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 2024-05-16 (목)

(장태민 칼럼) 환율 1400원과 '킹달러' 시대 위기의 기억

  • 입력 2022-09-16 15:32
  •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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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콤 장태민 기자] 전일 장중 달러/원이 1,400원으로 바짝 붙으면서 올라오면서 사람들 사이에 걱정이 하나 더 늘어났다.

평소 환율에 관심 없던 사람들도 환율이 크게 올라온 뒤 위기가 찾아왔던 기억이나 사회 분위기에 휩쓸려(?) 우려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지금은 과도하게 우려를 할 필요도 없으나 그렇다고 안일하게 '재정건전성 좋다'는 말만 되풀이할 상황도 못 된다.

'킹달러'에 따라 주요국 통화가 대부분 달러에 대해 약세를 보이는 만큼 달러/원 상승(원화 약세)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하지만 국내는 최근 무역수지가 역대 가장 큰 폭의 적자를 기록한 데다 경기 둔화 악화 우려도 만만치 않아 긴장을 풀 수는 없다.

최근 달러/원이 거칠게 뛰고 1,400원선을 압박해 가자 외환당국은 개입을 통해 일단 레벨을 낮추기도 했다.

■ 1,400원 앞두고

전날 달러/원은 2.6원 오른 1,393.7원을 기록해 2009년 3월 20일(1,411.5원) 이후 13년 6개월만에 최고치를 작성했다.

장중엔 1,397.9원까지 급등해 결국 외환당국의 개입을 불렀다.

최근 외환당국은 "환율 오름세가 빠르다. 쏠림 가능성을 경계하면서 면밀히 보고 있다"는 입장을 몇 차례 밝히면서 곧 개입이 있을 것임을 시사한 바 있다.

결국 환율이 1,400원에 다가서자 일단 실탄을 쏟아부었다. 1,400원선을 향해 기세 좋게 오르던 환율은 개입으로 인해 장중 속락했다.

오후 1시를 약간 넘은 시간 환율은 급전직하하면서 1,390원선 근처로 급락했다. 하지만 1,390원 근처로 레벨이 내려오자 달러 저가매수세가 붙어 환율을 재차 끌어올렸다.

당국이 '빅피겨' 앞에서 경고와 함께 물리적 대응에 나섰으나, 저가매수를 통해 투자자들의 달러 독주라는 큰 흐름에 대한 믿음을 읽을 수 있었다.

쉼 없이 이어지고 있는 글로벌 달러 강세 흐름이 지나치다는 지적들도 나오고 있으나 강달러 흐름이 계속되는 한 국내 외환당국이 이를 제어하기는 쉽지 않다.

외환딜러들 사이엔 강달러에 대한 믿음이 건재하다.

채권 매니저들은 환율 고공행진에 따른 물가 압력과 자본 이탈 가능성 등 악재 요인을 감안하면서 긴장한다.

주식 플레이어들은 환율이 더 오를 수 있어 투자 재미를 보기 어렵다면서 지쳐가고 있다.

인플레와 분투 중인 미국이 다른 나라에 비해 강도 높은 금리 인상을 지속하는 이상 달러는 더 강해질 수 있다.

달러 독주의 시대라고 하지만, 지금은 '정도가 심하다'는 평가도 보인다.

하지만 미국은 유럽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견조한 경제 기초체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2군 통화에 불과한 원화는 유로화, 위안화 등 상대적으로 침체 가능성이 높거나 금리를 올릴 형편이 못 되는 나라의 통화들과 어울려야 하는 실정이다.

전날 당국의 개입으로 장중 레벨을 크게 낮췄던 달러/원은 이날 다시 오르고 있다.

뉴욕 NDF 시장에서 달러/원 1개월물은 1,397.20원에 최종 호가된 영향이었다. 최근 달러/원 1개월물 스왑포인트가 -1.20원인 점을 감안하면 NDF 달러/원 1개월물 환율은 전 거래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거래된 현물환 종가(1,393.70원)보다 4.70원 상승했다.

다만 빅피겨 앞둔 심리, 실개입을 통해 위세를 보여준 외환당국의 움직임 등을 감안할 때 추가적인 재료 없이 1,400원이 단번에 열리기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전날 외환당국의 실탄을 맞아본 탓에 달러/원은 이날 재상승을 시도하다가 후퇴하는 모습을 보였다.

다음주 FOMC에 대한 경계감과 외환당국 개입 위협 사이에서 당장 한방향으로 치고 나가긴 어렵다.

■ 높아진 환율...위기 과장할 필요는 없다

환율 고공행진을 두고 '별 것 아니다'라는 시각과 '위기가 다가 오는 중이다'라는 두 가지 관점이 중첩돼 있다.

기본적으로 달러/원 상승은 미국의 거친 금리 인상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엔화, 유로화, 위안화 등 미국 밖의 돈들은 모두 달러에 고개를 숙이고 있다.

원화라고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1,400원이란 레벨을 놓고 상황을 과장할 필요도 없다.

코로나 사태에 따른 무지막지한 유동성 공급에 따라 글로벌 경기가 좋아지자 90을 밑돌 던 달러지수는 이달 들어선 110선을 향해 올라왔다.

각종 통화의 세계에서 진정한 안전자산은 달러뿐이다. 연준의 금리 인상과 함께 다른 나라의 침체나 위기 가능성이 대두될 때 달러는 더욱 힘을 받는다.

달러는 코로나 사태 후 저점에 비해 20% 넘는 강세를 보이며 모든 통화를 부하로 거느리는 킹(King)이 됐다.

달러가 강력한 킹이 된 데는 연준의 금리인상 강도가 주요국 대비 압도적이라는 점, 유럽의 에너지 위기나 글로벌 경기의 위축(미국 경기의 상대적 우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미국은 미중 패권 전쟁을 치르는 중이지만, 자체적으로 경제를 돌릴 수 있는 세계 최강의 부국이다. 아시아와 유럽은 상당부분 미국의 소비에 의존하고 있다. 우리처럼 제조업 수출 비중이 높은 나라는 제조업이 위축되면 더욱 어려움을 겪는다.

특히 지금은 에너지 문제도 강달러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시아 존과 유럽 지역은 에너지를 사다가 쓰고 있으며, 이런 세계의 일원인 나라의 통화인 원화가 기를 펴기는 쉽지 않다. 반면 미국은 2019년부터 원유 순수출국이 됐으며, 가스는 수입하는 물량이 거의 없다.

지금의 달러/원 급등은 이런 여건을 감안할 때 자연스러운 측면이 있다. 지금의 높아진 환율 레벨만 보고 마치 큰 일이 날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건 설득력이 떨어진다.

아울러 외환 부문의 재정건전성이나 위기 대비 태세 역시 과거 위기 때와는 차원이 다르다.

윤석열 대통령도 15일 아침 출근길에서 "경상수지라든지 외환보유고, 대외적 재무 건전성은 아직 국민이 걱정할 수준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대통령을 둘러싼 경제·금융 참모들의 현 상황에 대한 진단이 이 말 속에 녹아 있을 것이다. 아울러 이런 판단은 금융시장 등과 크게 차이 나지도 않는다.

■ 강 달러와 위기의 사례들

하지만 미국의 긴축은 무섭다. 미국의 강도높은 통화긴축이 여러 죄없는(?) 나라들의 경제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린 적이 한 두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한금융투자의 하건형 연구원이 정리한 보고서 내용을 보면 1980년대 이후 강달러 구간은 5차례가 있었다.

하 연구원은 강달러 구간을 전년대비 상승률이 평균대비 1 표준편차(상위 33% 값)를 기준으로 정의해, 절대 레벨보다 상승 속도를 통해 구분해 정리했다. 금융 불안은 달러화 레벨이 높은 데에서 비롯되기보다 급격한 변화에서 생성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렇게 접근해 5번의 강달러 시기를 발라냈다.

하 연구원은 5차례 구간을 ① 1981년~1985년 ② 1996년~2001년 ③ 2008년~2009년 ④ 2014~2015년 ⑤ 2022년 4월 이후로 분류했다. 지금은 ⑤의 시대다. 그가 정리한 강 달러 역사 속으로 좀더 들어가보자.

◇ 1차 강 달러의 시대

이 시기는 연준의 금리 인상과 맞물려 진행됐다. 1979년 8월 취임한 폴 볼커 전 연준 의장은 취임과 동시에 1979년 8월과 9월 연방기금목표금리를 50bp씩 올렸다. 그 해 10월에는 통화정책 목표를 연방기금금리가 아닌 M1(협의통화) 증가율로 바꿨으며 동시에 재할인율을 12%로 100bp 인상했다. 연방기금금리는 볼커 취임 전 10.5%에서 1981년 7월 20% 이상 급등했다.

1981년 하반기부터 물가가 안정되며 연준의 긴축 기조도 누그러졌다. 하지만 달러는 그렇지 않았다. 1979년 8월 80pt에서 등락하던 명목달러지수는 1981년부터 상승폭을 확대해 1985년 120pt를 상회해 6년 동안 50% 가까이 상승했다.

강 달러 시대는 그 유명한 1985년 9월 플라자합의를 통해 달러화 가치의 인위적 절하가 이뤄지고 나서야 종식됐다.

◇ 2차 강 달러 시대

2차 강 달러 시대는 플라자합의 10년 뒤에 나타났다. 발단은 1995년 4월 역플라자합의였다.

미국 클린턴 행정부의 로버트 루빈 전 재무장관은 강한 달러가 미국 경제 및 금융시장에 이롭다고 판단했다. 루빈의 이런 판단엔 약 달러에도 제조업 경쟁력이 약화되며 미국 경상수지 개선이 미미한 점이 한 몫 했다.

루빈은 당시 달러화 강세 국면에서 미국 금융시장으로 자금 유입이 신산업 육성을 뒷받침하며 가계 구매력을 개선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본과 이해 관계도 맞아 떨어졌다. 당시 일본은 1995년 1월 발생한 고베 지진으로 보험사들이 보험금 지급을 위해 해외투자를 회수해야하는 상황이었다. 금리가 낮은 엔화를 빌려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국가에 투자했던 ‘엔캐리 트레이드’ 자금이 청산까지 맞물리며 달러/엔 환율은 80엔 내외로 하락했다.

이에 G7 경제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 엔저를 유도하기로 합의했다. 역플라자합의 이후 강 달러에 따른 자금 유입으로 미국경제는 안정적 성장세를 이어갔다. 특히 IT 산업을 중심으로 버블이 형성되며 미국 경제 및 금융시장은 여타 국가대비 상대 우위가 지속돼 강 달러가 지속됐다.

이러한 강 달러는 2001년 미국의 IT 버블 붕괴와 연준의 금리 인하와 함께 종료됐다.

◇ 3차 강 달러 시대

3차 강 달러는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사태로 촉발된 금융위기가 안전자산 선호를 동반하며 발생됐다.

미국 금융기관의 부실화로 시작된 위기지만 기축통화라는 경제적 위상에 각국 금융기관은 달러 유동성 경색에 직면했다.

상대적으로 3차 강 달러 기간은 1년도 되지 않을 만큼 짧았으며 최대 상승폭도 20%를 하회하는 등 강세가 제한됐다. 해외 시장에서 빠져나간 유동성이 미국으로 되돌아오지 못했다.

여기에 미 연준이 2008년 12월 양적완화를 공식적으로 도입해 2009년 3월부터 국채 매입에 나선 것이 약 달러 전환점으로 작용했다.

◇ 4차 강 달러 시대

4차 강 달러는 2014년 하반기부터 2016년 초반까지 나타났다. 중국의 4조위안 재정부양책에 따른 공급 과잉 후유증으로 세계 제조업 경기 부진이 장기화됐다.

여기에 미국은 테이퍼링과 기준금리 인상 예고 등 통화정책 출구 전략을 모색한 반면 유로존과 일본은 추가 통화완화를 이어가는 등 선진국 간 통화정책 차별화가 강 달러 압력을 조장했다.

이러한 강 달러는 2015년 12월 미국이 금리 인상 이후 확대된 경기 하강 압력으로 추가 금리 인상을 1년 동안 미루면서 주춤해졌다. 여기에 중국의 공급 측 개혁으로 공급 과잉이 일부 완화되면서 제조업 경기가 살아나면서 달러화 가치 하락 전환을 뒷받침했다.

■ 강 달러, 어쩔 수 없다고만 치부하기 어려운 이유..."약한 고리는 늘 끊어졌다"

강 달러는 언제나 금융시장에 커다란 불안감을 선사했다. 특히 외환·재정 건전성이 좋지 않은 나라들은 늘 피해를 입곤 했다.

1980년 이후 1차 강 달러 시기엔 중남미 외채위기가 발생했다. 중남미 국가는 1961~1980년대까지 연평균 6.2% 성장하며 고성장세를 구가했으며, 미국 금리인상으로 쑥대밭이 됐다.

당시 중남미 국가는 해외차입 확대를 통한 성장정책을 추진해 경제규모에 비해 대외채무가 급증한 상태였다.

하건형 연구원은 "당시 중남미 전체로는 외채/명목GNP 비율이 34.1%에 달했다"며 "중심국으로 분류된 브라질, 멕시코, 아르헨티나 모두 외채/명목GNP 비율이 30%를 상회했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통화 긴축으로 금융기관 단기 차입금리인 리보 6개월 금리가 1970년대 중반 6%에서 1981년 17% 내외로 3배 가까이 상승해 차입 비용이 급증했다. 재정건전성 우려 속에 자본 유출까지 가중됐다.

이 때 중남미 정부들은 고정환율제를 포기하고 환율을 대폭 절하해 대외채무의 지급유예를 선언했다.

2차 강 달러 시기엔 한국도 최대 피해자 중의 하나가 됐다.

현대 한국 역사상 최악의 위기였던 'IMF 사태'가 이 때 일어난 것이다. 2차 강 달러 시기엔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외환위기가 전개됐다.

1980년대 중남미 국가의 외채위기가 국가의 재정건전성에서 비롯됐다면 1990년대 동아시아 외환위기는 금융기관과 기업의 단기외채 차입이 문제였다.

태국을 비롯해 말레이시아, 한국 등 주요 동아시아 국가는 자본자유화 조치를 확대해 외환시장 이동을 용이하게 했다.

하 연구원은 "동아시아 외환위기가 발생하기 직전 1990년부터 1996년까지 신흥시장지역으로 유입된 세계 민간자금 순유입액(순직접투자, 순포트폴리오투자, 기타 순투자액합한 규모)은 1조549억달러에 달했다. 이 중 아시아(4,218억달러), 남미(3,107억달러로)가 대부분을 차지했다"고 소개했다.

결국 해외로부터 유입된 자금이 경기과열을 초래해 불행의 싹을 키웠다는 것이다. 당시 한국 등에선 자국 통화가치가 상승하고 경기 과열로 수입이 급증하며 경상수지 악화도 동반됐다.

결국 악화된 경상수지로 인해 펀더멘탈 훼손 우려가 고조됐으며, 자본자유화에 따라 유입된 자본이 유출되면서 한국, 태국 등을 그로기로 몰았다.

3차 강 달러는 흔히 '글로벌 금융위기' 시기와 맞물리며, 비교적 평온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국내에서도 '한국도 해방 이후 최대 경제를 맞았다'는 식의 얘기가 많았지만, IMF 사태와 비교하면 찻잔 속 태풍에 불과했다.

아무튼 이 때는 미국발 금융위기로 달러 유동성이 경색된 시기였다. 해외 차입 여건이 악화되며 차입비용이 급증했다.

하지만 한국 등 외환위기를 경험한 신흥국이 2000년대 경상흑자를 기반으로 외환보유고를 축적해 자본 유출에 대비했다. 상대적으로 외채 비율이 1980~1990년대에 비해 낮았던 것이다.

여기에 미국을 비롯한 유럽, 일본 등 중앙은행이 동시에 기준금리를 인하하고 구제금융을 집행하는 등 정책공조를 펼쳐 특정 국가의 외환위기 등으로 확대되지 않았다.

4차 강 달러 시기 때는 중국의 위안화 파동으로 신흥국 금융시장 변동성이 확대됐다. 중국은 2015년 8월 위안화 고시환율 인상을 통해 위안화를 절하시켰다. 중국 정책당국은 2005년 7월 관리변동환율제도를 도입한 이후 1일 변동폭을 점진적으로 확대하는 가운데 환율 결정 메커니즘의 시장화를 추진하기 위한 조치라고 했다.

그럼에도 국제금융시장은 중국이 환율 결정 메커니즘의 개선보다 환율 절하를 통한 내수 및 수출 경기 부양 목적이 클 것이라고 생각했다. 2014년 11월부터 정책금리 인하 등 통화완화 및 부동산 규제 완화 등에도 성장세가 둔화됐다. 수출도 2015년 들어 감소세로 전환되면서 경기 하방 압력이 커졌다. 경기 우려 속에 단기 자본이 유출되는 등 외환보유고까지 감소해 환율 절하 필요성이 커졌다.

환율 절하 이후 중국 금융시장으로부터 자본 이탈이 가속화됐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분기 평균 520억달러가 유입됐던 준비자산제외 금융계정은 환율 절하 조치가 나타나기 직전인 2015년 2분기 508억달러 유출, 3분기 1,409억달러 유출, 4분기 1,287억달러 유출 등 대규모 유출이 이뤄졌다. 대규모 자본 유출은 2016년까지 이어졌으나 이전부터 강 달러가 진정되며 금융시장 불안은 잦아들었다.

■ 강 달러 시대, 준비 없는 자는 당한다

한국 등 외환위기를 겪은 나라들의 상당수는 수출을 통해 경상 흑자를 쌓았으며, 외환보유액을 지속적으로 축적했다. 또 과거의 뼈 아픈 경험 때문에 대외 차입에 보수적인 태도를 취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이번 강 달러 시대에도 큰 불안은 나오지 않고 있다.

이날 아르헨티나가 15일(현지시간) 물가의 전년비 80% 폭등 때문에 기준금리를 75%로 550bp나 인상했다는 소식이 들렸지만 사람들은 이 문제를 자국과 연계시키지 않는다. 아르헨티나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이 나라는 지난달에도 금리를 950bp나 인상한 바 있고 이미 상시 위기국이 된 지 오래됐기 때문이다.

글로벌 유동성 지표들도 크게 위태롭지 않다. Libor-OIS 스프레드나 TED 스프레드는 물가 불안에 따른 긴축 가속화 우려 올해 6월까지 확대됐지만, 7월 들어 미국 물가 둔화 기미 등을 확인하면 스프레드를 축소했다.

분명 여건은 과도 위기 때보다 크게 양호하다. 하지만 향후 글로벌 교역이 크게 둔화되거나 수요가 위축되면 양상을 달라질 수 있다.

한국은 최근 역대 최대의 무역 적자를 기록했으며 수출 전망도 낙관하기가 어렵다. 다만 무역 적자에도 불구하고 경상 흑자는 양호한 편이며, 향후 발생할 지 모르는 외화 유동성 문제에 대해서도 버퍼가 있다.

또한 과거 위기 때문에 해외에서 한국에 투자한 돈들을 급하게 빼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경험을 볼 때 국내에 들어와 있는 자금이 한번 물꼬를 돌리기 시작하면 상당히 오랜기간 이런 흐름이 이어지곤 했다. 따라서 경계감을 풀어선 안된다.

하건형 연구원은 "과거 금리 인상이 후반기로 진입할수록 미국으로의 자본 쏠림이 심화됐다"며 "추가 금리 인상에 따른 채권의 자본이득 손실이 제한될 뿐만 아니라 캐리 수익까지 기대되기 때문이었다"고 분석했다.

이런 관점이라면 '금리 인상 후반기'에 진입할 것으로 보이는 올해 4분기부터 미국으로의 자금 쏠림 가능성이 강화될 수도 있다.

아울러 큰 위기는 아니더라도 작은 위기는 언제든 재연될 수 있다. 상황이 급격히 악화되면 외환보유액 등이 안전장치 역할을 하는 데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5년 중반 중국은 낮은 외채 비중과 엄청난 외환보유고에도 불구하고 자금 이탈로 인해 커다란 금융 변동성을 경험한 바 있다.

한국은 좋든 싫든 수출 중심 국가다. 수출 중심 국가는 늘 글로벌 변동성에 시달리는 운명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간 한국은 상당기간 수출 확대에 따른 양호한 경상수지 성적을 내세워 해외 투자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무역수지, 경상수지에 대한 우려가 커졌으며, 올해 2월부터 시작된 러-우 전쟁의 충격파도 계속되고 있다.

달러/원 환율 급등을 위기의 징후라고 과장할 필요는 없으나, 최근 한국경제의 수출입 관련 체력 등이 나빠진 만큼 건강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할 때다.

자료: 달러/원 환율 흐름...출처: 코스콤 CHE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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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신한금융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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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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