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콤 김경목 기자] 엔비디아의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가 “AI 경쟁에서 중국이 미국을 앞설 것”이라고 공개 경고했다.
그는 에너지 비용과 규제 환경에서 중국이 미국보다 훨씬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며 “서방은 기술에 대한 과도한 냉소주의에 빠져 있다”고 비판했다.
황 CEO는 5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열린 파이낸셜타임스(FT) 주최 ‘AI의 미래 서밋’에 참석해 “중국은 AI 경쟁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은 전기가 사실상 공짜일 정도로 에너지 보조금이 막강하다”며 “그 덕분에 현지 기업들은 엔비디아 칩보다 전력 효율이 낮은 자국산 칩을 사용하더라도 비용 부담이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FT는 최근 중국 정부가 바이트댄스, 알리바바, 텐센트 등 주요 빅테크 기업의 데이터센터 전력 보조금을 대폭 확대했다고 전했다. 간쑤성·네이멍구·구이저우 등지에서는 자국산 반도체를 사용할 경우 전력 요금을 최대 50%까지 감면받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황 CEO는 “중국은 정부의 명확한 목표 아래 에너지·데이터·AI 투자를 동시에 확대하고 있다”며 “이런 체계적 접근이 미국보다 앞서 있다”고 강조했다. 반면 미국과 영국을 포함한 서방 국가들이 기술의 위험성에만 초점을 맞추며 규제 강화에 몰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AI에 대한 공포가 낙관주의를 압도하고 있다며 “미국의 50개 주가 각각 다른 규제를 도입하면 50개의 새로운 규제가 생기는 셈”이라고 말했다.
황 CEO는 “AI의 부작용보다 혁신의 가능성에 집중해야 한다”며 “지금 서방에는 더 많은 낙관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시장 관계자들은 그의 발언이 최근 서방 각국이 추진 중인 AI 규제 입법과 맞닿아 있다고 분석한다. 미국 연방정부는 AI 안전성 평가, 데이터 보호, 알고리즘 투명성 등을 의무화하는 규정을 검토 중이며, 유럽연합(EU)은 이미 ‘AI법(AI Act)’ 시행을 앞두고 있다.
황 CEO의 발언은 트럼프 행정부가 엔비디아의 최신 AI 칩 ‘블랙웰’의 중국 수출을 금지하기로 한 직후에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CBS 인터뷰에서 “최첨단 칩은 미국 외에는 누구도 갖지 못하게 하겠다”며 “중국이 엔비디아와 거래하는 것은 허용하겠지만 최첨단 기술의 사용은 불허할 것”이라고 못박았다.
이는 젠슨 황의 오랜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그는 미국이 중국 시장을 개방해 중국이 미국 기술에 의존하도록 만드는 것이 장기적으로 ‘AI 주도권’을 확보하는 길이라고 주장해왔다.
황 CEO는 “우리가 중국에 칩을 팔면 그들은 미국 기술에 계속 의존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수출을 막으면 결국 중국은 독자 생태계를 구축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의 우려는 현실화되고 있다. 화웨이, 캠브리콘 등 중국 기업들이 정부 보조금과 내수 시장을 기반으로 자체 AI 반도체 개발 속도를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엔비디아는 현재 AI 반도체 시장의 8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데, 중국은 여전히 전체 매출의 20~25%를 차지하는 핵심 시장이다. 미 정부의 수출 제한이 장기화되면 엔비디아의 매출 구조와 연구개발 투자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게 월가의 평가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엔비디아의 고성능 칩 수출이 제한될 경우 2026년 예상 매출이 12% 이상 감소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반면 중국은 자국산 반도체를 중심으로 AI 클러스터를 구축하며 ‘자급 AI 생태계’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젠슨 황의 발언은 단순히 시장 논리가 아니라 기술 패권 경쟁의 본질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는 “AI 경쟁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라며 “개방과 규제, 낙관과 냉소 사이의 균형이 미래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방의 민주적 절차와 안전 중심 접근이 기술 발전을 늦추는 사이, 중국은 국가지원 체제와 데이터 접근성을 앞세워 속도를 높이고 있다. 시장에서는 “AI 경쟁의 1차 승자는 기술력이 아니라 정책 일관성을 가진 국가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는 내년 4월로 예정된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방문 전까지 ‘블랙웰 수출금지’ 완화 여부를 재검토할 가능성이 있다. 다만 대중 강경 노선을 유지하는 공화당의 정치 기류상, 단기간 내 정책 변화는 쉽지 않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엔비디아와 AMD는 이미 중국 시장용 저성능 AI 칩 매출의 15%를 미 정부에 납부하는 계약을 맺었지만 행정부의 허가 지연으로 실제 판매는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월가 관계자들은 “엔비디아는 미국 정부의 통제와 중국의 기술 자립 사이에서 가장 큰 긴장 상태에 놓인 기업”이라며 “AI 패권 경쟁의 향방이 엔비디아의 실적뿐 아니라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균형을 좌우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황 CEO는 “AI 시대의 진정한 경쟁력은 혁신을 신뢰하는 사회에서 나온다”며 “지금 서방이 잃고 있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낙관주의”라고 덧붙였다.
김경목 기자 kkm3416@newsko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