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 2026-06-13 (토)

한은 "반도체·자동차 투자도 안보가 좌우"…경제안보가 바꾼 투자 공식

  • 입력 2026-06-01 06:30
  • 김경목 기자
댓글
0
한은 "반도체·자동차 투자도 안보가 좌우"…경제안보가 바꾼 투자 공식이미지 확대보기
[뉴스콤 김경목 기자] 미·중 패권 경쟁과 공급망 재편, 지정학적 갈등 심화로 국내 기업들의 투자 판단 기준이 경기와 수익성 중심에서 경제안보 중심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는 한국은행 분석이 나왔다.

한국은행은 31일 발표한 '경제안보 패러다임의 부상과 우리나라 투자의 구조적 전환' 보고서에서 최근 우리 경제에서 설비투자의 경기 동조성 약화, 해외직접투자(FDI) 확대, 군비지출 및 방산 투자 증가라는 세 가지 구조적 변화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한은은 이러한 변화의 배경으로 경제안보 패러다임의 부상을 지목했다. 2017년 이후 미·중 전략경쟁과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공급망 병목,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을 거치면서 수출통제와 보조금, 산업정책 등 경제적 수단이 안보 목적에 활용되기 시작했고, 기업들의 투자 의사결정에도 안보 논리가 깊숙이 반영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설비투자와 경기 간 연관성은 크게 약화됐다.

국내총생산(GDP) 증가율과 설비투자 증가율의 상관계수는 2020년 이전 0.76에서 이후 0.17로 급락했다. 과거에는 경기가 회복되면 기업들이 생산설비를 늘리는 경향이 뚜렷했지만, 최근에는 경기 여건보다 공급망 안정성이나 지정학적 위험이 투자 결정에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의미다.

한은이 설비투자 변동 요인을 분석한 결과 지정학적 리스크(GPR), 무역정책 불확실성(TPU), 글로벌 공급망 압력(GSCPI) 등 안보·글로벌 요인의 기여 비중은 2001~2019년 평균 29.6%에서 2020년 이후 43.9%로 확대됐다. 특히 무역정책 불확실성의 기여도는 8.7%포인트, 지정학적 리스크는 4.0%포인트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주력 산업에서는 변화가 더욱 두드러졌다.

반도체 산업의 경우 투자 결정에 미치는 안보·글로벌 요인의 비중이 2016~2019년 평균 33.1%에서 2020년 이후 48.7%로 상승했다. 자동차 등 운송장비 제조업도 같은 기간 25.9%에서 50.9%로 확대돼 시장·경기 요인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큰 영향력을 보였다.

과거에는 메모리 업황이나 가동률, 수출 전망 등이 설비투자를 좌우했다면 최근에는 미국의 반도체지원법(CHIPS Act), 공급망 재편, 대중국 규제, 보호무역주의 확대 등이 투자 입지와 규모를 결정하는 핵심 변수로 부상했다는 것이다.

황설웅 한은 조사국 구조분석팀 과장은 "반도체와 자동차 산업 모두 투자 결정에서 안보·글로벌 요인의 비중이 시장·경기 요인과 거의 대등한 수준까지 높아졌다"며 "기업의 투자 의사결정 메커니즘 자체가 구조적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경제안보 패러다임은 해외직접투자 확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한은에 따르면 지정학적 위험이 높아질수록 국내 설비투자는 위축되는 반면 해외직접투자는 증가하는 '자본의 대외 전환' 현상이 관찰됐다. 기업들이 보조금 혜택 확보와 관세 장벽 우회, 공급망 안정성 확보 등을 위해 해외 생산거점 확대에 나서고 있다는 의미다.

다만 한은은 해외투자 확대가 국내 제조업 공동화와 고용 유발 효과 둔화 등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글로벌 기술표준 경쟁 참여, 보조금 수혜, 대외순자산 축적 등 긍정적인 효과도 함께 기대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한은은 경제안보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글로벌 가치사슬(GVC) 상단에서의 협상력 강화와 기술동맹 네트워크 확대, 첨단산업 클러스터 조성, 핵심 제조공정과 연구개발(R&D)의 국내 잔류 유인 확대, 고숙련 인재 양성 등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한은은 "해외투자를 통해 축적되는 본원소득 역시 결국 국내 제조 경쟁력에 기반한다"며 "경제안보 패러다임 전환 과정에서도 국내 제조·수출 기반이 약화되지 않도록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경목 기자 kkm3416@newskom.co.kr

< 저작권자 ⓒ 뉴스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로그인 후 작성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