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 2024-11-01 (금)

[장태민의 채권포커스] 연기금 마진콜과 영란은행의 대응...단기적 효과와 장기적 한계

  • 입력 2022-09-29 13:39
  •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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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콤 장태민 기자] 영란은행이 28일 국채금리 급등, 파운드 가치 폭락 등에 따른 금융시스템 붕괴 위험을 막기 위해 장기국채 매입 재개 등 긴급 대응조치를 발표했다.

그 결과 연일 급등하던 영국 금리는 폭락했으며, 파운드화도 강해졌다.

영국10년물과 30년물 국채금리는 각각 50.06bp, 105.99bp 폭락한 4.0085%, 3.9264%를 나타냈다.

금리가 28일 하루만에 상상하기 어려운 낙폭으로 떨어진 것이다. 영국2년물은 40.30bp 급락한 4.2562%, 5년물은 37.18bp 하락한 4.4077%에 자리했다.

파운드/달러도 1.35% 오른 1.0879달러로 올라가는 등 중앙은행의 긴급 대응에 일단 시장은 안정을 찾았다.

■ 시스템 방어 위해 구원투수로 나선 영란은행

국채시장이 작동하지 않으면 금융 시스템 리스크가 커진다.

이에 영란은행은 금융 여건 악화와 신용 경색을 막기 위해 기간을 정해 잔존만기 20년 이상 장기국채(발행 1주일 이내 신규국채 제외) 무제한 매입을 발표했다.

영란은행은 무제한 매입기간을 28일부터 다음달 14일까지 13영업일로 잡았다.

최초엔 1영업일 기준 최대 50억파운드까지 장기물 국채를 매입한다는 입장을 제시했다. 만약 13일 연속으로 50억 파운드씩 매입할 경우 총 규모는 650억 파운드에 달한다.

국채매입으로 손실이 발생할 경우 재무부가 전액 보전한다는 입장이다.

보유자산 매각도 한 달 가량 늦췄다. 연간 800억 파운드 규모로 시행하려던 계획에는 변함이 없지만 시장 상황을 감안해 시행시기를 다음 달 3일에서 말일(31일)로 연기했다.

영란은행은 중기적으로는 2% 물가목표 달성을 위한 금리인상을 단행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같은 영란은행의 긴급 조치에 파운드화 가치가 1.5% 가량 급등하고 영국 금리는 폭락했으며, 미국과 독일 금리도 각각 21bp, 11bp 가량 떨어졌다. 이날 국내10년물 금리도 장중 20bp 넘게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 연기금 마진콜

영국 연기금들은 LDI 전략으로 헤지 혹은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여러 파생상품을 거래했다. 하지만 최근 채권가격이 급락하면서 일부 연기금들은 1억 파운드 규모의 마진콜이 나타난 것으로 알려졌다.

라이어빌러티 드리븐 인베스트먼트, 즉 LDI에선 보험사 등이 보험부채의 미래 현금흐름을 복제하기 위한 자산 포트폴리오를 구성해야 한다. 국채 등 안전자산 투자에 주식과 같은 수익 추구 포트폴리오나 스왑 같은 헤지용 상품 등을 엮는다

작년 말 영국 연기금의 총 자산은 2.85조 파운드인 만큼 알려지지 않은 것까지 포함된다면 마진콜 규모는 훨씬 큰 것으로 추론되고 있다.

확정급여(DB)형 연금펀드가 문제가 됐다. 이 펀드들은 운용자산의 절반 정도를 길트채로 채워놓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DB형은 확정기여형인 DC와 달리 운용성과와 관계없이 급여자에게 확정 금액을 제공해야 한다.

다만 금리가 낮은 상황에선 퇴직자에게 확정된 급여를 주기가 만만치 않다. 따라서 연금은 LDI 전략을 통해 부채(확정급여)를 헤지해야 한다. 할인율, 즉 금리가 낮아지면 부채규모가 커지기 때문에 스왑 등을 활용해 헤지를 한다. 아울러 스왑이 마진거래이다 보니 상당한 규모의 담보도 필요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영국 금리가 급등을 하자 담보가치 하락에 따른 마진콜이 발생했다. 마진콜에 대응해 현금을 확보하기 위해선 보유하고 있는 국채, 회사채 등 금융자산을 팔아야 한다. 특히 최근 영국의 경우 금융시장 불안으로 영국자산 매각이 쉽지 않아 해외 자산까지 팔아야 했다.

이같은 플로우는 미국채 금리 급등 등으로 연결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 전반의 변동성을 키웠다. 이런 과정에서 파운드화 가치는 당연히 급락했다.

결국 영란은행은 지켜보겠다는 식의 태도를 보이다가 시장 플레이어들의 위험 경고를 받아들이며 시장 개입에 나설 수 밖에 없었다.

■ 재정정책 실수와 어쩔 수 없는 중앙은행의 수습

최근 영국의 재정 부양책 발표 이후 영국 금리는 연일 급등한 바 있다.

특히 국채금리 급등에 따른 마진콜로 연기금, 보험사 등이 장기 국채를 대거 매도하면서 영국의 국채시장은 붕괴 직전에 놓이는 모습이었다.

영국10년물 금리는 22일 18.38bp, 23일 28.15bp, 주말을 지낸 26일 50.76bp, 27일 22.66bp 뛰는 등 조치 이전 단 4영업만에 120bp 점프했다. 이 레벨이 조치 발표 이후 50bp 가량 되돌려진 것이다.

최근 영국금리 움직임은 신흥국이 아닌 선진국 시장에선 상상도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사실 영란은행은 조기 시장 개입에 대해 소극적이었다. 하지만 연기금에 대한 유동성 압박으로 시스템 리스크가 커지고 시장 플레이어들이 경고하자 태도를 바꾼 것이다.

다만 장투기관인 연기금의 어려움 등을 감안해 매입 대상을 장기물로 한정했다.

영란은행 금융정책위원회(FPC)는 "국채시장 기능 이상으로 금융시스템 불안정 위험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이번 조치는 적절했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영국 새 정부의 재정정책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게 제기됐다.

영국 정부가 대규모 감세 정책을 펴면서 시장이 일으킬 경기(警氣)를 생각하지 못했다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는 평가들도 보였다.

헤지펀드 업계 큰손 레이 달리오는 "감세안 결정을 내린 사람들이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점을 이해할 수 없다. (정부의) 무능함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했다.

달리오는 "영국 정부가 국채 팔아서 공급하는 부채 규모가 수요보다 많을 것이란 우려가 영국 채권과 파운드 패닉 매도를 부른 것"이라고 일갈했다.

아울러 대규모 채권발행, 즉 국가 부채 확대를 통해 부를 창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면서 장기적으로 경기를 부양하는 것은 빚이 아니라 생산성이라고 했다.

인플레 때문에 통화정책으로 돈을 조여야 하는 상황에서, 섣불리 재정정책이란 명목하에 돈을 푸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가 하는 점을 여실히 보여줬다는 평가도 보였다.

A 증권사의 한 채권딜러는 "영국은 선진국들 중 가장 인플레가 높고 추가 인플레에 대한 우려도 심한 나라였다"면서 "이런 나라에서 새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감세안, 대규모 재정정책을 발표하니 금리가 폭등하는 등 시장이 미쳐버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고 했다.

그는 "결국 영국에 대한 신뢰도가 전반적으로 떨어진 상태"라고 했다.

■ 영란은행 조치, 일단 시장안정에 기여

영국이 일단 금융시스템 위기 가능성 차단에 나서면서 각국 금리는 일제히 떨어졌다.

국내 10년물 금리도 장중 20bp 넘게 폭락하는 등 레벨을 낮추고 있다.

국제금융센터의 김성택·박미정 연구원은 "영국발 금융불안의 근본원인, 즉 재정정책 신뢰도 실추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지만 금융시스템 위기로 악화할 수 있는 위험을 억제할 수 있는 방화벽이 마련됐다는 점에서 시장 불안은 다소 완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연구원들은 "금융시장은 이번 결정을 국채시장 붕괴를 막기 위한 '매력적이지 않으나 불가피'(unattractive but necessary)한 선택 등으로 평가하고 불안 완화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임재균 KB증권 연구원은 "영란은행이 거래마다 최대 50억 파운드의 채권을 매입하고 시장 상황에 따라 변동될 수 있다고 했다"며 "영란은행은 시장 불안이 지속될 경우 매입규모를 더욱 확대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놓은 셈"이라고 풀이했다.

영란은행이 위기를 막는 최종대부자 역할을 상기시킨 점은 일단 시장에도 '방화벽 구축'이라는 안정감을 선사했다.

■ 영국의 문제, 계속 된다

하지만 영란은행의 조처로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영란은행의 국채매입은 위기 상황에 대응한 한시적 조치일 뿐이다. 항구적인 대응과 거리가 멀며, 항구적으로도 대응할 수도 없다.

영국 새 정부가 출범과 함께 신뢰를 상당부분 잃어버린 상황에서 재정건전성에 대한 의구심도 계속 제기될 수 있다. 트러스 정부가 시장 신뢰를 다시 확보하지 않는 이상 영국물에 대한 불신도 이어질 수 있다.

아울러 통화정책 여건 자체도 좋지 않아 '영국의 불안'이 단번에 해결되기는 어렵다.

인플레로 인해 영란은행은 계속해서 기준금리를 올려야 하는 상황이다. 미국이라는 주변의 초강대국이 계속 통화긴축 기조를 이어간다는 점도 부담이다.

결국 영국 경제가 확연히 좋아지기 어려운 상황이어서 재정에 대한 의구심은 계속될 수 있다.

이러다 보니 영국의 경우 통화정책이 재정정책에 종속되는 피스컬 도미넌스, 즉 재정지배가 현실화되고 영국정부, 영란은행 모두 신뢰도 추락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경고마저 나오는 실정이다.

JP모간은 "트러스 정부의 재정정책 기조가 시장 신뢰를 회복하는 방향으로 개선되지 않을 경우 국채시장 불안은 언제라도 다시 나타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향후에도 영국의 재정정책이 부를 파장, 그리고 각국이 상대국에게 '인플레 가져가라'는 식의 게임을 하는 지금의 국면을 감안할 때 영국의 미래는 안심할 수 없다.

임재균 연구원은 "영국 정부는 여전히 재정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향후 영국 정부의 재정 계획 발표에 따라 시장 불안은 재발될 수 있다"며 "영란은행의 시장 개입으로 달러는 소폭 약세로 전환됐지만, 경기 침체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만큼 향후 달러는 재차 강세를 보일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연준은 달러 강세로 인플레이션을 해외로 수출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지금은 연준도 달러 강세가 좋은 상황"이라며 파운드에 대한 우려도 해소되지 않은 상태라고 진단했다.

■ 영란은행발 국내 금리 급락...불확실성은 여전히 높아

영란은행의 조치 영향으로 이날 국내 채권가격도 급등 중이다.

아울러 국내 금융당국도 전날 최근 금리 폭등에 따라 국고채 단순매입, 바이백을 발표했으며 회사채·CP, 주식시장 안정을 위해서도 노력을 한층 배가한다고 밝혔다.

다만 연준은 아직도 금리를 많이 올려야 하는 상황이며,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여전하다는 인식도 강하다.

B 증권사 딜러는 "영란은행 조치로 오늘 국내 채권가격도 급등했다"면서 "아울러 한국 등 각국에서 당국자들이 최금 금리 폭등 등에 대해 긴장하는 것 역시 채권에 우군이 된다"고 평가했다.

그는 다만 "언제든, 어떤 방향으로든 변동성이 폭발할 수 있는 상태"라며 "불확실성은 여전한 국면"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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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국제금융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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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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