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 2024-05-17 (금)

(장태민 칼럼) 존리와 이복현

  • 입력 2022-08-10 13:31
  •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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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9일 동아시아·태평양지역 금융감독원장 회의 주재하는 이복현 금감원장

사진: 9일 동아시아·태평양지역 금융감독원장 회의 주재하는 이복현 금감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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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콤 장태민 기자] "그는 신이 아닙니다. 너무 많은 개미들이 그를 떠받들고 있어서 걱정스럽습니다. 주식을 사서 장기로 묶혀두면 돈 번다고 광고하는 멘토가 정말 개인투자자들에게 제대로된 주식 선생이 될 수 있을까요?"

코로나 사태가 터진 뒤 주가지수가 3,300을 넘어선 뒤 일부에서 주가지수 5,000 기대감마저 펌프질을 하고 있던 시절 한 증권사 출신 은퇴자가 존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에 대해 했던 말이다.

그는 실제로 존리 전 대표와 같은 회사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이런 말도 덧붙였다.

"그의 실제 운용성과를 검증해 본 개인이 얼마나 있을까요? 저는 그의 운용성과를 옆에서 지켜본 적도 있는 사람입니다. 그가 마케터로서 성공은 했지만 펀드매니저로서의 존리 선생은...글쎄요."

현재 집에서 소일거리로 시간을 보내는 이 은퇴자는 스스로 '투자 근육'을 키우지 못한 투자자는 도태되는 게 순리인 이 바닥에서 투자를 감정적으로 독려하는 인물들, 그리고 그 추종 세력에 대해 크게 우려했다.

■ 존리의 2022년

존리 전 메리츠운용 대표는 최근 사임 한 달만에 근황을 전했다.

자신의 유튜버 채널에 등장해 7분짜리 영상을 올렸다.

그는 "지난 1,2개월은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이었다"며 "30여년의 제 명성이 큰 영향을 받게 됐지만 유튜브로 여러분에게 인사를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존리 전 대표는 6개월 동안은 연락을 끊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려고 했지만 그것 또한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유튜브를 통해 인사를 하게 됐다고 전했다.

존리 전 대표는 코로나 사태 이후 소위 '동학개미운동'을 진두지휘했던 인물이다. 애칭 '존봉준'을 갖고 있을 정도로 개인투자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2014년부터 8년간 운용사를 이끌었던 그의 인생이 계속 순탄하게 흘러가진 않았다. 주가지수는 3,300을 뛰어넘은 뒤 2,300선 아래까지 미끌어지기도 했다.

최근 외국인 매수로 주가지수가 다시 2,500선 위로 올라오기도 했지만, 코로나 사태 발발 후 꽤 지나서 뒤늦게 뛰어들었던 사람들은 손실을 보고 있다.

시황산업인 증권바닥 인심은 가격이 날아갈 때는 후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박해지는 법이다.

존리 전 대표는 자신의 지인이 2016년 설립한 부동산 관련 P2P 업체에 아내 명의의 지분 투자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입방아에 시달렸다. 도덕성, 불법성 시비에 휘말렸던 것이다.

존리 전 대표가 불법은 없었다고 강변했지만 결국 6월말 사임하고 만다. 세상의 곱지 않은 시선에 큰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다.

'가장 영향력 있는 주식멘토의 의혹'이 보도되자 일부 개인투자자들은 주식 마케팅으로 명성을 얻은 사람이 부동산 바닥에서 기웃거리면서 투자자들을 기만했다면서 비난을 퍼붓기도 했다.

지난 7일 그의 유튜브 출연을 두고도 논박이 오갔다. 일부 개인투자자들은 자중해야 할 때라고 했고, 다른 쪽에선 불법도 확인되지 않은 사람에게 가혹하다면서 그를 감쌌다.

그가 그저 주식 매수만 부르짖었던 인물이라고 비판하는 쪽의 반대 편에선 존리 전 대표가 건전한 주식 투자 문화 조성을 위해 기여한 부분을 평가해야 한다면서 적극 옹호하기도 했다.

■ 큰손 개인 전업투자자가 본 존리..."투자자는 누군가를 믿어선 안된다"

필자의 지인 중 10억원 훨씬 넘게 주식에 투자하는 한 '전업' 투자자는 존리 전 대표에 대한 '큰손 개인들'의 시각을 이렇게 전했다.

"최근 존리 사건의 사실관계에 대해선 아는 게 없어 할 말이 없습니다. 다만 전문적으로 크게 투자하는 개인들 사이에서도 존리 전 대표를 좋게 보는 사람이 별로 없었던 게 사실입니다."

이 투자자는 존리 전 대표가 장기투자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 게 과연 개인 투자자들의 사정을 감안한 한국의 실정에 맞는 것이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아시다시피 개인투자자들이 주식에 뛰어드는 건 주식이 활황을 보일 때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장기투자를 하겠다고 주식을 산다고 해도, 일반 개인투자자가 호황이 끝나고 하락장에 들어섰을 때, 본인의 주식 평가손을 견디고 수익을 내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꼭지에서 장기투자를 권한 존리식의 방식이 과연 맞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갖고 있습니다."

하루 12시간 주식 생각만 하고 사는 이 투자자는 개인투자자들에게 자신만의 투자방식을 정립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아울러 증권 전문가라는 사람들도 검증해야 하며, 쉽게 믿어선 안 된다는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존리가 사장으로 있었던 메리츠자산운용 수익률이 좋지 않았습니다. 이런 부분 역시 과연 존리의 방식이 맞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가져야 할 이유였습니다."

그는 세상에 주식 멘토 따위는 없다고 본다. 언론이나 시류가 띄워주는 분위기에 현혹되지 말라는 게 거액을 굴리는 전업 투자자의 조언이었다.

■ 자산운용사 사장들에게 일갈한 이복현...'오얏나무 갓끈' 속담 생각해야

금융감독원은 9일 오후 임원회의에서 이복현 원장이 했던 발언을 공개했다.

금감원은 "최근 연이어 제기되고 있는 자산운용사 경영진의 부적절한 사익추구 의혹 등과 관련해 고객의 투자자금을 관리운용하는 자산운용업은 무엇보다 시장 및 투자자 신뢰가 근간이 돼야 하는 산업이라고 원장이 강조했다"고 전했다.

이 원장은 특히 "옛 속담에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끈을 고쳐매지 말라'고 했듯이 경영진 스스로 과거보다 훨씬 높아진 도덕적 잣대를 가지고 조금이라도 이해상충 소지가 있거나 직무관련 정보 이용을 의심받을 수 있는 부적절한 행위를 단념하고 고객자금의 운용관리자로서 본연의 업무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원장은 "더군다나, 최근 사모펀드 사태를 겪으면서 자산운용산업에 대한 시장 신뢰가 크게 떨어진 상황"이라며 "그 어느 때보다 경영진부터 준법윤리 의식 수준을 이전보다 훨씬 더 높여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임직원들의 모럴 헤저드가 발생하지 않도록 자정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했다.

금융사고 예방 등 내부통제 점검에도 만전을 기하는 등 우리 자산운용 산업의 신뢰 제고를 위해 각별히 노력해 줄 것을 당부했다.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을 고쳐쓰면 도둑으로 오해받기 십상이다. '오얏나무 갓끈' 속담은 오얏을 훔칠 의도가 없더라도 의심 받을 수 있는 장소에 가거나 의심받을 만한 행동 자체를 해선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 속담이 강조하는 바에 의하면 법적으로 문제가 없고 부주의로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을 고쳐매더라도 그것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이 원장은 전날 '연이은' 자산운용사 사장의 사익추구 의혹을 거론했다. 결국 또 한 사람 더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 가치투자 전도사 강방천마저 의혹에 휩싸여

가치투자 전도사를 자임해 온 강방천 에셋플러스자산운용 회장도 차명투자 의혹에 휩싸였다.

최근 금감원이 에셋플러스를 대상으로 한 정기검사에서 차명을 통한 자기매매로 의심되는 정황이 포착된 것이다.

강 회장이 대주주이고 강 회장의 딸이 2대 주주인 공유오피스 업체에 강 회장이 개인자금을 대여한 게 문제가 됐다. 강 회장은 자기매매가 아니라고 주장했으나 금감원은 차명투자로 봤다.

MTN은 "강방천 에셋플러스자산운용 회장 차명투자 의혹의 중심에 있는 원더플러스가 이번엔 승계 구도의 한 축으로 떠올랐다"며 "강 회장이 대주주로 있는 원더플러스가 지난달 말 더첸덤홀딩스로 이름을 바꾸고 드림플러스라는 새 회사를 분할설립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더첸덤홀딩스의 첸(Chen)은 강 회장의 영문 이름을 뜻하며, 새로 설립된 드림플러스는 강 회장의 딸 강자영씨(90년생)가 사내이사, 감사로 부인 유미경씨가 올라있다"며 "더첸덤홀딩스(원더플러스)의 최대주주는 강 회장으로, 딸 자영 씨가 2대주주, 부인 유미경씨가 대표이사로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회사를 쪼개 딸에게 물려준 셈"이라고 보도했다.

강 회장은 아들인 강자인 매니저(89년생)를 2020년 말 책임운용역으로 발탁하고 이후 지분을 증여하면서 운용사 경영권 승계를 추진해왔고, 딸에겐 자금대여를 통해 공유오피스를 비롯한 부동산 관련 사업 부문을 물려줬다는 해석이 있다고 소개했다.

금융당국은 강 회장이 원더플러스에 자금을 대여하고 4.2% 이자를 받은 것을 '자기매매'로 봤으며, 강 회장이 최근 갑자기 은퇴 선언을 한 것 역시 이런 의혹들 때문이었다는 의심이 이어졌다.

강방천 회장은 작년에 펴낸 저서에 "워런 버핏, 피터 린치, 벤저민 그레이엄 등과 함께 한국에서 유일하게 '세계의 위대한 투자가 99인'에 선정된 증권가의 살아 있는 전설이자 현재도 활약하고 있는 영원한 펀드매니저"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존리 전 대표가 많은 개인투자자들의 '주식 멘토'였다면, 강 회장은 많은 개인투자자들에게 '주식 가치투자 멘토'로 통했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 이후 개인들에게까지 큰 대중성을 확보한 대표 펀드매니저들이 이제 법적, 도덕적 시비에 휘말려 있다.

대한민국 정상급 경제·금융통 검사로 평가 받던 이복현 금감원장의 시대가 열리자 한 때 개인투자자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던 주식 멘토들의 신뢰성도 상당부분 추락해버렸다.

■ 앞으로 이뤄질 각종 금융 조사들...곧 찬바람 부는 가을 온다

금융시장에선 금감원이 머지 않은 시간에 칼을 빼들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의심도 적지 않다.

최근 수년간 금융시장을 뒤흔들었던 라임, 옵티머스, 디스커버리 등 펀드사기 의혹 사건에 대한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만큼 앞으로 계속해서 금융당국 쪽에서 뭔가를 터뜨릴 수 밖에 없다는 전망들도 많다.

한국 검사들 가운데 대표 금융·경제통이었던 이복현 금감원장이 언제가는 숨겨뒀던 칼을 꺼내보일 것이라는 관측들도 보인다.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존리 전 대표가 유튜브에 나온 뒤 이복현 원장이 '오얏나무 갓끈'을 거론했다"면서 "조만간 뭔가를 내놓으려고 한다는 수상한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금융감독당국이 이런저런 사건들을 조사하고 있는 만큼 여차하면 뭔가가 나올 수 있을 것이란 예상도 적지 않다.

이 관계자는 "며칠 전 증권사 사모사채 관련 조사, CP 조사와 관련한 최근의 의심 등이 전조가 아닌가 싶다. 아울러 정권 차원에서 큰 건을 찾고 있으며 그 칼을 한동훈 장관과 이복현 원장이 쥐고 있다는 추론을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고 전했다.

펀드나 가상자산 관련 의혹들이 쉼없이 제기되고 이어졌던 만큼 한국 대표 경제통 검사 출신이라는 이복현 원장의 행보는 계속해서 세간의 관심을 모을 것이다.

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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