자당 후보의 발언에 대해 방어막을 쳤다.

윤석열 후보가 비기축통화국(한국)의 높은 국가부채 비율을 우려하면서 국채 남발을 염려하자, 이재명 후보는 한국의 높은 기축통화국 편입 가능성을 거론하면서 국채발행 여력이 충분하다는 입장을 드러낸 것이다.

이후 논란이 일자 더불어민주당에선 "전경련 자료를 인용한 것"이라며 사태 진화에 나섰다.

월요일 TV 토론 이후 화요일엔 전경련에서 다시 자료를 발표해야 했다.

전경련은 22일 " 2월13일 자료를 통해 원화가 IMF 특별인출권(SDR) 통화바스켓에 편입될 자격이 충분하므로 정부가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고 드라이하게 사실을 적시했다.

하지만 이 자료엔 이재명 후보의 "(한국이) 기축통화국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 만큼 경제력 수준이 높다"는 답변을 정당화시켜 줄 만한 내용이 담기지 않았다.

전경련은 "우리가 SDR 편입 추진을 제안한 배경은 한국이 비기축통화국의 지위로서, 최근 재정건전성이 빠르게 악화되고 있고, 국제원자재 가격 고공행진으로 무역수지마저 적자가 지속될 수 있어 신용등급 하락 등에 따른 경제위기를 사전에 방지하자는 차원에서 원화의 SDR 편입을 희망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라고 했다.

전경련은 "국제적으로 안전자산으로 인식돼야만 제 지급결제 기능을 갖춘 명실상부한 기축통화가 될 수 있다. 경제 펀더멘털 유지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라며 이재명 후보의 발언으로 인한 '전경련 입장에 대한 오해'를 풀고자 했다.

■ 기축통화란

기축통화는 국가 간 무역·자본 거래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돈이다.

기축통화의 범위는 좁게 보느냐, 넓게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 좁게 본다면 진정한 기축통화는 달러뿐이다.

기축통화 범위를 넓혀서 보면 달러 외에 유로화, 엔화, 파운드화 등을 기축통화라고 할 수 있다.

기축통화는 고정돼 있지 않다. 기축통화가 되기 위해선 각종 상거래, 금융거래 등에서 자유롭게 거래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기 위해선 그 나라 돈에 '신뢰'가 있어야 하며, 국가의 경제 체력이 강하거나 재정건전성이 탄탄해야 한다.

지난 20세기 초 세계 유일의 기축통화는 영국 파운드화였다. 당시의 화폐체제는 금본위제였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각국은 전쟁 비용 마련을 위해 화폐를 남발했다. 결국 돈 가치가 크게 떨어졌으며, 전쟁이 끝난 뒤 주요국들은 속속 금본위제로 복귀해야 했다.

그러나 당시 영국의 인플레는 여전히 높았으며, 파운드화는 고평가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영국이 긴축적인 화폐정책을 이어가자 영국 경제가 침체되면서 세계금융 중심지 런던의 위상도 크게 떨어졌다.

1929년 세계 대공황이 일어나자 미국은 금 반출을 중단했고, 영국 등 유럽은 금 부족 사태를 겪었다.

특히 파운드화의 신뢰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면서 파운드 보유자들은 금으로 바꿔달라고 요구했다. 영국은 1931년 금태환 정지와 함께 금본위제 포기를 선언했다.

당시 영국의 금태환 포기 이후 달러가 국제결제통화의 위상을 얻었다. 1944년 2차 대전 이후 세계 금융질서를 모색하는 과정에 각국은 미국 달러화를 기축통화로 하는 브레튼우즈 체제를 출범시켰다. 달러가 금과 일정 교환비율(금 1온스당 35달러)을 유지하고 다른 IMF 회원국들은 기축통화인 미국 달러화 대한 기준환율을 설정하는 방식이었다.

이제 금에다 달러가치를 고정시키는 브레튼우즈 체제도 무너진지 오래됐지만, 1940년대 중반부터 달러화는 '진정한 의미에서' 세계 유일의 기축통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 SDR 바스켓을 기준으로 본 기축통화...그리고 전경련의 제안

전경련이 13일 발표한 보고서의 제목은 '원화의 기축통화 편입 추진 검토 필요'다.

전경련 보고서는 SDR 편입 통화를 일단 기축통화로 보고 접근했다.

전경련은 올해 개최되는 IMF 집행이사회의 특별인출권(SDR, Special Drawing Right) 검토 과정에서 한국 원화가 SDR 통화 바스켓에 편입될 수 있는 5가지 근거로 △ 한국경제 위상(GDP 10위, 시총 9위) △ IMF 설립목적과 부합(자유무역 바탕으로 최빈국에서 경제대국으로 우뚝) △ 세계 5대 수출강국 △ 국제 통화로 발전 중인 원화 △ 정부의 원화 국제화 등을 제시했다.

전경련의 이상호 경제정책팀장 등은 "원화가 SDR 통화바스켓에 편입돼 기축통화로 인정받을 경우 우리 경제는 시뇨리지 효과 등으로 최소 112.8조원의 경제적 이득을 볼 수 있을 것이므로, 올해 중반 진행될 IMF 집행위 편입 심사에 앞서 정부가 SDR 포함 반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시뇨리지는 국가가 화폐 발행으로 얻는 이익, 즉 화폐주조차익이다. 화폐 액면 가치와 제조비용과의 차액이다. 기축통화가 되면 해외 유통을 위한 추가 발행에 따른 시뇨리지를 얻을 수 있다.

전경련은 원화의 SDR 편입이 성공하면, 통화 시뇨리지 효과(88조원), 환율불안정성 감소(수출 16조 증가와 환율 변동성 39% 감소), 국공채 금리 하락(63bp 하락 통한 이자부담 9.4조원 감소) 등의 이득을 얻을 수 있다고 추정했다.

이 제안 이후인 17일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한국 4년 후 국가부채비율 순위 OECD 비기축통화국 17개국 중 3위로 높아질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한경연은 SDR 통화바스켓을 기준으로 비기축통화국을 분류한 뒤 한국은 부채 증가세가 가장 위험한 국가로 꼽았다.

한경연 이상호 경제조사팀장은 "코로나19가 발발한 2020년부터 2026년까지의 비기축통화국 재정전망을 분석한 결과 한국의 GDP 대비 국가부채비율 증가폭은 19%p로 OECD 비기축 통화국 17개국 중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 팀장의 분석 결과 이 기간 캐나다, 아이슬란드, 헝가리 등 비기축통화국 국가부채비율은 평균 1.0%p 감소하지만 한국의 부채는 대폭 올라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국가부채비율이 2020년 47.9%에서 2026년 66.7%로 급증함에 따라 국가부채비율 순위도 중간 정도(17개국 중 9위)에서 3위로 크게 뛸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의 재정지출이 다른 나라에 비해 과도하고 재정적자 감소폭은 비기축통화국 중 가장 작다고 우려했다.

이 팀장은 "20~21년 GDP 대비 통합재정수지 적자규모를 100으로 가정할 때 22~26년 GDP 대비 통합재정수지는 한국이 88인 반면 다른 비기축통화국들은 평균 33.6으로 나타났다"고 소개했다.

한국의 재정적자 감소폭이 상대적으로 '매우' 적다고 전망한 것이다.

추광호 한경연 경제정책실장은 "한국은 발권력을 가지지 못한 비기축통화국이므로 유사시를 대비한 재정건전성 확보는 거시경제의 안정성 확보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사안"이라며 "최근 재정건전성이 빠르게 악화되고, 저출산‧고령화 등 장기적 국가부채 리스크도 상당한 만큼 재정준칙 법제화와 적극적인 세출 구조조정을 서둘러야한다"고 진단했다.

■ 한국 재정 상황, 보이는 것 보다 안 좋아

최근 IMF 등 해외 기관이나 국내 금융시장 관계자들은 한국의 국가 부채 증가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여기에 한국의 경우 다른 나라와 다른 특수한 경제구조도 감안해야 한다.

지금처럼 빚을 내면 세계에서 '가장 빨리 늙는 국가' 한국의 재정건전성은 매우 위험해진다. 한국은 '고령화 때문이 아니라 저출산 때문에' 인구 위기에 직면해 있다. 앞으로 쓸 돈은 많아지는데, 세금 낼 사람은 줄어든다는 얘기다.

여기에 한국 특유의 높은 공기업 비중도 감안해야 한다.

정부의 공공요금 동결, 공사채 발행 증가 등을 감안하면 국가가 공기업에 억지로 떠안기는 빚이 적지 않다. 실질적인 국가부채는 눈에 보이는 것 이상으로 많다.

한경연 이상호 팀장은 "국제비교에 사용되는 일반정부 부채(D2)엔 포함되지 않으나 국가가 지급보증해 사실상 정부부채로 봐야 할 비금융공기업 부채는 한국이 2위를 차지한다"고 우려했다.

최근 전경련과 그 산하 연구기관이 낸 보고서들은 '기축통화 등극 가능성 증가'를 논했다기 보다는 재정건전성에 신경 쓰면서 기축통화국(SDR 편입)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오히려 한국의 재정건전성을 우려하는 내용이 많았다.

■ 금융시장, 한국 국가재정 '너무 좋다'는 발언은 한가한 소리

금융시장에 한국의 원화가 조만간 기축통화가 될 것으로 보는 사람은 없다.

금융시장에선 이런 기본적인 '상식'조차 모르고, 여당 대선 후보가 잘 아는 척하다가 한방 먹었다는 평가들도 나왔다.

그러나 그 보다 위험한 것은 모르면서 안다고 착각하고, 과도하게 정책을 밀어 붙이는 것이다.

A 증권사의 한 관계자는 "윤석열보다 이재명을 조금 더 지지하는 사람이지만, 한국이 조만간 기축통화가 될 것으로 보는 사람은 금융시장에 아예 없다"면서 "그리고 이 후보의 재정이 너무 건전해서 문제라는 말은 국민을 기만하는 헛소리"라고 비판했다.

그는 "한국처럼 기축통화국이 아닌 나라가 지금처럼 빚을 내면 신용도 하락 위험에 처할 수 밖에 없다"면서 "지금의 여당처럼 재정건전성 생각 안하고 돈을 마구 남발하면 국가가 재정위기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는 비기축통화국 중 부채비율이 낮은 나라도 아니며, 최근엔 어느 나라보다 부채 증가속도가 두드러져서 걱정인 국가다.

코로나 사태를 감안하면 돈을 쓸 곳엔 써야 하지만 전국민 재난지원금, 피해를 소급해서 전액보상한다는 '낭만적인' 소리를 할 때가 아니라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이재명 후보를 포함해 여당 정치권에서 한국 국가재정이 '너무 좋아서' 문제라는 식의 발언도 많이 했다. 누구나 착한 사마리아인 흉내를 내고 싶지만, 국가 재정엔 한계가 있다.

B 증권사 관계자는 "정치권이 말하는 것처럼 소급해서 손실을 전액보상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런 식으로 피해를 본 사람들에다 다 보상을 한다면 100조원, 200조원도 모자란다"면서 "어차피 보상자 선정 과정에서 다시 편가르기가 이뤄지지 않았는가"라고 했다.

그는 "코로나 손실 제대로 못 받은 사람이 한 두 사람인가. 억울해도 참고 양보해서 정치권 포퓰리스트들을 견제해야 할 때"라고 했다.

기축통화국을 나누는 방법에도 여러가지가 있지만, 한국 화폐는 세계에서 쉽게 통용되는 통화가 아니다.

중국 위안화의 경우에도 사실 기축통화와는 거리가 멀다. 위안이 SDR에는 편입돼 있지만, 실질적인 기축통화로 취급받지 못한다. 중국의 무역규모가 세계 최고수준이지만, 국가가 화폐를 심각하게 통제하고 있는 나라의 돈은 기축통화가 되지 못한다.

중국 돈이 세계 시장에서 기축통화가 될 만큼 신뢰를 못 받는 게 현실이다.

한국 역시 명실상부한 기축통화국이 되기 위해선 가야할 길이 너무 멀다. 각종 거래에서 원화가 신뢰를 확보할 수 있어야 하며, 외환 파생상품 등 시장 저변도 크게 넓어져야 한다. 여전히 원화는 안전자산이 아니라 위험자산이다.

무엇보다 지금처럼 재정에서 화폐를 남발하려고 하면 기축통화국 보다 금융위기국이 더 가까울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KDI출신 윤희숙 국민의힘 전 의원은 2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한국 국가채무비율이 다른 나라에 비해 낮아 돈을 더 펑펑 쓰자고 주장할 때 전문가들은 한국이 기축통화국이 아니라 처지가 다르다고 했다"면서 "이재명 후보가 당시 들은 척을 안 했던 이유는 기축통화가 뭔지 몰랐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윤 전 의원은 "한국이 비기축통화국 중 채무비율이 낮지 않다고 하자 이재명 후보는 움찔하더니 기축통화로 편입될 것이라고 했다"면서 "똑똑한 고등학생도 아는 경제상식도 모르는 대선후보라는 사람이 이제껏 국가재정을 망치자고 주장해 온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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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경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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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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