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 2024-05-20 (월)

(장태민 칼럼) 최대 원유 생산·수출국 미국...유가·환율 패러다임의 변화

  • 입력 2023-11-17 14:44
  •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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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콤 장태민 기자] 최근 유가가 가파르게 하락하자 의아해 하는 시각이 많았다.

산유국들이 공급 물량을 낮게 유지하고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과 관련한 수급 우려도 남아 있지만 유가가 빠르게 하락하면서 70불에 다가섰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시장에선 '미스터리'라고 표현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국제유가(WTI 기준)는 9월만 하더라도 90불을 넘어서면서 100불을 위협하는 듯 하더니 예상보다 가파르게 떨어져 지금은 70불을 눈앞에 두고 있다.

글로벌 경기나 중국 수요 둔화 등이 거론되기도 했으나 공급 패러다임의 변화가 유가, 더 나아가 환율 구도 까지 바꾼 것 아닌가 하는 추론도 나오는 상황이다.

최근 유가 급락으로 주식, 채권 등 증시가 큰 이득을 봤지만 유가 움직임에 대한 의구심은 남아 있다.

■ 9월말 단기고점 본 뒤 급락한 유가...사우디 절대적 영향 행사 못한다

국제유가는 9월말 기록한 95달러를 단기 고점으로 하향 안정화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두 달도 안돼 유가가 고점 대비 20달러 이상 내려오자 산유국 쪽에선 시장의 투기적인 플레이어들이 유가를 끌어내렸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예컨대 사우디 석유장관은 투기세력의 매도 포지션 때문에 유가가 급락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뉴욕 연방은행은 9월말 이후 유가 하락이 공급 요인이라는 데 무게를 실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당사자들 간 분쟁에 국한되면서 예상보다 유가를 자극하지 못하는 가운데 사우디-러시아가 주도한 공급적 대응, 즉 감산 역시 예전 만큼 큰 효과를 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들의 감산에 맞서는 세력이 미국이다. 미국과 함께 이란, 이라크 등은 사우디-러시아가 주도하는 '공급 관리 시스템'의 힘을 빼고 있다.

금융시장에서도 달라진 '원유 공급국들의 세력 재편'을 거론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성환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Non-OPEC과 이란·이라크 생산 확대로 OPEC+러시아 합산 점유율은 42.6%로 지난 30년내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다"고 지적했다.

이는 지난 1980년대 초반 고유가 해서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고 풀이했다.

지난 1980년대 초반 고유가는 이란 혁명으로 인한 공급 스트레스가 해소된 이후 사우디가 유가를 지탱하기 위해 홀로 감산을 떠안았다. 이후 non-OPEC 국가들의 생산 확대에 점유율을 잃게 되자 밸브를 다시 열 수 밖에 없었으며, 고유가 시기도 종료됐다.

지금은 미국이 원유 공급 관리의 한 쪽 주도권을 쥐게 돼 구조가 변한 부분이 적지 않다.

■ 미국, 이제 우리가 압도적으로 많이 생산, 수출한다

미국은 2019년부터 원유 순수출국이 됐다.

오랜 기간 미국은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이었지만 2008년 셰일혁명 등을 거치면서 에너지의 대외 의존도를 줄였다.

미국은 이미 2013년부터 원유 생산 1위를 기록했으며 올해 상반기엔 원유 순수출량에서도 세계 1위를 기록했다.

2022년 기준 세계 원유 생산에서 미국의 차지하는 비중은 21% 남짓이었으며, 사우디는 13% 남짓이었다. 러시아가 10% 정도를 생산했다.

즉 생산량 측면에선 사우디-러시아를 합친 양이 미국보다 좀더 많을 뿐이었다.

이제 미국은 최대 원유 수출국이 되면서 유가가 오르면 미국의 교역조건이 개선되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물론 여전히 유가 급등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남아 있다. 돌발 이벤트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충돌 강화시 유가가 100불을 훌쩍 뛰어넘을 수 있다는 관점은 살아 있다.

■ 공급의 유가 띄우기, 수요의 유가 낮추기...그리고 공급 구도에 대한 의문

OPEC+는 지난 4월 일평균 120만 배럴 감산을 발표했고 7~8월엔 산유국 카르텔의 맞형들인 사우디와 러시아가 자발적 감산을 발표했다.

9월엔 감산 연장 초치를 취한 뒤 10월엔 이스라엘-하마스 충돌에 따른 공급 우려가 부각되기도 했다.

산유국 카르텔 국가들이 공급을 통제하려고 들었지만 유가는 일각에서 예상했던 것만큼 뛰지 못햇다.

이러자 수요 측면을 그 원인으로 꼽는 시각이 강해졌다. 예컨대 중국 경기가 예상만큼 회복되지 못하는 데다 고금리 여파로 글로벌 수요 자체 자체가 한계를 나타낼 수밖에 없다는 진단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수요 쪽 요인에 무게를 두더라도 최근 유가 급락이 예상보다 과도해 '공급 카르텔' 세력의 힘이 예전만 못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하는 시각도 등장했다.

다만 현재는 유가가 이미 급락한 상황이기 때문에 지금 수준보다는 유가가 더 올라갈 것이란 전망이 많아 보인다. 유가가 70불선에서 60불대, 50불대로 내려가기 보다는 얼추 다 내려온 것 아니냐는 인식이 적지 않은 것이다.

■ 유가와 환율, '원자재 통화 속성' 갖게 된 달러

원유를 수출하는 나라 입장에선 유가가 오르면 경기가 좋아진다. 이는 그 나라 통화의 강세 요인이다.

그런데 원유 순수출에서 최근 가장 큰 변화를 겪은 나라가 세계 최강대국 미국이다.

미국은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에서 지금은 세계 최대 수출국으로 위상을 바꿨다. 이 부분이 환율에도 상당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

즉 미국 달러와 유가의 상관관계가 마이너스에서 플러스로 전환된 것이다.

김선경 국제금융센터 연구원은 "장기간 이어져온 미국 달러화와 유가의 마이너스 상관관계가 지금은 플러스로 변했다. 즉 유가 상승시 미국 달러화도 동반 강세를 보이는 흐름이 강화됐다"고 밝혔다.

원유 시장과 관련한 미국의 위상 변화가 달러에 상당부분 '원자재 통화' 속성을 부여한 것이다.

바클레이즈는 "유가가 10% 오를 때마다 달러인덱스가 0.6% 상승하고 실질실효환율이 1.5% 강세를 보인다"고 진단했다.

■ 유가와 환율, 유로화의 통화가치 산정 패러다임 변화

원유를 수입하는 나라 입장에선 유가가 오르는 경상수지, 경제성장 등이 타격을 입는다. 이는 그나라 통화 가치 약세 가능성이 커진다고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좀 달랐다.

미국 외 다른 나라 통화는 사실상 세계 유일의 기축통화인 달러의 움직임에 따라 반응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최근엔 원유와 관련한 달러 위상이 변함에 따라 유로화 등이 움직이는 방식에도 변화가 왔다.

김선경 연구원은 "과거에는 국제유가 상승 시 교역조건 악화 등에도 불구하고 유로/달러 환율은 미 달러화가 약세를 보이는 과정에서 상승(유로화 강세)하는 경향을 보였다. 하지만 코로나19 위기를 전후로 약세 흐름이 강화되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 외 다른 나라 통화는 유가에 대해 달러가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따라 2차적으로 반응할 수 밖에 없는 속성이 있다.

코로나19 이전 과거엔 유가가 오르면 달러가 약세를 보였으며, 이는 달러인덱스 바스켓의 절반 이상 비중을 차지하는 유로화의 강세를 의미했다. 하지만 유가 상승이 달러가치 상승을 의미하는 구도에선 유가가 오르는 것은 유로화 가치를 떨어뜨릴 수 있게 됐다.

지난해 유로존 총수입 중 석유, 천연가스 비중은 각각 11%씩이었다. 고체연료도 1% 남짓이었다. 유로존의 에너지 대외 의존도가 꽤 크다.

지금은 유가가 오르면 미국 달러가 강해지고 이는 유로화 약세를 의미한다. 또 유가가 오르면 유로존 교역조건은 악화되고 이는 가계 구매력을 저하시켜 유로화 통화 가치 하락을 더 부추길 수 있게 됐다.

미국이 원유 순수출국이 됐다는 사실은 다른 원유 수입국들의 환율 버퍼를 축소한 측면이 있는 것이다.

■ 유가와 환율, 아시아 통화들의 입지에도 변화

미국이 원유 순수입국이었던 과거에는 국제유가가 상승하더라도 미 달러화가 약세를 보이면서 여타 통화로 환산한 국제유가 상승폭은 제한했다.

하지만 미국이 원유 순수출국으로 위상을 바꾸고 코로나19 이후 에너지 공급 차질이 일어난 뒤엔 유로화 가치가 받는 마이너스 압력은 더 커졌다.

이같은 구도의 변화는 다른 나라 통화에게도 찾아왔다.

일본에게 유가 상승은 엔화 약세 압력 강화를 의미한다. 일본은행은 2016년 QQE 정책이 2% 물가목표 달성에 성공하지 못한 이유롤 유가 하락을 들기도 했다.

다만 오랜기간 일본은 저물가를 상징하는 나라였으며, 엔화 자체가 지닌 안전자산 속성 때문에 유가가 올라도 엔화가 대폭 하락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일본은 에너지의 90%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원유가 차지하는 비중은 40%에 육박한다.

만약 유가 상승이 러-우 전쟁과 같은 공급충격에 의한 것이면 안전자산선호 고리를 작동시켜 엔화를 강세로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공급 충격이 아닐 경우 유가 상승은 엔화 약세 압력을 강화시킬 수 있다. 이러면 일본은행은 긴축에 보다 몰두해 엔화 강세에 더 욕심을 낼 수 있을 것이다.

중동 산유국 외 아시아 국가 다수는 원유를 수입해 소비한다. 아시아 국가들은 유가 상승시 통화가치 하락 압력을 받는다. 이는 물가를 올리고 경상수지 적자 가능을 키우며 성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주게 된다. 이는 로컬 통화들의 달러 대비 가치 하락을 의미한다.

JP모간은 유가가 20% 오르면 아시아 신흥국들의 소비자물가는 평균 0.6%P 상승하고 GDP는 0.2%P, 수역수지는 0.4%P 강소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아무튼 미국이 원유 순수출국으로 지위를 바꾸면서 달러와 유가는 같은 방향을 보려는 속성이 강해졌다.

이런 흐름에 대해 다른 나라 통화들은 긴장도를 높여야 할 수 있다. 과거엔 달러가 유가 변동성 장세에서 여타국 통화에 대해 안전판 역할을 해주는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원유결제통화인 달러가 유가와 보조를 맞추려고 하기 때문에 다른 나라 통화의 변동성이 더 커질 수 있는 셈이다.

김선경 국제금융센터 연구원은 "종전엔 국제유가 상승 시 미 달러화 약세로 인해 원유 수입 부담이 일부 상쇄됐지만, 현재는 이 매커니즘이 잘 작동하지 않는다"면서 "원유 순수출국 통화 역시 국제유가 상승 시 미 달러화 강세로 인해 자국통화의 대미 달러 강세폭 역시 제한돼 환율의 대외충격 흡수 기능이 약화됐다"고 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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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신한투자증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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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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