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 2024-05-16 (목)

[장태민의 채권포커스] Fitch의 미국 신용등급 강등

  • 입력 2023-08-02 14:43
  •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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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콤 장태민 기자] 한국시간 2일 새벽 신용평가사 피치가 미국의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하향조정한다고 발표한 뒤 시장에 미칠 파급 효과에 대한 관심이 이어지고 있다.

채권·외환·주식 등 금융시장은 모두 이번 조치가 미칠 파장을 주시하고 있다.

국내 당국자들도 시장 상황 점검회의를 연 뒤 일단 원론적인 입장 표명과 함께 모니터링 강화 등을 주문했다.

방기선 기재차관은 "아직 시장에서는 지난 2011년 S&P의 미국 신용등급 하향(AAA→AA+)때 보다 영향이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나 향후 안전자산 선호심리가 심화되며 국내외 시장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이 상존하는 만큼 관계기관간 긴밀한 공조체계를 유지하는 한편 필요시 시장안정을 위한 조치를 신속히 시행해 나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 피치의 등급 하향

신용평가사 피치는 현지시간 1일 미국 국가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강등했다. 아웃룩에 대해선 '스테이블'을 줬다.

AA+ 등급은 뉴질랜드, 오스트리아, 캐나다와 비슷한 수준이다. 덴마크, 룩셈부르크 등 국가보다는 낮은 등급이다.

피치는 미국 정부 부채 증가를 문제 삼았다.

최근 미국 여야간 부채한도 상향 조정과 관련한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진 게 빌미를 제공했다.

피치는 "지난 20년 동안 미국 정부의 가버넌스 기준은 지속적인 악화를 보여줬다"면서 "등급 강등은 앞으로 3년간 재정이 악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점, 정부 부채의 빠른 증가세, 20년간 반복되고 있는 부채한도 교착 국면, 그리고 동급 국가에 비해 가버넌스가 약화된 점 등이 반영됐다"고 했다.

피치는 "반복되는 부채 한도 관련한 정치적 교착 상태, 막판 합의로 인해 나타난 재정 관리에 대한 신뢰 약화 등이 우렵스럽다"고 했다.

미국이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 중기 재정 프레임워크가 충분하지 않고 예산 편성 과정이 복잡하다고 주장했다. 이런 요인들로 지난 10년간 연속적으로 부채가 늘었다고 설명했다.

인구 고령화로 인해 사회보장, 의료 비용 증가와 관련된 중기적 과제를 해결하는 부분에서의 진전도 제한적 수준에 그쳤다고 지적했다.

■ 미국 당국과 시장일각, 피치의 '튀는 행동' 비난

피치가 미국 등급을 내린 데는 세계 최강국의 빚이 빠르게 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한 포인트다.

피치는 GDP 대비 정부 적자 비율이 지난해 3.7%에서 올해는 6.3%로 크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주정부와 지방정부는 2022년 GDP의 0.2% 수준에서 소폭 흑자를 기록했지만 올해는 전체 GDP의 0.6% 수준의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피치는 또 2024년 미국 정부의 재정적자가 GDP의 6.6%에서 2025년에 GDP의 6.9%로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내년 GDP 성장률 부진, 이자 부담 증가, 2024~2025년 주정부와 지방정부 적자 확대 등으로 인해 적자 폭이 더 커질 것으로 전망한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나라살림을 이끌고 있는 재닛 옐런 재무장관은 이런 평가를 못 마땅해했다.

옐런은 "피치의 미국 신용등급 강등을 강력하게 반대한다"며 "이번 강등은 피치의 구식 데이터에 기반한 독단적인 결정"이라고 비난했다.

다른 미국 정부 관료들도 "등급 강등은 근거가 없다"면서 결정을 비판했다.

금융시장에서조차 피치의 결정이 이상하다면서 비판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모하메드 엘 에리언 알리안츠 수석 경제 고문은 "피치의 미국 신용등급 강등은 이상한 결정"이라며 "이 발표는 미국 경제와 시장에 지속적으로 파괴적인 영향을 끼치기 보다는 주목을 못 받는 식으로 전개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대부분 시장 관계자들이 강등한 시기와 이유들을 놓고서 똑같이 당황할 것 같다"고 했다.

미국 경제가 예상보다 견조해 경기 침체 전망이 힘을 잃는 상황에서 이같은 발표를 하는 게 대체 무슨 의도냐는 의구심도 일었다.

■ 피치의 결정, 일단 시장 영향 주시

이날 한국 금융시장 가격변수가 일제히 하락하다 보니, 피치의 미국 등급 하향은 한국물 전반에 좋을 게 없다는 평가가 보인다.

한국 주식이든, 채권이든 미국의 등급이 흔들리면 위험자산으로 취급받을 수 있어 이에 유의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A 증권사의 한 관계자는 "미국이 위험할수록 한국물은 타격을 더 입는 법"이라며 "일단 한국 주식, 채권, 원화 모두 경계 모드를 켜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번 등급 강등은 미국이 부채를 늘리는 문제와 관련이 있고, 이는 채권 수급 악화와 귀결되기 때문에 미국 채권에도 좋을 게 없다는 평가도 보인다.

피치가 국내시간 새벽에 미국의 등급 강등을 내놓기 전 미국채 금리는 수급 부담으로 급등한 바 있다.

미국채10년물 금리는 7.32bp 급등한 4.0300%, 국채30년물 수익률은 8.48bp 뛴 4.0943%를 기록하는 등 장기구간 위주로 금리가 올랐다.

최근 미국에선 재무부가 지난 2021년 초 이후 처음으로 장기물 분기 리펀딩 규모를 기존 960억달러에서 1020억달러로 늘릴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고, 또 미국 재무부의 분기 국채 발행 계획 발표에 앞서 발표된 7~9월 미 정부의 자금 차입 계획은 총 1조70억 달러로 발표됐다.

이는 5월에 발표한 3분기 차입 계획인 7,330억 달러보다 확대된 것이었으며, 시장의 8~9천억 달러 차입 예상을 크게 웃도는 것이다.

이런 부분들은 피치의 미국 신용등급 강등 조치와 맞물린다.

B 증권사 채권딜러는 "시장의 화두가 일본 YCC와 미국 신용등급 강등이 된 것같다"면서 채권시장에 좋을 게 없는 재료들이 동시다발로 나오고 있다고 평가했다.

■ 2011년의 추억...금융시장의 우려와 기회

미국 신용등급 강등과 관련해선 2011년 사례가 있는 만큼 이에 준해서 영향을 평가해 보기도 한다.

2011년 상황과 비슷한 면이 있지만, 똑같은 잣대를 가져다 대기 곤란한 부분도 있다.

2011년 당시 금융시장 전반이 큰 충격을 받았던 이유는 신용등급의 물리적 강등 이외에 경기 모멘텀 약화, 재정위기 확산 등의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진우 메리츠증권 주식전략가는 "국가별 선행지수 반등, ISM제조업 지수의 바닥 통과 징후(신규주문 2개월 연속 증가), 반도체 업황 회복이 가세한 한국 수출 개선 가능성, 재정긴축의 부작용으로 국가채무/GDP 상승 속도조절에 선진국 재정정책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2011년과 같은 매크로 충격이 재현될 가능성은 낮다"고 분석했다.

2011년 미국 신용등급 강등으로 금융시장이 큰 충격을 받았던 이유엔 신평사가 '감히' 세계 최강대국의 등급을 진짜로 내렸다는 심리적 효과도 있었다. 아울러 당시 미국의 재정 상황이 얼마나 안 좋으면 미국 등급마저 낮춘 것 아니냐는 우려들도 난무했다. 미국 재정에 대한 우려는 곧 유럽 재정 위기를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이 전략가는 그러나 "2011년 미국 등급 강등은 경기와 기업실적 하강기에 발생해 지금과 차이가 있다"며 "핵심은 새로운 위기의 시작과 확산인가의 여부, 그리고 펀더멘털의 방향성"이라고 짚었다.

따라서 큰폭의 주식시장 조정 가능성은 낮다고 봤다.

채권시장은 미국채 발행 증가라는 수급 문제와 안전자산선호 차원 등을 동시에 봐야 한다.

미국채 시장은 미국의 재정이 안 좋으면 오히려 '각광'을 받는 기이한 속성도 있는 것이다. 지난 2011년 신용등급 강등 후 미국채 금리가 급락한 경험이 있다.

이 전략가는 "피치의 전망보다 재정적자 확대폭이 적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 자금조달 비용 증가는 오히려 연준의 긴축 기조를 중단할 수 있는 요인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등급강등이 예고됐던 점, 이미 2011년 한번 경험을 했다는 점 등을 감안할 때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란 진단도 나온다.

공동락 대신증권 채권연구원은 "피치는 지난 5월 신용등급 전망의 강등을 통해 등급 하향에 대한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고, 실제 등급을 내린 사유 역시 등급 전망 강등 당시와 동일했다"면서 "이번 등급 강등을 전격적인 조치가 아닌 앞선 등급 전망 하향에 따른 후속 조치"라고 지적했다.

그는 "2011년 S&P의 미국 신용등급 강등에 따른 학습 효과도 고려해야 한다. 당시 주가가 단기간에 15% 이상 폭락하는 등 금융시장에 미치는 충격이 상당했으나 주가 급락에도 불구하고 미국 국채 금리는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로 인해 오히려 하락하는 등 신용등급 강등의 본질적인 영향이라고 할 수 있는 국채 발행 및 유통 상에서의 충격이 크게 나타나지 않았다"고 상기했다.

그는 "그 때도 국가신용등급 강등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기축통화국으로서 지위가 크게 훼손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금융시스템에 대한 리스크로 확산되지도 않았다"고 했다.

국내 주식시장에선 2011년보다 상황이 나쁘지 않다는 점이나 최근의 상승 트렌드 등에 무게를 둬 지금의 일시적 주가 급락을 저가매수의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고 조언도 보인다.

채권시장에선 미국 등급 하락과 관련해 △ 안전자산선호에 따른 우호적인 측면 △ 이런 상황에선 한국물 전체가 위험자산이 될 수 있다는 측면 △ 미국 부채 확대와 연계돼 수급 부담을 고려해야 하는 측면 등도 거론됐다.

C 증권사 채권딜러는 "미국 등급 강등 이슈는 최근 일본 금리 상승과 맞물려 장기구간을 더욱 안 좋게 만들고 있다. 커브 스티프닝으로 기능할 것이지만, 동시에 이 이슈는 금리인상을 더욱 힘들게 만들 수 있어 단기구간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2시19분 현재 10년 국채선물 가격은 65틱 떨어진 109.70을 기록 중이며, 외국인이 10년선물을 9,482계약이나 대거 순매도 중이다.

같은 시간 코스피지수는 50.31p(1.89%) 하락한 2,616.94를 나타내고 있다. 다만 외국인의 일중 코스피 순매도 규모는 현재 2천억원이 채 되지 않는다. 달러/원은 10.2원 오른 1,294.0을 기록 중이다.

피치의 미국 등급 강등과 함께 한국물 가격변수는 일제히 빠졌으며, 간밤 미국시장 반응을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다.

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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