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 2024-05-15 (수)

(장태민 칼럼) 시험 도둑

  • 입력 2021-12-30 14:44
  •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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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콤 장태민 기자]
세무사 시험 합격자와 관련한 불공정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급기야 지난 20일 고용노동부는 올해 치러진 제58회 세무사 시험에 대한 특정 감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세무 공무원 출신이 지나치게 많이 합격해 부정 의혹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 세무공무원들의 '해먹기'

매우 이상한 합격자 수치가 떴다.

올해 세무사 시험에서 합격한 세무 공무원은 151명에 달했다. 이는 20명에 내외로 합격하던 예년과 비교할 때 대폭 늘어난 것이었다.

일단 이런 일이 발생한 이유는 난이도 조절 실패에 있었다. 세무 공무원 출신은 '시험을 안 치는' 과목인 세법학 1부에서 과락이 82.13%나 나왔기 때문이다.

지난 5년간 세법학 1부 시험의 과락률은 평균 38%였기 때문에 80%가 넘는 과락이 발생한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시험 준비생 80% 이상이 세법학에서 과락을 기록해 탈락한 반면 이 과목 시험을 치지 않는 공무원들은 손쉽게 세무사 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다.

이쯤 되면 시험 난이도 조작을 통해 '공무원'들에게 특혜를 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각종 의혹들도 일고 있다. 일부 공무원들이 시험 문제를 먼저 봤다는 의혹 등 각종 의심이 끊이지 않고 있다.

■ 일부러 난이도 조작한 것인가...공무원에게 '절대' 유리하게 만든 이상한 시험

올해 실시된 세무사 시험에서 세무공무원 출신들이 면제받는 과목에 일반 응시자의 82.3%가 과락을 받고, 51.1%가 0점을 받았다.

최근 친한 후배가 필자가 이 얘기를 처음 전했을 때 필자는 믿지 않았다. 누군가 장난스럽게 이런 얘기를 돌리는 것으로 착각했다.

"에이,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마. 아무리 대학 입시 등 시험 시스템이 엉망이라도 그건 좀 말이 안 되잖아."

그런데 놀랍게도 이는 사실이었다.

일부 과목 면제자는 매년 약 7%정도 합격해 왔지만, 올해만 갑자기 예년대비 5배 가량 증가한 33.5%가 합격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응시생에서는 세법학 과락이 50%정도 나오다가 올해 갑자기 82% 나왔다.

일반응시생들만 보는 세법학에 포함된 상증세법 '주관식'시험에서 44%가 0점을 기록했다고 한다. 문제를 이딴 식으로 내다니!

주관식 시험에 절반가량이 0점 나오다 보니 채점 과정의 의혹을 제기하는 목소리들도 들렸다.

아울러 일부러 공무원들을 붙여주기 위해 시험 전반이 조작됐다는 비난이 터져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세무 공무원과 일반 응시생이 모두 봐야 하는 다른 과목들은 난이도가 너무 쉬워 만점이 속출했다는 목소리도 들렸다.

세무 공무원과 일반 수험생이 같이 치는 과목은 '너무 쉽게', 세무 공무원이 면제 받는 과목은 '너무 어렵게' 나왔다면 이는 누가 봐도 이상하지 않은가.

이쯤되면 시험 출제자에 대한 징계가 불가피해 보이지 않는가. 아울러 이는 누군가 '사기를 쳤다'고 의심할 수 밖에 없다. 도무지 상식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 안철수의 분노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뒤 안철수연구소를 만들어 한국사회에 컴퓨터 백신을 무료로 배포해 이 사회에 큰 기여를 했던 안철수 대선 후보도 세무사 시험 사태에 분노했다.

시험은 말 그대로 공정이 생명이지만, 한국 사회에선 '가진 자'들이 편법을 통해 시험 시스템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다.

아빠·엄마의 재력이 가장 중요해져 버린 대학 입시제도가 제대로 개혁되지 않는 상황에서 세무사 시험까지 특정 세력들의 '해먹기'가 드러난 일처럼 보였다.

안 후보는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해 실시된 세무사 시험에서, 세무공무원 출신들이 면제받는 과목에 일반 응시자의 82.3%가 과락을 받고, 51.1%가 0점을 받았다고 한다"면서 충격적이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그는 무슨 이 따위 시험이 다 있는가라는 반응을 보이면서 검증하겠다고 했다.

안 후보는 "공정한 자원배분을 위해 시험제도를 두고 있는 만큼 시험방식, 문제출제, 채점 및 합격자 선정까지 모든 절차는 투명하고 검증 가능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라며 "올해 세무사 시험에서는 유독 세무공무원 출신 합격자 수가 작년보다 5배나 급증했다고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공교롭게도 세무공무원들이 면제받는 과목에서 0점을 받은 응시자도 6배나 늘어났다"며 "사정이 이렇다면 누군가는 특혜를 받고 누군가는 불이익을 받았다는 것이 자명해 보인다"고 했다.

사실 이런 정도의 결과는 누가 보더라도 공정하지 않다. 이 사태와 관련해 객관적인 기관에서 감사를 해야 한다.

안 후보는 "세무사 시험을 주관하는 한국산업인력관리공단의 시험관리 업무에 대해 즉시 감사에 착수해 올해 시험 출제와 채점에서 세무공무원 출신에 대한 특혜가 의도적으로 개입되었는지 철저히 밝혀야 한다"고 했다.

그는 "부정이 밝혀지면 관련자를 엄중 처벌하고 전면 재시험을 실시해야 한다"며 "세무사 시험뿐만 아니라 그 밖의 모든 자격시험에서도 유사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지도 미리 점검하도록 지시하고, 그 결과 또한 아울러 챙기겠다"고 했다.

필자는 20여년 전 안철수 '안철수연구소' 대표를 인터뷰했던 기억도 떠올렸다.

당시 중소기업 대표를 하면서 각종 어려움을 겪은 뒤 공정한 경쟁만 가능하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하던 청년 사업가 안철수가 떠올랐다.

■ 시험 과목 '공무원 면제' 없애야 한다

시험 성적으로 사람을 뽑는다면 그 시험은 시험다워야 한다.

그러나 특정 시험의 경우 관련 직업군에 있는 사람들을 지나치게 우대한다. 세무사 시험이 대표적이다.

세무공무원들에게 특정 과목을 면제해 주는 이런 식의 시스템은 없어져야 온당하다.

세무 공무원으로 일하면 그 만큼 세무 관련 지식들이 보통 사람들도 많지 않은가. 그 지식을 바탕으로 공부하면 보통 사람보다 훨씬 더 유리하다. 시험을 치면 될 것을 왜 면제해주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이런 식으로 특정 계층에게 '매우' 유리한 입지를 확보해주는 식의 시험은 제대로된 시험이라고 보기 어렵다.

세무사 국가고시 부정에 대한 감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시험을 쳤던 사람들은 공정한 감사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세무사시험제도개선연대는 고용노동부의 공정한 감사를 촉구하기 위해 지난 28일부터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관리공단에서 근조화환 시위를 진행 중이다.

근조화환에는 "세무사 시험은 죽었다. 채점기준 공개하라. 불공정에 타협말고 제대로 감사하라. 죽어가는 청년 공정" 등이 쓰여져 있었다.

■ 개선되지 않는 대학 입시...한 서울대 교수의 이상한 논리

필자는 세무사 시험 논란을 보면서 엉망이 된, 그러나 참으로 바꾸기 어려운 대학입시 시스템을 떠올렸다.

동시에 몇 년 전 서울대학교 교수로 일하고 있는 친구와 언쟁을 벌인 경험도 떠올랐다.

당시 필자는 수시 입학제도는 학생의 성과라기 보다는 부모의 재력이 가장 중요한 현실적 상황에서 '진짜 시험'으로 학생들을 뽑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필자의 친구이자 서울대 교수의 답변은 이러했다.

"우리가 쳤던 학력고사보다 지금의 시험제도가 진일보 한 것으로 본다. 지금처럼 다양한 방식으로 다양한 재능이 있는 학생을 선발하는 게 나은 제도라고 생각해. 학력고사로 돌아가는 건 생각조차 할 수 없어."

그는 착각하고 있었다. 다양한 방식으로 다양한 인재를 뽑는 게 아니라, 다양한 방식의 다양한 편법 입학만 늘린 게 이 시스템이다.

필자의 친구는 소위 말하는 깡촌에서 자라 지방의 중소도시에서 고등학교를 다닌 뒤 서울대학을 다닌 사람이었다. 그래서 진지하게 그에게 물어봤다.

"지금의 제도라면 너는 서울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니?"

친구는 꿀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답변도 하지 못했다. 지금은 '실력'이 아닌 부모의 '재력과 권력'이 큰 힘을 발휘하는 시대다.

필자는 친구에게 물었다.

"지금 시스템이라면 서울대가 아니라 서울에 있는 대학에도 입학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지금의 이 제도 때문에 가난하지만 똑똑한 학생들이 얼마나 피해를 많이 보는지 생각해 봤는가?"

"....."

그와 필자는 시골에서 가난한 유년기를 보냈지만 적어도 '시험이 공정한 시대'에 살았던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학력고사 시스템의 지금의 대입 제도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공정했다.

■ 진보정당 간부의 이상한 '공정' 논리

지난 해 소위 진보 정당의 간부로 일하는 어떤 사람과 언쟁을 벌인 적이 있다.

그는 정의당에서 한 자리하고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다. 당시 우리는 대학입시 문제를 주제로 논쟁을 벌였다. 그는 이런 주장을 펼쳤다.

"반에서 60등 하는 사람도 서울 대학에 갈 수 있는 세상이 공정한 세상이라고 봅니다."

필자와 이 정의당 관계자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한 반의 학생수가 60명이 넘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가 중고등학교를 다녔던 80년대엔 그 정도로 학생들이 넘쳐났다.

필자는 이런 사람이 '진보'를 외치고 있는 작금의 시대상에 대해 분노할 수 밖에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가 당시 4년제 대학을 다니지 못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학력 컴플렉스가 작용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도 했다.

아무튼 그는 노력에 대한 보상, 공정 경쟁의 가치보다 '기계적 평등'에 집착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간부처럼 생각하고 있는 소위 진보라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에 좌절하고 말았다.

모두 '가짜' 진보다. '진짜' 진보라면 돈이 많고 여유가 있는 사람의 자제보다, 없는 사람들에게 진짜 기회를 주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부모가 가난한 학생들은 보통의 학생들보다 훨씬 더 나쁜 여건에서 경쟁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사람은 이런 문제에 관심이 없고 공부 못해도 서울대학을 가거나, 아니면 서울대학을 없애 버려야 한다는 주장만 했다. 필자는 이 간부의 꽉 막힌 태도에서 도무지 이 논쟁을 돌파할 수 없었다.

전 법무장관 조국의 자식들이 부모의 '빽으로' 시험도 제대로 치지 않고 대학에 가는 것을 우리는 두눈으로 똑똑히 보지 않았던가. 입으로는 공정과 정의를 외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상식을 세우는 것 조차 너무 힘든 세상이 세상이 돼 버렸다.

■ 이 땅의 교사들, 부끄러운 줄 알아야

지난해 필자의 한 지인은 이런 얘기를 들려줬다.

"어느 날 아이가 선생님에게 교과서 내용을 질문 했다가 쿠사리(핀잔)만 듣고 와선 침울해 했어요. 왜 그러냐고 물어봤더니, 학교 선생이 학원 선생에게 가서 물어보라고 했대요."

그러면서 이 지인은 전교조와 교사들을 싸잡아 비판했다.

"실력도 없는 자들이 교사라는 권력만 이용해 애들을 이용하고 있는 게 작금의 현실입니다. 자기는 모르는 문제이니 학원 선생에게 물어보라는 게 말이 됩니까? 선생으로서 최소한의 자존심도 없습니까? 수시 입학 시스템이 정착된 뒤 전교조와 교사들은 엄청난 권력을 가지게 됐어요. 교사로서 가르치는 능력도 별로 없는 자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이용해 애들의 미래를 좌지우지 하고 있지요."

이 지인의 말 대로 교사에게 가르치는 스킬이 기본이다. 자신의 교수법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뒤떨어진다고 생각하면 이를 개선하는 게 우선이다.

필자의 지인은 과연 지금의 교사들에게 밥벌이의 가장 기본적인 능력인 '가르치는 스킬'을 발전시킬 의지나 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필자의 친구 중 오랜기간 학원 선생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이 친구는 서울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지만, 10년 넘게 사법시험에 붙지 못해 학원가로 진출했다.

우리는 젊은 시절 '사교육 망국론'과 공교육 정상화를 외쳐왔던 사람들이었다. 각종 입시 학원 등 사교육이 번창하는 것을 우리는 곱지 않은 시선으로 봤던 사람이다. 당시엔 정상적인 사람 대부분 이런 생각을 갖고 있었다.

시험에 붙지 못해 학원가 영어 선생으로 진출했던 이 친구가 했던 말은 아직도 생생하다.

"자괴감이 든다. 우리가 그렇게 사교육을 비판해 왔던 사람들 아니었나. 내가 못 난 사람이다 보니, 공교육을 망가뜨리는 일에 일조하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네."

친구는 자신의 학원가 진출을 부끄러운 일로 여겼다. 당시 그는 공교육 정상화를 원했던 사람으로서 양심에 가책이 느껴진다고 했다.

많은 시간이 흐른 뒤 한국엔 이상한 주장이 난무한다. 입으로는 공정한 경쟁을 떠드는 사람이 많아졌지만, 사회 분위기는 점점 봉건시대로 흘렀다.

세상 물정을 모르는 사람들이 국민들을 '모르모토' 삼아 각종 실험들을 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일어난 유례없는 부동산 가격의 폭등은 이런 잘못된 실험의 산물이다. 여전히 힘 있는 자들은 쉼없이 정의와 공정 경쟁을 들먹이고 있다.

정치인들이 공정을 외쳤지만 각자도생과 운이 지배하는 시대가 된지 오래됐다.
2021년 한해가 저물고 있다. 2022년은 얼마나 또 피곤한 세상이 될까 생각하면 정신이 아득해진다.

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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