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지도의 붉은 곳은 오세훈, 푸른 곳은 정원오를 찍었다

(장태민 칼럼) 한강 벨트와 오세훈의 승리
이미지 확대보기[뉴스콤 장태민 기자] 6.3 지방선거에서 오세훈 현 서울시장이 간발의 차이로 당선된 뒤 그의 승리를 두고 '한강벨트의 공'이라는 평가가 많다.
이번 선거에선 서울 송파 지역을 중심으로 투표용지가 부족해 투표를 하지 못하는 상상하기 힘든 일도 벌어졌다. 그리고 오세훈 후보는 모두가 졌다고 생각했던 선거에서 역전승을 거뒀다.
4일 아침 개표 마감 시점 오세훈 후보는 48.9%, 정원오 민주당 후보는 48.4%를 득표하면서 오 후보가 이겼다.
지난 3일 선거 당일 지상파 방송 3사 출구조사(정원오 51.4% vs 오세훈 46.0%)는 정 후보의 승리를 점치고 있었으며, 개표 중 후반까지도 정원오 후보가 계속 앞서 나갔다.
하지만 개표율 93%를 넘긴 4일 새벽부터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의 개표가 본격화되면서 오세훈 후보가 표차를 급격히 좁혔고 결국 오전 7시 16분경 오 후보가 역전하면서 승기를 굳혔다.
5선에 성공한 오세훈 후보는 전날 오전 10시 기자회견에서 "새벽 5시에 승리를 확신했다"고 말했다.
정원오 후보는 같은 날 9시30분 입장문 발표를 통해 "모든 게 제 탓이다.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다. 더 넓게 마음을 얻지 못했다"면서 패배를 시인했다.
이런 가운데 이번 오세훈 후보의 승리를 두고 '한강벨트 때문'이라고 평가가 많았다.
또 정원오 후보가 '쉽게' 이길 수 있는 선거였지만, 이재명 정부의 과도한 부동산 정책이 정 후보에게 패배를 안겼다는 평가도 많았다.
■ 오세훈 승리의 주역 한강벨트
흥미롭게도 오세훈 후보가 이긴 곳은 이재명 정부 출범 뒤 서울 집값이 급등한 곳들이었다.
오세훈 후보는 서울의 25개 자치구 중 10곳에서만 이겼지만, 전체적으로 승리했다.
결국 집값이 뛴 10곳의 유권자들이 똘똘 뭉쳐 오 후보를 민 것이다.
6.3 지방선거는 이재명 정부 출범 1년만에 실시된 이벤트였다. 그리고 이 1년 동안 서울 아파트값이 급등한 곳에서 오세훈 후보가 이겼다.
한국부동산원 기준 '집값 상승률 톱10 자치구' 중 8곳에서 오세훈 후보가 이겼다.
오 후보가 이긴 대표적인 곳은 송파구(17% 급등, 상승률 2위), 광진구(16%, 4위), 영등포구(15%, 5위), 양천구(14%, 6위), 강동구(13%, 7위), 동작구(13%, 8위), 중구(12%, 9위), 용산구(12%, 10위)였다.
이밖에 서초구(11%, 12위), 강남구(8%, 19위)에서도 이겼다.
오세훈 후보가 이긴 곳은 전체적으로 한강벨트, 그리고 부자 동네라는 특징이 있다.
최근 1년간 집값이 가장 많이 뛴 지역인 성동구(20.5%)와 집값 상승률 3위 마포구(16%)에선 정원오 후보가 이겼다.
성동구는 정원오 후보가 3선 구청장을 지낸 곳이며, 마포구는 정청래 민주당 대표의 지역구다.
정원오 후보는 사실 반년 전만 하더라도 '무명의' 정치 신인이었다.
작년 11월부터 민주당은 '정원오 띄우기'를 통해 단기간에 그의 인지도를 키워줬다.
정부와 민주당은 정 후보에 대해 '일 잘하는 후보라는 프레임'을 구축해 오세훈 후보를 거의 이길 뻔했다. 하지만 막판 약간의 힘이 부족했다.
막판 힘이 약간 부족했던 이유는 이재명 정부의 '부동산 정책 헛발질' 때문이었다.
최근 이재명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와 서울 주택 매매·전세·월세 동반 폭등, 그리고 세금 규제 예고 등이 정원오 후보에게 독이 됐을 것이란 추론이 많다.
■ 서울 집값 뛴 곳 집주인들의 '내 재산 지키기' 투표로 오세훈에 힘 실어주기
강남3구 등 서울의 부자들이 사는 동네는 국민의힘 성향이 강해 집값이 뛰지 않았더라도 오세훈 후보가 쉽게 이길 수 있는 곳이었다.
다만 오 후보가 25개 구 중 15개 구에서 졌음에도 서울 시장이 될 수 있었던 데는 강남3구 외에도 전체적인 한강 벨트에서 열심히 그를 지원했기 때문이다.
즉 부동산 값이 크게 뛴 한강벨트에서 오세훈 후보가 이겨야 '내 재산을 지키는데' 더 유리하다는 심리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영등포, 양천 등은 오세훈 후보가 승리를 장담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지역은 상대적으로 집 값이 많이 뛴 데다 기본적으로 재건축 이슈가 있었다.
이재명 정부가 향후 보유세 등 부동산 세제를 통해 자신들을 옥죌 수 있다는 위기감에 집 주인들은 '크게 오른' 부동산 재산을 지키기 위한 투표에 적극적으로 임했다고 볼 수 있다.
■ 서울 아니더라도 집값 뛴 곳은 야당 찍었다
이번 6.3 지방선거 투표가 '부동산 계급 투표'로 불리는 이유는 서울 근처의 다른 지역 상황을 봐도 알 수 있다.
'내 집 지키기, 내 재산 뺏기지 않기' 심리가 이번 지방선거 투표에 크게 작용했다는 점은 서울 외 집값이 뛴 경기도 부촌을 봐도 알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민주당 지지자인 수원 주민 A씨는 "서울 한강벨트가 오세훈을 살렸다고 하는데, 기본적으로 집 값이 뛴 곳, 부자들이 사는 곳은 비슷하다. 예컨대 수원 광교같은 곳도 국민의힘을 밀었다"고 말했다.
그는 "수원뿐만 아니라 대통령의 집이 있는 성남 분당 같은 곳 역시 국민의힘을 밀지 않았는가"라고 씁쓸해했다.
A씨는 공동체의 발전이 아니라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투표하는 것은 '천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서울 강남 3구와 마용성의 집값은 빼야 한다. 수원 광교 같은 곳의 집값도 너무 비싸다"면서 정책적으로 이런 곳의 집값을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타깝지만 현실적으로 볼 때 A씨의 바람이 이뤄질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이재명 정부의 다주택자 압박 정책, 토허제 확대 등은 전체적으로 주택 수급 구조를 뒤틀어 없는 사람들, 무주택자들을 가장 힘들게 만들었다. 많은 사람들의 인식과 달리 이런 정책들은 수급을 왜곡해 집값을 더 띄운다.
올해들어 서울에선 소위 노도강금관구 등 하급지 집값도 '정책 덕분에' 급등했다. 지금도 계속 오르는 중이다.
■ 한강벨트 임차인들 상당수도 오세훈에게 표 주기
집값이 뛴 지역의 '임차인'들 상당수도 생존을 위해 오세훈 후보에게 표를 줬다는 얘기도 들린다.
서울 지역 공인중개사 B씨는 "최근 서울 아파트 매매, 전세, 월세 모두 폭등했다"면서 "그런데 사실 집 있는 사람들의 재산 지키기 욕구는 세입자들의 고통과 비교할 바가 못 된다"고 말했다.
그는 "세입자들 일부도 끊임없이 집값을 올리는 이재명 정부에 집값 폭등 정책에 맞서 오세훈을 선택하는 방어적 투표에 임했다"면서 "임차인이 무조건 민주당을 지지할 것이란 생각은 착각"이라고 했다.
그는 "한강벨트 지역 무주택 임차인 중 상당수가 전세 수급난, 월세 폭등 등 주거 불안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면서 정원오 대신 그래도 오세훈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했다.
사실 서울 지역의 절반은 유주택자, 절반은 무주택자다.
B씨는 상당수 '없는' 사람들, 즉 임차인들은 폭등 중인 전월세 급등에 분노해 민주당 후보에게 표를 주지 않았다고 했다.
■ 정부·민주당이 아니라 오세훈이 그나마 임차인의 편
오세훈 당선인은 전날 '당선 소감'에서 부동산 얘기를 꺼냈다.
오 당선인은 "지금 서울 최대 현안은 뭐니뭐니 해도 부동산"이라며 "전세물량 급감, 월세 폭등 속에 서민들이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의 선거를 의식한 정책은 부작용을 불렀으며, 전·월세를 사는 사람들의 고통이 커졌다"면서 "정부는 부동산 정책과 관련한 방향 전환을 모색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정부의 부동산에 대해 경고했다.
오 당선인은 "조만간 정부 국무회의에 참석해서 부동산과 관련한 민심을 전달하겠다"면서 "부동산 정책 방향을 전환하지 않으면 1년 뒤, 2년 뒤에 지금보다 더한 부동산 참사가 나타날 것"이라고 했다.
오 시장이 '소유자, 임차인 모두를 위한 주택 공급'을 강조하면서 최근 전세 대란이 일부 임차인을 각성시켰다는 평가도 나오는 중이다.
임차인 일각에선 전·월세 폭등을 잡으려면 결국 주택 공급을 늘릴 인물이 필요하다는 점을 알아차린 것으로 보인다.
주택 공급을 위해선 다주택자 압박 등을 통해 끊임없이 임대물량을 없애는, 정부 정책에 순응할 정원오가 아니라, 정부 정책에 맞설 오세훈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