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 2024-07-27 (토)

(장태민 칼럼) 이정후의 시즌아웃

  • 입력 2024-05-24 14:38
  •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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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30개 팀이 있는 메이저리그 내 중견수의 WAR 순위. 이정후는 하위권인 25위에 랭크돼 있다. 출처: ESPN

자료: 30개 팀이 있는 메이저리그 내 중견수의 WAR 순위. 이정후는 하위권인 25위에 랭크돼 있다. 출처: ESP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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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콤 장태민 기자] "이 세상 기술이 아니다"

4월 하순 국내 스포츠 매체와 일간지들이 이정후의 컨택 기술을 극찬하는 기사들을 일제히 올렸다.

당시 이정후는 2할6푼대 타율에 장타 부재 등으로 메이저리그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으나 국내 매체들의 '이정후 컨택 능력 칭송'은 끝없이 이어졌다.

국내 매체들은 이정후의 낮은 삼진율을 근거로 미국에서도 호평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심지어 이들은 과감히 '이정후의 메이저리그 적응은 성공적'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과연 사실이었을까. 흔히 말하는 '국뽕' 아니었을까.

사실 필자는 연일 이런 식의 보도를 하는 국내 언론이 어처구니 없어 보였다.

야구를 조금만 알더라도 이정후가 메이저리그 적응에 매우 힘들어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에 이런 류의 보도들은 기사가 아니라 '이정후 응원용 작문'에 가까웠다.

■ 심각했던 국내 언론의 이정후 성적 왜곡 보도

과거 한 스포츠 매체에서 기자로 근무하다가 은퇴한 필자의 한 지인은 '한국 스포츠 기자의 죽음'을 우려했다. 필자의 지인이 최근 이정후가 부상으로 시즌 아웃되기 전 했던 말이다.

"아직 시즌 초반이지만 이정후는 냉정하게 말해 실패에 가까웠습니다. 메이저리그의 빠른 공에 전혀 적응하지 못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팀 내 야수 최고액을 받는 선수치고는 기대와 너무 동떨어진 결과를 내고 있습니다. 어이없게도 한국 기자들은 잘 적응하고 있다고 보도를 하더군요."

한국 스포츠 매체들의 이정후와 관련한 '이상한' 보도는 끝이 없어 보였다.

이정후가 야구장 크기 때문에 홈런을 날려먹었다느니, 안타성 타구가 운이 없어서 아웃이 됐다는 식의 보도를 하면서 이정후 응원에 나섰다.

기자 교육을 받을 때 감정을 배제한 스트레이트 기사부터 배우는 이유는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사실을 전달하는 게 기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정후 관련 기사들은 하나같이 감정이 뜸뿍 담긴 '응원송'이어서 무척 당황스러웠다. 사실 전달엔 충실하지 않은 채 일제히 칼럼 기사 흉내를 내고 있었다.

칼럼 류의 기사는 대단한 것이 아니다. 기사 성격상 '기자의 주관이 많이 담겨 있으니 감안하고 읽으세요'라는 뜻이 담겨있을 뿐이다.

하지만 유독 이정후에겐 한국 야구 기자들이 매우 관대했다. 관련 기사들엔 기자들의 사심이 잔뜩 담겨 있었다.

이정후는 지난해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6년 1억 1300만불에 계약해 상당한 놀라움을 안겼다. 메이저리그 한 게임도 뛰지 않은 선수가 팀내 야수 최고 몸값을 거머쥐었다.

총액 연봉 1억불 이상은 상위권 스타들이나 받는 연봉이었기 때문에 야구 비즈니스를 잘 아는 사람들도 크게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메이저리그 스카우트가 이정후의 플레이에서 '뭔가를 봤을 것'이라고 했다.

■ 이정후의 적응기...부상 전까지는 '실패'

현대 야구는 과거보다 훨씬 정교해졌다.

그리고 정교한 야구의 선두 주자는 일본도 아니고 미국이었다. 옛날부터 그랬다.

한 때 국내 야구 해설가들이 메이저리그는 힘의 대명사, NPB(일본프로야구)는 정교함의 대명사라는 마타도어를 유포한 적이 있었다.

당시엔 야구팬들이 세상 물정에 어두웠기 때문에 해설가 등이 나와서 아무렇지도 않게 사실을 왜곡해도 믿곤 했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메이저리그는 일본 야구보다 더 정교하고 세밀하다.

지금 미국 메이저리그는 수학, 물리학, 각종 공학 등 각종 첨단 기술을 야구라는 스포츠를 분석하는 데 동원하고 있다.

지금은 홈런, 타율, 타점, OPS 등 '옛날' 야구팬들이 익숙한 지표 뿐만 아니라 WAR(Wins Above Replacement, 대체 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 wRC+(Weighted Runs Created, 조정 득점 생산력)라는 좀더 복잡하지만 정교해진 지표들도 선수들의 능력치를 평가하는 데 자주 사용되고 있다.

WAR나 wRC+같은 지표들은 야구팬들 사이엔 이미 대중화됐다. 그리고 이를 판단의 잣대로 이용할 때 이정후의 성적은 포지션 내 '꼴찌'에 가까웠다.

지금은 야구장의 생김새까지 발라내서 타자의 성적을 측정하는 시대다. 타자가 수비에 나섰을 때는 반사 신경 능력까지 측정할 정도로 야구 분석 기술은 고도화됐다.

하지만 국내 언론들은 희한하게도 몸값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리고 메이저리그 평균 선수보다 전혀 나을 것 없는 플레이를 하는 이정후에겐 관대했다.

무지 혹은 억지가 담긴 보도였던 것이다.

■ 이정후의 시련...관건은 진짜 '포텐셜' 있는냐 여부

이정후의 '메이저리그' 야구는 5월 13일을 끝으로 멈춰 있다.

이날 이정후는 이날 1번타자 겸 중견수로 선발 출전했으나 외야 수비 도중 부상을 당하면서 교체됐다.

며칠 뒤 이정후의 시즌 아웃 소식이 전해졌다.

한국 프로야구 최고의 재능을 지닌 선수가 메이저리그에 제대로 적응도 못한 채 시즌을 마감한 것이다.

현 시점에서 '그의 더 나은 미래'를 명목적으로 응원하기보다 지금까지의 성적을 냉정하게 결산할 필요도 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이정후의 도전을 평가하자면 '실패'였다.

이정후가 가진 '포텐셜'을 감안하면 더 좋아질 가능성은 있지만, 현재까지의 성적은 야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실패라고 규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정후는 타율 0.262, 홈런 2개, 타점 8개라는 초라한 성적으로 올해 성적을 마감했다.

팀 승리에 기여하는 안타나 경기 물꼬를 트는 안타는 거의 없었으며, 장타력도 빈약해 몸값에 전혀 걸맞지 않은 성적을 냈다.

수비와 주류는 괜찮은 편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상위 클래스에 비빌 정도는 아니었다.

그가 받은 돈의 가치는 여전히 '리그 적응 후 미래에 터트릴 포텐셜'인 셈이었다.

이정후가 한국 야구, 그리고 국제대회에서 보여준 성적표는 그 포텐셜에 대한 기대값을 높여주지만, 그 포텐셜이 '최고의 야구판'인 메이저리그에선 쓸모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과거 강정호가 메이저리그 안착에 성공한 뒤 메이저리그 팀 미네소타 트윈스는 한국 야구 홈런왕 박병호를 수입해 투자 실패를 경험한 바 있다.

국내 야구에선 박병호가 강정호보다 나았지만 한국보다 더 빠르고 정교한 공을 상대해야 하는 최고의 리그에서 박병호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강속구 투수가 즐비한 마이너리그(트리플A)에서 조차 박병호는 힘을 전혀 못 썼다.

결국 문제는 선수 개인이 지닌 고유한 '포텐셜'이었다.

수준 낮은 한국 야구판에서 거둔 성과로 메이저리그 성적을 예상하는 것은 리스크가 컸다.

거칠 게 말해 빠른 공을 칠 수 있는 능력은 한국 프로야구에선 필요 없는 기술이지만, 메이저리그에선 기본이다. 강정호에겐 그 포텐셜이 있었던 것이고 박병호에겐 없었던 셈이다.

사실 한국 야구는 세계 야구에 발맞춰 발전하기는 커녕 '상대적으로' 퇴보만 거듭했다.

메이저리그 직구 '평균' 구속이 150km 초반으로 올라갔지만, 한국은 아직도 140km 초반에 불과할 정도로 '발전없이 안주하는' 리그다.

야구는 국내에서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최고 인기 스포츠지만 세계 수준과 격차는 더 벌어져 있다.

국내 야구 리그는 선수 포텐셜을 제대로 시험할 토양조차 없는 게 냉정한 현실이다.

■ 이정후의 부상...'이치로 센세'가 하는 냉정한 조언

스즈키 이치로는 이정후의 우상이다.

올해 3월 이정후는 시애틀에서 열린 메리저리그 시범 경기에서 자신의 우상 이치로를 만나 조언을 들었다.

일본 매체들은 '한국의 이치로'가 진짜 이치로를 만나 감격스러워 했다고 보도했으며, 국내에서도 이 뉴스는 꽤나 이슈가 됐다.

그간 이정후는 '이치로'의 등번호 51번을 달고 뛰었으며, 샌프란시스코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치로는 누구보다 몸 관리를 중시하는 선수였다.

이치로는 평소, 그리고 경기에서 부상과 거리가 먼 선수였다. 철저하게 관리한 결과였으며, '부상도 실력'으로 보는 선수였다.

사실 구단 입장에선 특정 선수에게 거액을 투자해 데려왔지만 부상을 당한다면 이는 큰 손해다. 따라서 부상을 당할 위험이 큰 선수의 몸값은 깎는 게 당연하다. 냉정하게 말해 부상을 당하지 않는 내구성, 그것도 사실 실력이다.

이치로는 현역 선수에서 은퇴한 뒤 일본 방송에 얼굴을 비치면서 '이치로 센세(선생)'로서 야구 기술을 가르치거나 야구와 인생 지침에 대해 얘기하곤 했다.

그런 이치로가 '재능과 부상'에 대해 한 말이 있다.

이치로는 운동 선수, 아니 인간으로서 냉정한 통찰력과 따뜻한 감정을 동시에 가진 멋진 인물이다. 그가 최근 한 말이다.

"저 선수 부상만 당하지 않았더라면, 또 아프지만 않았더라면 좋은 선수였는데...라는 말을 자주 하잖아요. 그런데 그것도 재능입니다. 끝까지 해내지 못했다는 것은, 재능이 없는 것입니다."

이치로는 운동 선수가 쉽게 다치는 것도, 무리한 플레이를 해서 몸을 망가뜨리는 것도 재능 부족이라고 말했다.

필자는 이정후의 부상이 무척 안타까웠다. 동시에 이정후가 '사고' 당시 수비를 왜 저렇게 했는지 반성해야 한다고 본다.

희한하게 국내 언론에선 이정후의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수비'를 칭송한 뒤 다쳐서 '안타깝다'고만 하는 것을 보고 뭔가 많이 잘못됐다고 봤다.

냉정하게 말해 이정후의 당시 수비는 '본헤드 플레이'에 가까워 보였다. 메이저리그 적응에 어려움을 겪던 이정후가 조바심 탓에 무리한 플레이를 한 것 아니었나 의심했다.

■ 거친 경쟁의 세계...경쟁력 없으면 도태되고 경쟁 무시하면 망한다

스포츠 업계는 각종 직업군 가운데 생존 경쟁이 가장 치열한 곳이다

실력이 없으면 그냥 도태되는 곳이 이 업계다. 세계 최고의 야구 리그 메이저리그도 두말하면 잔소리다.

하지만 한국에선 사회 전분야에서 수년간 '경쟁을 폄하하는'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야구 업계에서도 '세계적으로 보면' 별 능력도 없는 선수들이 연봉을 10억원씩 받고 있다.

한국 야구선수들은 경쟁을 배제한 울타리 내에서 플레이하기 때문에 능력이 없어도 좋은 대우를 받고 있다. 보호무역이 안겨준 경제적 지대를 제대로 누리고 있는 것이다.

만약 박병호가 미국 프로리그에서 도전을 하는 선수였다면 연봉 1억원을 찍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이정후의 메이저리그 '부적응'에 다소 충격을 받았다.

한국 최고의 포텐셜이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것인가 하고 우려했다.

그래도 한 때 일본과 '대응한 경기를 할 수도 있는 수준'은 되는 것처럼 보였던 한국 야구는 최근 크게 퇴보했다.

다른 나라 투수들이 직구 구속이 150, 160, 165km로 올라갈 때 한국만 140km대에서 계속 헤맨다면 이는 곧 퇴보를 의미한다.

이런 투수들을 대상으로 최고의 성과를 거뒀던 선수(이정후)의 성과물 역시 그 신빙성이 떨어진다.

필자는 여전히 이정후에게 야구 포텐셜이 있다고 본다. 야구 센스가 뛰어난 선수이기 때문에 적응 과정을 거치면 성과물을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만 필자 개인적 예상보다 이정후가 '너무 못해서' 다시금 한국 야구 수준의 '전반적 저하'를 크게 우려하고 있다.

이정후가 올해 재활 과정을 통해 메이저리그 적응의 해법을 찾아내길 바란다.

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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