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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민 칼럼) 공인중개사, 합격률 5%에 도전하는 사람들

  • 입력 2021-11-05 10:57
  •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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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콤 장태민 기자] 지난 주말 '어른들의 수능'이라는 공인중개사 시험이 치러졌다.

역대 최다라는 40만명 가량이 지원해 조만간 대학을 가기 위해 학생들이 치르는 수학능력시험 지원자를 능가할 수 있다는 얘기마저 들려온다.
젊은층 인구가 줄면서 지난해 수능 지원인구는 40만명대로 줄어들었다. 한국의 젊은층 인구가 소멸 중인 상황이어서 수능 인구는 시간이 흐르면서 더 감소하게 된다.

공인중개사 지원자 수치는 1,2차 합산이어서 과장이 들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웬만한 중소도시 인구수를 능가하는 사람들이 이 시험에 응시한다.

그리고 한국사회가 설정해 놓은 높은 '생존난이도' 때문에 많은 어른들은 학생들 못지 않게 험난한 수험생활을 하고 있다.

■ 베이비 부머 어른들이 몰두하는 '수능' 공인중개사

공식 통계상 한국에서 가장 많은 아이가 태어난 연도는 1971년이다.

올해 정확히 만 50세인 이들은 무려 100만명 넘게 태어났다. 1972년생들은 놀랍게도 5:1이 넘는 대학입시 경쟁률을 경험하기도 했다. 1970년대 초반을 정점으로 한국의 '출산붐'은 꺾였다.

요즘은 신생아가 한해 30만도 태어나지 않는다. 한국은 자랑스럽게도 매년 전세계 출산율 꼴찌를 하는 나라가 됐다.

한국에선 출산율이 기존 인구 유지 기준(2.1명)을 한참 밑돌고 있다. 벌써 1명도 되지 않은지가 오랜기간 이어졌다. 이 추세가 지속되면 한국은 소멸한다.

출산 풍년 때 태어난 사람들은 이전 세대보다 더 힘든 경쟁을 한다. 한국에서 가장 많은 쪽수를 자랑하는 세대들 가운데 생존을 위해 다시 공부를 하는 사람도 많다.

이들이 선택한 가장 인기 있는 종목은 '공인중개사'다.

공인중개사의 유례없는 인기에서 중년들의 험난한 수험생활을 짐작할 수 있다. 최근 더욱 많은 사람이 몰린 데는 집값 폭등 여파, 부동산에 대한 높아진 관심 등도 작용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이 시험에 도전하는 대부분의 사람이 '실패'한다. 한국의 모든 시험은 이미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워졌다.

한국경제는 최근 성장률이 급속히 둔화됐다. 그런 와중에서도 꾸준히 성장해 왔다. 올해엔 많은 사람들이 국제기구의 '인정'을 근거로 한국이 드디어 선진국에 진입했다고 자화자찬하기도 했다.

생활 수준은 과거보다 높아졌지만, 이 사회에서 생존하기는 과거보다 어려워졌다.

성장 시대 때 만큼 좋은 일자리를 구할 수도 없고, 각종 시험들도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워졌다.

■ 2020년 시험 합격 데이터 보면...1년만에 1차, 2차 동시에 합격하는 비중은 5%

1년간 어떤 사람이 공인공개사 시험에 도전한다고 해보자. 몇 퍼센트나 자신들의 목적을 이룰까?

2020년 공인중개사 1차에 응시한 사람은 15만 1,666명으로 이 가운데 3만 2,367명이 '1차에' 합격했다.

응시자 대비 1차 합격률은 21%였다. 시험장에 나온 5명 1명이 합격했으며, 4명은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2차 시험엔 당해년도 1차 합격자와 전년도 1차 합격자가 응시할 수 있다. 2차 시험엔 일반응시자와 1차시험 면제자(전년 1차 합격자)가 응시하는 것이다.

작년엔 7,910명의 일반응시자가 합격했다. 1차 시험 면제자 중 합격자 수는 8,644명이었다.

결국 1년에 1번씩 치르고 있는 시험에서 1년만에 1,2차를 동시에 합격한 사람의 비중은 5% 정도에 불과했다.

같은 날 1,2차를 동시에 치는 어른들의 '수능'에서 중개사 자격을 따는 사람은 대략 20명 중 1명 정도에 불과하다는 얘기가 된다.

우리 주변에 너무 흔한 공인중개사, 요즘은 이렇게 어려워졌다!

전년에 1차를 붙었지만, 올해 2차에 떨어진다면 1,2차를 다시 해야 한다. 합격자에 비해 불합격자가 너무 압도적으로 많다. 1차를 붙고 2차를 다음해에 치더라도 떨어지는 사람이 훨씬 많은 시스템이다.

우리가 흔히 보는 공인중개사 수험생들, 그들은 매우 어려운 시험에 도전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 '월 수천을 번다' vs '손가락 빤다'...진실은 모든 분야의 격차 확대

공인중개사 시험을 공부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당장 개업공인중개사가 되기 위해서 시험을 치는 경우 뿐만 아니라 은퇴 후를 대비하기 위해서 시험을 치기도 한다.

이밖에 부동산을 공부하기 위해, 혹은 자신의 능력을 평가하기 위해 시험을 친다는 '기타의' 이유도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엔 집값이 폭등해 공인중개사들이 '집 몇 번 보여주고' 너무 많은 돈을 번다는 얘기도 많이 들렸다.

이론적으로 중개사들은 얼마나 벌 수 있을까.

주택 중개보수는 국토교통부령으로 정하는 범위 안에서 시·도 조례로 정한다. 주택 중개에 대한 중개보수는 의뢰인 쌍방으로부터 각각 받되, 한 쪽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한도는 매매나 교환 거래의 경우 거래금액의 0.9%다. 임대차는 거래금액의 0.8% 범위 내에서 받을 수 있다.

현재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이 KB국민은행 기준으로 12억원에 달한다.

이런 상황에서 평균에 못 미치는 10억원짜리 아파트 한채를 거래하고 이론상 맥시멈까지 수수료를 받는다고 하면 한 채 중개에 1,800만원까지 벌 수 있다.

이런 식으로 2채만 거래하면 3천만원이 훨씬 넘는 돈을 벌 수 있다.

하지만 일선의 많은 중개사들은 이런 셈법에 대한 불편함을 토로한다.

거래가 이전보다 훨씬 줄어들고 자체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으며, 실제 한도까지 수수료를 받기도 어렵다는 식의 얘기를 한다. 오히려 월세도 못 내고 손가락만 빤다는 식의 하소연을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런 주장 역시 과장이다. 한국은 모든 분야에서 양극화가 심해진 나라다. 조금만 열심히 조사해 보면 매달 1천만원 이상 버는 중개사들도 쉽게 찾을 수 있다.

필자가 아는 서울도 아닌(!) 경기 지역의 한 60대 공인중개사는 얼마전 월 3천만원이 훨씬 넘는 돈을 번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자신의 20년 중개 인생에서 가장 큰 돈을 벌고 있다고도 했다.

아파트값이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폭등한 상황에서 '능력 있는' 중개사라면 이전보다 더 많은 돈을 버는 경우들도 있다.

이런 가운데 뭔가 주변에서 불만이 나오면 우리의 정부는 규제로 풀려는 반응을 보인다.

최근엔 정부가 10월부터 중개수수료에 대해 규제를 강화하기 시작하자 일선 중개사들은 불만을 쏟아냈다. 또 집을 매매해야 하는 시민들은 그들 나름대로 중개보수가 너무 많아 지나치다고 아우성을 쳤다.

■ 과거와 비교가 불가능한 시험 난이도

필자의 친구 중 한 사람은 젊은층들이 공무원 시험으로 몰리는 현상을 개탄한다. 나라의 미래가 없다고도 한다.

그는 이런 말을 한다.

"1990년대만 하더라도 대학생들은 9급 공무원 시험을 치지 않았잖아. 9급은 대학을 가지 않는 사람들만 쳤던 시험이었어. 지금은 온갖 대학생들이 9급 시험을 치고 있고, 고졸자들의 기회를 박탈해 버렸어."

친구가 말한 '우리 때'는 흔히 얘기하는 꼰대들의 표현이다. 다만 이런 꼰대식 표현도 사회상을 비교하거나 문제 제기를 하기 위해선 필요하다.

친구가 말한 80년대, 90년대만 하더라도 9급 공무원은 대학을 가지 않는 사람들의 전유물이었다. 하지만 한국사회의 생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지금은 유명 대학을 나와도 9급을 친다. 그 정도로 기회는 줄었으며, 생존난이도는 높아졌다.

필자가 아는 한 40세 남자는 서울의 유명 대학을 졸업한 뒤 만점에 가까운 토익 점수를 받았다. 하지만 그는 미래가 매우 불안정한 회사에 들어가 직장생활을 했다. 그런 뒤 결국 뒤늦게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그는 수년간 열심히 공부했지만, 한번도 9급이나 7급 시험에 붙지 못했다.
특히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공무원수가 대폭 증원됐음에도 이 사람은 시험에 붙지 못했다. 공무원이 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놓친 것이다.
한 때 공부를 잘했던 학생이었고 토익을 거의 만점 받는 사람이었지만, 9급 공무원이란 관문을 넘지 못했다. 한국사회 생존 경쟁은 이렇게 치열해져 있다.

■ 생존난이도 높아진 한국사회 공정의 문제...그래도 '정상적인' 시험이 낫다

필자는 한류가 전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로 한국사회의 '치열한 경쟁'을 꼽는다.

지구인의 시각에서 볼 때 한국 사회에선 보통의 능력으로 살아남기가 만만치 않다. 한국 사람들의 요구 수준은 높으며, 그 덕분에 수준 높은 음악, 드라마, 영화 같은 작품들이 나온다.

세상사엔 언제나 양면성이 있다. 한국의 우수한 작품은 한국 사람들이 겪은 '스트레스'의 산물이다. 엄청난 노력이 가미됐기 때문에 좋은 제품, 작품이 나오는 것이다.

'멋진 나라' 한국에서 생존하기 위해선 치열한 경쟁은 어쩔 수 없지만, 여전히 한국엔 '반칙'이 횡행하기도 한다.

한국의 대학입시 제도는 대표적인 '반칙 시스템'의 하나다.

대입에서 정시보다 수시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아진 뒤 학생의 능력이나 노력이 아닌 '부모의 부(富)와 편법 행사 능력'으로 대학에 가는 경우가 많다.

필자의 친구 중에도 딸을 시험 한번 치지 않게 만든 뒤 서울대학에 보낸 사람이 있다. 그는 잘 나가는 공직자였다.

또 최근 많은 한국 사람들은 조국 전 법무장관 일가의 사례에서 정상적 경쟁시스템을 좀 먹는 반칙 시스템을 발견하기도 했다. 이런 편법은 '능력 있지만 가난한' 학생들을 배제해 버린다.

이번에 공인중개사 시험에 응시한 한 20대 남성은 이런 말을 했다.

"시험이 아무리 어려워도 불만은 없습니다. 이게 그나마 공정하잖아요. 그래서 저는 각종 자격증에 도전합니다. 그게 깔끔하니까요. 저는 부모를 활용할 수도, 빽을 쓸 수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는 '다양하게 인재를 뽑는다'는 식의 좋은 말은 사실 공정 경쟁을 무너뜨리기 위한 기득권의 술수라고 봤다. 인간의 지혜는 나이에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 법, 필자는 본질을 꿰뚫고 있는 젊은 친구의 혜안이 아주 놀라웠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학력고사 식 시스템이 지금의 대입제도 보다 훨씬 공정하고 우월하다고 본다.

학력고사는 시험 성적으로 대학을 간다. 내신도 중요하기 때문에 재학 중인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받지 못하면, 좋은 대학도 갈 수 없다. 그 당시 '학내 시험으로' 내신을 가미했던 시스템도 공정 측면에선 좋다고 본다.

내신(필자가 고등학교를 다녔던 80년대엔 교사의 주관적 평가가 아니라 학교 내의 시험 결과가 내신을 결정했다. 지금은 내신이 교사에게 권력을 안기는 수단으로 변질됐다) 반영은 몇몇 특정 고등학교로의 쏠림을 방지하는 장치였으며, 일정부분 가난한 학생들에게 공정한 경쟁을 보장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공인중개사 얘기를 하다가 공정 문제까지 언급하고 말았다.

아무튼 모든 시험이 20년전, 10년전, 5년전보다 너무 어려워졌다. 한국사회 참으로 생존난이도가 높아졌다.

한국이 이전에 보지 못한 경쟁사회가 된 만큼 적어도 공정한 시스템을 만드는 데 모두가 노력했으면 하는 바램 간절하다.

(장태민 칼럼) 공인중개사, 합격률 5%에 도전하는 사람들이미지 확대보기


자료: 2020년 공인중개사 시험 통계, 출처: EBS

자료: 2020년 공인중개사 시험 통계, 출처: E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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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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