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 2025-11-08 (토)

(장태민 칼럼) GAME 7

  • 입력 2025-11-03 15:02
  •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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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월드시리즈 우승 뒤 포효하는 야마모토, 출처: MLB닷컴

사진: 월드시리즈 우승 뒤 포효하는 야마모토, 출처: MLB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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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콤 장태민 기자] LA 다저스가 25년만에 '백투백 우승'을 달성했다.

다저스는 국내시간으로 2일 오전 9시 캐나다 토론토 로저스센터에서 열린 월드시리즈 7차전에서 연장 승부 끝에 블루제이스를 5:4로 누르고 우승했다.

다저스는 1998~2000년 연속 우승한 뉴욕 양키스에 이어 처음으로 연속 우승을 달성한 팀이 됐다.

LA 다저스와 토론토 블루제이스가 시리즈 전적 3:3으로 팽팽하게 맞선 뒤 국내시간으로 일요일 오전에 치른 최종 7차전은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극적인 경기 중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

LA 다저스의 전 감독 토미 라소다는 "1년 중 가장 슬픈 날은 야구 시즌이 끝나는 날"이라는 말을 남겼지만, 야구를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엔 시즌이 끝나도 전날의 전율이 남아 있다.

세계 최고의 인기구단이 된 다저스의 시각으로 전날 경기를 복기해봤다.

■ 흔들린 '투타니'

'투수' 오타니는 최종전 선발투수로 낙점된 뒤 경기 초반부터 흔들렸다.

오타니 쇼헤이의 직구 구속은 100마일을 넘나들었으나 영점이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

이 중요한 게임에 1회, 2회를 힘들게 버티던 오타니는 3회를 넘기지 못하고 무너졌다.

3회 들어 1번 타자 조지 스프링어에게 좌전 안타를 얻어 맞고 블라디미르 게레로 주니어를 거른 뒤 맞이한 4번타자 보 비셋에게 135미터짜리 대형 좌중월 홈런을 맞으면서 고개를 떨궈야 했다.

비셋은 정규시즌 찬스에서 가장 강한 선수 중 하나였다.

오타니는 결국 2와 1/3이닝만 던지고 강판됐다.

3일만 쉬고 선발투수로 등판한 오타니의 공을 빨랐지만, 이도류는 좀체 자신의 공을 제어하질 못했다.

오타니의 제구가 되지 않는 160킬로 넘는 직구는 '짜임새 있는 타선'으로 무장한 토론토 타자들에겐 먹잇감에 불과했다.

오타니가 내려간 뒤 다저스는 4회초 따라붙는 점수를 냈다.

다저스는 4회 들어 2번타자 윌 스미스의 2루타, 프레디 프리먼의 1루타로 2,3루 찬스를 잡은 뒤 테오스카 에르난데스의 희생플라이로 1점을 만회했다.

블루제이스에선 '명예의 전당' 헌액이 예정된 베테랑 투수 맥스 슈어저가 4와 1/3을 던지고 내려갔다. 슈어저는 노익장을 과시하면서 95마일, 96마일 속구를 뿌렸다.

슈어즈는 홈팬들의 기립 박수를 받을 정도의 퍼포먼스를 선보이면서 덕아웃으로 들어가 동료들을 응원했다.

슈어즈는 41세 97일의 나이에 월드시리즈 승자 독식경기 마운드를 잠시 호령했던 승부사로도 기록될 것이다.

■ 역전의 기운

다저스는 3:1로 끌려가다가 6회초 1점을 만회했다.

4번 무키 베츠의 볼넷과 5번 맥스 먼시의 우전 안타로 찬스를 잡은 뒤 7번 토미 에드먼의 희생플라이로 스코어를 3:2로 만들었다.

하지만 토론토는 6회말 9번 타순의 안드레스 히메네스가 2루타를 쳐 어니 클레멘트를 홈으로 불러들이는 데 성공하면서 점수를 2점차로 다시 벌렸다.

양팀의 7회 공방에선 점수가 나지 않았으며, 토론토는 2이닝만 더 버티면 32년만의 우승 트로피를 손에 넣을 있게 됐다.

하지만 8회 1사에서 맥스 먼시의 벼락같은 솔로포가 커졌다.

결정적인 순간에 다저스의 장점이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블루제이스가 '빌드업' 식 공격을 주특기로 하는 팀이라면, 다저스는 '한방'으로 경기 분위기를 가져오는 팀 컬러가 강하다.

다만 여전히 블루제이스의 승산은 높아 보였다.

9회 한 이닝, 세 타자만 막으면 32년만의 우승이 눈앞에 있었던 것이다.

우승이 눈앞에 아른거리던 9회 1아웃에서 미겔 로하스가 초대형 사고를 친다.

내년까지만 야구를 하고 은퇴하겠다고 발표했던 로하스는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던 '동점 솔로포'를 때리면서 다저스의 야구가 끝나지 않았음을 알렸다.

다저스를 응원하던 사람들은 오타니의 마지막 타석에서 혹시 모를 동점포를 기대했지만, 9번 베테랑 타자가 해결사를 자처한 것이다.

■ 9회말에라도 끝내야 했던 블루제이스

9회초 동점을 허용한 블루제이스는 경기를 연장으로 끌고 가고 싶지 않았다.

3번 게레로가 중견수 플라이로 아웃됐으나 오타니에게 쓰리런을 뽑아낸 4번 보 비셋이 좌전안타를 치면서 다시 기세를 살렸다.

존 슈나이더 토론토 감독은 비셋을 대주자 카이너-팔레파로 교체한 뒤 경기를 마무리하고 싶어했다.

다저스의 마운드엔 블레이크 스넬이 서 있었다.

스넬은 내셔널리그, 아메리칸리그 양대리그 모두에서 사이영상을 수상한 마운드의 지배자였다. 하지만 월드시리즈 1차전과 5차전 선발로 나와 2패를 기록 중이었다.

스넬은 이날 7차전 8회에 구원투수로 올라와 한 이닝을 잘 막았으나, 9회엔 크게 흔들렸다.

토론토의 5번타자 에디슨 바저는 9구까지 가는 끈질긴 승부 끝에 볼넷을 얻어냈다. 다저스는 9회말 1사 1,2루 절체정명의 위기에 몰리고 말았다.

이 때 다시 다저스의 영웅이 등장한다.

다저스에게 2차전과 6차전 승리를 안겨준 야마모토 요시노무가 나온다.

전날 96개의 공을 뿌리고 최종전에 다시 나온 것이다.

월드시리즈 7차전인 만큼 아무도 메이저리그의 선수 기용이 '고시엔 야구'가 되는 것을 비판하지 않았다.

전날 6차전 6이닝 1실점으로 팀에 승리를 안겨준 야마모토가 최종 7차전 9회 1사 1,2루 위기 상황에서 나온 것이다.

천하의 야마모토였지만 긴장감 때문인지 6번 알레한드로 커크를 몸에 맞는 공으로 출루시켰다. 기세가 오른 블루제이스의 캡틴이 루상에 나가 다이아모드를 꽉 채우자 위기감은 더욱 증폭된다.

이제 안타 하나, 볼넷 하나, 에러 하나, 심지어 희생플라이나 괜찮은 땅볼 타구 하나 등 어떤 것이든 '하나면' 모든 게 끝난다.

데이브 로버츠 감독이 움직였다.

중견수를 토미 에드먼에서 앤디 파헤스로 교체하면서 수비 강화에 나선다. 심장이 쫄리는 장면들이 이어진다.

야마모토는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7번 돌튼 바쇼를 2루 땅볼로 유도한다.

홈에서 3루 주자를 잡거나 병살 플레이를 하지 않는 이상 경기는 끝난다.

이 순간 베테랑 2루수 로하스가 홈 송구를 선택해 선행주자를 잡아내는 그야말로 살 떨리는 플레이를 펼친다.

하지만 경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9회말 2아웃 상황에서 컨택에 물이 오른 클레멘트가 등장한다.

8번 어니 클레멘트는 좌측 펜스 근처로 날라가는 큼지막한 타구를 날린다.

이제 이 길고 긴 여정이 끝인가 하는 순간 중견수 파헤스가 공중 부양을 하면서 플라이 볼을 잡는 파인 플레이를 펼친다.

다저스의 명줄은 또 다시 연장된다.

■ 야마모토의 역투

10회 들어 다저스는 1사 만루 찬스를 잡아 경기를 뒤집을 기회를 만든다.

이번엔 토론토의 유격수 클레멘트가 홈에서 3루 주자 베츠를 잡아내면서 위기를 극복한다.

다저스가 10회초 천금같은 찬스를 놓친 뒤 야마모트는 10회말에도 올라온다.

야마모토는 히메네스, 스프링어, 스트로 등 9~2번 세 타자를 가볍게 처리한다.

그런 뒤 경기는 11회로 넘어간다.

9번 로하스와 1번 오타니가 땅볼 타구로 아웃된 뒤 다시 경기는 다시 블루제이스 쪽으로 넘어가는 듯했다.

과연 야마모토가 더 던질 수 있을까 걱정스러웠던 순간 2번 타자 윌 스미스가 비거리 118미터짜리 좌월 솔로포로 판을 뒤집어 버린다.

야마모토는 자신의 공을 받고 있는 팀의 포수가 리드를 안겨준 뒤 11회에도 마운드에 오른다.

하지만 야마모토는 11회 첫타자 게레로 주니어에게 좌전 2루타를 두들겨 맞으면서 시작한다.

블루제이스를 상징하는 타자인 게레로는 장타를 친 뒤 기쁨을 감추지 못하면서 홈 관중의 더욱 열렬한 응원을 유도한다. 게레로가 표효하는 모습에 로저스센터는 떠나갈 듯했다.

메이저리그에서 드물게 '번트를 좋아하는' 존 슈나이더 감독은 4번 카이너-팔레파에게 번트를 지시한다.

1아웃 3루.

이후 다저스는 1루를 채우고 병살을 노리는 작전을 쓴다. 이 작전은 다저스에게 월드시리즈 2연패(連覇)를 안겨준다.

커크가 때린 야마모토의 스플리터는 유격수 무키 베츠 앞으로 굴러가는 평범한 땅볼이 되고 만다. 베츠는 2루를 밟고 1루수 프리먼에게 공을 던져 경기를 마무리한다.

다저스의 한 팬은 결정적인 순간들을 묶어 다음과 같은 7차전 감상평을 달았다.

"먼시의 홈런이 우리에게 희망(HOPE)을 줬고, 미기(미겔 로하스)의 홈런이 우리에게 믿음(BELIEF)을 선사했으며, 로하스의 송구가 우리의 생명(LIFE)을 연장시켰다. 파헤스의 캐치가 우리에게 모멘텀(MOMENTUM)을 줬고 스미스의 홈런이 우리에게 리드(LEAD)을 안겼으며, 야마모토의 피칭이 우리에게 승리(WIN)를 가져다줬다."

■ 2025년 야마모토의 낭만야구...2001년 방울뱀의 전설 소환

야마모토는 2001년 랜디 존슨 이후 처음으로 월드시리즈에서 3승을 거둔 투수가 됐다.

2001년은 랜디 존슨과 커트 실링, 그리고 당시 메이저리그 최강 마무리였던 한국의 김병현이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를 우승시켰던 해다.

야마모토는 팀이 1차전에 패한 뒤 한국시간 10월 26일 열린 2차전에서 9이닝 1실점 완투승을 따낸다. 그 경기에서 야마모토는 105구를 던져 탈삼진 8개, 피안타 4개를 기록했다.

이후 11월 1일 6차전에 나와 6이닝에 96구를 던진다. 탈삼진 6개, 피안타 5개를 기록하면서 1실점만 내주고 다시 승리투수가 됐다.

그런 뒤 7차전 마지막 게임에서 2와 2/3이 동안 1안타, 1사사구를 내주면서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마지막 경기에서 야마모토는 34개의 공을 던졌다.

야마모트는 월드시리즈 3경기에 출전해 3승, 17과 2/3이닝, 탈삼진 15개, 피안타 10개, 2실점, 평균자책 1.02를 남겼다.

랜드 존슨은 2001년 아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를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이끌 당시 3승, 17과 1/3이닝, 탈삼진 19개, 피안타 9개, 2실점, 평균자책점 1.04를 남겼다.

존슨도 야마모토처럼 게임 2, 게임 6, 게임 7에 나왔으며, 최종전에선 1과 1/3을 던졌다.

야마모토는 2025년 메이저리그 포스트시즌에 추억의 옛날 야구, 그리고 낭만 야구를 완벽하게 소환한 것이다.

야마모토는 옛날 선발 투수의 책임 의식와 투지를 보여줬다.

그는 10월 15일 밀워크 브루어스와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 2차전과 10월 26일 월드시리즈 2차전에서 2경기 연속 완투승을 거둬 2001년 커트 실링 이후 24년만에 2경기 연속 완투를 달성한 투수가 되기도했다.

다저스 감독 로버츠는 우승한 뒤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야마모토에게 역대최고(GOAT, Greatest Of All Time)라는 칭호를 헌사했다.

한국에선 1984년 롯데자이언츠의 전설인 최동원이 한국시리즈에서 혼자 4승을 거두면서 철완을 과시한 바 있다.

전날 LA와 토론토의 경기를 지켜본 롯데자이언츠의 올드팬이라면 아마도 야마모토 요시노부의 모습에서 최동원을 떠올렸을 것이다.

야마모토 요시노부는 2009년 마쓰이 히데키에 이어 일본인 2번째 월드시리즈 MVP가 된 뒤 일본 언론과 다음과 같은 소박한 인터뷰를 남겼다.

"(어떤 기분으로 던졌나요?) 거의 뭐. 마음 비우고. 정말 야구소년으로 돌아간 것 같은 그런 기분이었습니다. (언제 등판하는 게 결정됐나요?) 어제 던진 뒤에 밤에 치료 받고. 일단 대비는 하고 있었는데, 오늘 연습하고. 쉬고 있다보니, '또 나갈지도 모른다'고 돼 있어서..."

경기 직후라 야마모토의 인터뷰도 꿈 속을 헤매는 모습이었다.

"시합이 시작되고 불펜에 있었는데, 지고 있다가 중간에 따라잡기 시작해서, 정신 차리고 보니 마운드에 서 있었습니다."

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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