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보) 신현송 “물가 최우선·유연한 통화정책”…중동 충격 속 한은 역할 재정립
이미지 확대보기[뉴스콤 김경목 기자]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가 21일 취임사를 통해 물가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제시하면서도, 대내외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한 유연한 통화정책 운용 방침을 밝혔다. 중동발 공급충격과 구조적 변화가 맞물린 환경에서 중앙은행의 역할을 재정립하겠다는 의지도 분명히 했다.
신 총재는 이날 우리 경제 상황에 대해 “중동전쟁 이후 국제유가 상승으로 물가 상방압력과 경기 하방압력이 동시에 증대되었다”며 “물가와 성장 경로의 불확실성이 한층 커진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금융시장의 높은 변동성과 금융불균형 누증 위험도 지속되고 있다”고 덧붙이며 대내외 리스크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현 상황을 강조했다.
통화정책과 관련해서는 신중한 접근과 유연성을 동시에 강조했다. 그는 “신중하고 유연한 통화정책 운영을 통해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을 도모해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공급 충격의 파급 가능성에 대해 “충격이 일시적이라면 정책 대응이 필요하지 않을 수 있지만, 지속돼 기대 인플레이션과 근원 물가로 이어질 경우 통화정책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는 물가 대응 의지를 분명히 하면서도 정책 경로를 사전에 고정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로 해석된다.
금융안정 부문에서는 기존 정책 틀의 한계를 짚으며 보다 확장된 대응 필요성을 제시했다. 신 총재는 “오늘날 금융시장은 은행과 비은행, 국내와 해외 부문 간 경계가 급속히 허물어지고 있으며 자산시장과도 긴밀히 연결돼 있다”며 “기존의 틀만으로는 금융시스템의 위험을 충분히 파악하고 대응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기존 건전성 지표와 함께 시장 가격지표를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해 조기경보 기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비은행 부문의 확대와 시장 간 연계성 강화를 고려해 정보 접근성을 제고하고, 금융기관의 부외거래와 비전통 금융상품까지 분석 범위를 확장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최근 금융시장의 구조 변화에 맞춰 리스크 관리 체계를 고도화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외환 및 지급결제 부문에서는 원화 국제화와 디지털 금융 대응을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신 총재는 “외환시장 24시간 개장을 추진하고 역외 원화결제 시스템을 구축해 외환거래의 접근성과 안정성을 국제적 기준에 맞게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CBDC와 예금토큰의 활용도를 높이고 국제 협력을 통해 디지털 지급결제 환경에서도 원화의 위상을 높여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특히 그는 “원화 국제화와 지급결제 혁신, 거시건전성 체계가 ‘삼각 축’을 이루어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는 단순한 제도 개선을 넘어 통화·금융 시스템 전반을 종합적으로 재편하겠다는 구상으로 읽힌다.
구조개혁과 관련해서도 중앙은행의 역할 확대를 분명히 했다. 신 총재는 “인구구조 변화, 양극화, 부동산시장과 가계부채 문제로 우리 경제의 성장동력이 약화되고 있다”며 “이러한 구조적 요인은 통화정책과 별개의 영역이 아니라 중요한 일부”라고 밝혔다. 이어 “경제현실과 경제주체 인식 간 괴리가 커질 경우 통화정책의 파급경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한국은행이 구조적 과제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와 정책 제언을 지속함으로써 우리 경제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기여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는 향후 한은이 거시정책뿐 아니라 중장기 경제 구조 논의에서도 보다 적극적인 목소리를 낼 가능성을 시사한다.
아울러 중앙은행의 역할 변화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지정학적 갈등과 AI 기술 혁명으로 세계경제 질서가 대전환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며 “이러한 전환기에는 중앙은행의 역할이 무엇인지 다시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중앙은행의 역사는 경제환경 변화에 부응해 진화해 온 과정”이라며 앞으로도 변화에 맞춘 정책 대응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조직 운영과 관련해서는 내부 역량 강화와 소통 확대를 주문했다. 신 총재는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조사연구와 정책 간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고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조직 생산성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또한 “국제사회 논의에 적극 참여해 한국은행의 정책 경험을 공유하겠다”고 덧붙였다.
신 총재는 이날부터 4년 임기를 시작하며, 불확실성이 높은 대외 환경 속에서 한국은행이 어떤 정책 대응과 소통 전략을 보여줄지 시장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김경목 기자 kkm3416@newsko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