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 2025-09-28 (일)

(장태민 칼럼) 대왕고래와 부산EXPO에 얽힌 기묘한 이야기

  • 입력 2025-09-26 10:47
  •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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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한국석유공사의 2025년 9월 21일자 보도자료

자료: 한국석유공사의 2025년 9월 21일자 보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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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콤 장태민 기자] 한국석유공사가 지난 21일 "대왕고래 유망구조에 경제성이 없다"고 발표했다.

석유공사는 "올해 2월 유망구조 중 하나인 대왕고래 구조 시추로 취득한 시료에 대해 전문업체(Core Laboratorie)를 통해 약 6개월(2월말∼8월말)간 정밀분석을 수행한 결과 사암층(약 70m)과 덮개암(약 270m) 및 공극률(약 31%) 등에 있어서는 대체적으로 양호한 지하구조 물성을 확인했으나 회수 가능한 가스를 발견하지 못해 대왕고래 구조는 경제성이 없는 것으로 최종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석유공사는 그러면서 "향후 대왕고래 구조에 대한 추가적인 탐사는 추진할 계획이 없다"고 했다.

대왕고래 프로젝트 실패 선언이었다.

■ 대왕고래, 예상대로 거액 날린 프로젝트


대왕고래 프로젝트는 합리적인 사람들의 예상대로 '거대한 혈세 낭비'로 끝나고 말았다.

이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국이란 큰 나라가 사실상의 1인기업이었던 액트지오와 계약을 맺을 때부터 뭔가 이상하다고 느낄 수 밖에 없는 사건이었다.

대왕고래 사업은 사실상 석유공사가 2022년 연례 보고서에서도 '시추 구조 대상으로 적절치 않다'고 결론을 이미 내린 프로젝트였다.

탐사 시추 결과 50~70%는 될 거라던 가스 포화도는 고작 6%에 그치고 나머지는 그냥 바닷물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잔뜩 부풀렸던 ‘산유국의 꿈’은 애초부터 실현되기 어려운 프로젝트였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1차 탐사 시추 등 조사비용으로만 1200억 원 넘는 비용을 투입해 혈세를 낭비하고도 석유공사 동해 탐사팀은 작년 성과 평가에서 S등급을 받았다고 사실이다.

동해 탐사팀이 속한 ENP 에너지 사업본부 국내 사업개발처는 A등급을 받아서 수백 퍼센트 ‘성과급 잔치’를 했다고 한다.

이런 일은 공무원이나 공기업 사회에 잘못된 관행을 더욱 공고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해도, 아무리 혈세를 많이 낭비하더라도, 정권에 아부 잘하고 충성만 하면 좋은 평점을 받을 수 있다는 못된 관행을 더욱 강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혈세 낭비의 책임을 물어야 할 판에 공무원과 공기업들은 자기들끼리 자화자찬하면서 기가 막힌 일을 벌였다.

■ '삼성전자 시총 5배라던 대왕고래'의 허탈한 결과

2024년 6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동해가스전 주변에 최대 140억배럴 규모의 석유와 가스 매장 가능성이 있다고 발표했다.

2023년 2월 미국 심해 기술 평가 전문기업인 액트지오사에 그간 축적한 동해 탐사자료의 분석을 의뢰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했다.

이 규모는 1990년대 후반 발견된 동해 가스전의 300배가 넘는 규모이며, 한국 전체가 천년가스 최대 29년, 석유 4년 넘게 쓸수 있는 양이라고 했다.

심해광구로는 21세기 최대 석유개발사업 평가받는 남미 가이아나 광구 110억배럴보다 많은 탐사 자원량이라고 했다.

당시 윤 대통령이 직접 나와서 이런 발표를 하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놀랐다.

에너지 탐사 작업은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대통령의 목소리엔 마치 거대한 성과라도 이룬 것처럼 흥이 들어 있었다.

그런데 정부는 계속 기대감을 부풀렸다.

탐사 시추와 불확실성이 큰 프로젝트는 보수적으로 접근해야 옳은데, 마치 큰 성공을 거둔 것처럼 홍보를 해 의아했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2024년 6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이 발표한 동해 석유·가스 개발 계획과 관련해 "매장 가치가 현시점에서 삼성전자 시가총액의 5배 수준"이라고 말했다.

물리 탐사는 객관적 수준에서 다 진행해 검증까지 받은 상황이고, 실제 탐사 시추에 들어가서 어느 정도 규모로 매장돼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필자는 당시 안 장관이 "140억 배럴 정도의 막대한 양이 매장된 것으로 추정하고 그중 4분의 3이 가스, 석유가 4분의 1로 추정된다"고 흥분해서 말하는 것을 보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 아브레우의 '당당한 기자회견'...이런 사람에게 당한 허술한 나라 한국

당시 발표 장면을 보면서 머리칼이 곤두서는 느낌을 받았다.

윤 대통령, 안 장관이 뭔가에 홀린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무엇보다 한국 정부가 계약한 액트지오는 실제 시추를 담당하는 회사가 아니라 데이터를 해석하고 분석하는 업체로 연간 매출액이 몇 천만원에 불과했다.

사적인 경제영역에서도 이런 업체와는 계약을 맺지 않는데,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인 한국이 이렇게 허술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을 했다.

주변에서도 아브레우라는 브라질계 미국 사기꾼이 한국 정부를 '호구로 잡았다'는 식의 평가을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빅터 아브레우(Vitor Abreu)는 한국 정부의 주선으로 6월 7일 기자회견을 열어 "우리가 분석한 모든 유정은 석유와 가스의 존재를 암시하는 모든 요소를 갖췄다"면서 프로젝트가 매우 유망하다고 큰 소리를 쳤다.

■ 너무 이상했던 대통령-산업장관-그리고 아브레우의 '자신감'

2024년 6월 정부의 대왕고래 발표와 액트지오의 기자회견에도 불구하고 이 프로젝트를 둘러싼 의구심은 해소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의심만 커져갔다.

이 프로젝트에 대해 질의를 하면 당시 정부나 여당은 "석유가 나오지 않길 바라느냐"면서 매도하기 바빴다.

하지만 ‘4년간 세금을 체납하고, 법인자격에도 문제가 있는, 액트지오가 어떻게 계약 당사자로 선정됐는지'에 대한 답을 얻을 수는 없었다.

그저 정부는 액트지오와 아브레우 모두 유능하다고 했다.

정부와 대통령, 장관이 너무 무능하다 보니, 보통 사람의 눈엔 사기꾼으로 보였는 액트지오가 그렇게 유능해 보였던 것일까.

어마어마한 국민 세금이 투입될 사업이었지만 정부는 구체적인 업체 선정 과정 등에 대해 해명하지 않았다.

액트지오의 입찰과정, 사업성 평가결과 자료 등 자료도 제대로 제출하지 않았다.

그리고 해가 바뀐 2025년 9월 '공식적인 결과'가 나왔다.

우려하던 대로, 그러나 예상했던 대로, 한국은 거대한 돈을 날렸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계약이다 보니, 당시 공무원 누군가가 아브레우와 얽혔을 것이란 의심도 끊이지 않았다.

아브레우는 한국같은 허술한 나라를 속여(?) 자신의 노년을 위한 자금을 충분히 확보한 것으로 보였다.

대왕고래에 얽힌 '기묘한 이야기'는 역시나 기묘했던 엑스포 사건에 대한 기억도 소환했다.

■ 대왕고래 사건에 오버랩되는 부산 EXPO 사건


주변에선 대왕고래에 얽힌 기묘한 스토리를 다른 사건과 연장선에서 보기도 했다.

한국 제2의 도시 부산에 깊은 상처를 남긴 '엑스포'와도 관련이 있다는 의심도 있었던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로 인한 국정 지지율이 역대 최저치로 떨어지자 이를 만회하기 위한 회심의 카드로 '대왕고래'를 홍보했다는 의혹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사실 부산 엑스포 유치 과정도 코메디였다.

부산 엑스포는 엄청난 돈 낭비와 한국 외교의 무능한 민낯만 보여준 사건이었다. EXPO 부산 유치 실패과정에서 놀랍게도 국정원 등 정보기관은 전혀 기능을 하지 못했다.

엑스포 선정지는 2023년 11월 29일에 발표됐다. 개표 결과 사우디가 119표, 한국이 29표, 이탈리아가 17표였다. 이 격차를 보면 알겠지만, 한국이 애초부터 기대할 만한 이벤트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한국은 어마어마한 돈만 날렸다.

2024년 9월 민주당의 허성무 의원은 국회에서 "정부는 부산엑스포 유치를 위해 2022년 2,516억, 2023년 3,228억 등 총 5,744억 썼다고 한다. 우리가 29표 받았으니 한표당 198억원이 들었다"고 비꼬았다.

2030 엑스포는 사실 일찌감치 사우디로 기운 상태였다. 대부분의 해외 언론 등은 사우디로 기정사실화 했지만, 이상하게 한국 정부만 뒤집을 자신이 있다고 고집을 부렸다.

당시 필자의 주변에선 '대통령이 인터넷을 못하느냐'면서 해외는 이미 끝났다고 하는데, 왜 되지도 않을 일을 진지하게 매달리느냐는 얘기를 하곤 했다.

우리의 대통령은 그러나 엑스포 유치를 위해 기업인들을 몰고 다니면서 사진을 찍었다. 기업들에게 떡볶이를 먹이면서 자신의 뒤로 병풍을 세웠다. 당시 해외에선 모두 실패라고 했는데, 국내는 '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밀어붙였다.

11월 7일 박진 외교장관은 "부산엑스포 3주 남았다. 전지역 걸쳐 지지세가 상승 중"이라고 했고 11월 9일 한덕수 총리는 국회에 나와서 "부산 엑스포가 상당부분 초반 열세 따라잡았다. 현재 경쟁이 굉장히 치열하다"고 했다.

그러나 결과는 '무려' 119:29였다.

국내 외에선 윤석열 대통령이 너무 진지하게 엑스포에 임하는 모습을 보면서 '벌거벗은 임금님이 따로 없다'고 흉을 봤다.

한국은 되지도 않을 일을 홍보하느라 6천억원에 달하는 피같은 돈을 날리고 말았다.

그런 뒤 이 사건을 지우기 위해(?) 대왕고래와 같은 또다른 신기루를 띄웠다. 그 결과 다시 한번 큰 돈을 날리고 말았다.

도대체 무슨 사연들이 있었던 것일까.

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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