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9일 비상경제점검회의를 주재하는 이재명 대통령, 출처: 청와대

(장태민 칼럼) 미-이란 전쟁과 벚꽃 추경 가능성
이미지 확대보기[뉴스콤 장태민 기자] 정부와 여당이 추경에 힘을 모으고 있다.
미-이란 전쟁에 따른 유가 급등, 이에 따른 민생경제의 어려움 등으로 정부와 여당은 추경에 대한 목소리를 한껏 높였다.
이재명 대통령과 정부 핵심 관료들이 모두 추경에 힘을 싣고 있다.
지난 9일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중동 상황 전엔 경제 전망이 괜찮았다. 하지만 지금 겪어보지 못한 일 일어났으며, 유가 충격을 보고 있다"면서 추경을 시사했다.
김 실장은 "충격이 조기수습 되지 않으면 (기존 전망은) 의미가 없어진다. 그러면 거기에 따른 소요들 많이 생기게 된다. 직접 타격을 받는 산업도 있을 수 있다"면서 피해를 크게 입지 않도록 대비하자고 했다.
중동 사태가 길어지면서 추경을 위한 재원의 필요성 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것을 당부했다.
하지만 대통령과 정부가 연초부터 추경을 말하는 등 돈을 너무 쉽게 쓰려고 한다면서 걱정스러운 목소리를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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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경 명분 기다리던 정부와 민주당...전쟁으로 오른 기름값이 좋은 명분 돼
9일 김용범 실장이 추경 애드벌룬을 띄운 뒤 10일 국무회의에선 정부 관료들이 추경을 위한 의지를 다졌다.
전쟁 때문에 오른 기름값은 좋은 추경 명분이 됐다.
이재명 대통령이 10일 국무회의에서 "유가 급등에 따른 민생경제의 어려움 등으로 추경이 필요한 상황 아니냐"고 묻자, 구윤철 경제부총리는 "추경을 적극 검토할 것"이라고 답했다.
대통령은 추경 실시 여부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부의 재분배에 기여하는 추경'까지 해보자는 욕심을 냈다
대통령은 "유류세를 일률적으로 내리면 양극화 상황이 악화되는 경향이 있다. 반면 유류세를 깎는 재원으로 서민, 어려운 소비자에게 직접 타게팅하면 양극화 완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유류세 인하는 휘발유, 경유 등 석유류 제품의 최종 판매 가격을 즉각적으로 낮출 수 있기 때문에 물가를 안정시킬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양극화를 심화시킨다.
사실상 특정 그룹에게 현금을 쥐어주는 방식, 즉 보조금을 주는 것은 기름값이 올라 힘들어하는 소비자나 운수 종사자 등의 구매력을 직접 보전해 주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이러면 물가가 더욱 상방 압력을 받을 수 있다.
기본소득을 좋아하는 이재명 대통령은 현금을 더 주고 싶어 했다.
이 대통령은 자신의 마음을 비친 뒤 최측근 경제관료에게 '어떤 방식이 더 나은가'라고 물었다.
이에 김용범 정책실장은 "보조금 방식이 다른 물가에도 영향을 주면 서민들도 타격을 받는다. 이론적으로 해보면 유류세 부분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2차, 3차 효과가 커서 더 분석해봐야 한다. 한국은행과 연구해 보겠다"고 했다.
실장은 대통령의 선호를 고려해서인지 일단 확답을 유보한 채, 한국은행에게 방정식을 풀어달라고 할 생각인 듯했다.
■ 연례 행사 돼버린 추경...올해는 일단 전쟁 피해 추경
미-이란 전쟁 덕분에(!) 추경은 거의 확정적인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다.
그런데 2월 28일 전쟁이 터지기 전부터 대통령, 여당 등에서 추경을 거론하곤 했다.
이재명 정부 자체가 직접하고 싶은 일이 많은 '큰 정부'이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이 터지면 재정을 더 늘려서 대응해 보자는 식의 얘기가 쉽게 나오는 것이다.
이재명 정부는 또 정부 자체가 연중에 실시하는 '추경'을 당연시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연초인 지난 1월 20일 문화 쪽에 쓸 돈이 좀 필요다고가 하자 "통상 추경이 있다. 문화, 예술 분야 쪽 추경 예산을 잘 검토해 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서 추경은 '당연히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추경은 '특수한 경우에 한 해' 하는 것이 맞다.
국가재정법은 추경에 대해 전쟁, 자연재해, 경기침체 등 중대한 이벤트에 대응해 제한적으로 편성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그간 법은 만드는 사람들(국회)도, 정부도 모두 국가재정법을 지키지 않았다. 정부가 돈을 더 쓰고 싶으면, 각종 이유를 대면서 추경을 하면 되는 것이다.
이젠 모든 사람들(?)이 추경을 당연시 하다 보니 '요건에 맞지 않는' 추경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예전보다 대폭 줄어들었다.
■ 여당, 추경 확실히 밀겠다
미-이란 전쟁에 따른 경제의 어려움은 '좋은' 추경 사유가 될 수 있다.
아울러 이재명 정부의 인기 역시 매우 높기 때문에 정부가 하겠다고 하면 거침없이 할 수 있다.
여당은 '빨리 추경하자'면서 맞장구를 치고 있다.
여당엔 국민 세금을 많이 쓰는 것을 선(善)으로 보는 사람들이 널려 있다. 지금의 민주당 분위기에선 오히려 미-이란 전쟁 와중에 추경이 없다는 것을 생각하기 어렵다.
한병도 민주당 원내대표는 11일 "이재명 대통령이 물가안정과 민생지원을 위한 추경 필요성을 언급했다"면서 "「국가재정법」상 추가경정예산안은 ‘경기침체 등 대내·외 여건에 중대한 변화가 발생하였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 편성할 수 있다"고 했다.
중동사태 장기화 우려로 인한 글로벌 경기침체 가능성이 제기되는 엄중한 상황이니 만큼 추경 요건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점을 우선 지적한 것이다.
여당 원내대표 정도 되면 굳이 요건을 지적 안 해도 하면 될 것을, 이번엔 확실히 '추경 요건'이라고 느낀 듯했다.
한 원내대표는 "이재명 대통령이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재정정책 필요성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공감하고 환영한다. 국제유가 급등은 생산비와 운송비 부담으로 전가되고 식품·공산품 같은 서민필수품의 가격까지 상승시킨다"면서 추경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소상공인·자영업자와 농어민, 화물차 기사, 취약계층이 유가 상승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서민 경제를 조기에 안정시키고 소상공인과 한계기업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적기에 추경이 편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당의 원내대표는 "민주당은 정부가 추경예산안을 편성하는 즉시 신속하게 심의·의결해서 우리 경제와 국민을 지켜내겠다"고 약속했다.
금융시장에선 추경을 위한 '국채발행이 없다'(전날 경제부총리 등의 발언)는 사실에 안도하면서도 미-이란 전쟁이 없었더라도 어차피 추경은 했을 것이란 식의 논평도 많았다.
증권사의 한 채권딜러는 "전쟁이 좋은 추경 명분이 됐다"면서 "물론 전쟁이 없었더라도 정부는 연중에 1번은 추경을 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채권시장은 정부가 적자국채 없이도 추경을 할 수 있다고 하니 안도했다. 하지만 정부가 추경을 통해 이 나라를 위기에서 건져낸다, 추경을 통해 없는 사람들을 살려낸다고 하는 얘기들은 다 거짓말"이라고 비판했다.
■ 6월 지선 앞두고 '벚꽃 추경' 뜨나
이재명 정부는 지난해 출범 1달만에 추경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뜬금없이 계엄을 일으켜 자진 감옥행을 택한 뒤, 이재명 정부는 출범 직후 추경안부터 짰다.
지난해 추경안은 7월 4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정부안 30.5조원에서 국회 심의를 거쳐 1.3조원이 늘어난 31.8조으로 확정됐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1인당 최소 15만 원에서 최대 55만 원까지 지급하는 '민생회복 소비쿠폰' 예산이 핵심이었다.
한국 국민들은 작년에 자신의 세금과 남의 세금으로 1인당 15만원을 기본으로 나눠먹고, 차상위·한부모 가족은 30만원, 기초생활수급자는 40만원을 더 받도록 했다.
비수도권 주민(+3만원), 농어촌 인구감소 지역 주민(+5만원) 등에겐 돈을 조금 더 주는 식으로 알뜰하게 세금을 갈라먹었다.
지난해 소비 쿠폰 추경에 이어 이제 전쟁 추경이 등장하려 하고 있다.
일각에선 아무리 중동 전쟁의 민생 경제 위협이 강력하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2026년 본예산의 잉크도 채 마르기도 전이라면서 정부의 '습관성' 추경을 우려하기도 했다.
자산운용사의 한 채권매니저는 이렇게 논평했다.
"한국은 올해 본예산만 728조원에 달할 정도로 단기간에 예산이 어마어마하게 커졌습니다. 그런데도 잠깐 주변에서 문제가 생기면 예산부터 증액하겠다는 식입니다. 이런 식으로 재정을 운영하는 것은 매우 무모합니다. 지금 같은 상황이면 에너지 대책 등을 통해 최대한 기름을 아껴써야지, 추경부터 하겠다는 건 솔직히 문제가 많습니다. 안 그래도 원화가치가 똥값인데, 계속 돈을 풀면 한국 돈은 결국 휴지가 될 수 있습니다."
이 매니저는 정부가 본예산이 본격적으로 집행되기도 전에 추경을 당연시하고, 주변에 무슨 핑계만 생기면 돈을 풀려고 하는 것은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라고 개탄했다.
이런 가운데 금융시장에선 6월 지방선거 때문에 추경이 빨라질 것이란 관점도 보인다.
한국의 여야 정치권을 모두 혐오하는 한 금융권 관계자는 "국힘은 윤석열 때문에 망했음에도, 윤석열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해 존재감 자체가 제로다. 추경이 없어도 민주당이 지방선거에서 이기긴 할 것"이라며 "하지만 민주당은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전쟁 덕분에 일찍 추경을 할 수 있게 돼 압승이 더욱 유력해졌다"고 평가했다.
그는 "호랑이가 토끼를 잡을 때도 최선을 다하듯이, 민주당은 다시금 매표 행위를 위한 벚꽃 추경을 띄웠다. 지금은 이재명 정부 인기가 너무 좋아 나라 곳간이 허물어지는 것을 막을 세력도 없다"고 우려했다.
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