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 출처: ECB
[장태민의 채권포커스] 무서운 라가르드와 유로존 금리 폭등
이미지 확대보기[뉴스콤 장태민 기자]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유럽 채권시장을 뒤흔들었다.
라가르드는 예상을 뛰어넘는 매파적 발언을 통해 유럽 채권시장에 카운터 블로를 날렸다.
라가르드는 지난 2011년 7월부터 2019년 9월까지 장기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를 역임한 뒤 2019년 11월부터 ECB 총재를 맡고 있다.
프랑스 산업통상부와 재무부에서 장관을 지낸 뒤 IMF 수장을 거쳐 지금은 가장 많은 선진국들이 모여있는 유로존에서 통화정책을 이끌고 있다.
라가르드는 상대적으로 도비시한 면모를 보인 적이 많았지만, 러-우 전쟁 등으로 유로존 인플레이션이 심각해지자 상당히 매파적으로 변했다.
그리고 2022년말 라가르드는 시장을 뒤흔드는 발언을 내놓으면 글로벌 채권시장을 긴장시켰다.
■ ECB, 금리 인상과 함께 QT 예고
유럽중앙은행(ECB)은 15일 기준금리를 50bp 올렸다.
ECB는 리파이낸싱 금리를 50bp 높인 2.50%로 결정했다. 지난 회의의 75bp 인상에서 인상폭을 누그러뜨린 것으로 시장의 전망에 부합했다.
예금금리와 한계대출금리도 각각 50bp씩 조정해 2.00%, 2.75%로 인상했다.
양적긴축(QT)도 내년 봄부터 실시하기로 했다. 유로존은 내년 3월 자산매입프로그램(APP)의 만기도래 채권 재투자 축소 방식으로 QT를 시작할 방침이다.
12월 통화정책 회의에선 미국과 영국, 그리고 유로존이 모두 빅스텝을 밟은 셈이며, ECB는 최근 4차례 통화정책 회의에서 매번 금리 인상을 단행해 총 250bp를 올렸다.
이같은 금리 인상 강도는 현재과 같은 유럽 통화정책 시스템 태동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유로화는 지난 1999년 1월 경제통화동맹(Economic and Monetary Union) 출범과 함께 회계상 단위로 사용됐다.
유로존이 금리를 계속 올릴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물가 때문이다.
유로존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 10월 10.6%에서 11월에는 10.0%로 상승폭을 0.6%p 축소했으나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ECB는 12월 회의에서 인플레이션 전망치를 올해 8.4%, 내년 6.3%, 2024년은 3.4%로 상향 조정했다. 물가 상승세가 둔화되지만 여전히 물가 목표 2%와는 거리가 있어 ECB는 매파 본색을 과시했다.
■ 라가르드의 강렬한 추가 금리 인상 예고
라가르드는 통화정책 회의 이후 "내년 금리인상이 이른 시점에 끝날 것이라고 예상하지 말라"고 경고하면서 ECB가 향후에도 상당한 추가 인상에 나설 것임을 시사했다.
통화긴축이 상당기간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정책 전환을 섣불리 예상하지 말라고 압박했다.
라가르드는 "ECB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ECB는 피벗하는 게 아니다"라며 "최소한 내년 2월과 3월 통화정책 회의에서 각각 50bp 인상을 단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예상을 크게 뛰어넘는 매파적 발언이었다.
ECB는 또 내년 3월부터는 지난 8년에 걸쳐 매입했던 5조 유로 규모의 채권 규모를 줄여가는 양적긴축(QT)을 시작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금리인상과 양적긴축을 강력하게 거론하자 주변 사람들도 '이렇게까지 매파적일 필요가 있느냐'는 반응을 나타내기도 했다.
비토르 콘스탄시우 전 ECB 부총재가 트위터에서 "이날 ECB의 결정과 라가르드 총재의 발언은 과도할 정도로 호키시했다. 이는 경기침체 상황을 불필요하게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고 비판할 정도였다.
■ 크게 놀란 유로존...폭등해 버린 금리
라가르드의 예상보다 강한 매파적 발언을 접한 뒤 유럽 시장금리는 폭등했다.
유로존 맹주 독일의 2년물 국채 금리는 23.48bp 폭등한 2.3619%, 10년물 수익률은 13.86bp 뛴 2.0754%를 기록했다.
라가르드 발언에 분트채 금리, 프랑스 금리 가릴 것 없이 점프했다.
프랑스 2년물 금리는 23.24bp 폭등한 2.3781%, 10년 금리는 17.20bp 뛴 2.5883%를 나타냈다.
상대적으로 크레딧이 좋지 않은 이탈리아 금리는 폭등했다. QT가 시작되면 돈을 빌려야 하는 이탈리아 상황은 더욱 악화될 수 있다. 결국 이탈리아 금리는 장기물, 단기물 모두 금리가 30bp 넘게 폭등했다. 이탈리아 2년 금리는 33.09bp 폭등한 2.9677%, 10년물은 30.18bp 뛴 4.1471%를 기록했다.
다른 유로존 금리도 크게 뛰긴 마찬가지였다. 스페인 2년물은 23.64bp 뛴 2.5642%, 10년물은 18.74bp 상승한 3.1468%를 기록했다.
라가르드의 강력한 발언에 유럽 주요국에서 금리가 무섭게 뛴 것이다.
■ ECB의 낙관적으로 변한 경기 전망과 비관적으로 변한 물가 전망
ECB는 성명서에서 충분히(sufficiently) 긴축적인 레벨에 도달하기 위해선 상당히(significantly) 금리를 올려야 한다고 했다.
ECB는 결국 인플레이션 제어를 위해 중립금리 이상의 정책금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또 시장이 감안하고 있던 3% 정도의 금리는 터미널 레잇에 못 미친다는 점을 시사한 것이다.
ECB가 상당히 매파적으로 변한 데엔 경제에 대한 나름의 자신감, 물가에 대한 부담이 동시에 작용했다.
ECB는 성장률 전망을 올해 3.4%, 내년 0.5%로 제시했다. 이는 지난 9월의 2.8%, -0.9%에서 상당폭 상향 조정된 것이다.
물가 전망도 상향했다. 일단 2023년 헤드라인 인플레이션 전망을 지난 9월(5.5%)보다 크게 높은 6.3%로 제시했다.
특히 근원 물가 상승률 전망도 2023년 3.5에서 4.2%로 크게 상향조정했다. 2024년 전망도 2.4%에서 2.8%로 올렸다. 2025년 수치도 목표치보다 높은 2.4%로 제시했다.
시장에선 ECB의 공격적인(?) 성장률과 물가 전망이 의아하다는 평가가 적지 않았다. 경기 낙관론과 물가안정 비관론의 정도가 심한 것 아니냐는 지적들이 나올 정도였다.
박윤정 NH투자증권 연구원은 "2023년 4.2%의 근원 물가 상승률이 정당화되려면 올해와 유사한 수요측 물가 압력이 확인돼야 한다. 그러나 유럽 집행위의 서비스 산업 서베이상 향후 수요 전망은 빠르게 축소됐다"며 "물가 전망도 성장 여건 대비 높아 보인다"고 평가했다.
그는 "미국 소매판매 둔화가 확인됐듯이 미국 수요 위축은 유로존 수출 경기의 강한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는 데다 ECB의 보유자산 축소도 금융안정 리스크를 키울 수 있다"며 "ECB 보유자산 증가율은 역성장 구조가 나타나 경제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했다.
임재균 KB증권 연구원은 "유로존의 물가 우려가 여전하고 경기 침체 우려에도 물가 통제에 대한 ECB의 의지가 강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내년 2월 50bp 인상, 3월 25bp 인상을 통해 예금금리는 2.75%, MRO는 현 2.5%에서 3.2%까지 인상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ECB의 물가 전망에 따르면 2025년은 돼야 물가가 2%대에 안착한다는 점에서 ECB는 금리인하에 대해서도 연준과 마찬가지로 선을 그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 유로존 QT의 위험
시중은행을 위한 ECB의 저리대출인 TLTRO 상환 스케줄에 따라 이달부터는 ECB 보유자산 증가세가 떨어질 수 있다.
과거 보유자산 감소는 경기에 상당한 여파를 주기도 했다. 지난 2013년엔 보유자산이 줄면서 유로존 비금융기업 신용 공급이 빠르게 위축된 바 있고, 이후 물가도 2%를 밑도는 흐름을 이어갔다.
하지만 ECB가 계속 우량 채권들을 담아두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금리 인상 정책효과를 위해서라도 QT를 통해 우량 국채를 시장에 풀어야 할 필요도 있었던 것이다.
박성우 DB금융투자 연구원은 "선물시장은 내년까지 ECB 정책금리가 75~100bp 추가로 인상될 수 있음을 가격에 반영하고 있는데, 지금 유로지역 레포시장 내 우량채권 담보 부족으로 단기자금시장에서 정책금리 인상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11월말 현재 유로시스템의 총자산 규모는 8.5조 유로에 달하고 양적긴축은 TLTRO 만기상환과 APP 재투자 중단의 두 방향으로 작동 중이라고 했다. 일단 ECB는 총 2.1조 유로의 TLTRO의 적용금리를 높여서 조기상환을 유도하고 있다.
박 연구원은 지난 11월 2,963억유로의 자발적 조기상환이 완료됐고 12월말까지 자발적 조기상환 및 만기도래 물량까지 4,994억이 상환될 예정인 가운데 2023년엔 1조 유로 정도가 추가로 상환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아울러 당장은 유동성이 풍부해 유동성을 줄여도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봤다.
박 연구원은 "유로시스템 내 초과유동성은 최소적립금 이상의 지준 적립액 + 대기성수신 - 대기성여신인데 현재 4.5조 유로 수준에 달한다"면서 "APP의 월간 만기도래 규모는 월평균 300억 유로 정도이고 3월부터 6월까지 150억 유로, 7월부터 연말까지는 200억 유로씩 줄인다고 가정하면 연간 1,800억 유로 가량 QT가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이런 구도라면 대략 2023년까지 유로시스템 B/S 규모는 6조 유로 후반~7조 유로 초반까지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유로존 내에 고통받는 국가가 나타날 수 있다. ECB의 매파적인 흐름, 특히 QT는 이탈리아와 같은 재정취약국을 더욱 옥죌 수 있는 셈이다.
그나마 ECB가 채권을 떠안아줘 이탈리아와 같은 나라가 버틸 수 있었지만, 내년부터 QT에 나서면 리스크가 커질 수 밖에 없다는 인식도 적지 않다. 당연히 유로존 내에서 독일과 이탈리아 금리차는 더욱 확대될 수 있는 것이다.
박 연구원은 "ECB 보유 국채의 내년 만기도래 물량은 이탈리아가 중심국보다 많다. 23년 만기도래 국채 중 50% 재투자 중단을 가정하면 이탈리아는 GDP 3.5% 규모의 차환발행용 국채를 더 이상 ECB가 아닌 시장에서 소화해야 한다"고 우려했다.
그는 "주변국 국채시장 스트레스가 커질 경우 ECB는 1차 대응으로 중심국 PEPP 만기도래 물량을 주변국으로 배분하는 방법이 있다. 다만 이는 근본적 해결책이 되기 어렵고 TPI가 최후 방어선 역할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TPI(Transmission Rrotection Instrument)는 통화정책 영향으로 여건이 악화된 나라의 채권을 사주는 제도다.
과거 마리오 드라기가 도입했던 무제한 국채매입 프로그램인 OMT(Outright Monetary Transaction)와 비슷하다. 2012년 7월 남유럽 위기 절정 때 '슈퍼 마리오' 드라기 총재는 무슨 일을 해서든 유로를 사수하겠다고 하면서 이 제도를 도입한 바 있다.
한편 향후 TPI 가동 여부는 ECB의 재량에 달려 있는 데다 정치적 성격도 있어 논란을 부를 수 있다는 지적들도 있다.
자료: ECB 통화정책 성명문의 결론 부분, 출처: ECB
[장태민의 채권포커스] 무서운 라가르드와 유로존 금리 폭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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