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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민 칼럼) 재정 파퓰리즘과 문재인 정부 초대 경제수장

  • 입력 2021-11-11 15:18
  •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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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김동연 전 부총리 페이스북

사진출처: 김동연 전 부총리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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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콤 장태민 기자] 여당의 이재명 대통령 후보는 전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30~50만원씩 주겠다고 한다. 야당의 윤석열 후보는 대통령이 되면 50조원을 풀겠다고 한다.

내년 3월 9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야 후보들 모두 표심을 잡기 위해 선심성 공약을 막 던지고 있다.

여와 야는 서로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하면서 매표행위를 중단하라고 한다.

이같은 정치권의 움직임에 짜증이 난 국민들도 많다. 국민의 세금을 마치 선심 쓰듯이 쓰려는 이기적인 정치인들의 행태를 보면 말문이 막힌다.

상당수 국민들은 '돈을 막 쓰려는' 정치인들의 행태가 불안하다. 특히 '현재의 권력자'인 정부와 여당의 행태에 불안한 사람이 많은 듯하다.

지난 8일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전 국민 재난지원금 추가지급에 찬성하는 의견은 22%에 불과했다.

추가지급 자체를 반대(47.7%)하는 사람이 거의 절반에 달했다.

돈을 쓰더라도 취약계층에 선별적으로 추가지급(29.6%) 하자는 의견이 1/3에 가까웠다.

대략 10명 중 5명은 '허투루 돈 더 쓰지 마라', 3명은 '꼭 필요한 사람에게 주자'였고, 열에 둘 정도만 정부가 추진하는 방식의 재난지원금에 찬성한 것이다.

■ 지금 한국은...곳간 털어먹기 논쟁중

21세기에 접어든지 20년도 넘게 지났지만 한국의 정치권이 나라 곳간을 허무는 행위를 거리낌없이 하는 이유는 '먹히기 때문'이다.

여당은 이미 선거를 앞두고 돈을 풀어 재미를 본 이력이 있다. 내년에 무엇보다 중대한 대통령 선거가 있으니, 국가재정법이야 어떻게 규정하든 일단 우회로를 통해 돈을 쓰려고 한다.

야당 후보 역시 '돈 주겠다'는 공약이 먹혀드는 모습을 봐서 그런지 이런 유혹에서 자유롭지 않다.

정치권은 언론의 비판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가짜 뉴스' 프레임을 씌우는 데도 도가 텄다. 비판을 참지 못하고 가짜 뉴스로 몰아붙이는 행태는 아주 반민주적인 행태지만, 한국 사회엔 이미 정치인의 덕목이 돼 버렸다.

국가의 재정건전성이 빠른 속도로 악화된 것은 그다지 따져볼 것도 없이 진실이다. 하지만 여당 의원들 사이엔 돈 쓰는 게 '절대선(善)'이 돼 버렸기 때문에 이런 논리도 거리낌 없이 바꾼다.

민주당은 자신이 야당이었던 시절에 국가부채비율 40%는 넘겨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했던 정당이다.

이제 그들에게 이런 기준은 없다. 다른 나라에 비하면 '너무 건전한' 재정이 문제라는 지적까지 한다. 상황에 따라 아무 논리나 갖다 붙이면 되는 세상이 됐다.

우리의 국가채무비율(51%)이 OECD 기준으로 양호하다면서 빚을 더 내서라도 재난지원금을 주자고 한다.

한국의 국가채무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지만, 한국은 빚의 증가속도가 압도적으로 빠른 나라다. 아울러 한국은 공기업 비중이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히 높아 '실질적인' 나라빚은 눈에 보이는 것 이상으로 많다. 젊은층이 소멸중인 기괴한 인구구조는 한국이 어느 나라보다 재정에 신경을 써야 하는 나라라는 점을 말해준다.

최근 나라 빚이 늘어나는 속도는 조금만 산수에 밝아도 경계감을 가질 수 밖에 없다. 40%가 되지 않던 국가채무비율은 50%를 넘겼다. 하지만 정부나 여당 사람들에겐 코로나 사태 등 각종 핑계거리가 너무 많이 있다.

그리고 빚을 더 늘리자는 주장의 가장 극단에 있는 사람이 기본소득, 기본주택 등 각종 '기본'론자인 여당 대선 후보다.

국회를 지배하는 여당 의원들은 그들의 후보를 돕기 위해, 혹은 그 후보에게 잘보이기 위해 역시 기본론자가 돼 가고 있다.

■ 정부인사가 야당 대선 후보가 된 아이러니한 한국...초대 경제부총리도 따로 대선 출마

문재인 정부가 곰곰히 생각해 봐야 할 대목이 있다.

왜 자신들을 지지했던 많이 사람들이 등을 돌렸는가 하는 점이다.

특히 현 정부에 몸 담았던 '정부 사람'들 중 상당수가 제1야당으로 가거나, 지금의 정부 모습을 경멸하는 사람이 됐는지 되새겨 봐야 한다.

야당의 대통령 후보는 아이러니하게도 박근혜 전 대통령을 구속하는 데 앞장섰던 '정부 사람'이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야당 대선 후보로 만드는 데 가장 공이 큰 사람은 추미애·조국 전 법무장관이다.

현 정부의 감사원장이었던 최재형은 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서기도 했다.

이 정부의 초대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냈던 김동연 전 부총리도 따로 대통령 선거에 나오려고 한다.

여당이나 정부를 등진, 정부 출신 인사들 중 많은 사람들이 지금은 이 정부를 비판한다.

이런 비상식적인 일이 너무 많이 일어났지만, 여당은 이 문제를 심각하게 보지 않는 듯하다. 정부나 여당 인사들은 그저 정권 재창출에만 몰두하고 있다.

여당은 대선 전인 내년 1월까지 재난지원금 지급을 완료하겠다고 한다. 여론조사 따윈 중요하지 않은 듯했다. 아마도 여당 의원들 역시 나름대로 머리를 굴렸을 것이다.

다수 국민이 반대하더라도 '공돈 싫어하는 사람 없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잘 알기 때문인 듯하다.

■ 현 정부 초대 경제부총리 김동연의 재난지원금 비난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는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재명 후보와 여당의 재난지원금 지급 방침은 방침도 틀렸고, 재정의 1도 모르는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했다.

김 전 부총리는 더 나아가 "여론이 부정적이자 이 후보와 여당은 ‘재난지원금’ 명칭을 ‘방역지원금’으로 바꾸기까지 했다"고 비난했다.

김 전 부총리는 '자신의 이력'(예산실장, 경제부총리에 이르기까지 10년 넘게 국가재정 담당)을 거론하면서 자신의 전문성과 경험에 근거할 때 여당의 재난지원금은 잘못된 선택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세입예산보다 더 걷힌 초과세수를 재원으로 쓰겠다는 발상을 비판하는 사람이 많다.

류성걸 국민의힘 의원은 8일 국회 예결위에서 "올해 초과세수가 있어도 내년 세입예산에 반영할 수 없다"며 "어디에 돈이 있어서 돈을 더 주겠다고 하는가"라고 비판했다.

류 의원은 기재부에서 예산실장과 재정담당 기재차관을 거쳤던 인물이다. 한 때 나라의 곳간지기를 했던 사람의 말이니, 이말을 허투루 듣긴 힘들지 않겠는가.

김동연 전 부총리도 "세입예산보다 더 걷힌 초과세수를 재원으로 쓰겠다는 건 틀린 이야기"라며 논의할 가치도 없다는 모습을 보였다.

■ 초과세수와 김동연이 보는 여당의 '꼼수'

정부는 매년 다음해의 나라 살림 계획을 세운다.

세금 등으로 재정수입(국세수입+국세외수입+부담금 등)이 얼마나 들어올지를 예측해 돈을 쓸 지출계획을 세운다. 이 과정이 예산안 편성이다.

무엇보다 정부는 경제성장률 등 경제상황을 감안해 국세 수입을 잘 예측하는 게 중요하다. 세금 유입 등을 예상해 만든 정부의 예산안은 국회 심의를 거친 후 확정되면 정부 예산이 된다.

하지만 최근엔 국세수입 예산액이 실제와 큰 차이를 나타냈다. 예상치 못한 경제여건 변화 등으로 인한 세수추계 오차가 크게 발생한 것이다. 올해는 예상보다 세금이 너무 걷혔다. 그나마 살림을 사는 입장에선 초과세수가 세수결손보다 낫긴 하다.

이제 지금 이슈가 되고 있는 초과세수 처리 문제에 관심을 가질 때다.

정부가 한 해 총세입과 총세출을 마감하게 되면 초과세수는 국세수입과 세외수입을 포함하는 총세입 실적이 된다.

초과세수로 인해 총세입이 늘어나게 돼 결산 과정에서 총세출을 빼고도 남는 돈, 즉 결산상 잉여금이 발생한다면 이는 '세계잉여금'이 된다.

세계잉여금은 한 해 동안 조세수입 등 정부의 총수입 중 지출하지 못한 금액(결산상 잉여금)에서 다음 회계연도에 지출할 금액(다음 연도 이월액)을 차감한 금액이다.

세계잉여금은 회계연도 독립의 원칙에 따라 당해 연도 정산을 원칙으로 한다.

일반회계에서 발생한 세계잉여금은 국가재정법 제90조에 따라 처리 순서가 있다.

먼저 ①지방교부세(금) 정산, ②공적자금상환기금 출연, ③국가채무 상환, ④추가경정예산안의 재원, ⑤다음 연도 세입이입 순으로 처리된다. 특별회계에서 발생한 세계잉여금은 개별 법률에 따라 다음 연도 세입으로 이입한다.

이런 과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 중 한 사람인 김동연 전 부총리도 정부의 초과세수 처리 행태를 비판한다.

김 전 부총리는 "초과세수 처리방안은 국가재정법에 상세하게 나와 있다"면서 "40% 정도는 지방교부세와 교육재정교부금으로 지자체에 정산해줘야 하고 나머지의 30%는 의무적으로 채무상환에 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초과세수가 25조 걷혔다면 실제로 쓸 수 있는 돈은 3~5조 정도"라며 "금년에 들어올 돈을 납부유예 방식으로 내년에 받겠다는 발상도 국세징수법에 저촉되는 꼼수"라고 비판했다.

그는 "코로나와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은 필요하지만 문제는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라고 했다.

■ 전국민 재난지원금 경기부양 효과 크다는 주장은 '틀린 말'

여당은 재난지원금의 경기 부양효과가 크다는 주장을 해왔다.

하지만 돈을 전국민에게 고르게 나눠 주는 것은 경기부양 효과가 크지 않다는 게 상식이다.

여당이나 정부는 경제학적 상식을 비틀어서 굳이 효과가 크다는 식으로 국민을 속여왔다는 비판도 많았던 게 사실이다.

국회 예결위에서 한 야당 의원은 정부 정책용 자료를 만드는 국책연구기관의 분석을 빌어 여당의 주장을 비판하기도 했다.

김선교 국민의힘 의원은 10일 "재난지원금과 관련해 KDI가 분석 가능한 11.1조 분석한 결과 4조만 소비였다. 효과는 0.26~0.36배에 불과했다"고 지적했다.

재난지원금은 부채상환이나 저축 등에 쓰일 수도 있으며, '없는' 사람들에게 많이 나눠주는 게 소비에 더 큰 영향을 준다. 돈이 많은 사람에겐 푼돈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으며, 한계소비성향이 높은 힘든 계층에게 집중해야 효과가 크다는 사실은 직관적으로도 알 수 있다.

사실 경제적 측면에선 보편적 지원보다 선택적·집중적 지원이 효과가 크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 살림 좀 살아본 사람이라면...함부로 돈 쓰는 게 두렵다

여당 의원들의 적극적인 '나라 곳간 헐기' 시도에 대해 현 정부의 경제부총리조차 두려워한다.

이번주 예결위에서 엄태영 국민의힘 의원이 "이재명 후보가 나라 곳간이 꽉꽉 채워지고 있다고 했는데, 무지 아니면 국민 속이는 짓이다. 여당이 25만~30만원 주는 데에 벌벌 떨지 마라는 데 동의하는가"라고 묻자 홍남기 부총리는 "재원 측면에서 뒷받침 가능한지 점검이 필요하다"고 했다.

홍 부총리는 여당이 금방이라도 현금을 더 지원할 듯한 분위기를 만들어 갈 때 "올해 손실보상까지 5차례 지원했다. 올해는 지금까지 지원한 것을 잘 마무리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국가가 주는 돈은 국민 세금이다.

정치인들이 인심 쓰는 그 '대단한' 돈은 이 시대를 사는 사람이 내는 세금과 미래를 살 사람들이 낼 세금(국채)이다.

누군가 내 주머니에 들어있는 돈을 마음대로 빼낸 뒤 '나중에 갚을게'라고 하면 당신은 응하겠는가.

하지만 희한하게 지금의 여당 의원들은 '현금 살포'를 절대선인 줄 안다.

한국이 나름대로 현대화된 뒤 역대 이런 정부는 본 적이 없다.

공인이라면 국민 세금 단돈 1원이라도 아끼려는 마음의 자세가 돼 있어야 한다.

선거가 급한 여당 사람들의 심리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공인이라면 '진정 내 돈이라면 이렇게 쓰겠는가'라는 생각을 해봐야 한다.

그리고 '돈 쓰자'는 주장을 열심히 할 태세가 돼 있는 정치인이라면 부디 자신의 '기부 내역'을 공개했으면 한다. 그렇게라도 해야 의심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선의'를 이해해줄 수 있을 것이다.

김동연 전 부총리는 "재정을 쓰겠다는 의사결정은, 그 돈을 '다른 곳에 쓸 수 있는 모든 기회를 포기하는 선택'을 의미한다"며 현금 뿌리는 행위가 정작 필요한 더 중요한 일을 못하게 만들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정치인들보다 국민의 수준이 높다. 이것이야말로 대한민국을 지탱하고 발전시킨 원동력"이라고 했다.

문재인 정부 초대 경제수장조차 나라 살림살이를 크게 우려하는 게 한국사회의 현실이다.

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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