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 2024-07-27 (토)

(장태민 칼럼) 영일만 논란

  • 입력 2024-06-07 15:21
  • 장태민 기자
댓글
0
자료: 최근 한국가스공사 주가 흐름, 출처: 코스콤 CHECK

자료: 최근 한국가스공사 주가 흐름, 출처: 코스콤 CHECK

이미지 확대보기
[뉴스콤 장태민 기자] 동해 석유·가스전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이번주 월요일(3일)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최대 매장량 140억 배럴 추정 연구결과'를 거론한 뒤 산유국에 대한 기대감과 허황된 브리핑이라는 비판이 혼재돼 있다.

급기야 액트지오 고문이 한국을 방문해 이날 브리핑을 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 대통령과 정부 알린 '놀라운' 소식

윤 대통령은 3일 동해가스전 주변에 최대 140억배럴 규모의 석유와 가스 매장 가능성 있다고 발표했다. 이는 연구기관·전문가의 검증을 거친 것이라고 밝혀 큰 놀라움을 안겼다.

작년 2월 미국 심해 기술 평가 전문기업인 액트지오사에 그간 축적한 동해 탐사자료의 분석을 의뢰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밝혔다.

대통령과 산자부는 '산유국의 꿈'을 한껏 고취시켰다.

특히 이 규모는 1990년대 후반 발견된 동해 가스전의 300배가 넘는 규모이며, 한국 전체가 천년가스 최대 29년, 석유 4년 넘게 쓸 수 있는 양이라고 홍보했다.

심해광구로는 21세기 최대 석유개발사업으로 평가받는 남미 가이아나 광구 110억배럴보다 많은 탐사 자원량이라고 했다.

대통령은 이제 실제 석유·가스가 존재하는지, 실제 매장규모 얼마나 되는지 탐사 시추단계로 넘어갈 차례라고 했다.

최소 5개의 시추공을 뚫어야 하는 상황이며, 1개당 1천억원이 넘는 비용이 들어간다고 발표했다. 세계 최고 에너지 개발기업들도 벌써부터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산자부 탐사 시추계획을 승인했으며, 내년 상반기에 어느 정도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했다.

산자부는 막대한 양이 매장돼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3/4이 가스, 1/4이 석유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2027~2028년 쯤 공사를 시작해 2035년 정도에 상업적 개발을 시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아울러 매장 가치는 삼성전자 시총의 5배(전주말 삼성전자 시총 440조원 기준으로 2,200조 가치)에 달한다고 밝혔다.

현 단계에서 탐사 비용 추정은 어렵지만 4,500만 배럴 분량의 가스가 나온 동해가스전의 경우 총비용이 1.2조원 들었다고 했다. 석유공사는 연구 결과를 토대로 올해 말부터 탐사 시추를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 증폭된 의심...그리고 우드사이드

하지만 '비현실적인 느낌을 주는' 이번 발표에 대한 의구심도 컸다.

정부가 의뢰했다는 최고 전문업체가 사실상 1인 업체에 불과하다는 의심이 일었다.

미국 현지 교민이 이 회사를 방문해 보니 업체 주소가 매물로 나온 가정집이었다는 소식도 들리는 등 '대형 사기'가 아닌가 하는 의심도 이어졌다.

영일만 일대는 이미 전문가들이 샅샅이 뒤진 곳인데, 대통령의 발표는 너무 놀랍고 충격적인 발표여서 '믿기 어렵다'는 평가도 많았다.

특히 호주의 세계적인 석유개발회사 '우드사이드'가 한국 가스전은 미래 가치가 없다고 판단해 철수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뤄진 발표란 점에서 충격적이라는 반응들도 많았다.

호주 최대 석유개발회사인 우드사이드는 '2023년 반기 보고서'에서 "우리는 탐사 포트폴리오를 최적화하는 과정에서 더 이상 장래성이 없는 광구를 퇴출시켰다"며 그 대상에 한국이 포함돼 있음을 적시했다.

우드사이드는 한국을 포함해 트리니다드토바고, 미얀마, 캐나다에 있는 광구에서 철수했다고 밝혔다.

우드사이드는 한국석유공사와 함께 2007년부터 2016년까지 8광구와 6-1광구 지역에 대한 탐사를 수행했으며, 이후 석유공사와 함께 2029년까지 조광권을 확보해 심해 탐사에 나선 바 있다.

하지만 작년 1월 우드사이드는 사업에서 철수했다.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당연히 호주의 세계적인 회사가 사업성이 없어 철수한 것으로 해석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러자 산자부가 나서서 사실관계를 바로잡는(?) 대응을 했다.

산자부는 우드사이드가 재작년 7월에 철수 의향을 밝히고 작년 1월에 철수했지만 이는 2022년 6월 호주의 자원개발기업 BHP와 합병하면서 기존 사업 재조정 과정에서 나타난 일이라고 했다.

정부는 우드사이드가 시추를 본격 추진하기 전 단계인 유망 구조화 단계까지 이르지 못하고 철수한 것으로 추정했다. 그런 뒤 우드사이드가 유망 구조에 대한 심층 평가를 통해 장래성이 없다고 결론 내렸다고 해석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했다.

액트지오

우드사이드가 철수하자 석유공사는 이들이 남긴 자료 등에 대한 해석을 심해탐사 전문 분석기관인 액트지오에 의뢰했다고 밝혔다.

액트지오는 자체적으로 첨단기술과 노하우 등을 갖고 있는 회사라고 했다.

우드사이드가 시추 본격 추진 전 단계인 유망 구조화 단계엔 이르지 못하고 발을 뺐지만, 액트지오는 자체 첨단기술과 노하우를 통해 새롭게 유망구조를 도출했다고 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호주의 유명 탐사기업 대신 '사실상 1인 기업 수준인 업체'의 말을 믿고 일을 추진한다는 정부의 태도가 미심쩍었다.

결국 논란이 그치지 않자 액트지오의 빅터 아브레우(Vitor Abreu) 고문이 한국을 방문해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그는 7일 기자회견장에서 "우리가 분석한 모든 유정이 석유와 가스의 존재를 암시하는 모든 요소를 갖췄다"면서 프로젝트가 매우 유망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 유망성 때문에 이미 세계적인 석유 관련 회사들이 크게 주목하고 있다"고 했다.

동해 심해 석유·가스 탐사 성공률로 20%를 제시한 것과 관련해선 "굉장히 양호하고 높은 수준의 가능성"이라고 했다.

확률적으로 20%라면 5개의 유망구조를 도출해 시추할 경우 1곳에서 석유가 나온다는 얘기다. 아브레유는 7개 유망 구조를 도출했다고 했다.

기자회견에선 회사가 '가정집'인 곳의 전문성을 어떻게 믿느냐는 의심도 제기됐다.

아브레우 고문은 "회사 주소지는 나의 자택이 맞다"고 인정하면서도 "우리는 컨설팅 업체로 우리 팀은 뉴질랜드, 브라질, 스위스 등 세계 각지에 흩어져 업무를 보면서 효율성을 높인다"고 했다.

한 때 직원이 15명까지 늘었난 적도 있으며, 지금은 14명의 직원이 있다고 했다.

■ 액트지오, 여전히 남는 의혹

액트지오는 실제 시추를 담당하는 회사가 아니라 데이터를 해석하고 분석하는 업체다.

이러다보니 사람들의 의심은 쉽게 꺾이지 않는다.

호주의 유명 시추회사는 '분석 능력'이 없어서 이런 업자의 말을 믿느냐는 비난도 이어졌다.

아울러 이 회사 연간 매출액이 몇 천만원에 불과한 수준이었는데, 최근에 급증했다면서 한국을 '호구'로 잡은 것 아니냐는 의혹도 이어졌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과 같은 정부 기관은 어떤 역할을 했느냐는 의심도 보였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은 1948년 중앙지질광물연구소로 창립한 이래 국내의 지질자원 분야를 담당하는 정부출연기관이다.

광물자원의 탐사·개발·활용과 관련한 연구를 하는 지질자원연구원 대신 외국 '구멍가게'에만 너무 의존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이어졌다.

■ 춤추는 주가...시간이 지나면 밝혀질 진실

주초 대통령의 동해 유전 발표는 큰 충격이었다.

대통령의 말대로만 된다면 한국은 뜻하지 않은 축복을 받은 나라가 되는 것이다.

일단 관련 테마주들은 폭등 뒤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다.

대통령의 3일 발표 당시 한국가스공사와 흥구석유, 한국석유 등이 일제히 상한가로 폭등했다. 동양철관, 화성밸브 등 강관업체들의 주가도 폭등했다.

석유, 강관, 피팅 등과 관련된 테마가 형성되면서 주가가 폭등한 것이다.

동시에 리스크도 매우 커진 것으로 보인다.

한국가스공사 주가는 상한기를 기록한 3일부터 3일간 47% 폭등했다. 이후 오늘은 10% 넘게 빠지는 등 변동성을 이어가고 있다.

주초 대통령 발표에 기대 관련 주가가 폭등했지만, 일각에선 제2의 '보물섬 사태'에 비유하면서 이를 우려하기도 한다.

여의도 증권가에서 오랜기간 일한 한 지인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느닷없는 산유국 테마에 일부 종목들이 폭등했습니다. 하지만 너무 위험해 보이는군요. 이번 일과 관련해선 의혹이 커 관련 인사까지 불러서 기자회견을 했지만 사실 믿음은 가지 않습니다. 주식투자자라면 이번 테마는 조심하는 게 좋을 겁니다. 마음 같아선 대대적으로 숏을 치고 싶군요."

■ 기묘한 사건

호주 최대 석유개발회사 우드사이드는 한국 영일만 일대 심해 탐사 사업이 더 이상 가망성이 없는 것으로 판단해 작년 1월 철수한 것으로 보인다.

합병에 따른 포트폴리오 조정이란 정부의 반론도 있었지만, 이 지역이 유망한 곳이었다면 사업 포트폴리오에서 버리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우드사이드는 한국석유공사와 맺은 계약에 따라 해저 광구에서 광물을 탐사·채취·취득하는 권리인 조광권의 50%를 확보했던 곳이다.

이런 회사가 이 권리를 포기한 이유는 '돈이 될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렇지 않다면 다른 '사연'이 있을 것이다.

정부나 액트지오의 발표처럼 '20% 확률'이 사실이라도 이 회사는 여기서 철수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20%라면 엄청나게 높은 확률이다.

하지만 직원도 몇명 없고 직접 탐사도 하지 않지만 '분석 능력'이 극강(?)이라는 작은 업체에 일감을 맡기자 갑자기 한국이 조만간 산유국이 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2022년 기준 우드사이드의 매출은 20조원이 넘었지만 액티지오는 우리돈 4천만원이 채 되지 않았다.

두 회사의 규모 차이는 너무 커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작지만 알찬'(?) 1인 기업 비스무리한 곳의 평가를 신뢰하고 있다.

상식의 시각으로 접근하면 이번 발표가 '매우 기이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제발 정부의 발표대로 10년 뒤 석유와 가스가 콸콸 쏟아져 나오길 바란다. 그리고 액티지오가, 그리고 아브레우 박사가 진짜 '최고의 전문가'였길 빈다.

하지만 상식과 세상사가 돌아가는 통상적인 법칙의 힘을 믿는다면 이 가능성에 베팅하기는 쉬워 보이지 않는다.

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

< 저작권자 ⓒ 뉴스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로그인 후 작성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