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 2024-04-30 (화)

(장태민 칼럼) 의대 증원 "해결책인가, 포퓰리즘인가" (상)

  • 입력 2024-02-08 10:43
  •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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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콤 장태민 기자] 의과대학 정원이 대규모로 늘어난다.

정치권 여와 야 가릴 것 없이 의대 정원 확대를 추진한 뒤 지난 6일 복지부는 의대 정원을 2천명 더 늘리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2006년 이후 18년째 3천명을 약간 넘는 정원(3,058명)이 유지되고 있는 가운데 대폭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한국사회에서 설득력을 얻은 결과다.

또 그간 국내 여러 지자체에선 공공 의대, 지역 의대 주장까지 내놓으면서 빨리 의사수를 더 늘리라고 목청을 높였다.

하지만 의사 단체를 포함해 사회 일각에선 중요한 문제가 '감정적으로' 결정됐다는 한탄하고 있다.

한국 경제, 한국의 미래 시스템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슈를 성급하게 결정한 것 아닌지 불안해 하는 목소리도 나오는 것이다.

아무튼 정부는 2025학년부터 대폭 늘어난 의대생을 선발하기로 했다.

■ 의사 정원 확대 주장

한국 사회에 의사수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은 한국의 급속한 고령화에 따른 의사수 부족, 현재의 필수 과목 의료진 부족 등에 근거하고 있다.

그간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오픈런, 원정 출산, 원정 입원이 일상화돼 있을 정도로 의사수가 심각한 부족을 나타내고 있다는 주장들이 나오곤 했다.

아울러 필수 의료 붕괴 징후가 완연해 지금 대대적으로 의사수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도 적지 않았다.

심지어 지금 바로 행동에 들어가지 않으면 고령화로 인한 의료서비스 수요의 증가 등으로 머지않아 우리나라 의료 전반이 붕괴 상태에 처할 것이라는 위협마저 있었다.

정치권에선 여야 가릴 것 없이 의사 정원 확대를 주장해 왔다. 야당이 오랜기간 의사수 확대를 주장해왔지만 최근엔 여당이 더 목청을 높였다.

최근 여당에선 "다른 주요국에서도 고령화에 대비하기 위해 의대 정원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우리와 인구가 비슷한 영국은 2031년까지 의대 정원을 1만 5천명으로 늘리기로 했다"면서 증원의 정당성을 웅변하기도 했다.

정치권과 국민 다수의 주장...'늘리는 게 답이다'

정치권은 여와 야 가릴 것 없이 국민들의 '더 많은 의사를 원한다'면서 의대 증원을 주장해 왔다.

문재인 정권 시절 정원 400명 확대 등을 주장하면서 전문간 집단인 의사들과 대립각을 세웠으나 윤 정부는 이보다 한술 더 떴다.

여당은 "매일같이 의료붕괴 조짐을 보고 있는 우리 국민들도 10명 중 8명이 의대 정원 확대에 찬성하고 있다. 정치권도 이 문제 만큼은 합의를 이루고 있다. 의사들 상당수도 마음속으로는 의대 정원 확대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주장하도 했다.

정원 확대가 문제 해결의 대전제라는 사실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는 말도 거리낌 없이 내뱉는다.

하지만 정치권 주장과 반대로 정원 확대가 답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이 문제를 잘 아는 '의사 집단'이 그렇다.

하지만 정치권이 '당사자인' 의사 집단과 제대로 대화도 하지 않고 무작정(?) 정원 확대가 답인 것처럼 얘기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는 등 문제는 상당히 복잡했다.

최근 여당의 윤재옥 원내대표는 "나라 전체에 100명의 의사가 필요한데 50명의 의사만 있다고 한다면 아무리 배치를 잘한다 해도 필수 의료와 지역의료의 붕괴를 막을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의사들이 자신들의 '이기적 욕심'만으로 의대 정원 확대에 반대하고 마음 속으로는 정원 확대가 필요하다는 느낀다고 했다.

과연 이런 주장이 사실일까. 이 정치인의 판단은 너무 자의적이다.

필자의 지인인 한 외과 전문의는 "전문가 집단의 얘기는 듯지 않고 아마추어들이 마치 다 아는 냥 군다"면서 "현실도 모르는 자들이 모멸적인 표현으로 의사들을 적으로 돌려세우고 있다"고 비난했다.

의사들은 대체로 반대한다.

필자의 지인은 정치권 주장과 달리 '의대 증원을 진정으로 반대하는' 의료 업계 사람들이 놀랍게도 많다고 소개했다.

문제 해결에 접근하는 '잘못된 사례'...전문가 무시하는 정책 결정은 위험

의대 정원을 늘리는 문제는 논점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하지만 전문가 집단과 제대로된 대화도 하지 않고 비전문가 집단인 정치권이 '의사 빼고 모두가 정원 확대가 찬성한다'는 식의 논리를 들이댔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사실 이런 문제는 '국민 투표나 정서'가 아닌 전문가 집단과의 의견 교환과 조율을 통해 풀었어야 했다.

의사들이 단순히 돈을 더 벌기 위한 이기심 때문에 증원에 반대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물론 돈을 더 벌고자 하는 욕망이 똬리를 트는 것은 인간사에서 너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의사들의 주장에 더 설득력이 실리는 부분 역시 적지 않다.

■ 한국 '명목' 의사수 다른 나라 대비 "부족하다"

한국은 OECD 대비 의사수가 적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OCED 통계를 보면 인구 1천명당 의사수는 한국이 2.6명으로 OECD 평균인 3.7명을 크게 밑도는 것으로 나타난다.

지금은 필수 의료 분야의 의사가 부족한 데다 인구 고령화가 급격히 진행됨에 따라 당장 의사수 부족에 시달리고 있어 '비상 상황'이라는 평가까지 나온 상황이었다.

응급실 뺑뺑이, 소아진료 대란, 수억원을 줘도 의사를 못 구하는 지방의 현실 등을 거론하면서 의사수를 대거 늘려야 한다는 주장들이 설득력을 얻었다.

심지어 일부에선 내년, 내후년 의료체계가 붕괴할 수 있다는 주장까지 펼쳤다. 국민들이 구급차를 타고 떠돌다가 죽고 지방에선 아파도 억지로 서울로 올라와야 한다고 비판했다.

의사 공급이 부족해 의사들만 돈을 잘 버니 이 참에 대거 늘려야 한다는 지적들은 많은 국민들의 속을 시원하게 만드는 '근거'가 되고 있기도 하다.

■ 한국 '실질' 의사수 다른 나라 대비 "부족하지 않다"

많은 국민들은 의사들이 자신들의 '밥그릇' 문제 때문에 증원에 반대한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다수 의사들은 이런 이런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일본과 미국의 의사수는 인구 1천명당 한국과 크게 차이 없는 2.6명 수준이며, 필수 의료분야(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흉부외과 등) 문제는 단순히 전체 정원을 늘리는 방식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본다.

많이 뽑으면 '낙수효과'로 필수 의료 쪽으로도 의사들이 많이 오지 않겠느냐고 하지만 전문가 집단은 단순한 논리라고 반박한다.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장은 최근 각종 온라인에서 "우리의 의사수가 상대적으로 적지만 일본과 미국이 우리와 비슷하고 그리스가 의사수가 6.2명으로 우리보다 훨씬 많다. 이 밖에 포르투갈, 리투아니아, 체코, 러시아 등의 의사수가 대표적으로 많다. 이런 나라들은 우리보다 의료 수준이 높은가"라고 되물었다.

단순히 의사수가 많다고 그 나라 의료 서비스가 선진국 수준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실제로 한국, 일본, 미국처럼 의사수가 적은 나라들이 오히려 의료 서비스 수준이 높다. 미국의 경우 의료비가 비싸서 문제이긴 하지만 한국과 일본은 '건강하게 오래사는' 대표적이 나라로 꼽힌다.

다른 나라에 비해 의사가 '실질적으로' 부족하다면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을까.

노 전 회장은 다른 나라보다 의사수가 적은지 '5가지 카테고리'를 통한 비교를 제안한다.

그는 △ 국민수명 △ 의료기관 이용률 △수술 대기기간 △ 의료의 질 △ 현재 의사의 증가 속도 등을 따져보고 판단할 것을 권했다.

한국은 평균 수명이 38개국 중 5번째이며 1~5위는 별 차이 나이 나지 않는다.

평균 수명은 일본이 84.4세로 1위지만 한국도 83.3세로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한국은 의료기관 이용 횟수는 연 17.2회로 압도적으로 많다. 한국인들이 받는 진료 수는 OECD 평균의 2.5배 더 많다.

입원 기간도 2.4배에 달한다. 수술 대기기간도 평균적인 나라에 비해 상당히 짧다.

한국은 의사수가 적은 데 국민들의 의사나 의료기관 '접근성'이 세계 최고 수준인 것이다.

이쯤 되면 '다른 나라 대비 의사수가 적다'는 주장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는 게 합리적일 수 있다.

한국 의사들의 '과잉 노동'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일각에선 의사들이 '돈을 벌기 위해' 노동 시간을 늘린다고 비난하지만, 그 덕분에 한국은 세계와 비교할 때 '적지만 많은' 의사수를 유지해 왔다고 볼 수 있다.

5시간을 일하는 의사와 10시간을 일하는 의사를 같은 '1명'으로 볼 수 없다. 아울러 의료 기술이 A급인 의사와 C급인 의사를 역시 동일한 '1명의 의사'로 볼 수 없는 노릇이다.

놀랍게도 한국 의사 1인당 연간 진료건수는 OECD 평균의 3.3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온다.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한국의 의사수는 오히려 '적지만 많은' 것이라는 전문가 집단의 반론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 의료업계 내 '한의들'...'양의들'의 이기심 도 넘었다고 비판하기도

전통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양의사들과 한의사들의 관계는 좋지 않았다.

사실 경쟁 집단의 입지가 약해지길 바라는 것은 인간사에서 쉽게 관찰되는 현상이다.

이번 의대 정원 확대를 반대하는 양의를 보는 한의들의 속내도 꽤 복잡할 듯하다.

한 때 대학교들의 한의학과는 지금의 의대 이상의 인기를 누렸다. 지금은 대학의 의대 정원이 찬 뒤에 서울대 공대를 가지만, 과거 한의대를 다 채운 뒤 의대를 가는 식이었던 시절도 있었다.

한의대가 전국 최고의 인기학과였던 시절 대학에 들어가 한의사가 된 필자의 한 지인은 양의사들의 이기심이 도를 넘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현재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양의들이 과도한 주장을 펼치고 있다고 했다.

"한국의 의사들이 적지 않다는 주장엔 사실 한의사 수치가 섞여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최대한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논리를 만드는 것이죠. 과거 변호사 수가 적어 국민들이 높은 소송비용을 물다가 지금은 변호사 수가 늘어나면서 국민들이 더 좋아진 것 아닌가요?"

가장 큰 문제는 의대를 졸업한 뒤 인턴, 레지던트 과정을 안 밟은 보통의 '일반의'들이 세금을 빼먹는 것이라고 했다.

"의대 졸업해서 인턴, 레지던트 과정도 밟지 않은 일반의들이 실비보험을 빼먹고 있습니다. 예컨대 병원을 개원해서 미용만 해도 월 천만원 넘게 벌고 있습니다. 백내장, 도수치료로 실비를 빼먹고 보험료만 올리는 일이 큰 해악이 되지 않았습니까. 이런 일이 없어지면 의사들 수입은 줄지만 의료 재정도 좋아지고 국가적으로 더 좋은 일 아닙니까?"

이 한의사는 의대 정원을 늘리면 질 나쁜 의사들이 늘어날 수 있다는 목소리도 과장이라고 주장했다. 의대에 들어가는 학생들의 점수와 의대 수준은 달리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인재의 의료계 쏠림 주장에 대해서도 동의하지 않았다. 의사 공급을 늘리면 페이가 낮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인재들이 공대 등 한국경제에 가장 필요한 쪽으로 가게되고 국가 경제가 더 기여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한의사는 의대 정원 확대에 반대하는 양의들의 목소리를 '견고한 카르텔의 성(城)'에서 나오는 주장이라고 폄하했다.

"의사 집단의 일은 공공의 영역에 속하지만 지금은 집단 이기주의가 너무 심합니다. 카르텔을 깨는 게 필요합니다. 증원을 통해 의사들의 페이를 낮춰야 하고, 또 페이가 낮아질 수 있다는 시그널을 주는 게 중요합니다."

그는 더 나아가 양의들의 '라이센스'를 지나치게 보장해주는 것도 문제라고 주장했다. 피부과 의사들이 하는 손쉬운(?) 업무 등에 대해선 개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은 피부 미용만 해도 월 천 이상 벌지 않습니까? 외국에선 피부 미용 정도는 간호사도 합니다. 간호사들에게도 피부 미용의 상당 부분을 개방해주고 하면 전체적인 사회의 효용이 올라갈 수 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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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보건복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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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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