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엘-에리언, 출처: X

[장태민의 채권포커스] 연준 조기인하 종용한 사람들과 현실적 전망...그리고 한국의 레벨
이미지 확대보기[뉴스콤 장태민 기자] 한국과 미국 금리 모두 최근 좁은 레인지 등락을 이어가는 중이다.
미국채 10년물 금리는 25일까지 6거래일째 4.2%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반면 한국 국채3년물 수익률은 전날까지 9거래일째 3.0%대를 기록 중이다.
레벨 부담을 느끼면서도 금리가 오를 경우 담겠다는 인식이 강해 금리 상단과 하단이 모두 막혀 있다.
한국의 경우 시장금리가 이미 2차례 이상의 금리인하를 반영하고 있어서 외국인이 선물로 수급 공격을 더 하지 않는 한 2%대 진입이 쉽지 않다는 평가가 많다.
미국의 경우도 이미 9월 금리 인하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인하 강도가 받쳐줘야 더 내려갈 수 있다는 진단이 많다.
다만 미국 시장에 투자하는 외국인들에겐 한국의 금리 결정이 별로 중요하지 않지만, 한국에 투자하는 내국인들에겐 미국의 스탠스 변화가 중요하다.
■ 유명인의 조기 인하 주장1...더들리
이런 분위기에서 미국 금융시장에서 말발을 세우는 사람들이 연준의 '7월 인하'나 조기 인하를 주장해 관심을 모았다.
이들은 미국 금융시장 대중매체 블룸버그에 직접 자신의 의견을 써서 연준이 금리를 내려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FOMC 부의장을 지냈던 윌리엄 더들리는 25일 블룸버그 기고를 통해 7월 금리인하를 주장했다.
윌리엄 더들리 전 뉴욕 연은 총재는 "연준이 다음주 회의에서 가급적 금리를 인하해야 한다"면서 "금리 인하로 경기침체를 막기에는 너무 늦었다. 지금 인하를 지체하면 위험이 더 커진다"고 주장했다.
경기와 관련해 이미 연준의 금리 인하 타이밍이 늦었다고 평가한 것이다.
더들리는 굳이 자신이 매파였지만 태도를 바꿨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더들리는 "나는 오랫동안 연준이 인플레 통제를 위해 금리를 현재 수준이나 그 이상으로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고금리 장기화 진영'에 있었다"면서 "하지만 환경이 바뀌었기 때문에 생각도 바뀌었다"고 했다.
■ 유명인의 조기 인하 주장2...엘-에리언
블룸버그에 기고한 더들리의 다음 타자는 투자자와 경제학자로서 명성을 떨쳤던 모하메드 엘-에리언이었다.
부모가 이집트 출신인 엘-에리언은 IMF, 씨티, 핌코, 하버드자산관리 등에서 경제학자, 투자자로서 명성을 쌓은 월가에서 말발이 서는 유명인이다.
엘-에리언은 25일 블룸버그 기고글에서 "미국 경제가 예상보다 빠르게 둔화되고 있다는 조짐을 감안할 때 연준은 7월 FOMC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인하할 수 있는 여지가 열릴 것"이라고 했다.
그는 다만 현재 연준의 사고방식이 상황을 오판하고 있을 수 있다고 추론했다.
그는 "현재 연준의 사고방식으로 볼 때 9월 17~18일 FOMC 회의에서 금리 인하 의사를 시사하는 데 그칠 가능성이 더 높다. 7월이나 9월에 정책을 완화하지 않는다면 2021년 물가 상승 압력에 대한 초기 대응에 실패한 후 신뢰도를 회복하려는 연준에게 또 다른 정책 실수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엘-에리언은 지금의 연준은 미국 물가가 2%까지 계속 하락할 것이란 자신감이 부족한 상태에서 기계적으로 2%라는 수치에 집착하고 있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물가상승률 2%가 적절한 목표인지 여부는 명확하지 않다. 총수요가 부족하고 공급 측면에서 일련의 호재가 있는 과거에는 적절하다고 여겨졌던 것이 공급망이 재편되고 국내 공급의 유연성이 떨어지는 파편화된 세계화 시대에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했다.
엘-에리언은 연준의 통화정책 접근법 자체가 낡은 것이란 분석했다.
그는 "연준이 시대에 뒤떨어진 인플레이션 목표, 부적합한 통화정책 프레임워크, 지나치게 데이터에 의존하는 사고방식에 사로잡히지 않았다면 미국경제는 연착륙하고 미국 예외주의를 유지할 가능성은 상당히 높아졌을 것"이라고 했다.
■ 연준 금리 인상을 주도하고 연초 인하 주장했던 불라드..."7월 인하는 없다"
코로나 사태 진정 이후 연준에서 금리 인상을 주도했던 사람은 전 세인트루이스 연은 총재를 지낸 제임스 불러드다.
불러드는 연준이 2022년 3월 금리를 올리기 시작하기 전부터 연준이 금리를 대폭 올려야 하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던 인물이다.
금리 인상 사이클 작동 뒤엔 연준 내 다른 멤버들보다 더 큰 인상룸을 예상했던 인물로 유명하다.
결국 제로 수준이었던 연준 정책금리는 불라드의 주장에 맞춰 2023년 7월 5.50%까지 대폭 인상됐다.
불라드는 작년 8월 세인트루이스 연은 총재 자리에서 사임한 뒤 학계로 돌아갔다.
매파의 대표 인물이었던 불라드는 올해 들어 금리를 내리자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2분기 GDP까지 본 뒤 불라드의 생각엔 변화가 온 모습이었다.
불라드는 "2분기 GDP 호조로 연준의 7월 금리인하 가능성이 사라졌다"면서 "경기침체 위험이 평상시보다 높지 않고 노동시장도 정상화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상반기 2% 가까운 성장률을 기록했다. 9월부터 경기침체가 시작될 수 있다는 신호가 될 수 있다. 이 수치는 현재는 경기침체를 가리키지 않는다"면서 "생산선 증가는 아직 미미하고 경제는 추세적인 성장 속도에 비해서 느려지고 있으며, 연착륙 중에 있다"고 평가했다.
수 년간 강력한 인상을 주장하다가 퇴임 뒤엔 인하를 주장했던 인물이 일단 7월 인하는 없다고 한 것이다.
■ 한국 투자자들, 미국 재료 압박 받으면서도 '이 레벨'은 싫은데...
시장 분위기로만 보면 미국의 9월 금리 인하는 기정사실이다.
시장의 이런 기대에 비하면 연준맨들의 관점은 갈라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내 투자자들은 한국 여건상 정책금리 인하는 미국보다 후순위인 상황에서 금리 레벨이 부담스럽다.
기준금리가 3.5%인 상황에서 국고3년이 3%에 바짝 붙어 있으니 불확실한 금리 결정에 베팅하기 싫은 것이다.
다만 이런 사람들도 미국에서 금리인하 압력이 지속되는 것은 부담스럽다.
미국의 금리인하 기대감 강화나 시점이 당겨질 수 있다는 분위기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매수나 국내 투자자의 숏커버를 자극해 금리 레벨을 더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국인 때문에 금리 레벨이 과도한 수준으로 낮아져 있어 뒤늦게 분위기에 편승하긴 어렵다는 말들도 나오고 있다.
A 증권사의 한 채권딜러는 "외인은 차익실현도 하면서 한국시장을 즐기고 있다"면서 "하지만 한국 투자자들은 지금의 상황이 과도한 것으로 느끼고 있다"고 했다.
그는 "한은은 지금 상황이 불편할 수밖에 없고 개인적으로도 시장 분위기가 과도하다고 본다. 한국의 현재 금리 레벨은 빨리 금리를 두 번 인하하지 않으면 가격 성립이 안 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레벨이 계속 유지되는 것은 어렵다고 본다. 이런 태도 덕분에 지금은 돈을 전혀 못 벌고 있다"면서 "부동산이나 가계부채 때문에 결국 당국 쪽에서 조치가 나오면 큰폭의 조정이 올 것"이라고 관측했다.
조달금리 대비 채권가격이 너무 비싸 미국에서 아무리 펌프질을 하더라도 당장 살 타이밍은 아니라는 평가도 있다. 국내도 미국의 상황 변화를 이미 충분히 즐겼다는 것이다.
B 딜러는 "국채, 공사채를 넘어 회사채까지 지금의 펀딩 코스트 대비 금리 수준은 납득이 안 된다"면서 "이렇게 꼬인 형국을 풀기 위해선 조기 금리인하가 필요한데, 그게 아니라면 장은 밀릴 수 밖에 없다"고 해석했다.
그는 "한은의 금리인하 의지가 박약한 상황에서 역캐리를 주구장창 버틸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했다.
다만 한국 금리의 레벨 부담에도 불구하고 국내외 통화당국이 금리인하를 앞두고 있다는 점 때문에 채권을 팔기 보다는 좀더 높은 일드를 찾는 여정은 이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란 관점도 보인다.
정혜진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높아진 레벨 부담 때문에 크레딧 스프레드는 상위등급의 경우 박스권 내 등락, AA급 대비 A급의 상대적 강세장 등이 유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8월 금통위에서 금리 인하 소수의견이 출현할 가능성이 높아졌고 반복되는 레벨 부담에도 금리 인하 기대는 커져 있다"면서 "국채 금리가 3%를 하향 돌파할 때 크레딧 스프레드도 더 좁혀질 동력이 생길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