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 윤석열 전 대통령 페이스북

(장태민 칼럼) 대선 전 다시듣는 윤석열녹취록
이미지 확대보기[뉴스콤 장태민 기자] 내일(3일) '12.3 계엄' 선포 6개월만에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이미 파면됐으며, 현재는 그에 대한 형사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 4월 4일 헌법재판관들은 윤 전 대통령의 '계엄은 정당한 통치행위'라는 주장을 기각하고 만장일치로 그를 권좌에서 끌어내렸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필자는 그 근원을 찾기 위해 예전에 들었던, 23년 9월에 공개됐던 '윤석열 녹취록'을 다시 들었다. 이 자료는 최근 한국사회를 뒤흔들었던 '기이한' 일을 해석하는 데 유용하다.
아울러 한국 내 소위 보수와 진보라는 양대 구조가 윤석열이라는 인물로 인해 크게 뒤틀릴 수밖에 없었음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녹취록에서 알수 있는 흥미로운 대목 중 하나는 윤 전 대통령이 '민주당'보다 '국민의힘'을 더 싫어하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가 원했던 대로 국민의힘은 상당부분 파괴됐다.
한국 정치에 대해 꽤나 안다는 사람들 중엔 오래 전부터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해 '국민의힘과 한국 보수정당 파괴를 위해 특파된 인물'으로 인식하는 경우들도 더러 있었다.
이런 주장들은 상당 부분 진실을 담고 있었다. 이미 녹취록엔 꽤 많은 진실이 있었다.
■ 윤석열, 국힘 입당 직전의 대화
지난 2023년 9월에 공개된 윤석열 전 대통령의 녹취록.
더탐사라는 매체가 공개했던 이 녹취록엔 당시 윤석열 대통령 후보의 국민의힘에 대한 인식이 담겨있었다.
윤 전 대통령은 자신의 지지자라는 사람과의 통화에서 '정치하는' 개인적 속내를 드러내 상당한 충격을 준 바 있다.
이 대화는 2021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대선 출마를 위해 국민의힘에 입당하기 직전에 지인과 나눈 내용이었다.
녹취록을 들어보면 윤 전 대통령이 대권에 나섰던 이유가 '국가와 민족을 위한 대의' 보다는 자신을 궁지에 몬 민주당에 대한 분노와 생존을 위한 것 아니었나 하고 의심하게 된다.
대통령으로서의 자세를 갖추지 못했던 이 검사 출신 정치인은 결국 임기 3년도 채우지 못했다. 2025년 12.3일 '계엄'이라는 상상도 못할 큰 일을 저지른 뒤 권좌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한국은 이 일로 정치, 경제적으로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지난 2023년 이 녹취록이 공개된 뒤 많은 사람들은 '초짜 정치인'이 사익과 분풀이, 그리고 자신의 안전이라는 개인적 욕망을 해소하기 위해 권력을 쥐게 되면 국가와 국민이 엄청난 데미지를 입을 수 있다면서 우려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우려는 녹취록 공개 1년 남짓 만에 현실이 돼 버렸다.
■ 윤석열, 김대중·노무현 좋아했던 친민주당 검사
윤석열 후보는 원래 친(親)민주당 사람이었다.
2023년 공개된 녹취록을 들어보면 2021년 국민의힘 입당 직전 윤석열 후보가 "저도 DJ의 열렬한 지지자였고 노무현 대통령을 존경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윤 후보는 그러나 '당시의' 민주당은 자신이 알던 민주당과 다르다고 했다. 그러면서 '변질된 민주당'의 정권 연장을 막기 위해선 자신이 국민의힘과 손을 잡을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윤 후보는 그 자신을 품어준 국민의힘이라는 정당에 대해 별로 애정이 없었다.
윤 후보는 조국·추미애 사태를 거치면서 민주당 정치인들과 척을 지게 됐고, 그런 그를 '불임 정당'이 돼 버린 국민의힘이 데려다가 썼던 것이다.
윤석열 검사에게 대통령 후보라는 기묘한 역할을 부여한 국민의힘도 이상했지만, 자신을 당의 대권 후보로 선택한 국민의힘을 대하는 윤 후보의 관점도 정상이라고 보긴 어려웠다.
윤 전 대통령은 녹취록에서 "(내가) 국힘에 간다고 국민의힘 사람이 되서 가는 게 아니다. 국힘에서 후보를 다 뽑은 뒤 제3지대에서 원샷 경선을 하는 건 굉장히 위험하다. 그것이 잘못되면 민주당 정권에다 그냥 떡 주는 것 밖에 안 된다"는 입당 이유를 밝혔다.
■ 윤석열, 국민의힘 '먹기' 위한 정치...결국 당도 먹히고 자신도 먹혔다
녹취록에서 윤 전 대통령은 자신의 국힘 입당을 YS(김영삼 전 대통령)에 비유했다. 좋지는 않지만 국힘을 '먹기 위해서' 입당한다고 했다.
"옛날에 YS도 어쨌든 민자당 들어가서 먹었고, YS가 대통령 안 됐으면 DJ도 대통령 못했어요. 국힘이라는 당이 좋아서 들어가는 게 아니라, (경선) 1차부터 들어가서 뛰겠다고 하는 것도 설득력이 있어요. 국힘이라는 걸 어디 쥐약 먹은 놈들로만 생각할 게 아니라, 아무리 국힘이 밉더라도 이건(문재인 정권과 당시 민주당) 내로남불..."
23년 9월 공개된 녹취록에서 윤 전 대통령은 '제3지대'를 권하는 지지자에게 자신은 국힘을 좋아하지 않지만 '문재인 시대의 민주당'에 대한 분노 때문에 국민의힘을 '숙주'로 활용하고자 한다는 뜻을 명확히 했다.
"저도 DJ정권, 노무현 정권, 이명박 정권, 박근혜 정권 다 겪어봤지만 이게 박근혜 정권만 돼도 자기들 잘못한 것 알아요. 얘네들(문재인 정권)은 그런 게 없어요. 역사상 이런 정권이 없어요. 국힘이 아무리 미워도 국힘을 갖다가 플랫폼으로 할 수 밖에 없다는 걸 인정하셔야 돼요."
그러면서 자신의 목적은 정권 교체라는 점을 명확히 하면서 대통령엔 미련이 없다고 했다.
"저는 정권교체하려고 나온 사람이지 대통령 하려고 나온 사람이 아니에요. 그런 자리 자체가 저한테는 귀찮습니다. 솔직한 얘기로. 그러나 어쨌든 이거는 엎어줘야 되고."
이후 대통령 자리가 귀찮았던 사람이 결국 대통령이 된 뒤 '뜬금없는' 계엄을 통해 잘리고 말았다.
윤 전 대통령은 자신이 국민의힘을 먹어 주겠다고 했지만 당도, 자신도 모두 먹히고 만 것이다.
■ 윤석열, 오만했던 초짜 정치인
윤 전 대통령은 대선후보로 뛰어들기 직전 국힘을 형편없는 정당 정도로 생각했다.
"국힘에서 (대통령) 할 놈이 없어요. 국힘 안에도 많은 의원과 또 원외 당협위원장이나 당원들이 빨리 들어와서 국힘을 접수해서 (해달라고). 이게 지금 이준석이 아무리 까불어봤자 3개월 짜리입니다. 3개월 짜리..."
윤 전 대통령은 당시 이준석 대표를 한 없이 폄하한 뒤 이준석을 자르고 자신이 당을 먹은 뒤 조직을 개편하겠다는 뜻을 비쳤다.
"국힘이라는 거에 대해 상대적 거부감이 있어도 어차피 양당제가 현실이기 때문에 들어가서 그거(국민의힘)를 접수하고 국힘의 외연을 확장하고 해야해요."
그런 뒤 윤 후보는 그러면서 자신이 국민의힘 사람들과 다르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제가 광주에 간 것이 선거 때 전라도표 얻자고 그런 게 아니에요. 나라가, 정부라는 게 국민 전체를 똑같이 균형있게 살펴야 된다는 차원에서 간 거지, 거기 가서 호남표 구걸하려고 한 게 아닙니다. 호남에서 표 안 나온다는 거에요. 그러나 저는 제가 대통령이 됐는데 호남이 95% 민주당을 찍어도 영남이나 다른 지역과 똑같이 호남을 대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러 간 거지 표 얻으러 간 게 아니에요."
자신의 지지자에게 자신은 민주당보다 국민의힘을 더 싫어한다는 말도 했다.
"국힘 싫어하는 거 제가 100배 알고 저는 선생님보다 국힘을 더 싫어해요. 제가 민주당보다 국힘 더 싫어해요. 민주당이 내로남불로 해쳐 먹을 때 국힘 의원들이 싸웠습니까."
■ 윤석열, 국민의힘과의 국공합작?...국힘 소멸 원했던 인물
윤 전 대통령은 급기야 자신의 국민의힘 입당을 중국 현대사의 국공합장에 비유했다. 그러면서 미리 국민의힘을 '접수'하는 게 나았을 수 있었다고 했다.
"현실적으로 중국에서도 모택동 공산당과 장개석 국민당이 내전을 벌이다가도 서로 간에 원수로 알다가도 일본 제국주의와 싸울 때는 어떻게 합니까. 마찬가지로 필요하면 손을 잡아야 되고 필요하면 접수하러 들어가야 되는 것이지, 이상적인 얘기만 해갖고는 밖에서 계속 돌다 보면 죽도 밥도 안돼요. 제가 사실은 (2021년) 5~6월 선제적 입당도 생각하다가 바깥에 선생님 같은 여론(제3지대 창당 등)이 워낙 많아서 안 들어갔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때 제가 들어갔으면 최재형이도 못 들어오고 국힘의 101명 중에 80명은 앞에다 줄을 세웠어. 그러면 이준석이도 당선 안 시킬 수 있고 말이죠. 사실은 진작 했었어야 되는 거야. 그래도 이놈의 당을 바꿔버렸어야 되는 건데. 국힘이란 거를 저런 당으로 전제를 깔아 놓을 필요가 없다 이 말이에요."
지지자는 윤 전 대통령은 '깊은 뜻'을 이해하게 됐다면서, 만에하나 국민의힘에 들어간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서 호랑이가 되라고 격려했다.
윤 전 대통령은 국민의힘이라는 당의 접수, 더 나아가 자신의 당으로 만들겠다는 자신감까지 보였다.
"만약에 이놈 새끼들 가서 개판 치면 당을 완전히 뽀개버리고, 지금 국힘 당원 26만명인데 제가 국힘에 들어가면 당원을 100만 명 이상으로 좀 만들어 주시고 국힘 지도부 소환해서 다 바꿔버려. 전부..."
지지자는 윤 전 대통령이 국힘 내부의 그를 지지하는 50명을 데리고 나온 뒤 당원을 왕창 늘려 국힘을 뒤집어 버리면 3개월에 '쇼부가 난다'고 격려하기도 했다. 지지자의 격려에 윤 전 대통령은 신이 났다.
"후보가 되면 비대위원장이 돼 갖고 당 대표부터 전부 해임할 수 있어요. 거기 배지(국힘 국회의원)가 101명이 있고 103명이 있고, 그래서 지금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때 들어가서 다 먹어주는 거예요. 제가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의원 41명이 입당 촉구했죠. 제가 만약 들어가면 더 많은 사람이 줄을 설 거예요."
자신이 국민의힘에 들어가게 되면 당원을 늘려서 이 당 자체를 바꿔버리겠다고 했다. 이름도 바꿀 수 있다고 했다.
■ 윤석열, 한국정치 파국 이끈 주역
그러면서 '새로운 당'의 철학을 얘기했다.
"DJ 정신, 노무현 정신, 박정희 정신 중 새마을 정신만 이렇게 해서...새마을 정신은 DJ나 노무현이 다 칭송한 거예요. 박정희의 새마을 정신과 DJ 정신과 노무현 정신을 가지고 상식의 정당을 만들어서 이걸 갖고 붙어야 되는데. 국힘에 있는 저 자원 자체가 이상한 놈이 다 빨아먹게 돼 있어요. 민주당 보다 더 좋은 우리한 당료들이 있는데, 저거를 먹어줘야 돼요."
그는 제3지대에 가야 된다고 주장하는 이상주의 때문에 자신도 두 달 이상 늦어지고 엄청나게 시간 낭비를 했다고 했다.
향후 자신의 국힘 입당은 '보수 당원'이 되기 위한 게 아니란 점을 강조했다.
"선생님께서 제가 만약 나중에 입당을 하더라도 그거는 그야말로 정권교체를 위한 거지 제가 국힘의 보수 당원이 되기 위해서 가는 게 아니에요."
자신이 국민의힘에 들어가더라도 국민의힘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면서 지지자를 안심시켰다.
"선생님께서는 하여튼 일단 호랑이 굴에 (제가) 먹으러 들어간다고 생각을 하시고. 가서 이걸 주워 먹어야 돼요. 그리고 얘들(국민의힘)도 기다리고 있어. 지금 와서 자기들을 접수해달라는데 안 가니까."
윤석열 전 대통령의 가족들은 자신들이 우파로 불리는 것을 싫어했다.
파면된 전 대통령의 부인(김건희)은 '서울의소리'와 통화에서 태극기 세력, 박근혜 세력들이 자신들을 싫어한다면서 자신들은 우파가 아니라고 항변하기도 했다.
지금은 예전보다 꽤 많은 사람들이 '윤석열이 혹시 민주당이 보낸 트로이 목마 아니었을까'라고 의심하는 듯하다.
특히 지금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결정적인 시기마다 이재명 후보를 도우면서 국민의힘을 더욱 무능한 정당으로 전락시킨 장본인이라는 평가들도 늘어났다.
한 때 국민의힘 외곽조직에서 일했던 필자의 한 지인은 이렇게 평가했다.
"결과적으로 윤석열은 민주당이 국민의힘으로 보낸 트로이목마와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12.3 계엄을 통해 구속 기로에 서 있던 이재명을 구출해낸 일등공신이 윤석열이잖아요. 그는 이재명의 진정한 도우미였습니다. 그리고 이재명은 이제 윤석열 덕분에 내일(대선)부로 입법, 사법, 행정을 모두 손에 쥐게 되는 통치자로 등극하게 됐습니다."
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