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 2025-09-15 (월)

(장태민 칼럼) 미국의 동맹 '목조르기'...생존위한 강경카드 챙겨야

  • 입력 2025-09-15 15:28
  •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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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예쓰맨들, 출처: 백악관

사진: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예쓰맨들, 출처: 백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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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콤 장태민 기자] 미국 현지시간 2025년 9월 4일.

조지아주 서배너 산업단지에 있는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 미국 공무원들이 대거 떴다.

단속 나온 500명이 넘는 미국인들의 소속은 이민세관단속국(ICE, Immigration and Customs Enforcement), 국토안보수사국(HSI, Homeland Security Investigations), 마약단속국(DEA, Drug Enforcement Administration), 연방수사국(FBI, Federal Bureau of Investigation)이었다.

이름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곳에서 나온 미국인들이 한국이 근로자 300명 이상 등 무려 475명을 체포했다.

미국 언론들은 단일 사업장에서 벌어진 사상 최대 규모의 단속이었다고 보도했다.

미국 당국은 한국인 등이 ESTA(전자여행허가, Electronic System for Travel Authorization)나 B-1비자를 통해 입국한 뒤 현장에서 일한 점을 문제 삼아 한국인들을 감금했다.

미국 당국의 한국 공장 단속은 헬기와 장갑차를 통해 이뤄졌다. 무장한 요원들이 출입문을 봉쇄하면서 사실상 군사작전을 방불케했다.

미국 당국은 쇠사슬과 수갑에 묶인 한국인들을 자국 방송과 전세계에 중개하면서 대대적으로 망신을 주는 전략까지 썼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뒷목을 잡을 수 밖에 없는 장면들이었다.

미국에 공장을 지어주기 위해 간 한국의 엔지니어들이 범죄자 취급을 받고 잡혀 들어간 것이었다.

이후 석방 교섭이 이뤄진지 1주일만에 한국 노동자들은 고국으로 돌아왔다.

노동자들은 미국 조지아 현지시간 기준 9월 11일 새벽 1시 20분경에 구금 시설에서 석방돼 버스 8대에 나눠 타고 애틀랜타 국제공항으로 이동했다.

같은 날 정오에 애틀랜타 국제공항을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고 9월 12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한국인 근로자 316명과 일본인, 중국인 등 외국인 14명이 탑승했다.

현지에서 체포된 지 약 7일 만에 석방되어 귀국한 것이며, 한국의 미국 투자에 대해 생각할 거리들을 던졌다.

■ 트럼프 정부의 한국 공장 단속...형식논리 상 정당하나 상황 논리로 볼 때 일부러 동맹의 목을 조른 것

이번 사태 발생 후 한국과 미국에선 미국 당국의 현대차-LG엔솔 조지아 배터리 공장 단속에 대한 뜨거운 찬반 논쟁이 이어졌다.

간단하게 '형식과 실질' 차원에서 단속에 대한 판단을 정리해 보면 이렇다.

우선 '형식논리'로 보면 이번 단속은 정당해 보인다.

미국 이민법에 따라 ESTA나 단기 방문 비자를 가진 노동자들이 미국 내에서 실제로 노동을 하는 것은 불법이다. 따라서 법치주의 국가가 이를 단속하는 것은 당연한 주권행위로 볼 수 있다.

미국이든 어디든 원칙적으로 그 나라에서 일을 하기 위해선 그에 합당한 비자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상황논리'를 갖다 대는 순간 이번 단속은 '의도'가 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우선 미국은 스스로 이번 단속을 위해 이미 수개월을 준비했다고 밝혔다.

미국 당국은 현실적인 비자 문제 때문에 한국 노동자들이 '관행적으로' ESTA나 B-1 비자를 이용해 일을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를 이용해 한국인들의 목을 후려칠 준비가 돼 있었던 것이다.

그간 바이든 정부 때는 이런 일이 '익스큐즈'가 됐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는 가만히 두지 않았다.

물론 여러차례 트럼프 정부가 이 문제에 대해 경고한 점을 한국 기업들이 가볍게 넘긴 점은 문제로 볼 수 있었다.

다만 '설마' 이렇게까지 할 줄은 생각 못한 것이다.

전체적으로 상황 논리를 갖다댈 때 이번 일은 미국이 '일부러 벌인' 쇼로 봐야 한다. 이번 일은 미국이 한국과 관세 협상 등을 하는 과정에서 한국을 더 강하게 몰아붙이기 위해 꾸몄다고 볼 여지가 크다.

■ 러트닉의 뻔뻔함

미국은 현재 관세 협상이란 명목으로 한국, 일본 등 동맹국들의 돈을 강탈하는 중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여태 본 적 없는 유형의 미국 지도자다.

하지만 이런 트럼프조차 수많은 나라들이 모여 있는 유럽에 대해선 한국, 일본처러 비싸게 굴지 않는다.

트럼프는 희한하게 한국, 일본 두 나라에게만 비싸게 군다.

미-중 패권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린치핀이지만, 유럽 내 미국 동맹국들에 비하면 그야말로 호구 취급을 받고 있다.

트럼프는 한국, 일본에게서 유독 돈을 많이 뜯어내고 있으며, 동맹국들에게 돈을 강탈하면서도 너무나 당당하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은 11일 CNBC 인터뷰에서 "일본이 이미 무역협정에 서명했으니 한국도 합의를 수용하든지 아니면 관세를 내야 한다. 한국에 더는 융통성을 발휘할 수 없다"고 압박했다.

일본이 5500억 달러를 투자하고 미국과 협정을 맺은 사례를 들면서 한국도 이를 보고 같은 조건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그러지 않으면 미국이 한국에 부과하는 관세가 당초 합의한 15%가 아닌 25%로 다시 올라갈 수 있다고 했다.

김정관 산업장관은 전날 미국에서 돌아왔으나 구체적인 성과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지난 7월 한미 양국이 합의한 관세에 대한 조정, 3500억달러 규모의 투자에 대해 협상했으나 양국이 합의점을 찾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한국은 대미 투자에서 직접투자 비중을 최대한 줄이고 보증을 통해 부담을 낮추려 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직접 투자 비중을 높이라고 요구하고 있다.

아울러 미국은 투자 대상 선정, 투자금 회수, 수익 배분 문제에 대해 자국에 크게 유리한 조건을 주장하고 있다.

한국이 돈과 기술을 대 투자를 하고 그 과실은 자신들이 다 따먹겠다는 심보다.

미국 호구 자처한 일본...덕분에 한국까지 호구로 잡혀

한국의 협상이 어려워진 데는 일본의 '협상 실패'가 컸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일본은 미국에 너무 쉽게 많은 것을 내줬다.

일본이 미국에 약속한 투자 규모는 5500억 달러인 데 비해 유럽연합(EU)은 6천억달러를 미국에 투자하기로 했다.

현재 EU의 명목GDP 규모는 20조 달러 수준으로 5조 달러에도 못 미치는 일본보다 4배 이상 큰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일본이 EU와 비교해 너무 많은 금액을 미국에 투자한다.

미국은 일본을 '호구'로 잡은 만큼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 동맹인 한국에게도 일본 못지 않게 벗겨 먹으려고 한다.

한국은 GDP 규모가 이런 일본의 절반에도 크게 못 미치는 나라지만, 트럼프의 충실한 하인들인 러트닉 같은 사람들은 '일본처럼 정성을 보이라'면서 끊임 없이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

한국은 경제 규모 대비 미국에 투자하는 금액 등을 따져보면 사실상 '미국 뒷바라지'에 제일 열심인 나라다.

미국은 이런 충실한 동맹에 대해 고마워할 줄 모른 채 골수까지 빨아먹으려는 짓을 벌이고 있다.

또 사실 미-중 패권 게임에서 한국과 일본은 서로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할 필요가 컸다.

중국이 정부 보조금을 통한 과잉 생산과 덤핑을 통해 한국, 일본, 독일 등 제조 강국들의 제조업을 무너뜨릴 때 협력할 필요가 있었다.

최근 일본은 미국 시장에서 현대차보다 도요다에게 더 유리한 입지를 안겨주기 위해 미국에 너무 많은 것을 양보한 것 아닌가 하는 의심도 받았다. 아울러 미국이 이를 이용해 먹었다는 평가도 보였다.

미국은 그러면서 '주된 적'인 중국에겐 마음대로 못하고 있다. 중국이 '희토류 안 준다'고 하자 꼬리를 내린 채 한국, 일본 등만 더욱 압박했다.

트럼프 '예쓰맨'들로 꽉꽉 채운 2기 정부는 1기보다 상태가 더 나쁘다. 트럼프는 중국에 얻어터진 자신의 동맹 한국, 일본을 더욱 궁지로 몰고 있다.

하지만 미국이 이런 식으로 나오면 중국만 회심의 미소를 짓게 될 것이다.

미국이 자신들의 대중국 정책 프런트 라인인 일본, 한국에 과도한 미국 투자를 강요하고 동맹국 제조업 역량만 떨어뜨리면 미중 패권 전쟁에서 중국의 승리 가능성만 더욱 높아질 뿐이다.

■ CPTPP 등 다방면의 생존의 길 모색해야...생존 위한 강공책도 모색해야

최근 한국은 일본이 주도하는 CPTPP(Comprehensive and Progressive Agreement for Trans-Pacific Partnership) 가입을 적극 타진하고 있다.

트럼프의 미국이 관세정책 등 자국 이기주의를 통해 동맹국들의 수출 경제를 더욱 어렵게 하자 한국은 최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가입을 적극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CPTPP는 세계 GDP의 약 15%를 차지하는 경제권이다. 회원국은 일본, 캐나다, 호주, 멕시코, 싱가포르, 베트남 등이다.

한국 정부가 미국과 중국의 무역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무역 다변화와 경제동맹 네트워크 확보를 위해 CPTPP 가입 추진하는 것은 옳은 방향이다.

한국은 또 미국 내의 '합리적인 인사'들을 최대한 활용해 트럼프 정부를 설득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러트닉이 한국더러 '일본 만큼 하라'고 하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압박이다. 당장 외환보유액 만한 규모의 투자를 하라고 다그치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미국이 지나친 규모의 투자를 미국에 강요할 때 일각에선 미국이 마치 한국더러 '다시 IMF 맛 좀 보라'고 강요하는 것 같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트럼프 1기와 달리 지금은 트럼프라는 폭군 성향의 대통령 뒤에 온갖 종류의 예쓰맨들만 있어서 동맹국들의 대응은 더욱 힘들다.

미국이 한국 기업들의 대미 투자에 대해 이리저리 지정을 해 준다든가, 이익은 미국이 갖겠다고 하는 일은 사실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국가간 관계에 있어서 아무리 법보다 주먹이 앞선다고 하더라도 트럼프 이전에 협상이나 장사가 이런 식으로 이뤄지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아울러 트럼프 입맛에 맞춘다고 한국의 제조업을 몽땅 뜯어 미국에 갖다 놓으면 한국 경제는 그야 말로 공동화되고 만다. 그렇다고 그 공장이 미국에서 원활하게 돌아갈 리도 없다.

한국 공장들을 모두 뜯어 미국에 갖다 놓더라도, 한국인 임금 2배를 훨씬 넘는 대선진국 노동자들의 몸값 때문에 공장을 제대로 돌릴 수도 없을 것이다.

성공한 사업가 트럼프가 경제의 법칙과 자본의 논리를 잘 알 것인데, 계속 어이없이 구는 모습을 보면 답답해진다.

■ 미국 경제학자의 눈에도 '가련한 한국'

최근 미국 경제정책연구센터(CEPR, Center for Economic and Policy Research)의 딘 베이커 연구원은 '가련한' 한국에게 색다른 조언을 해 주목을 끌었다.

딘 베이커는 "트럼프에게 줄 488조원으로 수출업자를 지원하는 것이 더 낫다"고 했다.

미국에 백지수표를 써주면서 상호관세를 낮추는 데 골몰하기 보다는 다른 아이디어로 찾아보면 어떻겠느냐고 했다.

베이커는 한국이 미국에 물건을 팔 때 무는 관세가 25%로 다시 올라가면 한국의 대미 수출이 125억달러 정도 줄어들 것으로 봤다. 그는 GDP의 0.7%에 해당하는 손실을 메우려다 한국이 더 큰 피해를 볼 수 있다고 걱정해줬다.

트럼프가 달라는 3500억달러를 주지 말고 이보다 훨씬 적은 돈으로 한국 자체적으로 기업을 지원하는 게 더 나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물론 베이커야 이해관계가 없으니 책상물림 경제학자의 입장에서 쉽게 말할 수 있다.

아무튼 한 가지 생각해야 할 것은 한국이 이제 무조건 미국이 원하는 대로 해줘선 안 된다는 것이다.

미국이란 큰 시장에서 한국이 점유율을 잃어버리면 많은 한국 기업과 산업, 그리고 한국경제가 큰 위기에 처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이 해 달라는 대로 다 해주면 더 한국경제는 더욱 위태로워진다.

이기심으로 똘똘 뭉친 '미련한 트럼프' 때문에 미국 아시아 동맹국들의 미래는 어두워지고, 중국의 미래는 더욱 밝아지고 있다.

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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