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 2024-07-27 (토)

(장태민 칼럼) 공매도 전면금지

  • 입력 2023-11-07 15:06
  •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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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콤 장태민 기자] 전날 장 마감 뒤 자산운용사에서 근무하는 A씨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6일 주가는 평소에 상상하기 힘든 폭으로 뛰었지만 A씨는 진심으로 한국 금융시장이 걱정스럽다고 했다.

한국이 선진국이 됐다고 하지만 정치권이 포퓰리즘으로 금융정책을 악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개인투자자들이 '대통령님 감사합니다'라는 칭송 글을 올리고 있다면서 이런 식이라면 각종 금융정책이 산으로 갈 것이라고 했다.

■ 주가 폭등, 그리고 환율 급락

전날 코스피지수는 5.66%, 코스닥은 7.34% 폭등했다.

코스피는 134.03p 오른 1,502.37, 코스닥은 57.40p 오른 389.45를 기록했다.

개별 종목이 아니라 전체 지수가 이런 식으로 움직일 정도로 공매도 금지의 효과는 컸다.

지난주 미국 고용지표가 둔화돼 연준 금리인상 사이클 종료에 대한 기대감이 커진 데다 국내에서도 큰 선물이 전해진 것이다.

대내외 호재 속에 주가는 폭등하고 달러/원 환율은 25.1원 폭락한 1,297.3원으로 장을 마쳤다.

최근 1,350원 내외에서 등락하던 환율은 단 3일만에 무려 60원이나 내려왔다.

주식, 환율의 상호 작용 속에 투자자들의 기대감은 커졌으며, 공매도 세력들은 개인투자자 편을 든 정부의 강펀치에 맞아 비틀거렸다.

하지만 전일 주식으로 돈을 번 사람들 중에도 A씨처럼 한숨을 내쉬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선거를 위해 금융시장 운영 틀조차 흔들어야 하나 하는 비판도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

■ 기관투자자 A씨, 이번 조치는 '포퓰리즘 일상화' 신호

금융시장에서 20년 넘게 짬밥을 먹은 A씨는 이번 공매도 금지 조치를 좋게 보지 않았다.

그가 볼 때는 정부가 내세운 논리를 설득력이 없었다.

정부는 지난 일요일 2가지 이유를 내세워 공매도 금지 조치를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첫째는 경제적 이유였고 둘째는 법적인 이유였다.

정부는 우선 "고금리 환경 지속으로 글로벌 경제 성장세가 둔화되고 지정학적 리스크까지 증대되면서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는 이유를 댔다.

정부는 또 "그동안 제도개선에도 불구하고 외국인·기관 투자자의 불법 무차입 공매도가 반복해서 적발됨에 따라 공정한 가격형성에 대한 우려가 매우 높아졌다"고 했다.

하지만 A씨는 동감하지 않았다.

"한국 외 선진국 중에 지금 누가 경기 나쁘다고 '긴급' 공매도 금지 조치를 내립니까. 이건 누가봐도 정치적인 결정으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1차원적인 개인투자자들의 표심을 얻지 위한 행위에 불과합니다."

A씨도 물론 외국인이나 기관들의 무차입 공매도 등 불법에 대해선 문제가 크다고 했다. 하지만 이 문제는 법으로 해결해야지, 이걸 왜 거래의 틀을 바꾸는 식으로 대응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정부, 윤석열 정부 가릴 것 없이 언제부터인가 한국에선 포퓰리즘이 가장 사랑받는 '정치 철학'이 됐다고 한탄했다.

■ 기관투자자였던 B씨, "못된 짓 알고 있다. 얼마나 심했으면..."

A씨는 흔히 얘기하는 기관투자자의 영역에서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기관투자자들이 모두 개인의 적은 아니며, 그들도 내부의 문제도 알고 있다.

아울러 많은 개인투자자들이 주장하는 공매도 세계의 '기울어진 운동장' 주장에 대해 동감하는 사람들도 많다.

금융권에서 오랜 기간 종사하다가 최근 퇴직한 B씨는 공매도를 통해 개인들의 지갑을 터는 특정 기관, 외국인을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B씨는 "얼마나 심하게 개인들을 벗겨 먹었으면 '위기도 아닌 때에' 이런 조치를 취하겠느냐"고 한탄했다.

그는 이렇게 주장했다.

"금융밥 좀 먹었다는 사람들은 흔히 공매도 순기능도 얘기합니다. 하지만 그 순기능이란 좋은 말로 개인들의 재산을 수탈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적당히 해 먹어야 하는데 대놓고 해먹은 경우도 많습니다."

그는 이런 말도 덧붙였다.

"한국의 실력자 아무개씨가 홍콩이나 싱가폴 같은 곳에 헤지펀드를 차려서 공매도를 치고 금융권 관계자들을 포섭해 희한한 논리로 주가 하락을 부추기는 일도 있었던 것으로 압니다. 이런 일을 하는 데는 다른 나라 자본과 협잡을 했다는 의심을 받기도 합니다."

■ 공매도, 장점과 단점

공매도는 주식이나 채권 등 증권을 보유하지 않은 채 파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주가가 하락할 것으로 예상될 때 보유하지 않더라도 이 종목을 팔 수 있다. 다만 국내에선 이런 종목을 팔 때는 빌려서 팔아야(차입공매도) 한다. 무차입 공매도는 불법이다.

이후 예상대로 주가가 떨어지면 떨어진 가격에 되사들여(숏커버) 이를 갚으면 차익을 남길 수 있다.

공매도는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아울러 시장 과열을 방지하는 순기능도 가지고 있다.

시장 과열로 가격이 과도하게 오를 경우 공매도는 이를 진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공매도 행위 자체는 분위기에 부화뇌동하는 개인 투자자보다 전문 투자자에게 보다 친숙할 수밖에 없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하지만 한국시장에선 공매도를 악용한 '작전'이 횡행했다는 비판도 많았다.

주식을 공매도한 뒤 일부러 가짜 뉴스를 흘려 매도를 부추길 수도 있다. 덩치가 큰 기관이나 외국인이 이를 통해 시세조정을 즐겼다는 주장도 있다.

특히 한국에선 공매도가 '가격 발견 기능'을 하기보다 '가격 추가 왜곡' 기능을 했다는 비난도 많았다.

사실 회사의 적정가치란 게 미래 캐시플로, 평가툴과 엮여 있어서 적정한 '주가'를 정확히 산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름의 평가툴을 이용해 적정 주가를 제시할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특정 큰 손들이 '일반적으로 납득이 되는' 적정 주가를 한참 벗어난 가격까지 내리곤 한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았다.

결국 공매도 세력에 의한 매수자들의 손절, 뒤이은 가격 추가 하락이란 악순환 고리가 형성되기도 했다.

■ 공매도 전면금지, 우리만 하는 게 두렵다

개인투자자들은 '금융에 무슨 신뢰가 있느냐'는 말도 많이 한다.

하지만 금융은 신뢰의 게임이다.

특히 글로벌하게 엮여 있는 금융시장의 경우 외국인의 인심도 너무 크게 잃으면 안된다.

글로벌 롱숏 펀드 등은 특정국 주식은 사고 특정국 주식은 파는 등 다양한 거래를 한다. 이 과정에서 공매도도 유용한 수단이다.

하지만 이를 막아버리면 외국인은 '선진국 지수 편입을 앞둔 한국이 왜...'라며 오해할 수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의 정치적 리스크'를 심각하게 의식하게 되면 국내시장의 메리트는 떨어진다. 이 문제가 심각해지면 외국인들이 한국물을 팔고 떠날 수도 있다.

더구나 한국 주식시장은 MSCI 선진국 지수 편입을 노리는 중이며, 한국 채권시장은 내년 WGBI(세계국채지수) 편입을 기대하고 있다.

한국 정부의 이번 조처는 외국인을 설득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지난 3번의 공매도 전면금지 때는 글로벌 금융위기, 유럽 재정위기, 코로나19 사태 등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일반인들이 일상적으로 '경제 위기'라는 말을 자주 쓰지만 지금은 국내외 경제위기 상황이 아니다.

이번 조처는 외국인이나 외국계 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의심을 심어줄 수 밖에 없다.

■ 공매도 금지, 절대선 아니다..한국인들끼리 잘했다고 박수칠 수도 없는 문제

이날 오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나온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공매도 금지 조치에 대한 질문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이번 조치로 인해 MSCI 선진국지수 편입이 어려워졌다는 지적에 대해 추 부총리는 "MSCI 편입과 관련한 제도개선 사항은 계속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MSCI 선진국지수 편입 관련해 공매도도 많은 체크 사항 중 하나지만 정부가 공매도를 영원히 금지한다고 하지 않았다"고 했다.

공매도 금지는 내년 상반기까지다.

야당은 '당연히' 내년 총선을 앞둔 선거용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부총리는 "최근 불법 공매도와 관련해 불법 행태들이 나왔고 제도개선과 시스템 정비에 대한 우려들도 제기됐던 상황"이라고 했다.

공매도 전면금지에 부총리도 개인적으로 동의하고 잘한 정책으로 보느냐는 질문엔 "지금 판단은 그렇게 본다. 금융위에서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에서 공매도를 금지하면 MSCI 편입에 지장을 준다고 한 적이 있다는 지적에 부총리는 "금융위원장이 그런 취지의 얘기도 했을 것"이라고 답했다.

한미 금리차로 자본유출 위험이 있는 상황에서 공매도까지 금지해 위험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 부총리는 "시장 판단을 지켜보시라. 한쪽에선 많은 투자자들이 불법 공매도에 대해 우려했던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이날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은 "공매도 금지에 대해 갑자기 왜 했냐고 하는데, 주식·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하면 '한다한다한다'하다가 할 수는 없다. 갑자기 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사실 지난해 정권 교체 후 정부 관계자 중 '공매도 금지는 포퓰리즘이어서 개인들의 주장에 넘어가선 안된다'는 인식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한국이 만약 선진국이라면 다른 선진국들처럼 공매도를 정상적으로 안착시키기 위해 노력을 해야지, 제도 자체를 폐지하거나 공매도 금지를 남발해선 안 된다는 조언들도 보인다.

이러다 보니 이번 조치는 '정치적' 의심을 더 받는 것이다.

아무튼 정부는 공매도 금지를 결정해 버렸다. 그리고 전날 많은 개인들이 환호했다.

하지만 공매도 금지는 개인투자자들, 그리고 한국인들만 환호한다고 좋아할 일은 못 된다.

이번 조치에 대해 다른 선진국들은 '한국에 무슨 일이 있는 건가'라며 의아한 눈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일이 반복되면 한국에 대한 '의심'은 점점 강해질 수 밖에 없다.

공매도 금지는 절대선도, 절대악도 아니다. 하지만 이번에 전면금지를 내세운 시기, 그리고 정부가 제시한 이유 등을 보면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는 없다.

전날 폭등했던 주가지수는 이날 급락했으며, 외국인은 순매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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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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