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 2024-05-16 (목)

[장태민의 채권포커스] 미국의 부채한도를 둘러싼 치킨게임

  • 입력 2023-05-10 13:26
  •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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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출처: 백악관

사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출처: 백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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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콤 장태민 기자]
미국 정부는 지난 1939년 부채한도 제도를 도입했다.

이후 미국 정부는 지출 삭감이 아닌 부채 한도를 늘리거나 유예기간을 활용해 채무불이행 위기를 넘기곤 했다.

하지만 정부(여당)와 야당 간 국가부채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빚어지는 때가 적지 않았다.

최근 미국 정부와 야당의 갈등 사례를 보면, 2021년 12월에도 미국의 디폴트 문제가 대두된 바 있다. 당시엔 부채 한도를 28.9조달러에서 현재 한도인 31.4조 달러로 상향조정하면서 위기를 넘겼다.

■ 부채한도와 X-date

미국 재무부는 연준에 예치된 일반계정 자금을 사용한 뒤 이 자금이 소진되면 비상조치(Extraordinary Measures)를 통해 자금을 조달한다.

특별 조치 기간에는 주요 3개의 기금(정부 저축계정 투자 기금, 외환안정기금, 공무원 퇴직·장애인 연금) 재원을 사용한다. 이 기금들에 재투자를 중단하거나 기금 재원을 쓰는 것이다. 비상조치 재원이 고갈되는 시점이 X 데이다. 이날 후에는 정부는 지출을 할 수 없게 된다.

올해는 연초부터 이 문제가 미국 정가를 긴장시켰다.

옐런 재무장관은 1월 10일 미국 정부 부채가 31조 달러를 넘어서면서 부채한도(31.4조달러)를 위협하자 13일 케빈 매카시 하원 의장에게 서한을 보내 "19일부터 정부 부채 잔액이 법정 한도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한도 확대 필요성을 거론했다.

이후 1월 19일 정부 부채가 법정한도에 도달하자 재무부는 주요기금 재투자 중단 등 비상조치를 시행했다.

부채한도는 재정건전성 유지를 위해 정부가 빌릴 수 있는 돈의 상한선을 제한한 것이다. 의회에서 이 한도를 결정한다.

하지만 공화당 강경파들은 정부가 한도를 늘리려면 '지출을 삭감하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케빈 매카시 공화당 의원은 재량지출 규모를 22년 회계연도 수준으로 동결하겠다면서 하원 의장에 선출된 인물이다. 같은 당의 칩 로이 의원은 매카시가 민주당과 타협할 경우 해임안을 제출하겠다면서 결의를 다지기도 했다.

하지만 과거 경험을 감안할 때 '갈등을 이어가다가 결국은 해결될 것'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치킨게임을 벌이지만 결국 한도가 확대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던 것이다.

다만 공화당 내 강경파들의 입지 등을 감안할 때 지난 2011년 미국 신용등급 강등 사태처럼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금융시장에 변동성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이어졌다.

■ 이미 4월에 최고치 경신하는 모습 보인 CDS 프리미엄...금융혼란 불구 정치권 입장은 팽팽

미국 1년 CDS 프리미엄은 연초 16bp 수준이었으나 4월 13일 96bp로 급등하면서 최고치를 경신하는 모습을 보였다.

부채한도 문제는 단기 금융시장에 혼란을 초래하고 경기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이슈다.

때 마침 3월에 SVB 사태가 터지고 자금이 MMF로 대거 몰려 들어 수급을 왜곡시켰다. 정부가 T-bill을 제대로 발행하기 힘들면 MMF 자금은 역레포로 몰리면서 은행 지준을 감소시킬 수 있었다.

공화당은 부채한도를 상향하려면 정부는 지출을 삭감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고 있지만 미국 정부 입장도 강경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조건없이(no strings attached) 부채한도 상향을 진행해야 한다고 했다. 동시에 재정개혁 문제는 별도로 논의해야 하는 주제라는 입장도 유지했다.

결국 시간이 흐르면서 재무부가 연준에 예치한 현금계좌인 TGA(Treasury General Account) 잔고는 지속적으로 줄었다. TGA 고갈은 재무부가 사용 가능한 예산을 모두 소진했음을 의미한다. 이제 정부의 지출 능력이 사라지는 X-Date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 2011년 기억의 소환

미국 부채한도 문제가 해결의 실마리를 못 찾자 시장에선 2011년의 기억을 소환하는 일도 많아졌다.

지금이 2011년 사태 때와 닮았다는 평가들도 나오는 것이다.

당시에도 연초부터 정부(민주당)와 의회를 장악한 공화당간의 대치가 지속됐다.

상황이 해결의 실마를 찾지 못하자 신평사 S&P는 7월 14일 미국 국가신용등급에 대해 ‘강등 검토’를 발표했다.

신용평가사가 세계 최강국 미국의 등급을 내릴 수 있다고 발표한 것도 놀라운 일이었다. 결국 당시 X-Date인 8월 2일 이틀 전인 7월 31일에 극적인 합의가 이뤄졌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S&P는 협상 타결에도 불구하고 8월 5일 미국 국가신용등급 강등(AAA→AA+)했다. 금융시장은 큰 변동성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당시 1년 CDS 프리미엄은 7월 27일 80bp로 치솟았다가 협상 타결 후인 8월 1일엔 40bp로 급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올해 들어선 단기물 CDS가 2011년 위기 당시 수준을 훌쩍 넘어서는 모습을 보이면서 상황이 만만치 않다는 점을 알렸다.

2011년엔 저금리 속에 QE가 진행되던 때였다. 지금은 연준이 통화긴축(금리인상, QT)을 이어가고 있는 시기다.

유동성 환경이 저금리, QE 시절보다 좋지 않아 금융시장 불안이 만만치 않을 수 있다.

■ 커진 우려...그러나 치킨게임 묘미는 절벽으로 떨어지기 전 타결

지난 4월 24일 미국 채권시장에선 부채한도 상향 이슈에 대한 우려로 1개월물 국채금리가 15bp 뛴 3.41%로 상승하는 일이 벌어졌다.

또 4월 정부세수 등이 예상에 못 미쳐 당초 7~9월로 예상됐던 채무불이행 시기가 6월 초로 당겨질 수 있다는 우려마저 부상했다.

공화당은 부채한도를 내년 3월까지 1.5조 달러 증액해 줄테니 예산을 1300억달러 삭감하라고 종용하기도 했다. 백악관은 이런 제안을 반대했다.

옐런 재무장관은 X-date가 6월초가 될 수 있면서 정치적 타결을 종용했다.

이처럼 부채협상 관련해 위기감이 커졌지만 낙관론자들은 '경험'을 근거로 결국 문제는 해결될 것으로 본다.

예컨대 미국의 부채한도 도달은 1960년 이후 78번이나 반복된 이슈인 데다 결국은 타협점을 찾았다는 점을 중시하는 것이다.

■ 9일 협상서 이견 확인...12일 다시 논의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의회 지도부는 9일 부채한도 상향을 위한 협상을 벌였지만 큰 진전은 이루지 못했다.

옐런 재무장관이 이르면 6월 1일 디폴트를 맞을 수 있다고 경고했지만, 바이든 대통령과 케빈 매카시 하원 의장의 주장은 평행선을 달렸다.

매카시는 "새로운 게 없었다"면서 실망감을 표현했다. 민주-공화 양당은 이번 주 실무진 회의를 갖고 12일에 다시 만나 협상을 이어가기로 했다.

양쪽 의견이 맞서다 보니 3개월짜리 임시유예안이 나올 가능성이 거론되기도 했다. 하지만 정치권과 정부는 일단 이 아이디어에 대해선 부정적이다.

치킨게임의 승리는 사고가 발생하기 직전까지 강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에게 돌아간다.

바이든 대통령은 9일 "매카시 의원의 예산삭감 요구는 미국 국민들에게 해를 입힐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은 주변의 우려를 의식해 "디폴트 위험은 더 이상 고려되선 안 된다. 미국이 디폴트에 빠지지 않는다는 것을 절대적으로 확신한다"는 발언도 했다.

단기적으로 부채 상한은 높이는 것을 배제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 유명인들의 훈수와 금융시장의 상황 확인 의지

부채 한도와 관련해 정치권이 갈등을 이어가자 각종 주장이나 조언들도 난무하고 있다.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정쟁 도구로 이용되는 미국 부채 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강경 주장까지 펼쳤다.

크루그먼은 "미국이 실제로 디폴트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극단주의자들이 부채한도를 무기화해서 정쟁에 이용하고 있다. 그래서 부채한도는 폐지돼야 한다"고 말했다.

SVB 사태 이후 은행대출태도지수가 강화되는 등 유동성 환경이 더욱 어려워져 경제 약화 가능성도 커졌다.

금융 투자자들은 CPI 경계감, 신용환경에 대한 우려 속에 정부 부채한도 문제까지 불확실 요인으로 작용하니 섣불리 방향성을 자신하지 못하고 있다.

국내 투자자들도 미국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아울러 부채 문제와 관련해 한국 역시 상황이 미국과 전혀 다른 것은 아니라는 평가도 보인다.

증권사의 한 채권딜러는 "일단 국내 채권시장도 미국 CPI에 이어 부채한도 협상 불확실성 때문에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의 부채 문제가 있지만 우리도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세수 부족에 따른 추경 편성 이슈, 그리고 이에 따른 적자국채 발행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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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부채한도협상 관련 바이든 대통령 기자회견, 출처: 백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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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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