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 2024-05-17 (금)

(장태민 칼럼) 역환율전쟁 시대에도 어김없는 "Beggar Thy Neighbor"

  • 입력 2022-10-20 14:08
  •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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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달러인덱스와 유로-달러 흐름, 출처: 코스콤 CHECK

자료: 달러인덱스와 유로-달러 흐름, 출처: 코스콤 CHE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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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콤 장태민 기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일본, 유럽 등 선진 경제권은 모두 양적완화를 단행했다. 각국 중앙은행들은 양적완화를 통해 시중에 돈을 공급하면서 자국의 화폐가치를 낮췄다.

자국 돈 가치를 떨어뜨려 수출경기 부양까지 노렸다. 이를 시중에선 통화전쟁, 혹은 환율전쟁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금융위기 이후 이같은 각국의 움직임은 내가 살기 위해선 이웃이 손해를 봐야 하는 게임으로 이해됐다.

당시 이를 두고 '네 이웃을 거지로 만들어라'(beggar thy neighbor)라는 말이 유행했을 정도였다.

■ 지금의 환율전쟁, 08년 금융위기 때의 환율전쟁과 뭐가 다른가

지금은 또 다른 의미의 환율전쟁이 이어지고 있다. 이번엔 반대 방향이다.

금융위기 이후엔 금리를 낮춰 자국 돈 가치를 떨어뜨리는 게임을 벌였던 미국이 이번엔 금리를 대폭 올리면서 자국 돈 가치 올리기에 나섰다.

예상치 못한 고물가 시대가 도래하면서 미국은 적극적으로 금리를 올리고 있다. 역사적으로 미국의 금리인상은 언제나 '대비를 못한' 이웃을 거지로 만들어온 전통을 갖고 있다.

따라서 다른 나라들은 국내 사정도 있지만, 이번에도 미국 금리인상에 당하지 않기 위해 따라서 금리를 올리고 있다.

세간에서 얘기하는 '역(逆)환율전쟁'(reverse currency war)은 인플레이션 시기에 경기 부양보다 물가 안정에 초점을 맞추면서 자국통화의 약세를 막는 정책 대응이다.

따라서 지금의 환율전쟁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각국이 금리인하와 양적완화 경쟁을 벌였던 것과는 반대 방향으로 작동한다.

환율이란 게 '상대방이 있는' 게임이다 보니 각국은 달러 가격 급등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위험에까지 노출될 수밖에 없다. 한국과 같은 나라가 대응하는 것을 당연했다.

이런 과정에서 나타나는 게 각국의 외환보유액 감소다. 한국을 포함한 주요 외환보유국들은 보유한 달러를 내다팔아 자국 돈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제어해왔다.

■ 역환율전쟁, 역사적으로 볼 때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올해 자산시장에서 가장 인기있는 투자 대상물 중 하나는 달러다. 그 만큼 올해 달러 강세는 돋보이는 것이다.

달러는 미국의 적극적인 금리인상, 다른 나라 대비 양호한 미국의 경기 상황, 위험자산 회피(안전자산 선호) 등을 바탕으로 강세 흐름을 이어왔다. 그리고 이번 강세는 역사적으로 볼 때도 두드러진다.

달러는 세계 경제가 약세를 보일 때, 심지어 미국이 자국 경제에 위험이 닥쳤을 때도 강세를 보일 때가 많다. 세계의 유일한(!) 기축통화 달러가 가진 운명이다. 그리고 이런 일은 새삼스럽지 않다.

2000년 전후부터의 달러 역사를 살펴보면 우선 1999년~2002년 글로벌 IT버블 시기에 달러인덱스는 93에서 121로 30% 급등한 바 있다. 2008년~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시기엔 71에서 90으로 뛰어 27% 상승했다.

2010년 남유럽 재정위기 때는 74에서 89로 15% 올랐다. 2014~2015년 중국 위기 때문에 79에서 100으로 27% 올랐다. 현재 상황이 포함된 2021~2022 미국발 긴축 위기 현재 30% 뛴 상태다. 그리고 지금은 상황은 아직 진행 중임을 감안할 때 이번 달러화 강세는 21세기의 가장 두드러진 사건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번엔 누구도 예상치 못한 큰폭의 인플레이션 속에 달러가 초강세를 보이고 있는 점이 특이점이다. 급기야 늘상 통화를 약세를 만들어 수출을 늘리고자 했던 아시아 국가들조차 달러 강세에 대해 대항하는 중이다.

특히 일본은 올해 9월 22일 외환시장에 대한 공식 개입을 발표했다. 이 발표가 얼마나 특이한 일이냐 하면, 무려 1990년 4월 이후 32년만에 처음있는 일이었다.

달러/엔이 150엔 근처로 치솟자 일본은 32년만에 첫 공식 개입을 밝혔다. 32년 전 엔화는 160엔까지 올라간 바 있다.

이런 모습은 환율을 통해 '인플레이션을 수출'하려는 미국의 공세에 대한 대응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 일본 등은 미국으로부터 인플레이션을 '수입'하지 않겠다고 버티는 것이다. 즉 수입 물가를 통해 반영되는 인플레이션에 맞서기 위한 행동인 것이다.

안 그래도 원자재값, 임금 등의 급등에 따라 물가가 골치인 상황에서 미국마저 우방국들의 돈 가치를 떨어뜨리려고 용을 쓰니, 대응할 수 밖에 없다.

■ 역환율전쟁, 금리 덜 올리려면 환시장 개입하라

환율은 곧 금리다. 각종 금융 교과서에서 환율을 각종 금리차로 설명한다. 이 얘기는 각국이 통화가치 하락을 막으면 금리를 덜 올려도 된다는 의미다.

지금 한국 금융시장이나 당국이 인지하는 내용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한국은행은 8월 정책금리의 빅스텝(50bp) 인상엔 환율 요인이 컸다고 했다. 환율 흐름을 제어할 수 있으면 그 만큼 금리를 덜 올릴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금리 인상을 통해 가계나 기업에 피해를 덜 주고 싶은 나라는 환율이라는 외부와 연계된 요인을 제어하면 된다.

그리고 변동성 자체는 경제에 해를 끼친다. 글로벌 하게는 MOVE로 대표되는 금리변동성을 CVIX, 즉 외환시장 변동성 제어를 통해 그나마 줄일 수 있다.

안 그래도 연준의 '엉터리' 경제, 물가 전망과 과격한 금리인상으로 금리 시장 변동성이 커진 상황에서 외환시장 변동성이라도 줄여 놓아야 했다.

환율 상승, 그리고 정책금리 차와 관련해 시장에서 자주 회자되는 문제가 자본유출이다. 돈들은 못 사는 나라 금리가 '상대적으로' 잘 사는 나라금리보다 낮아지면 퇴로를 궁리한다.

미국 금리 인상 때 중남미 국가들이 거지 신세가 된 역사적 사례는 이런 점을 잘 보여줬다. 미국 금리 인상에 맞춰 나타나는 위험징후가 급격한 환율 상승이다.

특정국의 환율 상승(그 나라 통화가치 하락)이 나타나면 미국 돈들은 미리 빠져 나가면서 환손실을 줄여야 한다. 통화 약세폭이 큰 나라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빠져나가는 것은 당연한다. 올해 한국 주식시장에서 외국인들이 빠져나간 것을 감안하면 된다.

그러면 외환당국, 금융당국은 뭘 해야 할까. 달러 강세가 일어날 때면 당국이라는 공무원들은 사람들의 불안한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한은이나 기재부 등에서 얘기하는 '한국의 외환건전성, 재정건전성은 과거와 달리 양호하다'는 점을 어필해야 한다. 비록 이 부분이 사실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의 불안한 심리에 더욱 불을 지펴서는 안 되는 것이다.

■ 환율전쟁 때처럼 역환율전쟁 때도 공조는 어렵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각국 중앙은행 총재 회의, G20 회의 때마다 나오던 말이 '공조 강화'였다.

하지만 당시 각국은 입으로는 '공조 강화'를 떠들었으나 행동으로는 '너를 거지로 만들고 말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지금의 역환율전쟁 시기 역시 비슷하다.

만약 미국이 통화정책 등을 펴면서 마음씨 좋은 척하면서 다른 나라의 사정을 살핀다면, 이는 다른 나라 사정이 애처러워서 그런게 아니라 다른 나라 사정이 미국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일 것이다.

예컨대 극단적인 스토리로 한국은행 등 미국채권을 많이 들고 있는 곳에서 미국발 환율 악영향 제어를 위해를 미국채 동시 매도를 통해 대응한다면 미국은 비이성적으로 급등하는 금리 제어를 위해 몸가짐을 바로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미국도 이런 사정을 알고 있다 보니, 최근엔 다른 나라의 환 시장 개입에 대해 용인하는 모습을 보인다. 미국도 저들이 생존을 위해 저러는 것을 알기 때문에 봐 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여전한 달러 패권, 나머지 국가들은 '성의 보이되' 각자 판단해야

글로벌 인플레이션 시대가 열린 뒤 미국의 금리인상은 각국 사정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한국과 같은 나라는 미국의 행태를 기본적으로는 쫓아가줘야 한다. 다만 정도가 문제다. 미국이 너무 빨리 달리면 최소한 뛰는 척이라고 해야 하기 때문에 힘이 든다.

경제 체력으로 보면 걸어가야 하는 사람들이 달리기 시작하면 그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다.

미국이 75bp를 올리니 한국이 50bp라도 올려 성의를 보이는 과정에서 내부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최근 미국 금리 급등에 따른 한국 금융시장 불안, PF 시장에 대한 우려, 각종 투자자산·보유자산들의 이자비용 감당 문제 등이 발생했다.

금통위는 미국의 긴축에 따라 한국은 얼마나 성의를 보여하는지를 놓고 고민 중이다. 일부는 25 정도만 쓰자고 하고, 일부는 50은 써야 한다고 한다.

글로벌 고물가, 그리고 역환율전쟁 시대에 겪어야 하는 우리의 우울한 자화상이다.

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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