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 2024-05-16 (목)

(장태민 칼럼) 도비시한 자이언트스텝과 호키시한 긴축속도조절

  • 입력 2022-11-04 15:08
  •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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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영란은행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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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콤 장태민 기자]
지난해부터 거듭된 중앙은행들의 물가 예측 실패, 그리고 각종 커뮤니케이션 실수 속에 각국 금리인상 사이클은 후반부를 맞았다. 각국 통화당국 수장들은 다시금 의사소통 기법을 가다듬고 있다.

시장에선 최근 통화정책가들의 발언에 대해 '호키시한 긴축 속도조절', '도비시한 자이언트 스텝' 등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국내외에서 사람들은 높아진 금리 수준에 불만을 토해내고 각종 신용 사건이 일어날 수 있다는 위기감도 엿보인다. 경기 둔화나 침체도 한층 가까이 다가왔다.

이런 상황에서 중앙은행은 절묘한, 그러나 부자연스러운 언어 조합을 통해 기대 인플레 통제를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 기대감 키우다가 차단해 버리기

11월 FOMC에서 파월 연준 의장은 "누적된 긴축효과와 경제적 영향, 정책 파급시차를 고려하겠다. 인상폭 조절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그 시기는 빠르면 12월 FOMC 회의가 될 수 있고 아니면 그 이후 회의가 될 수도 있다"면서 긴축 속도조절을 공언했다.

하지만 파월은 결국 '긴축 속도조절' 보다 시장의 피벗 기대감 등을 차단하는 데 더욱 주력하고 있다는 점을 알렸다.

그는 "지난번 FOMC 회의 이후 나온 경제지표들은 최종적인 기준금리 수준이 기존 전망치보다 높아질 것임을 시사한다. 최종금리는 예상보다 높아질 것이며, 금리인상 중단 언급은 시기상조로 보인다"고 했다.

금리 수준은 시장 예상보다 더 높아질 수 있으며, 그리고 금리가 높아진 채로 상당기간 유지할 수 있다는 뜻을 비쳤다.

시장에선 파월의 '말장난'에 '좋다, 말았다'는 식의 반응도 많았다.

연준의 긴축 속도조절론에 채권이나 주식 가격이 급등하다가 파월의 '기준금리는 예상보다 더 높이 올리갈 것'이라는 발언에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 했다.

■ 파월의 '다시' 말로 시장 기대감 조정하기

파월 의장은 긴축 속도조절만 거론해선 정책 효과를 거두는 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 듯했다.

향후 50bp, 25bp 이런 식으로 인상강도를 줄인다고만 하면 시장이 다시 흥분할 수 있는 데다 물가를 잡기가 버거워지기 때문이다.

결국 파월은 '예상보다 더 높은 기준금리의 지속'이란 발언을 통해 긴축 상태의 유지를 원했다. 통화당국자들은 시장의 기대감을 활용해 실제 금리를 조정하지 않으면서 긴축, 혹은 완화 효과를 배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 낮은 금리나 제로 금리를 장기간 유지할 것이란 포워드 가이던스를 통해 시장을 더욱 완화적으로 만들었던 것처럼, 이번엔 금리가 더 높아질 것이란 위협을 통해 시장의 군기가 풀리지 않길 원했다.

말을 통해서 금리 인상, 인하 효과를 낼 수 있다면 나중에 인상, 인하가 필요할 때 중앙은행의 행동 반경이 넓어지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실제 금리 인상 여부와 관계없이 계속 금리 올린다고 위협해 기대 인플레 등을 낮출 수 있다면 이는 비용을 덜 들이면서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는 방법이다.

하지만 최근 연준 등 각국 중앙은행들의 물가와 경기 예측 실패, 그리고 스탠스(발언) 번복 등이 이어지면서 인플레 기대감은 제대로 통제되지 않았다. 잘못된 포워드 가이던스를 반복하면 정책 비용이 더 들어갈 수도 있는 것이다.

■ 혼란한 영국은...자이언트 스텝 밟으면서 도비시한 면모 과시하기

영란은행(BOE)은 3일 예상대로 기준금리를 75bp 인상해 3%로 상향 조정했다.

인상폭 75bp는 BOE가 최근 30년래 기준금리를 인상한 폭 가운데 가장 높은 것이다. 영국 기준금리는 2008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까지 올라섰다.

영란은행은 성명서에서 "인플레이션을 2% 수준까지 낮추기 위해서 훨씬 더 많은 추가 금리 인상이 필요하지는 않다. 왜냐하면 부분적으로 영국경제가 지속된 침체를 맞을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후 앤드류 베일리 총재는 "향후 기준금리 수준에 대해서 확실한 대답을 내놓기는 어렵지만, 현재 상황에서 보면 영국 기준금리는 금융시장이 현재 반영하는 수준보다는 낮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미래 정책금리에 대해 파월은 '예상보다 높아야 한다'고 했고, 베일리는 '예상보다 낮아야 한다'고 한 것이다.

영국은 침체 기간 예상을 지난 8월엔 7분기에서 이번엔 8분기로 보면서 물가 상승률 고점은 13%에서 10.9%로 하향 조정했다. 영국은 정상적인 경제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선, 경기가 망가져 물가가 낮아져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

이런 상황에서 베일리는 금리를 올릴 수 밖에 없지만, 침체 전망을 한껏 띄우면서 도비시한 스탠스를 과시했다.

베일리와 영란은행은 "기준금리가 시장 예상보다 낮다고 하면, 신규 고정금리 모기지 금리가 현재까지 오른 것 만큼 오를 필요가 없었다는 의미가 된다. 만약 금리를 5.25%까지 높이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 최장기간의 경기침체에 빠질 수 있다. 그런 후에 인플레이션은 3년의 시간을 두고서 제로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며, 이미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서 필요한 상당 수준의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고 했다.

영란은행은 기준금리 3% 수준에서도 5분기 동안 경기 침체가 불가피할 정도라고 공언한다. 일단 통화정책 이벤트로 인해 보다 강화된 경기 침체, 그리고 당분간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장기 국채 금리는 상대적으로 하향 안정화를 나타내야 한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10년 금리가 12bp 넘게 올라 3.5%대로 올랐다.

베일리 총재가 대략 시장이 보는 터미널 금리 4.75%는 과도한 수준이라는 언지를 줘 2년 금리가 4bp 정도 오른 3.1% 수준으로 제한적인 상승을 보였지만, 시장은 혼란스런 중앙은행의 커뮤니케이션 속에 나라살림(재정정책)까지 걱정하며 제대로 길을 못 찾고 있다.

■ 의욕 충만했던 이창용의 포워드 가이던스 실험

한국 통화당국은 내부 사정도 감안해야 하고 연준의 눈치도 봐야 한다. 11월 FOMC가 중요했던 만큼 그에 대한 논평도 내놓아야 했다.

국내시간 3일 새벽에 FOMC 결과가 나온 뒤 같은 날 아침 이성헌 한은 부총재는 회의를 열었다.

당시 회의에서 이 부총재는 "파월 의장이 최종금리 수준은 이전에 예상했던 것보다 높고 금리인상 중단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매우 시기상조(premature)이며, 과대긴축이 과소긴축보다 수정하기 쉽다고 발언한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부총재는 연준의 물가안정에 대한 강력한 의지가 재확인된 것이라고 했다.

파월 발언은 속도조절 보다 '예상보다' 높은 레벨에서 '예상보다' 오랜기간 긴축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는 쪽에 무게를 뒀으며, 한국 통화당국도 일단 미국의 매파적 입장을 접수했다.

한은은 대내 요인과 대외 요인 속에 정책방향을 놓고 갈등하고 있다. 한은 역사상 가장 글로벌화된 인물인 이창용 총재는 최근 여러차례 '말하기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이 총재는 취임 후 금통위의 생각을 시장에 투명하게 알리기 위해 포워드 가이던스를 제시하는 등 변화를 꾀했다. 하지만 이 실험이 총재에게 꽤나 당혹감을 선사한 듯 했다.

지난 7월 한은이 처음으로 금리를 50bp 인상한 날 총재는 향후 인상폭 25bp를 제시했다. 전략적 모호성을 통화정책의 미덕으로 삼아온 한은 입장에선 큰 변신을 한 것이다. 주변에선 국제인 총재의 '투명하고 직설적인 방향 제시'를 칭송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은이 10월에 다시 50bp를 올리게 되면서 총재는 기존 약속(포워드 가이던스)이 '조건부'였음을 여러차례 항변해야 했다. 총재는 자신의 한국 중앙은행의 변신 시도가 만만치 않다는 점을 깨달았을 것이다.

한국은 세계에서 대외 변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나라 중 하나다. 따라서 포워드 가이던스 대로 정책을 끌고 가는 게 애초부터 쉽지 않았다.

한은 총재 역시 이를 감안해 '조건부' 정책 가이던스를 제시한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터득한 복잡한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은 사안을 단순화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총재가 말한 '조건' 같은 건 따지지 않고 사람이 바뀌었다고 하자 총재는 꽤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 약 발라주며 때려야 하는 중앙은행

이번 주 미국과 영국 통화정책 수장들의 커뮤니케이션은 상당히 큰 주목을 끌었다.

금리 인상폭 둔화를 시사하면서 최종금리 전망 올리기(연준), 자이언트 스텝을 밟으면서 경기침체와 시장 예상보다 낮은 최종금리 언급하기(BOE)와 같은 언어의 조합으로 시장 기대감에 영향을 주려고 했다.

중앙은행들은 작년부터 최근까지 전망과 커뮤니케이션 실수를 거듭해 왔다. 하지만 과거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여전히 예상 만큼 물가가 잡히지 않는 가운데 경기 침체가 다가오자 중앙은행들은 다시 머리를 짜내면서 꽤 부자연스러운, 그래서 어쩌면 더 절묘해 보이는 말들을 하고 있다.

취임 후 포워드 가이던스 실험을 통해 심리적 타격을 입은 이창용 한은 총재의 10월 금통위 기자회견은 이전보다 자신감이 떨어져 보였다.

7월에 이어 두번째 빅스텝을 밟았지만 이젠 채권시장에 신용경색이 발생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물가도 도와주지 않아 근원 물가는 예상보다 더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소비자물가는 7월 6.3%를 찍은 뒤 8~10일 5.6~5.7%를 기록했다. 하지만 근원물가지수들은 7월 헤드라인 고점 당시보다 더 위태로워졌다. 농산물및석유류제외지수는 7월 헤드라인 고점 당시 4.5%에서 10월 4.8%로 올라왔으며, 식료품및에너지제외지수는 3.9%에서 4.2%로 상승했다.

다른 나라들처럼 물가 제어가 만만치 않은 가운데 한국은 경기둔화 흐름 속에 크레딧 크런치가 발생했다.

부동산PF 등에 대한 우려가 팽배한 가운데 신용채권 발행이 어려워지면서 자금 조달 여건도 나빠졌다. 투자자들은 투자자들 대로 여력이 없다.

결국 금융당국이 나서서 자의적으로 유동성 물꼬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채안펀드는 지난주부터 CP 매입을 시작한 뒤 이번주엔 여전채 매입을 개시했다. 증권금융은 RP 등을 통해 작은 증권사들에게 1조원의 돈을 공급했다. 산은은 회사채·CP 매입 프로그램을 가동해 이달 초부터 증권사 발행 CP도 매입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거대 은행지주의 회장들과 2주에 한번씩 간담회를 열어 95조원 규모의 자금지원 계획의 진행을 점검하기로 했다. 금융투자업계는 지난달 27일 발표한 증권업계 PF ABCP 매입프로그램을 다음 주부터 매입 신청을 받는 등 본격적으로 가동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아울러 증권사가 자신이 보증한 ABCP의 직접 매입을 허용해 위험값을 합리적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미 각 금융권에 대한 유동성 비율 규제를 늦춰서 문제부터 해결하자는 입장이다.

이런 금융시장과 금융당국의 공조 속에 중앙은행은 그들이 생각하는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시장 일각에선 미국 정책금리가 5% 이상으로 올라갈 수 있어 한국도 4% 정도는 각오해야 한다고 하고, 다른 쪽에선 부동산PF나 추가적인 크레딧 이벤트 불안이 잠재해 있는 상황에서 섣불리 미국을 따라가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또 일각에선 최소 내년 상반기까지 무역적자 지속이 예상되는 가운데 외환건전성, 자본유출입 문제에 대비해 미국과 거리를 좁혀야 한다고 하고, 다른 쪽에선 한국경제 체력상 기준금리 3.5%도 버거운 수준이라는 논리를 편다.

한국은행, 그리고 상당수 중앙은행들의 입장을 보고 있으면, 과거 학창시절 '상처에 연고를 발라주면서도 매질을 계속 하던' 선생님 한분이 생각난다. 물론 요즘엔 이러면 잡혀 간다.

아무튼 앞으로 한은은 상처에 약 발라주면서도 계속 때리는 이유를 설명해야 할 것이다. 상처가 덧나지 않을 정도로 때리면서 체벌의 논리를 가다듬어야 한다.

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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