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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민의 채권포커스] 야당, 경기악화와 가계부채 '책임론' 띄우기..그리고 한은 총재와 집값 상승론자들의 게임

  • 입력 2023-10-24 14:53
  •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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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콤 장태민 기자]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전날(23일) 국정감사에서 "성장률이 잠재성장률보다 낮기 때문에 지금이 경기 침체기인 것은 맞다"고 수긍했다.

전날 국감에서 이 총재는 지금의 상황이 '침체' 아니냐는 야당 국회의원의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야당 의원들은 '경기가 어렵다'는 점을 중앙은행 수장으로부터 인증 받길 원했으며, 이 총재는 침체 주장에 대해 동감을 표시했다.

흔히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술적 침체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하지만, 일단 이 총재는 '잠재성장률 수준'이라는 기준치를 활용해 지금이 침체라고 했다.

■ 야당, 한은 총재 앞에 두고 '경기 침체와 정부 경제 무능' 부각

전날 국회 기재위에서 민주당 의원들은 한은 총재를 앞에 놓고 '경기 어려움'과 '정부의 가계부채 관리 무능'을 부각시키는 전략을 택했다.

윤석열 정부 취임 후 경기가 더 어려워졌으며, 가계부채는 크게 늘어 이 부분이 위기까지 불러올 수 있다는 쪽으로 질문과 발언의 방향을 잡았다.

특히 증권사 사장을 지낸 홍성국 의원은 한국경제가 내년 중 큰 어려움에 빠질 것으로 예상하기도 했다.

홍 의원은 "내년 성장률은 (한은 예상인 2.2%가 아니라) 1%대 가능성이 꽤 있다"면서 "한국은 구조적으로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그는 "경제지표를 보면 어떻게 내년에 좋아지는지 의문"이라며 "금융권 연체율은 다 올라갔다"고 했다.

이 야당 의원은 한국경제 비관론에 탐닉해 한은 총재 앞에서 '예언자적 풍모'까지 뽐냈다.

홍 의원은 "채무자가 빚을 갚는 방법은 자산가격이 오르는 것 밖에 없다고 민스키가 말한 바 있다. 내년 봄엔 민스키 모멘트가 올 것"이라고 예언했다.

민스키 모멘트는 누적된 부채가 임계점을 지나면서 자산가치를 붕괴시키고 경제를 위기에 빠뜨리는 순간을 말한다. 즉 부채상환을 위해 건전한 자산까지 처분해 경기가 망가질 것이란 예상이었다.

총재도 이런 발언에 일정부분 맞장구를 쳐줘야 했다.

이 총재는 "부채가 굉장히 높아 잘 관리하지 못하면 위기가 온다는 데 공감한다. 하지만 빨리 해결하는 방법이 잘 안보여 고민스럽다"면서 현재의 경기 상황도 '침체'라는 데 동의했다.

■ 한국경제 '상대적으로' 나쁘지 않다던 총재...야당 의원들 경기비관론 공세에 '침체' 동의

국감 질의 초반 이창용 총재는 야당 의원의 올해 한국 성장률 1% 가능성이나, 한국경제 '최악'이라는 주장에 대해 일정 부분 맞서는 모습을 보였다.

전날 오전 이 총재는 "올해 성장률이 1%가 될 가능성은 제로다.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 성장률이 최악이라는 말은 동의 못한다. 미국 정도를 제외하면 선진국 중 나은 편"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야당 의원들은 한은 총재의 '상대적으로' 긍정적인 답변이나 전망은 묵살하는 전략을 택하면서 윤석열 정부의 실정을 부각시키는 데 앞장섰다.

이 총재가 "반도체 쪽이 좋아질 것 같다"고 하자 서영교 의원은 "한국경제 안 좋다. 다른 나라와 비교할 게 뭐가 있나"라고 했다.

야당 의원들은 자신들이 더 잘 안다는 식의 질의와 답변을 하면서 총재가 동의하길 종용했다.

서영교 의원은 "반도체 쪽도 안 좋아진다. 내가 전화해서 담당자들과 얘기해 봤다"고 윽박질렀다.

야당 의원들의 공세 속에 이 총재의 '경기 어렵다'는 발언 비중은 올라갔다.

■ 야당, 한은 총재 앞에 놓고 '정부가 가계부채 급증 주범' 부각

야당 의원들은 또 정부가 가계부채를 키웠다고 비판하는 데 주력했다.

특히 한은이 금리를 올리는 상황에서 특례보금자리론 등을 통해 부채 급증을 이끌었다고 비난했다.

이미 정부 금융정책 사령탑 'F4(FINANCE 4)'의 일원이 돼 있는 한은 총재는 정책 '엇박자' 비판도 일정부분 방어했다.

이 총재는 "부동산 경착륙이라는 부작용 막기 위해 (한은이) 금리 올리면서 (정부는) 대출 규제를 완화시켰던 것"이라며 "지금은 또 이것을 어떻게 조정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밝혔다.

총재는 미시적 차원의 대출 완화 등은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었으며, 이후 부작용이 나타나 지금은 다시 규제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야당은 정부의 가계부채 관리 실패를 더욱 부각시키면서 한은의 정책(금리 인상)과 정부의 정책(대출 완화) 사이에 엇박자가 났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은의 '독립성'도 문제 삼았다.

■ 총재, 가계부채 다시 급증하면 금리 올린다

이런 추궁 이후 한은 총재는 통화정책 관련해 '가계부채를 매우 중요하게' 보고 있다는 사실을 강변했다.

규제 강화 이후 일단 증가세가 주춤하고 있는 가계부채 증가폭을 보면서 여의치 않으면 금리를 인상할 수 있다는 점까지 거론했다.

이 총재는 우선 야당 의원의 "가계부채를 향후 더 타이트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데 동의하는가"라는 질문에 "예"라는 답을 한 뒤 자신의 계획을 얘기했다.

총재는 "감독기관과 한은 모두 가계부채를 GDP 100% 밑으로 천천히 낮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정부와 한은 사이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미시적 제도로 안 되면 금리정책을 쓸 수 있다"고 했다.

7~8월 가계부채가 급증한 뒤 9월 들어선 증가폭이 2.7조원 수준으로 주춤했지만 몇 달 더 보고 판단하겠다고 했다. 만약 가계부채가 다시 잡히지 않으면 금리 인상 카드를 쓸 수 있다고 했다.

이 총재는 "2달 변화 보고 트렌드 바뀐 것인지 걱정하고 있다. 앞으로 2~3개월 후 가계부채가 다시 5~7조로 늘어나는지 보고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한국 가계부채는 기본적으로 부동산과 엮여 있다.

통화정책이 부동산을 직접 타게팅을 할 수 없지만 총재는 가계부채와 부동산의 연계성을 거론했다.

총재는 "가계부채는 부동산과 관련돼 있다. 부동산 가격이 올라간다는 기대가 커진 것도 하나의 이유"라고 했다.

일단 부채가 증가 흐름이 꺾이지 않으면 금리 카드를 꺼낼 수 있다면서 야당 의원들의 가계부채 걱정에 화답했다.

총재는 "현재 DSR 규제에 해당되는 차주 비중이 낮다. DSR 루프홀을 많이 없게 해서 가계대출 증가를 얼마나 막는지 보고 거시정책을 쓸 것"이라고 했다.

마음만 먹으면 통화정책으로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사회적 비용이 굉장히 많이 들 수 있다.

총재는 통화정책으로 부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해결에 비용이 많이 들고 얼마나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느냐의 문제"라고 했다.

가계부채 문제는 미시적 정책을 통해 해결할 수 있으면 바람직하다. 또 GDP 증가율 자체를 높여 부채 비중을 낮추면서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상황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한은은 금리라는 둔탁한 칼을 뺄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최근 한은 총재는 빚을 내서 집 사려는 젊은층 등에게 '경고'하는 모습도 보인 바 있다.

총재는 부동산 '빚투'에 대해 경고한 이유로 대내외 이유를 모두 들었다.

총재는 "국제적인 면에서 미국의 고금리가 유지될 가능성이 높고 한은 역시 가계부채 때문에 금리를 쉽게 안 내린다는 점 등 감안한 발언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시 경고했다. 금리 카드를 쓸 수 있다는 점과 최소한 금리를 쉽게 내려주지 않을 것임을 명확히 하는 모습이었다.

총재는 "한은이 금리를 더 올리지 못하겠구나 하면서 집에 투자한 사람들이 (최근) 늘었다. 잘못된 생각"이라고 했다.

■ 가계부채는 결국 부동산 문제, 한은 총재와 집값 상승론자들의 게임 시작됐다

최근 수도권 중심으로 아파트 값 오름세가 지속되고 있다.

특히 요즘엔 전세가격 상승률이 매매가격 보다 더 두드러진다.

결국 전셋가가 매맷가를 더 밀어올릴 수 있다는 우려까지 커져 있다.

최근 가계부채 급증과 집값 상승 흐름 속에 정부가 부채를 다시 옥죄고 있으며, 한은 역시 이런 분위기에서 자유롭지 않다.

지난주 후반 KB국민은행이 발표한 주간주택시장동향을 보면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은 한주간 0.24% 상승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그 전주의 0.14% 상승률보다 크게 확대된 것이다.

최근 수주간 주간 매매가격 상승률은 0.6% 정도였지만 전셋값 상승세는 확대되고 있다. 경기 지역에선 하남, 화성, 과천 등에서 전셋값 주간상승률이 0.5%를 넘는 급등세를 보였다.

올해 상반기 역전세난 등으로 하반기 전세값 급락을 예상하는 시각도 상당히 많았으나 지금은 전셋값이 매맷값을 더 밀어올리는 것 아니냐는 예상들도 늘어났다.

통화정책가들 역시 이런 분위기를 간과할 수 없다.

한은 총재가 레버리지를 일으켜 부동산에 투자하려는 사람들에게 경고했으나 총재와 게임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최근의 집값 오름세가 만만치 않다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 지역의 한 공인중개사는 "내년 아파트 공급이 없다. 내년 뿐만 아니라 이후에도 구조적으로 공급이 부족해 보인다"면서 "지금이라도 사는 게 낫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금리라도 내리면 집값에 불이 붙을 것"이라며 "그래서 한은 총재가 빚내서 집사지 말라고 하는것 같은데, 총재 말 반대로 해야 하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고금리 상황에서 조금만 더 버티면 좋은 시절(금리 하락)이 올 것으로 보는 부동산 롱 플레이어들 때문에 한은이 금리를 내려주기 더 어려워졌다는 평가도 보인다.

증권사의 한 채권딜러는 "한국은행은 미국 고금리 장기화 뿐만 아니라 부동산과 가계부채 때문에 쉽게 금리를 내릴 수 없을 것"이라며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 실패의 후유증이 이어지고 있지만, 윤석열 정부 부동산 정책도 무능하긴 마찬가지"라고 평가했다.

[장태민의 채권포커스] 야당, 경기악화와 가계부채 '책임론' 띄우기..그리고 한은 총재와 집값 상승론자들의 게임이미지 확대보기

자료: 12일 열렸던 가계부채점검회의 결과

자료: 12일 열렸던 가계부채점검회의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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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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