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 2026-08-18 (화)

(장태민 칼럼) 대통령의 놀라운 무역수장 경질

  • 입력 2026-08-18 14:10
  •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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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여한구 전 통상교섭본부장, 출처: 산업부

사진: 여한구 전 통상교섭본부장, 출처: 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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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콤 장태민 기자] 무역 국가 한국의 통상협상 실무 책임자가 갑자기 옷을 벗었다.

여한구 산업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은 8월 15일 0시를 기해 직권면직 처리됐다.

대미 통상협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상황에서 협상을 이끄는 한국의 장수가 갑자기 일을 그만두게 되자 많은 사람들이 경악했다.

전쟁 중엔 장수를 자르지 않는다는 원칙에 반하는 이번 결정을 두고 온갖 뒷말이 안 나올 수가 없었다.

다만 정부는 경질 이유를 제대로 밝히지 않았다.

대미 통상 협상의 핵심 실무 총책임자를 후임자 지명도 없이 '이유도 밝히지 않고' 전격 경질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 의원면직 아닌 직권면직 당한 '한국의 무역 수장'

의원면직(依願免職)은 공무원 본인의 의사에 따라 사직서(사직원)를 제출하고 임용권자가 이를 수락해 공무원 신분을 소멸시키는 것이다.

형식적으로 볼 때 자발적 퇴직이다. 의원면직의 사유는 개인 사정, 이직, 건강 문제 등이 거론된다.

하지만 여한구 본부장은 직권면직(職權免職)을 당했다.

직권면직은 공무원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법령에 정해진 특정 사유가 발생했을 때 임용권자가 권한(직권)으로 공무원 신분을 박탈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처분이므로 통상 법적 절차(소명 기회, 인사위원회 심의 등)가 적용된다.

여한구 전 본부장이 직권면직을 당하자 각종 추론이 이어졌다.

우선 이재명 대통령이 직권면직 처분 4일 전 국무회의에서"권한을 악용해 사익을 추구하거나 무책임·부조리·부정부패를 저지르는 공무원에 대해선 엄정하게 문책해야 한다"고 한 점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았다.

대미 관세 협상 등 민감한 국면에서 여 전 본부장의 비위 의혹이 제기돼 잘린 것 아니냐는 의혹이 강하게 일었다.

일부에선 업무 과정에서의 일어난 부처간 갈등이 원인이지 않았을까 하는 추론도 내놓았다.

예컨대 청와대·대통령실과 통상교섭본부 간의 견해 차이, 중요 정보의 보고 누락, 협상 주도권 관련 내부 갈등 등이 직권면직의 사유였을 수 있다는 의혹도 일었다.

직무상 중대한 과실이 있었을 수 있다는 걱정도 보였다.

통상교섭본부장은 국가의 핵심 무역 정책과 대외 협상 카드를 다루는 자리다. 협상 과정에서 국가적 손실을 초래할 만한 중대한 직무상 과실이 발생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 전시 중엔 장수를 바꾸지 않는다...그런데 '바꾸지도 않고 그냥 잘랐다'

전쟁, 그리고 지금과 같은 경제전쟁의 시대엔 '전시엔 장수를 바꾸지 않는다'는 격언이 회자되곤 한다.

하지만 대미 통상 압박 등으로 한국과 미국간의 무역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는 대미 통상 사령탑을 전격 교체했다.

아니 교체가 아니다. 후임자도 정하지 않은 상황에서 일단 경질했다.

따라서 대통령과 통상교섭본부장 사이의 신뢰를 근본적으로 무너뜨리는 '매우 엄중한 사안'이 발생했다고 보는 게 논리적이다.

이러다보니 통상교섭본부장이 치명적일 실수를 저질렀거나, 큰 비위를 저질렀을 것이란 추론들도 난무했다. 혹은 대통령의 눈밖에 날 정도의 큰 잘못을 했을 것이란 우려도 보였다.

또 일각에선 한국정부가 '판을 바꾸기 위한' 모험수를 썼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측하기도 했다.

협상의 판세가 한국에 매우 불리하게 흘러간다고 판단할 경우 장수를 바꿈으로써 리셋(Reset)하는 모험수를 썼을 수 있다는 추측이었다.

■ 여한구, 산업부 '최고의 통상전문가'로 평가받던 인물

여한구 전 통상교섭본부장(행시36회)의 경질을 의아하게 보는 사람들이 많았던 이유 중 하나는 그가 산업부 내에서 가진 위상 때문이었다.

여 전 본부장은 산업부에서 '매우 능력이 뛰어난 사람'으로 평가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특히 산업부 내에서 '통상 분야'만 파는 데 대부분의 경력을 소진했다.

젊은 시절부터 실무 능력을 인정받은 뒤 미국 하버드 케네디스쿨(행정학 석사) 및 하버드 경영대학원(MBA)을 수료하기도 했다.

후배들 중엔 여 본부장의 뛰어난 영어 실력, 통상 협상 감각 등을 근거로 ‘산업부 3대 천재’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 무역 분야의 대체가 어려운 에이스이자 통상 분야의 핵심 자산이 하루 아침에 갑자기 경질돼 버렸다.

■ 문재인 정부도 신뢰했던 여한구...이재명 정부가 다시 썼는데...

여한구 전 본부장은 문재인 정부의 임기가 종료될 때 통상교섭본부장이었다.

윤석열 정부 등장과 함께 퇴임한 뒤 3년 만에 다시 민주당 정부가 들어서자 '또 다시' 통상교섭본부장이 됐다.

2025년 6월 이재명 정부의 첫 통상교섭본부장으로 지명·발탁되어 복귀했던 것이다.

일각에선 여 전 본부장이 산업부장관(現 김정관 장관) 자리를 원했을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다른 쪽에선 이재명 정부가 통상 분야 최고 베테랑을 다시 쓰는 게 낫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했다.

여 전 본부장은 문재인 정부가 끝날 때까지 통상교섭본부장을 하다가, 공직에서 물러난 3년 동안은 미국 워싱턴 DC의 세계적인 경제정책 연구소인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선임위원으로 활동했다.

여 본부장의 피터슨연구소 연구원 활동에서 보듯이, 그는 미국 정·재계나 통상 그룹과 네트워크를 유지하고 있던 인물이다.

무엇보다 여 전 본부장은 한·EU FTA, 한·미 FTA 개정 협상 등 대형 통상 협상 타결을 주도했던 검증된 전문가였다.

이재명 정부 출범 후 한미 무역협상이 큰 고비를 맞이한 가운데 '즉시 전력감'인 여 전 본부장이 1년 남짓 무역협상을 이끌었으나, 8월 15일 갑자기 경질됐다.

■ 통상교섭본부장, 국내에선 차관, 해외에선 장관이 되는 독특하고 중요한 자리

통상교섭본부장은 법적 신분상 '차관급'이지만, 실제 직무 권한과 역할 면에서는 '장관급' 대우를 받는다.

이러다 보니 ‘장관급 차관’으로 불리기도 한다.

정부 부처의 차관은 국무회의에 배석만 하거나 장관 부재 시 대리 참석하는 수준에 그치지만, 통상교섭본부장은 대통령령에 따라 국무회의에 상시 참석해 직접 발언하고 정책을 건의할 수 있다.

또 일각에선 국내에 있을 때 차관 대우를 받더라도, 해외에만 나가면 장관이 되는 자리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통상교섭본부장은 무역 협상시 한국의 통상장관(Trade Minister) 자격과 대우로 협상에 임하게 된다.

즉 대외 협상 대표성(장관급 칭호 사용), 조직의 독자성 때문에 통상교섭본부장은 매우 중요한 자리다.

한국 통상교섭본부장의 카운터파트(Counterpart)는 많은 한국 기업들도 겁을 내는 그 유명한 USTR(미국무역대표부) 대표다.

그러나 이재명 대통령은 '한미 무역협상이 엄중한' 와중에 통상교섭본부장을 경질했다.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 800조 넘는 호남반도체 투자...미국도 한국의 반도체 투자를 원한다?


현재 한국과 미국은 대규모 대미투자 패키지와 관세·통상 조건을 두고 사실상 '2차 투자·이행 협상'을 벌이는 중이다.

한국은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폭탄(25%) 압박을 피하기 위해 상호관세율 15% 적용을 대가로 총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패키지에 원칙적으로 합의한 상태다.

한국이 500조원에 달하는 무시무시한 규모의 투자를 약속한 가운데 한국은 크게 두 가지 큰 카테고리로 투자를 할 예정이다.

미국 조선업 재건을 위한 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에 1,500억 달러, 반도체·원전·2차전지·바이오 등 전략 산업 분야에 2,000억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다.

하지만 미국은 한국이 투자를 서두르지 않는다고 압박했다.

미국 측은 올해 한국 국회의 ‘대미투자특별법’ 입법 및 대미 투자 집행이 지연되자 관세를 다시 25%로 올릴 수 있다는 식으로 위협하기도 했다.

이후 '한미 전략적 투자 관리를 위한 특별법'(대미투자특별법)은 2026년 3월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2025년 11월 한미 양국 간 전략적 투자 양해각서(MOU) 체결 이후 법안 발의부터 국회 본회의 통과까지 약 3개월 반이 걸렸다.

그러나 한국과 미국이 원하는 '미국 투자'는 다르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패키지에서 미국과 한국이 서로 우선시하는 대상엔 차이가 있다는 의심이었다.

그간 미국은 첨단 반도체 현지 공장을 요구하는 반면, 한국은 조선업 및 에너지(LNG·원전) 분야를 핵심 카드로 밀고 싶어한다는 식의 소문들이 많이 돌았다.

최근 정부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내세워 800조원이 넘는 호남반도체 클러스터 투자를 띄운 상황에서, 일부 언론은 미국이 '미국 땅에 대규모 반도체 공장을 지으라고 요구한다'고 보도했다.

산업통상부는 18일 이 보도를 오보라며 보도에 조심해 달라고 했다.

■ 무역수장 경질이 주는 두려움

여한구 전 본부장은 경질 전날까지 경제관계장관회의에 참석했다.

자신이 하루 뒤에 무슨 일을 당할지 몰랐다는 의미다.

그런데 이재명 대통령은 후임자조차 정하지 않은 채 여 전 본부장의 공무원 신분을 박탈해버렸다.

많은 사람들은 한국의 통상 사령탑이 갑자기 ‘묻지마 경질’을 당하자 무슨 변고가 있었는지 묻고 있다.

정부는 이 엄중한 시기에 왜 한 나라의 '통상 사령탑'이 갑자기 직권면직을 당해야 했는지 밝혀야 한다.

한국과 미국 사이엔 중대한 통상 이슈가 쌓여 있다. 관세협상과 대미 투자, 무역법 301조 조사, 조선 협력 등 국익이 걸린 통상 현안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경제를 아는 국민들 사이엔 무역 수장을 자르면서 이유도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 정부가 무섭다는 말도 나온다.

그리고 한국 정부의 납득이 가지 않는 인사 처리 방식보다 더 무서운 것은 미국의 행보다.

최근 정부가 호남에 800조원이 넘는 대규모 반도체 투자를 발표한 뒤 미국이 혹시나 반도체 투자를 요구하지 않을까 두렵다.

한국과 미국이 대미투자 사업 1호를 정하지 못한 사이에 미국은 사실상 관세 재인상을 경고하고 있다.

핵잠수함 도입과 관련한 각종 절차들도 미뤄진 가운데 미국은 통상으로 한국을 압박해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무역 수장을 왜 잘라야 했는지도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채 국민 불안만 키우고 있다.

자료: 대미 전략투자 1호로 메모리를 논의하고 있지 않다는 산업부의 발표

자료: 대미 전략투자 1호로 메모리를 논의하고 있지 않다는 산업부의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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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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