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콤 장태민 기자] 지난 10월 금리결정회의(통방)에서 금통위원들의 경기, 물가, 환율 등에 대한 관점이 꽤 나뉘어졌다.
고물가와 고환율에 비중을 두는 사람들은 긴축 필요성을 강조한 반면 경기에 무게를 두는 사람들은 정책 강도나 속도조절에 무게를 뒀다.
그래서 당시 이창용 한은 총재가 제시한 결론이 '물가를 고려해 금리인상 기조률 유지하되, 인상 폭은 다른 많은 요인들과 이로 인한 영향을 보고 결정하겠다'는 것이었다.
금통위는 "고물가에 대응한 금리인상 기조가 여전히 적절하지만, 향후 금리인상 폭과 강도에 대해서는 대내외 여건을 확인하는 게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 지형 넓히는 비둘기파...'환율 요인 과장하지 말자'
지난 10월 금리결정회의에선 금통위 내 비둘기파의 대표 선수인 주상영 위원이 동료를 얻었다.
임기 만료일이 2026년 5월로 가장 많이 남은 신성환 위원이 주상영 위원의 편에 선 것이다.
10월 회의 당시 이 2명의 금통위원은 25bp만 올리자고 주장했다.
지난 회의 금통위 내 상대적으로 도비시한 세력들이 진군한 가운데 이들은 일단 '환율의 정책 영향력'을 다른 위원들보다 덜 중요하게 봤다.
10월 빅스텝 결정엔 연준의 강도 높은 긴축에 대응하는 차원, 즉 환율 요인(자본유출입 문제 등)이 크게 작용했지만 상대적으로 도비시한 두 위원은 환율을 지나치게 고려해야 해선 안된다는 관점을 노출했다.
예컨대 A 위원은 "외환부문의 안정도 통화정책 결정 시 주요 고려사항이기는 하지만, 불규칙한 환율변동에 대하여 기준금리 조정으로 일관성 있게 대응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며 "원칙적으로 급격한 자본유출과 대외신인도의 추락과 같은 한계적 상황에 봉착하지 않는 한 국내 경기와 물가, 그리고 금융안정 상황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했다.
B 위원도 "한미 금리차가 추가적으로 확대되고 이에 따라 자본유출압력이 커지는 것에 대한 경계감이 커지고 있지만 국내 통화정책이 원/달러 환율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평가하고 있다"며 "최근의 원/달러 환율 상승은 미국 통화정책 긴축기조 등에 따른 달러화 강세가 견인하는 가운데 내외금리차, 무역수지, 엔화 및 위안화 약세 등이 복합적으로 원/달러 환율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경기 둔화에 보다 초점을 뒀다.
A 위원은 "수출과 투자가 부진한 흐름을 이어가는 가운데 올해초 거리두기 해제 이후 대면서비스를 중심으로 내수회복을 이끌어온 민간소비도 고물가·고금리의 지속 및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로 증가세를 계속 이어가기는 힘들 것"이라고 했다.
B 위원도 "대외여건 및 긴축적 통화정책 기조에 영향받아 경제 성장세가 약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내년에는 8월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 시점에서의 전망치보다 낮은 수준의 성장세를 나타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 헤게모니는 아직 매파들에게...금통위 지형 매파 여전히 2/3로 우세
다만 다수 금통위원은 물가, 환율 우려에 여전히 큰 방점을 찍고 있다.
향후 경기 둔화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물가를 안정시키는 데 실패할 경우 건전한 성장 자체가 힘들어지기 때문에 여전히 물가에 무게를 둘 때라는 입장인 셈이다.
C 위원은 "물가 상승압력과 외환부문의 기대 쏠림에 적극 대응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했으며, D 위원은 "기준금리 인상을 가속화해 정책기조를 긴축적 수준으로 조기에 전환하고 물가안정세가 확고히 다져졌다고 판단될 때까지는 그 수준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D 위원은 특히 "중립범위의 기준금리 수준으로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물가상승압력을 낮추고 인플레이션 기대를 안정화시키기 어려워 물가상승압력을 통제할 수 있는 적절한 규모의 금리인상을 통한 강력한 물가안정 의지와 전망을 제시해 원화의 실질가치에 대한 시장참가자들의 신뢰를 확고히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E 위원은 "경기의 하방위험이 증대되고 물가 상승세가 주춤한 모습이나 물가상승 수준이 여전히 한국은행의 물가안정목표 2%를 크게 상회하고 고물가의 확산과 지속성을 경계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내외금리차 확대가 원화 약세 기대 쏠림과 자본유출 심화 등 외환부문 불안정뿐만 아니라 추가적 물가상승 압력으로 작용하는 점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F 위원도 "여전히 높은 물가에 대처하고 금융·외환시장의 안정을 도모할 필요가 크다"며 50bp 인상에 손을 들었다.
■ 간과하기 어려운 통화정책 헤게모니가 움직이는 방향
통화정책에선 변화의 방향이 중요하다.
이런 가운데 매파들도 경기 우려에 대한 목소리를 나몰라라 할 수는 없었다.
물가와 환율 안정을 위해 빅스텝 의견을 냈지만, 앞으로는 좀더 종합적으로 보면서 대응해야 한다는 뜻을 비쳤다.
예컨대 C 위원은 "향후 금리인상의 폭과 속도는 향후 국내외 경제 및 금융 상황을 봐가며 유연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했고 E 위원은 "앞으론 해외 주요국의 경기 및 금리 경로, 국내 성장과 물가 흐름, 금융안정 상황과 금융시스템 전반의 감내력 등을 고려해 결정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했다.
F 위원은 "기준금리 인상과 관련하여 고민했던 가장 큰 문제는 의도치 않은 과도한 경기 하락 가능성이나 현 시점에서 우리 경제가 현재의 금리수준과 향후 당분간 이어질 수 있는 금리인상 기조를 감내할 수 있다고 봤다"면서 "취약부문에 대한 면밀한 모니터링과 선제적 대책 마련도 필수적"이라고 했다.
매파들은 물가, 환율 중요성에 무게를 두면서도 지속되는 금리인상이 경기에 의도치 않은 타격을 입히지 않을까 우려했다.
10월 회의가 끝난 뒤 레고랜드 사태 파장으로 채권시장이 마비되는 일이 벌어졌으며, 여전히 각종 부동산PF 관련 우려, 부동산 프로젝트에 많이 손댄 금융사에 대한 우려 등이 이어지고 있다.
아울러 도처에서 부동산PF 등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한국이 예상치 못한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지적들도 나오는 중이다.
부동산 가치평가 업무를 하는 한 50대 감정평가사는 "지금은 부동산PF 문제로 인해 한국경제가 자칫 나락으로 빠지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도 강해진 상태다. 김진태 강원지사는 어쩌면 ABCP란 말을 처음 들어봤을 것이고 자신이 무슨 실수를 했는지 잘 모르는 것 같았다"면서 예상치 못한 경기 경착륙에 대비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건설 관련 회사, 이와 연관된 각종 금융사들 쪽에서 안 좋은 얘기들이 계속 들려올 수 있는 상황이라는 우려들도 이어지는 중이다.
■ 한국이 처한 현실의 한계는...우리 일을 우리 맘대로 할 수 없는 것
경기 둔화, 그리고 각종 프로젝트 파이낸싱에 대한 우려 등은 기본적으로 미국의 금리인상과 맞물려 있다.
오랜기간 이어진 저금리 시대에 부동산PF는 증권사들의 큰 수익원이었으나 지금은 전국 각지에 레고랜드와 같은 곳이 한, 두 군데가 아니다라는 말들도 많이 나돈다.
ABCP는 말할 것도 없고 안전채권에 준하는 채권마저 거래나 발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금융당국이 계속해서 조치를 발표해야 하는 실정이다.
하지만 글로벌 물가 흐름, 자기나라 상황에 가장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미국 상황 등을 보면 한국 통화당국이 적극적으로 유화적인 제스추어를 취하기도 만만치 않다.
이날 나온 소비자물가 상승을 5.7%로 9월(5.6%) 수준과 비슷했으나 근원물가들을 보면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이 드러났다.
농산물및석유류제외지수의 전년비 상승률은 6~9월 4.4~4.5% 수준이었으나, 10월엔 4%대 후반(4.8%)으로 한 단계 더 뛴 것으로 발표됐다.
이승헌 한은 부총재는 소비자물가 발표 뒤 회의를 연 뒤 "소비자물가는 내년 1분기까지 5%대의 높은 오름세를 이어갈 것"이라며 "근원물가는 개인서비스와 내구재를 중심으로 오름세가 확대됐으며, 기대인플레이션4%대의 높은 수준을 지속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연준도 긴축 강도 둔화에 기대는 일도 그렇게 속이 편하지는 않다.
금리 인상 강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나쁜 게 좋은'(Bad is good) 시절이지만, 미국 지표들이 예상보다 양호한 모습을 보여줄 때도 많기 때문이다.
미국 노동부가 1일 발표한 구인·이직보고서(JOLTS)에 따르면 미국의 9월 기업 구인건수는 1,070만 건으로 전월 1,030만 건보다 늘었다. 이는 예상치인 980만 건을 크게 웃도는 것으로 FOMC 결과 발표를 앞두고 긴축에 대한 두려움을 키우는 역할을 했다.
증권사의 한 채권딜러는 "11월 금통위의 25bp 인상을 예상하지만 FOMC 결과 등을 확인하고 갈 수 밖에 없다"며 "글로벌하게 경기 우려는 커지는 중이다. 그런데 미국 지표들은 생각보다 좋고 각국 물가는 또 생각 만큼 내려오지 않아서 고민이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장태민의 채권포커스] 금통위 헤게모니가 움직이는 방향...그리고 한국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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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한국은행
[장태민의 채권포커스] 금통위 헤게모니가 움직이는 방향...그리고 한국의 한계
이미지 확대보기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