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 2024-05-17 (금)

[장태민의 채권포커스] 한은 대출제도 대폭 손질...모럴해저드보다 위기대응태세 완비가 미덕인 시대

  • 입력 2023-07-27 15:11
  • 장태민 기자
댓글
0
[뉴스콤 장태민 기자] 한국은행이 27일 큰 폭의 대출제도 개편을 발표했다.

올해 3월초 미국 실리콘밸리 사태가 일어난 뒤 국내에서도 새마을금고 문제가 불거지는 등 한국 금융사들에게 대한 우려도 이어졌다. 이런 분위기 속에 중앙은행이 대비책을 마련한 것이다.

각종 부동산 PF와 관련한 금융사 부실에 대한 우려도 여전히 남아 있다.

한은은 결국 '위기 방지'에 초점을 둔 제도개편을 단행했다. 위기 시 은행뿐만 아니라 비은행 등에도 자금을 신속하게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한 것이다.

■ '절도'를 잃어버린 중앙은행?...한은도 선진국들처럼 담보 허들 완화

오랜기간 은행들은 한국은행으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기 위해선 국채나 통안채 같은 '확실한' 채권을 담보로 맡겨야 했다.

하지만 각종 금융 불안이나 금융 위기를 거치면서 중앙은행들이 예전에 보여준 절도 있는(?) 모습은 점점 찾기 어려워졌다.

코로나 사태 이후엔 9개 공공기관 채권들에 은행채까지 포함시켜줬으며, 이번엔 지방채에 우량 회사채까지 포함시키기로 했다.

중앙은행 자금도 더 싸게 쓸 수 있게 했다. 자금조정대출을 받을 때 물리는 페널티 금리를 100bp에서 50bp로 낮춘다.

최근 새마을금고의 자금 인출 사태가 사회적 걱정거리를 안기기도 했던 만큼 비은행에 대한 자금 지원을 루트도 새롭게 닦았다.

■ 새마을금고 사태의 '악화 버전' 걱정한 한은...담보 인정, 회사채와 대출까지 '통 크게' 확대

한국은행은 은행, 비은행예금취급기관에게 인정해주는 담보 채권을 범위를 확대하기로 했다.

한은은 작년 11월 단기금융시장 안정화 조치의 일환으로 한국은행 대출 적격담보를 기존 담보에서 9개 공공기관채, 은행채까지 한시적으로 확대한 바 있다. 하지만 이번에 지방채, 기타 공공기관 발행채, 우량 회사채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오랜기간 한은은 담보채권을 넓혀주는 일에 인색했으나 코로나 위기 이후 범위를 빠르게 넓혀주고 있다.

한은은 이번 제도개편을 통해 "은행에 대해서는 상시 유동성 지원 역할이 강화되고, 한은법 제80조에 따라 금통위 의결시 비은행예금취급기관에 대해서도 유동성 지원 효과가 제고될 것"이라고 했다.

한은은 "은행의 경우 기존 담보에서 기타 시장성증권까지 적격담보가 확대됨에 따라 예금인출 등 유사시 자금조정대출을 통해 약 90조원 규모의 추가 유동성을 조달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이 규모는 9개 공공기관 발행채 42조원, 은행채 11조원, 지방채 5조원, 기타 공공기관 발행채 19조원, 우량 회사채 11조원을 더한 수치다.

한은은 또 "비은행예금취급기관의 경우에도 은행에 준하는 적격담보 인정에 따라 금통위 의결을 통해 필요시 약 100조원 규모의 유동성을 조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규모는 기존 상시 적격담보증권 63조원, 9개 공공기관 발행채 15조원, 은행채 6조원, 지방채 1조원, 기타 공공기관 발행채 6조원, 우량 회사채 9조원을 더한 것이다.

한은은 또 예금취급기관에 대한 대출 적격담보를 향후 대출채권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한은은 "예금취급기관은 자산의 70∼80%를 대출채권으로 보유하고 있어 필요시 이를 활용할 경우 중앙은행으로부터 충분한 유동성을 적기에 공급받을 수 있다"면서 "또한 예금취급기관의 시장성증권 투매에 따른 금융시장 불안을 방지할 수 있다"고 했다.

■ 미국 SVB 사태가 불러온 한은 대출제도 개편

홍경식 통화정책국장은 이날 '대출제도개편'을 설명하면서 "뱅크론 사태를 계기로 다른 주요국 상황을 다 조사했다. 미국, 유럽, 영국, 일본 등이 모두 적격담보 범위가 상당히 넓었으며 대출채권도 한다"면서 "우량 회사채도 한다"고 말했다.

선진국들은 금융위기를 경험하면서 필요에 의해 담보 채권의 범위를 확대해왔으며, 한은은 SVB 사태를 보면서 대출시스템 정비의 필요성을 느꼈던 것이다.

홍 국장은 "한은법 64조에 따르면 시장성 채권만 가능하다. 그런데 또 상호금융은 가능하도록 돼 있다. 이는 과거 기업간 어음 교환시 은행이 할인해줬고 은행이 이 증서를 한은에 주면 한은이 또 재할인을 해줬다"면서 "그런데 2000년 이후 담보대출로 바뀌면서 어음할인 증서가 돌아다니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결국 법 취지를 감안할 때 대출채권 담보화도 가능하지만 법이 현실을 못 따라가는 문제가 있는 것으로 해석한 것이다.

한은법 65조는 금통위가 임시적격성을 부여하는 경우 적격담보로 인정된다.

홍 국장은 "대출채권이 가능하다면 우량 회사채도 가능하다고 판단했으며, 헤어컷을 적용해서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방채를 담보화하면 그쪽 시장이 활성화되는 부수적 효과도 누릴 수 있다"고 했다.

코로나 사태 이후 흥국생명이나 새마을금고는 RP를 통해 은행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했다.

한은의 이번 조치는 '이 수준'을 넘어서는 위기에 대비한 것이다.

한은은 새마을금고 사태를 넘어서는 '위기'시 지원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최대한 신속하게, 그리고 풍족하게 자금을 지원할 수 있는 플랜을 만들어 두는 게 필요하다고 판단한 셈이다.

■ 모럴 해저드·중앙은행자산 부실화 우려보다는 '만일의 사태' 대비 절실한 상황

전통적으로 중앙은행은 시중 금융사들에게 돈을 빌려 줄 때 까다로운 조건을 요구해왔다.

예컨대 유동성을 공급할 때 상당한 벌칙(벌칙금리 등)을 부과했다. 또 중앙은행이 보유한 자산이 부실화되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

시중 금융사들이 도덕적 해이를 통해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소지도 차단해야 했다.

다만 경영 실패가 일어난 금융사가 파산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있지만, 특정 금융사의 위기가 금융시스템 위기로 번지는 것은 막아야 하는 문제가 있다.

현재 한은법은 은행을 대상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금융사들 중 은행이 가장 안정적이고 2금융권 등은 더 리스크가 크다.

홍 국장은 "고객 입장에선 은행이나 비은행 모두 예금취급 기관이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하지만 한은법 80조(비은행 등 영리기업 대출 제공)엔 제한이 있었다"면서 "따라서 한은이 백스탑 차원에서 중앙회에 간접적으로 자금을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그게 안 된다면 80조를 적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라고 했다.

미국처럼 한은도 비은행에 대한 감독 기능을 확대할 필요성도 있지만, 일단 법을 개정하는 게 쉽지 않은 만큼 최대한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데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 속도가 생명인 시대...중앙은행이 안전장치 만드는 건 시대의 요구

모럴해저드와 금융시스템 안전성 이슈는 서로 상충되는 면이 있다.

어느 하나를 얻기 위해선 다른 하나를 내줘야 하는 부분이 분명 있다.

하지만 시대 변화에 맞춰 한은도 변할 수 밖에 없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은 간부로 일하다가 최근 퇴직한 A씨는 "사실 미국 SVB 사태를 보면서 미국 뿐만아니라 우리 중앙은행 당국자들도 많이 놀랐다. 디지털 뱅크런이 이렇게 무서운 것이구나 하고 깨달았을 것"이라며 "한 금융사의 유동성 리스크가 시장의 시스템 리스크로 확산될 가능성을 감안해 관리해야 할 필요성이 커진 것"이라고 평가했다.

규제당국 쪽에선 LCR, 예대율 등을 통해 유동성 리스크를 관리해야 하고 중앙은행 차원에선 유동성 공급채널을 만들어 놓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사실 요즘 시대엔 돈이 빠져 나가면 손 쓸 시간이 없다. 하루, 이틀 사이에 게임이 끝날 수 있다"면서 "따라서 디지털 뱅크런 방지를 위해선 대규모로 신속하게 돈을 공급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서 대비할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위기 징후가 심화됐을 때 중앙은행이 간을 가보면서 찔끔찔끔 지원하다가는 더 큰 손실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뱅크런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중앙은행이 '절도'를 요구하면서 보수적으로 대응하다가는 시장 참여자의 신뢰마저 잃어 더 큰 사회적 손실이 나타날 수 있다고 했다.

아울러 지금 시대는 중앙은행이 시중은행을 더 중요한 금융사로 여겨 1순위에 놓고 정책을 펴는 것도 한계가 있다고 봤다.

이 전직 한은맨은 "지금은 1,2 금융권 구분이 약해졌다. 섀도우 뱅킹도 엄청나게 커지지 않았는가. 금융 시스템 안정 차원에서 은행/비은행으로 구분지어 대응하는 게 효율적이지도 않다. 담보채권 범위 등을 확보해 주는 것도 신속, 대규모로 자금을 지원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로 봐야 한다. 일본은 대출채권을 넘어 주식까지 해주지 않는가"라고 말했다.

각종 글로벌 위기를 거치면서 한은 내부에서도 중앙은행의 역할 변화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동시의 중앙은행의 통 큰 위기 지원 매뉴얼을 금융사들이 악용할 수 있게 해선 안된다는 지적도 보인다.

한은의 한 현직 간부는 "코로나 이후로 중앙은행의 역할에 대한 논의가 예전과는 상당히 달라지고 있는 게 글로벌 추세"라고 말했다.

이번 대출제도 개편과 관련해선 "장치를 만들 때 합리적으로, 그리고 좀더 촘촘하게 할 필요도 있다"면서 "아울러 발동, 집행 요건을 어떻게 설정하느냐 역시 중요한 주제"라고 덧붙였다.

[장태민의 채권포커스] 한은 대출제도 대폭 손질...모럴해저드보다 위기대응태세 완비가 미덕인 시대이미지 확대보기

[장태민의 채권포커스] 한은 대출제도 대폭 손질...모럴해저드보다 위기대응태세 완비가 미덕인 시대이미지 확대보기


[장태민의 채권포커스] 한은 대출제도 대폭 손질...모럴해저드보다 위기대응태세 완비가 미덕인 시대이미지 확대보기


[장태민의 채권포커스] 한은 대출제도 대폭 손질...모럴해저드보다 위기대응태세 완비가 미덕인 시대이미지 확대보기


[장태민의 채권포커스] 한은 대출제도 대폭 손질...모럴해저드보다 위기대응태세 완비가 미덕인 시대이미지 확대보기


[장태민의 채권포커스] 한은 대출제도 대폭 손질...모럴해저드보다 위기대응태세 완비가 미덕인 시대이미지 확대보기


[장태민의 채권포커스] 한은 대출제도 대폭 손질...모럴해저드보다 위기대응태세 완비가 미덕인 시대이미지 확대보기


[장태민의 채권포커스] 한은 대출제도 대폭 손질...모럴해저드보다 위기대응태세 완비가 미덕인 시대이미지 확대보기


[장태민의 채권포커스] 한은 대출제도 대폭 손질...모럴해저드보다 위기대응태세 완비가 미덕인 시대이미지 확대보기


[장태민의 채권포커스] 한은 대출제도 대폭 손질...모럴해저드보다 위기대응태세 완비가 미덕인 시대이미지 확대보기


[장태민의 채권포커스] 한은 대출제도 대폭 손질...모럴해저드보다 위기대응태세 완비가 미덕인 시대이미지 확대보기


[장태민의 채권포커스] 한은 대출제도 대폭 손질...모럴해저드보다 위기대응태세 완비가 미덕인 시대이미지 확대보기


[장태민의 채권포커스] 한은 대출제도 대폭 손질...모럴해저드보다 위기대응태세 완비가 미덕인 시대이미지 확대보기


[장태민의 채권포커스] 한은 대출제도 대폭 손질...모럴해저드보다 위기대응태세 완비가 미덕인 시대이미지 확대보기


자료: 한은

자료: 한은

이미지 확대보기


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

< 저작권자 ⓒ 뉴스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로그인 후 작성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