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콤 장태민 기자] 최근 국내외에서 통화긴축 속도조절론이 부상했다.
미국 연준에서 시작돼 유럽으로 긴축 속도조절 가능성을 거론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한국은 레고랜드발 신용경색 위기를 맞아 그간 일각에서 제기해 왔던 10월, 11월 2연속 50bp 인상 전망이 약화됐다.
■ 연준이 다시 불지핀 속도조절론
지난주 연준 인사들의 속도조절론은 큰 주목 받은 바 있다.
일부 연준맨들이 FOMC 블랙아웃 기간 진입 전 당장은 아니지만, 향후 금리 인상을 멈출 필요성이나 경기 침체 우려 등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미국 매체 월스트리트저널은 올해 남은 두번의 금리결정회의 75bp와 50bp 인상 조합을 거론하면서 내부 분위기가 속도 조절로 모아지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지난주 에반스 시카고 연은 총재는 금리 인상을 멈추고 관망하는 전략의 이점을 설파하면서 연준의 변화에 대한 기대감을 키웠다.
데일리 샌프란시스코 연은 총재도 빠른 금리 상승이 미국 경제를 침체로 몰아넣는 것을 피해야 한다고 발언해 연준 관계자들 사이에 강도 높은 긴축에 대한 부담이 커지고 있는 중 아니냐는 의구심을 키웠다.
이런 가운데 간밤엔 유럽 쪽에서도 변화의 신호가 나타났다.
우선 유럽중앙은행(ECB)은 27일 예상대로 2연속 75bp 인상을 단행했다.
주요 재융자 금리(MRO) 2.00%, 예금금리(DEF) 1.50%, 한계대출금리(MLF)를 1.25%로 결정했다.
유로존 9월 물가상승률이 9.9%로 거의 10%에 달한 뒤 연속 75bp 인상은 당연한 결정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독일 금리가 15bp 넘게 급락한 데서 보듯이 시장은 변화에 주목했다.
독일 분트채 10년물 금리는 15.42bp 급락한 1.9576%, 독일2년물은 18.03bp 폭락한 1.7654%를 기록했다. 유로/달러 환율은 전장 대비 1.1% 넘게 떨어지는 등 유럽에서도 긴축 속도조절론이 주목을 받은 것이다.
■ ECB, 금리 더 올리긴 올려야 하지만...
이번 금리인상으로 ECB 기준금리는 2009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물가를 볼 때 금리를 더 올릴 수 밖에 없다.
ECB는 "유럽 지역내 경기침체 우려가 있지만 높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서라도 향후 수개월에 걸쳐 금리 인상 기조를 지속할 것"이라고 했다.
다만 변화의 시그널도 보냈다.
ECB는 지난달 가이던스에선 '금리가 향후 몇 차례 회의에서 인상될 것'이라고 밝혔지만, 이번 가이던스에는 '향후 기준금리를 올릴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혀 긴축적인 통화정책의 속도 조절 가능성을 비쳤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는 "목표치인 2%보다 5배나 높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서라도 ECB는 해야만 하는 일을 할 것"이라면서도 "ECB가 경기침체 가능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침체는 취약층에 가장 큰 영향을 줄 것"이라며 경기 역시 신경 쓸 수 밖에 없다는 신호를 보냈다.
투자자들은 ECB의 경기 침체 우려를 감지한 뒤 예상보다 이른 시점에 금리 인상이 중단될 수 있다는 기대감을 키웠다.
■ 한국, 크레딧 크런치로 한층 높아진 각종 비용
한국은 레고랜드 사태 여파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금융당국, 금융업계가 나서서 신용경색 문제를 풀어야 하는 지경에 처했다.
추경호 부총리는 지난 일요일(23일) "지자체가 보증한 ABCP에 대해 모든 지자체가 보증 의무를 성실히 이행할 것"이라며 약속했다.
한번 신용이 무너진 뒤엔 당연한 말을 계속해도 신뢰를 회복하는 게 쉽지 않다. 이에 따라 지자체장들이 모여서 보증 약속 준수를 다짐하는 해프닝을 벌여야 했다.
다만 높아진 금리에 대한 부담, 특히 부동산PF에 대한 우려는 깔끔하게 해결되지 않는다.
레고랜드 사태 이후 지자체가 보증한 사업에 대한 조달비용이 10%를 넘어 2배 이상으로 뛰는 등 상황이 급변해버린 것이다.
결국 주택 관련 부동산 PF, 지자체가 시행하거나 보증하는 PF 사업의 비용이 크게 올라 돈을 더 빌려야 하거나, 사업 규모를 축소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초래된 것이다.
특정 ABCP, ABSTB가 간신히 고금리로 차환됐다는 소식도 흘러다니는 등 상황은 만만치 않다.
A 자산운용사 한 채권매니저는 "문제의 핵심은 부동산PF로 본다"면서 "당국이 적극 나서고 있지만, 그간 너무 많이 일들을 벌여 놓아서 이 문제가 어떻게 풀릴지 봐야 할 듯하다"고 말했다.
B 증권사의 한 채권발행 담당자는 "당장 정책당국에서 내놓고 있는 시장 안정화 대책의 가시적 효과는 미미한 느낌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진정될 때까지 시간이 필요했던 사안"이라고 밝혔다.
그는 "연말까지 대내외 금리정책 등도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 지금 상황서 굳이 빅스텝 또 밟을지 의문이란 평가 많아져
이런 가운데 물가 상승세가 정점을 찍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은 위안이 되는 부분이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이날 아침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10월 물가는 석유류 가격 하락 등으로 당초 경계감 가졌던 수준보다는 낮은 수준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물가 상승세가 더 확대되지 않는다는 점이나 미국·유럽 등에서 긴축 속도조절론이 제기된다는 점은 국내 채권 투자자들에게 위안이 되는 부분이다.
이런 요인들과 더해 신용경색 상황은 한은의 속도조절론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C 증권사 딜러는 "지금 같은 크레딧 위기 상황에선 사실 50bp 인상을 생각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지금은 안전채권과 신용채권이 따로 놀고 있는 상황이며, 수급이 중요한 상황이다.
채권 투자자들의 매수 여력에 한계가 있다보니 금융당국 지휘에 따른 채안펀드 등의 매수 등만 지켜보고 있다. 수급이 망가진 상황이어서 정책금리로 어떻게 해 보는 것 역시 한계가 있다.
D 증권사 관계자는 "지금 기준금리를 통해 크레딧을 어떻게 할 수도 없다. 그나마 은행채 발행이 잠잠해져 비빌 언덕이 좀 생긴 것"이라며 "결국 매수해 줄 데가 있다는 확신이 들어야 상황이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11시10분 현재 3년 국채선물은 44틱, 10년 선물은 114틱 뛰는 등 국채 가격은 크게 오른 상태다.
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