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콤 장태민 기자]
한국이 2030 세계박람회 유치에 실패했다.
한국은 압도적인 표차를 기록하면서 결선 투표에도 오르지 못했다.
29일 새벽잠을 설치며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제박람회기구(BIE) 제173차 총회 개최지 선정 투표를 지켜본 사람들은 실망할 수 밖에 없었다.
개표 결과는 사우디 119표, 한국 29표, 이탈리아 17표였다.
사우디가 표 2/3 이상을 가져가면서 손쉽게 개최지로 결정됐다. 사우디는 투표 참여 165개국 중 3분의 2인 110표를 넘긴 119표를 얻어 결선 투표 없이 여유롭게 2030년 엑스포 개최지로 선정됐다.
한국은 사우디의 표 2/3 획득을 저지한 뒤 결선 투표에서 역전하겠다는 전략을 세웠으나 어이없게도 30표도 얻지 못한 것이다.
■ 상황 파악 못한 사람들의 기대감 펌프질
한덕수 총리는 한국의 참패 뒤 "국민의 열화와 같은 기대에 미치지 못해 송구스럽고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국민 여러분의 지원과 성원에 충분히 응답하지 못해 대단히 죄송하다"고 말했다.
총리는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인다. BIE 회원국 182개국을 다니며 갖게 된 외교적인 새로운 자산을 계속 발전시키겠다"고 했다.
이번 참패에 대해 일각에선 '그래도 열심히 했다'는 격려도 했다.
하지만 뭔가 납득이 가지 않는다. 이 정도 표차라면 승산이 아예 없었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정부는 기대감을 펌프질하는 데 열중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전날 "파리에 상주하는 각국 외교단은 대한민국 정부와 기업이 원팀으로 뛰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고 감동적이라 했다"는 분위기를 전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원팀 코리아는 종료 휘슬이 울릴 때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은 '원팀 코리아'가 해외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각국의 원팀 코리아에 대한 '칭송'은 국제사회에서 으례하는 인사치레에 불과한 것이었다.
이번 사태를 통해 한국 정부의 현실인식 능력 부재, 정보력 부재, 외교력 약화만 드러났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 9회말 12:3에서 역전 노린 한국의 무모함
사실 최근 수개월간 정부가 엑스포 유치에 대한 기대감을 펌프질 하는게 불안해 보였다.
해외 언론 등에선 이미 사우디가 이겼다는 식의 보도를 해 댔다.
오일머니를 과시하면서 아프리카 국가 등의 표를 돈으로 사버린 사우디의 '매표행위'에 대항하는 일도 지극히 어려워 보였다.
국제 외교 무대에선 자국의 이익이 최우선이다.
'표 주면 돈 준다'는 데 이를 마다할 나라는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민간과 함께 힘을 합쳐 회원국을 일일이 접촉해 설득했으며, 후반부엔 박빙 판세까지 추격했다고 착각했다.
투표일엔 결선에 진출해 이탈리아 지지표와 사우디 이탈표를 흡수하면 역전할 수 있다는 헛된 기대를 부풀렸다.
하지만 119:29라는 결과는 한국이 대단히 큰 착각에 빠져 있었다는 점을 알려줄 뿐이다. 최근 상황이 해 볼만 한 접전이라든가, 역전을 거론할 수 있는 수치가 아니었다는 얘기가 된다.
야구 경기로 치면 9회말 12:3에서 역전을 노린 것이었다.
아무리 야구 경기가 9회말 투아웃부터라지만 12:3에서 역전을 하는 팀은 없다.
결국 한국 정부는 국민들에게 헛된 기대감을 주입할 게 아니라 냉정하게 '출구전략'을 구상했어야 한다.
상황 파악도 못한 채 '의지'만 가지고 '할 수 있다'는 식으로 나오는 것은 낭비일 뿐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아부만 떠는 내시들의 사탕발림에 속아 상황 판단을 전혀 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 거대한 경제적 효과에 눈 멀었던 정부...정보력·외교력 부재만 노출
엑스포의 경제적 효과에 대해 흔히들 세계 양대 스포츠 축제라고 알고 있는 올림픽과 월드컵을 합친 것보다 더 크다는 얘길 하곤 한다.
엑스포는 5년에 한번씩 개최돼 6개월간 진행되는 장기 행사로 투자금액을 훨씬 웃도는 경제적 효과를 낼 수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2010년 중국 상하이에서 열렸던 엑스포 효과와 관련해선 성장률을 2%P나 끌어올렸다는 평가가 있을 정도였다.
정부연구기관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엑스포의 부산 유치시 61조원에 달하는 경제적 파급효과가 예상된다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아울러 50만명에 달하는 고용창출 효과 등도 거론됐다.
하지만 한국은 실패했다. 그것도 어이없는 스코어로 졌다.
지금은 다시 희망을 말하긴 이른 시점이다. 중요한 것은 이번 실패에서 드러난 한국의 시스템적 문제를 고치는 일이다.
당장 작금의 결과를 보면서 걱정스러운 것은 한국의 정보력, 그리고 외교력이다.
한덕수 총리는 이달 9일 국회에 나와 "부산 엑스포는 상당부분 초반 열세 따라잡았다고 판단하다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현재 경쟁이 굉장히 치열한 상황"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 판단은 크게 잘못됐던 것이다.
이번 사태는 한국 정부의 외교, 정보 섹터 실무가 상당히 '취약하다'는 점을 드러내줬다.
지금 해야 할 일은 다음번엔 할 수 있다는 '정신승리' 따위가 아니다.
민관이 합심했지만 시너지 효과는 없었다. 정부는 엉뚱한 기대감에 의지해 헛심만 썼다.
한국은 자신의 능력도, 경쟁자의 능력도 따지지 않은 채 출구도 마련해 놓지 않고 '할 수 있다'만 외치는 우를 범했다.
일단 이번 일을 통해 드러난 정보, 외교 분야의 취약성을 손 보고 고치는 게 급선무로 보인다.
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