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 2024-05-17 (금)

(장태민 칼럼) 볼드모트

  • 입력 2021-10-20 13:50
  •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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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해리포터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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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콤 장태민 기자]
한국은행은 전통적으로 부동산에 대한 언급을 꺼려온 조직이다.

부동산 때문에 금리를 올리면서도 표면적으로는 '다른' 이유를 댄다는 게 많은 사람들의 의심이었다.

한은은 전통적으로 통화정책과 '부동산'을 연계시키는 일을 상당히 부담스러워했다.

2000년대 중반 많은 사람들이 집값 급등으로 금리를 올린다고 이해할 때도 다른 이유를 댔던 게 사실이다.

15일 열렸던 한국은행 국감에선 한 경제학자 출신 국회의원이 한은이 부동산 때문에 금리를 올리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제기하기도 했다.

굳이 부동산 때문에 금리를 올린다고 하면 될 것을 다른 이유를 대야 하나 하고 갸우뚱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한은은 늘 다른 이유를 대길 좋아했던 조직이며, 이날도 다르지 않았다.

■ 가계부채 급증, 부동산 때문이란 말 적극적으로 못하는 조직

사실 한은은 가계부채가 문제라면서도 부동산 얘기와 엮는 일엔 조심스러워 했다.

한국 중앙은행의 타고난 이상한 버릇이기도 하다.

가계부채는 부동산의 이면이다. 집값이 오르면 대출금액이 늘어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지난주 한은 국감장에서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은 "가계부채의 원인은 부동산 가격 폭등이다"라며 "한은 총재도 위험선호, 차입에 의한 수익 추구을 거론하면서 국민을 탓한 것 아니냐"고 했다.

집값이 폭등하면 대출 규모와 차입이 늘어나는 것도 당연하다.

아울러 최근엔 집값 폭등으로 화폐가치가 폭락하자 '인플레 헤지 차원'에서 빚을 내 주식투자를 한 사람들도 부지기수였다.

한 증권사의 임원은 "작년, 올해 주식 직접투자가 급증했던 중대한 이유는 집값 급등 때문"이라며 "집값이 너무 폭등하자 주식이라도 해서 돈을 벌어야 '실질적인' 자산 감소를 막을 수 있다고 느낀 사람들이 이 시장에 상당수 뛰어들었던 게 진실"이라고 했다.

그는 "물론 그들 중 올해 뒤늦게 뛰어들었던 사람들은 대부분 자산 감소 헤지는 커녕 피를 봤다"고 했다.

■ 부동산 폭등과 한은의 부동산에 대한 무지

기재부 차관을 지낸 추경호 의원은 한은, 그리고 한은 총재의 '부동산에 대한 무지'도 꼬집었다.

추 의원은 작년 여름 한은 총재가 정부의 주택시장 안정화 의지를 높게 평가했던 점도 꺼집어냈다.

추 의원은 "작년 7월 이주열 총재는 정부 부동산 대책에서 주택시장 안정화 의지가 상당히 강력하다고 평가했다. 특히 다주택자 투기수요를 억제하는 데는 분명히 효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앞으로 주택가격의 추가 상승 가능성은 상당히 제한적일 것으로 본다고 말한 바 있다"고 지적했다.

사실 추 의원이 거론한 작년 7월 이전에도 이주열 총재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나오면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등 기대하는 발언을 하곤 했다. 하지만 이주열 총재의 '정부정책의 집값 안정효과 기대'는 빗나가기 일쑤였다.

한은 총재는 정부 대책이 나온 뒤 '집값 상승세 둔화가 기대된다'는 식의 발언을 해왔지만, 그 말이 실현된 경우는 없었다.

이에 따라 통화당국이 부동산에 대한 직접적 언급을 꺼리는 데엔 '한국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자산시장에 대한 무지와 두려움이 영향을 미치는 것 아니냐는 의심까지 있다.

■ 경제와 물가?...그냥 부동산 때문이라고 하면 안 될까

한국은행 국정감사에서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은 "물가갭, GDP갭으로 볼 때 한국의 금리인상은 근거가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은이 판단하는 2% 수준의 잠재성장률 등을 감안할 때 조만간 GDP갭이 플러스로 돌아선다는 주장 등은 설득력이 없다고 했다.

유 의원은 "한은이 물가와 경제 상황을 도외시하고 주택가격 때문에 금리를 인상하는 중"이라고 주장했다.

이 야당 의원의 의심처럼 실은 한은이 집값 때문에 금리를 올리는 중이라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일반인, 금융시장 종사자, 경제학자 등 직업군을 가리지 않고 한은의 금리인상을 '부동산 대응'으로 이해하는 사람이 널려 있다.

물론 한은 내 부동산 거론이 과거와 같은 '커다란' 금기에선 벗어난 듯한 느낌도 있다.

고승범 전 금통위원(現 금융위원장)은 집값 급등을 직접 거론하면서 금리인상을 필요성을 거론하기도 했다.

이런 측면을 감안할 때 한은 스스로 집값 때문에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한은은 '낡은 습관' 때문인지 직접적으로 통화정책을 집값 상승세가 연결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국감장에서 한국개발연구원(KDI) 수석 이코노미스트와 통계청장(2015~2017년)을 거친 야당 의원 유경준은 '한은이 집값 때문에 금리를 올리는 것'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유 의원은 특히 "물가 상승률도 OECD 중 24번째고, 경기도 그리 좋지 않은데 금리를 인상한 것은 성급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은 총재가 11월에 또 인상한다고 시그널을 보낼 필요가 있었나"하고 비판했다.

유 의원은 '경기와 물가'를 1순위에 놓고 한은 정책을 비판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유 의원의 주장과 달리 '정통' 장기를 둘 때가 아니다라고 느끼는 사람도 많다. 이럴테면 부동산이 이 지경이 된 마당에 정통 장기가 아니라 말과 코끼리를 전면에 내세우는 '면상' 장기를 둬야 할 때라고 판단하는 사람도 많다.

자산버블 부작용이 심해 금리인상과 다른 정책들을 모두 조합해야 한다고 보는 사람도 많은 것이다. 경제학이란 학문의 병폐는 정답 없이 온갖 주장만 난무한다는 것이다.

아무튼 유 의원이 이런 주장을 펴자 이 총재는 "물가만 보고 통화정책을 펼 수는 없고, 금융불균형 리스크 등도 고려했다"고 답했다.

사실 한은 총재가 늘 돌려서 표현할 수 밖에 없는 그 금융불균형 리스크의 핵심은 결국 '부동산'이다

■ 부동산, 한은의 볼드모트

영국 작가 조안 롤링은 해리포터 시리즈를 통해 '악당' 볼드모트를 그려냈다.

볼드모트는 해리 포터의 부모를 죽인 원수이자 악의 세계에서 지존으로 통하는 인물이었다.

이 어둠의 마왕은 그 위세가 워낙 대단해 '이름을 불러서는 안 되는 자'로 통한다. 그 만큼 머글들과 인간 세계에도 위협이 되는 존재였다.

2000년대 중반 많은 사람들이 한은더러 금리를 올리라고 할 때, 또 한은이 금리를 뒤늦게 올렸을 때 상당수의 사람들은 '부동산으로 인한 금리인상 필요성', 그리고 '부동산 때문에 금리를 올리는 한은'을 거론했다.

하지만 한은은 해리와 그 친구들이 볼드모트를 언급하는 것을 꺼렸던 것처럼 부동산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힘들어했다.

최근들어 고승범 전 금통위원 등 꽤 많은 한국은행 관계자들이 부동산을 거론했다. 한은 관계자들이 그들의 볼드모트(부동산)를 언급하는 비중도 늘어났다.

하지만 한은에겐 여전히 그 이름을 부르는 데 부담이 남아 있다.

한국인들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자산이 부동산이지만, 한은은 여전히 그 이름을 직접 부르기 힘들어 한다. 이름을 부르는 것조차 어려운 만큼 이 시장에 대한 분석 능력도 없었다.

볼드모트의 위세는 여전히 살아 있어서 한은은 그냥 부동산시장을 '자산시장'이라고 칭하고 싶어한다.

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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