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콤 장태민 기자] 하나증권은 1일 "현재 진행되고 있는 화학산업 구조조정은 갈 길이 아주 먼 과제이기 때문에 자율성의 원칙보다는 다소 물리적인 강제성이 수반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김상만 연구원은 "강제성은 인위적인 개입보다는 적절한 금융인센티브와 재무적 유인을 통해 이끌어낼 수 있을지 여부가 구조조정 성패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사업조정, 반드시 금융인센티브 필요
지난달 산업통상자원부는 정부의 화학산업 구조개편 방향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정부는 산업경쟁력강화 회의를 통해 1) 과잉설비감축 및 고부가 스페셜티 제품으로의 전환, 2) 재무건전성 확보, 3) 지역경제/고용 영향 최소화 등 ‘구조개편 3대 방향’을 밝히고, 1) 3개 석유화학 산업단지를 대상으로 구조개편 동시 추진, 2) 충분한 자구노력 및 타당성 있는 사업재편 계획 마련, 3) 정부의 종합지원 패키지 마련 등 ‘정부지원 3대 원칙’을 확정했다.
향후 국내 에틸렌 생산능력 270~370만톤 감축 및 고부가/친환경 제품으로의 전환 등 경쟁력 강화 방안과 재무구조 개선 등을 포함하는 사업재편계획을 연말까지 마련하기로 했다.
정부는 석화기업들이 나프타분해설비(NCC) 생산능력을 줄이는 자구안을 먼저 제출하면 이를 검토, 승인한 후 기업활력제고특별법(기활법)을 통해 각종 세제 혜택과 규제 특례를 준다는 방침이다.
채권단은 자율협약을 통해 설비 통폐합, 합작법인 설립 등 구체적인 경영/재무계획을 제출한 기업에 한해 만기 연장, 이자 유예 등 금융지원에 나설 계획이다.
이 같은 정부와 채권단의 구조조정 추진에 따라 관련 석유화학업계에서는 석유화학단지가 집중된 단지별로 물밑에서 통폐합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김상만 연구원은 그러나 "지난달 이같은 구조조정 로드맵이 제시된 이후 실제로 진도는 그렇게 빨리 나가고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이라며 "사업/영업적인 관점에서 보면 양수도 과정에서 대상 설비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에 대한 당사자 간의 이해관계를 조율하기가 쉽지 않고, 재무적인 측면에서 보면 그렇지 않아도 업황 저하로 인한 재무부담이 커져있는 상황에서 인수자금을 어떤 식으로 조달하고 재무비율을 관리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셈법이 그리 간단치 않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른바 정부/채권단이 주도하고 업계가 자율적인 협상을 통해 자연스럽게(chemically) 통폐합을 이루어내는 것은 현 시점에는 다소 이상적인 목표라고 했다.
김 연구원은 "가치산정 문제는 별개로 치더라도 필요재원을 어떤 식으로 확보할 것인지에 대해 보다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청사진이 제시될 필요가 있다. 단순히 구조조정에 임하면 대출만기 연장해주고 필요시 정책금융대출도 알선해준다는 식의 당근책은 업계 입장에서 유인이 되기 어렵다"면서 "‘선노력, 후지원’의 원칙보다는 노력과 지원에 관련된 패키지가 동시에 제시되면서 금융인센티브가 제공될 필요가 있는 것"이라고 했다.
설비를 떠안는 입장에서는 아무리 좋은 조건의 금융패키지가 지원되어도 대출 형태를 띄는 한 어디까지나 부채 증가를 수반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사업양수 이후 재무비율을 어떤 식으로 관리해줄 것인지에 대한 구조설계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현재 재무 여력이 크지 않은 주체가 양수자가 되는 경우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라며 "결론적으로 사업적인 측면에서의 통폐합 효율성과 금융적인 측면에서의 정합성이 동시에 고려돼야 한다"고 밝혔다.
통폐합 논의 자체에 대한 현실성 또한 계속적으로 상황 점검 등을 통해 조정해나갈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밝혔다.
김 연구원은 "문제가 되는 나프타분해설비의 공급과잉 문제가 국내에 국한되는 이슈라면 설비감축 등을 통해 가동률 제고→수익성 개선 등을 꾀할 수 있겠지만 국내에 국한되지 않고 역내, 더 나아가 글로벌한 현상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면서 "우리가 아무리 줄여도 국외에서 물량이 쏟아져 들어온다면 자칫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내지는 남 좋은 일 시켜주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관련해서 역내 수급에 결정적인 변수인 중국업계의 구조조정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에 대해서도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미세조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국내적으로 보더라도 공급과잉 이슈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업계는 다들 줄인다고 난리치는 판국에 2026년에 국내에서 신규설비가 준공될 예정에 있기 때문"이라며 "기존업체 중 설비를 넘겨주거나 신규설비를 가동하게 되는 주체들의 경우 구조조정 과정에서 일종의 무임승차를 하게 될 가능성이 열려있는 상황에서 관련 이해관계는 어떤 식으로 조율해 줄 것인지의 과제가 여전히 남는다"고 밝혔다.
설비감축과 관련된 이슈 또한 그렇다고 했다.
그는 "현재 주요 NCC업체들의 가동률은 극소수 업체를 제외하고는 7~80%대를 넘지 못할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이미 2~30%의 감축은 시행되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라며 "설비감축 이후 업황이 개선되어도 가동률이 다시 올라가면 감축효과는 당초에 기대했던 수준까지 올라오지 못할 가능성 또한 열려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구조조정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그리고 마무리되는 시점에 업계의 금융신뢰도 내지 재무융통성을 어떻게 관리해 주어야 할 것인지가 고려돼야 한다고 밝혔다.
김 연구원은 "사실 주요 석유화학 기업들의 경우 수익성/재무구조 저하로 인해 등급이 하향되는 추세에 있긴 했지만 절대 신용등급레벨이나 대주주(계열사)지원능력 등을 통해 재무적인 융통성은 유지하고 있었다"면서 "그러던 것이 어느 날 갑자기 은행 대출만기 연장이 필요한 천덕꾸러기 집단으로 하루아침에 전락하게 된 셈"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 같은 부정적 낙인효과 또한 구조조정 과정에서 관리될 필요가 있고 이 또한 금융패키지(사업양수도에 참여 여부와 상관없이)의 일부로 고려돼야 한다. 더군다나 구조조정 안 하면 금융지원도 없다는 식의 접근 또한 지양할 필요가 있다. 자칫 잘못하면 설비 구조조정은 못하고 채무구조조정만 하게 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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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